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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목격한다.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의 기록이자 그 시절에 대한 당신과 나의 기억이며 한 영화가 클래식의 반열에 오르는 순간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12년이란 시간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보이후드>는 단순히 걸작이란 말 안에 가두기 힘든 영화다. 그저 상찬하는 것만으로는 이 영화와 관객, 나와 시간 사이의 공명을 채 설명할 수 없다. 제작과정을 제외하곤 얼핏 여타 성장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나이 들어가는 경이로운 체험의 끝에서 시간과 기억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사유를 발견한다.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를 완성시킨 뚝심에 경의를 표하며, 전혀 다르게 체험되는 영화의 발견에 감사를 보내며,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에게 말을 걸어본다. 당신의 지금은 어디입니까. 이제 영화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언제나 지금 여기 우리 함께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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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영광은 <디판>에 돌아갔다. 프랑스영화의 오늘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사람인 자크 오디아르는 매번 놀라운 영화를 선보여왔고 이번에도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상이 반드시 권위를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칸영화제의 주인공이라면 충분히 되돌아볼 만하다. 다만 <예언자>(2009)의 충격과 <러스트 앤 본>(2012)의 생생함과 비교한다면 <디판>은 다소 어정쩡해 보인다. 물론 <디판>은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다. 내전을 피해 망명한 이민자들의 불안한 내면에 대한 접근도 치밀하고 자크 오디아르 특유의 스타일과 인장들도 그 파괴력이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 영화에 마냥 동의하긴 어려웠다. “칸의 자국영화 사랑이 함량 미달의 프랑스영화까지 경쟁부문에 포함시켰다”는 일부 외신의 견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디판>의 수상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
걸작과 범작 그 어디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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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11:00
여행 첫날은 미신주의자가 된다. 온갖 사소한 일을 ‘조짐’으로 받아들인다. 출발은 덜컹거렸다. 객차 짐칸에는 내 슈트케이스를 둘 자리가 없었고 새 신발의 밑창은 너무 딱딱했다. 기차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리는 동안 <보이후드>를 다시 보면 제격일 것 같아 챙겨왔으나 KTX가 영화보다 15분 먼저 종착역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했다. 퍼트리샤 아퀘트가 “난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단다”라고 흐느끼는데 영화를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나는 매우 호사스런 처지다. 제일 중요한 업무가 아홉명의 관객과 더불어 내가 선택한 여섯편의 영화를 관람하는 ‘시네마 투게더’ 프로그램이니 미안스러울 지경이다. 함께 관람할 영화를 고르고 보니 거장감독 작품 3편과 데뷔작 2편, 그리고 노장과 신인이 공동 연출한 작품 하나다. 프로그램의 첫 영화는 내일 오후 1시 해운대에서 상영되는 아이슬란드 화가 다큐멘터리 <지평선의 화가 게오르그 구드나손
부산 극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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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
2013 <사냥> 연출
2009 <목구멍의 가시> 연출
2008 <태백, 잉걸의 땅> 연출
2007 <가족 초상화> 연출
2003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연출부
2013년 영도대교 재개통 직후 ‘점바치골목 활성화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영도 점바치골목도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땅에 살던 이들은 하나둘 영도를 떠났다. 가게터 주위엔 철거 작업용 철조망이 둘러졌고, 조선소가 있던 자리는 녹슬어 폐허가 되어갔다. 주인 없는 빈집엔 먼지만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보다 조금 더 앞선 3년6개월 전부터 “영도의 곳곳을 알리고 싶어” 영도를 찍기 시작했던 김영조 감독은 제작비 조달이 힘에 부쳐 슬슬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점바치골목 활성화사업이 시행되었고, 감독은 영도가 더 많은 모습을 잃기 전 카메라를 고쳐잡았다. 작은 땅 영도에마저 휘몰아친 재개발 광풍. 그
영도의 기운을 육화한 사람들을 담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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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흔들리는 물결> 연출
2001 <와니와 준하> 연출부
“시나리오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쭉쭉 가는구나 싶었는데 영화 한편 만드는 데 7년이나 걸릴 줄이야. (웃음)” <흔들리는 물결> 시나리오는 김진도 감독이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썼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시나리오 전공 졸업작품이다. 당시 그는 마감날을 한달도 채 남겨두지 않았는데 아이템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고향인 경북 영주에서 두 가지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나는 병원 방사선과 기사가 방사선 사진을 보는 이미지였고, 또 하나는 그 남자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미지였다. “방사선 하면 죽음이 떠오르지 않나. 이 두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쓰면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룰 수 있겠다 싶었다. 지도 교수였던 이창동 감독님께서도 그전에 냈던 아이템 모두 ‘가짜 같다’고 하시다가 ‘이 얘기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청년필름의 이선미 프로듀서가 이 아이템을 마음에
“써놓은 장편 시나리오가 11편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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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스틸 플라워> 각본, 연출
2014 <들꽃> 각본, 연출
2013 <찡찡 막막> 촬영
2009 <뭘 또 그렇게까지> 제작부
스틸 플라워. 박석영 감독의 전작 <들꽃>을 봤다면 그 제목의 의미를 ‘여전히, 꽃’(Still Flower)이라 짐작하겠지만 <스틸 플라워>는 ‘강철 같은, 꽃’ (Steel Flower)이다. 메마른 땅 위에 홀로 선 세 소녀의 이야기 <들꽃>의 막내로 출연한 정하담이 홀로서기를 시도한 작품이다. <들꽃>의 하담이 곧 <스틸 플라워>의 하담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만일 같은 인물이라 가정한다면, 하담은 <들꽃>의 언니들로부터 약간의 시간을 두고 버려진 아이다. 자기 손으로는 수습하기도 힘든 무겁고 번거로운 짐을 안고 하담은 홀로 부산의 어느 바다에 당도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건지, 짐의 무게에 휘둘리는 건지 <스틸 플라워>의 오
“영화는 저 스스로 만들어지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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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공부의 나라>
2013 <내일도 꼭, 엉클 조>
2012 <미스터 선거왕>
2009 <다큐프라임-삼동초등학교 180일간의 기록>
2008 <전설의 대물 돗돔을 찾아서>
2007 <영혼의 퍼포먼스 굿> 외
“<공부의 나라>로 국내 매체와 갖는 첫 번째 인터뷰다. 관심 가져줘서 정말 고맙다.” 최우영 감독이 웃으면서 꺼낸 첫마디가 꽤 아프게 들린다. 극영화에 비해 다큐멘터리가 관심을 덜 받아온 게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한편을 제작하기 위해 만든 이가 들인 시간과 애정의 크기를 짐작해본다면 쉽게 넘기기 어려운 말이다. <공부의 나라>는 최우영 감독이 햇수로 5년을 쏟아부어 완성한 프로젝트다. 영화는 고3 수험생들이 수능 준비로 정신없는 전 과정을 2년에 걸쳐 따라가 수능 당일과 그 이후 아이들의 모습까지도 담았다. ‘Reach for the SKY’라는 영화의 영문 제목이
아이들의 감정을 따라 입시 제도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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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소통과 거짓말> 각본, 연출
2014 연극 <괴물> 각본
2014 연극 <모럴패밀리> 각본, 연출
2014 뮤지컬 <트루시니스> 각본, 연출
2012 뮤지컬 <짝사랑> 각본, 연출
2011 연극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각본, 연출
2009 뮤지컬 <더 스토리 오브 노틀담 드 파리> 각본, 연출
2004 단편 <모순> 연출
부산에서 오간 영화인들의 대화 중 빈번하게 들려온 말이 있다. “<소통과 거짓말> 봤어?” “뉴커런츠 섹션? 봤지.” “어땠어?” “…글쎄.” 여기서의 ‘글쎄’는 영화가 나빴다는 뜻으로 말을 흐린 게 아니다. 보았으되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는 망설임의 표시다. 이승원 감독의 장편 데뷔작 <소통과 거짓말>은 독특한 구성과 형식,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상황 설정, 배우들의 열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올해 부산의 최대 화제작 중 하나였
배우의 말과 움직임으로만 할 수 있는 어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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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혼자>
2011 <물고기>
2010 단편 <괴롭히는 여자>
2009 단편 <88, 세대들>
2008 단편 <가위바위보>
2007 단편 <문>
2007 단편 <내안의 나에게>
2006 단편 <연애하기 좋은 날>
2006 단편 <아프게 살아가기>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오래된 집들과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길의 신당동 제5 재개발지역. 그곳을 마주하고 있는 작은 원룸이 박홍민 감독의 아지트다. 창문만 열면 손에 잡힐 듯 훤히 내다보이는 건너편 달동네와 자신이 발붙이고 사는 비좁은 작업실이 <혼자>의 아이디어가 출발한 곳이자 영화 전체의 배경이기도 하다. 5년간 이곳에 살며 박홍민 감독은 혼자 무슨 생각을 했기에 <혼자>라는 미스터리한 심리 스릴러물이 만들어진 걸까.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대낮의 달동네. 다큐멘터리 감독인 수민(이주원)은 우연히 건너편 건물
“나를 위한 치유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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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돌연변이> 연출
2014 <소셜포비아> 각본지원
2013 단편 <세이프> 각본
2012 단편 <질식> 각본, 연출
2012 단편 <녹색물질> 각본, 연출
2009 단편 <고래를 본 날> 연출
상체는 물고기, 하체는 인간. <돌연변이>의 주인공 박구(이광수)는 ‘반인반어’ (半人半魚)다. 태어날때부터 그런 모습이었던 건 아니다. 평범하게 나고 자란 그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인 평범한 20대 청년이다. 제약회사의 아르바이트에 혹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적어도 남들과 비슷한 외모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약 먹고 잠을 자기만 하면 30만원을 준다는 한 제약회사의 아르바이트 모집을 보고 생체실험에 참여했다가 약의 부작용 때문에 상체가 생선으로 변한 것이다. ‘생선인간’ 박구라는 이 독특한 아이디어는 권오광 감독이 한국예술종합학교 도서관에서 어떤 그림을 보면서 탄생됐다.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
이 사회의 돌연변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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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는 막을 내렸지만 재능 있는 신인 발견은 계속된다. 올해 영화제에서도 장차 한국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을 만한 신예들의 개성 있는 작품들이 첫선을 보였다. 그중 <씨네21>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합쳐 총 7작품을 소개한다. 10월22일 극장 개봉하는 권오광 감독의 <돌연변이>를 포함해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한 박홍민 감독의 <혼자>,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을 받은 이승원 감독의 <소통과 거짓말>,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 김진도 감독의 <흔들리는 물결>, 그리고 최우영 감독의 <공부의 나라>와 김영조 감독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편의 다큐멘터리가 그것이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이들의 이름을 기억해두자.
개봉을 기다리며 차기작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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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시네마&토크에서는 단순한 영화 관람을 넘어 영화가 과학에 던지는 화두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꼼꼼히 읽고, 뜯어보고, 다시 말하는 시간. 영화의 상상력, 영화 속 여러 과학기술이 오늘날 우리를 어떻게 자극할지 미리 짚어봤다.
<매트릭스>(1999)
SF영화의 역사를 바꾼 워쇼스키 남매의 화제작. 2099년 기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인류는 매트릭스의 노예가 된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기계가 만든 인공자궁에 갇혀 기계의 전력공급원 역할을 하고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살아간다. 매트릭스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네오를 찾아 구출하려는 모피어스, 트리니티 등 동료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우리가 현실을 인지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는 경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작품이다.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주의
알찬 토크로 SF영화 되새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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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6회째 맞는 국내 최대의 SF과학축제, SF2015(Science & Future)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다. 10월27일부터 11월1일까지 6일간 열리는 이번 축제는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 사이언스&퓨처를 주제로 내걸고 좀더 보편적이고 흥미로운 과학과 영화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익숙한 영화들을 새롭게 바라보며 영화 속에 적용된 과학들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여러 부대행사와 체험형 전시를 통해 가족과 함께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과학축제가 펼쳐진다. 깊어가는 가을 한가운데에서 과학과 문화의 만남을 만끽해보자.
최근 눈에 띄는 사이언스 픽션(이하 SF) 영화가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는 영화의 역사를 바꾸어놓았고,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는 새로운 시청각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는 우주영화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여
과학을 즐겨라, 미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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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훗날 타이의 영화 마스터,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일대기를 돌아보는 영화사가들에게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동안 타이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던 그는 <찬란함의 무덤>(2015)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자신의 고국에서 장편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 시기를 마무리하며 느끼는 애상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 위라세타쿤은 현재 이 복합적인 감정의 중간 즈음에 서 있다. 그런 그가 최근 주목하고 있는 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을 압박하는 거대한 힘과 그로 인해 개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찬란함의 무덤>과 아시아 마스터들이 함께 작업한 단편영화 프로젝트 ‘컬러 오브 아시아-마스터스’에서 위라세타쿤이 연출한 <증발>은 배경과 형식은 다르지만 작품의 테마에 있어 흥미로운 대구를 이룬다.
왕조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병원, 그리고 그 자리에 흐르는 강력한 고대의 기운으로 인해 꿈에서 깨어나지
개, 바나나나무, 집, 고향… 그들의 고유의 리듬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