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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헤이트풀8>를 준비하면서 2014년 4월19일, LA에 위치한 한 극장에서 대본 리딩 라이브 퍼포먼스라는 전대미문의 행사를 열었다. 1600여명의 관중 앞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마치 연극 공연처럼 대본 리딩을 선보인 것이다.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타란티노 감독이 직접 집필한 시나리오가 워낙 소설과 연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타란티노 감독은 약 8개월 후 무사히 영화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고 배우들도 이 영화에 최적화된 연기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란티노 감독은 실제 촬영에 들어가서도 또 하나의 도전을 하게 된다. 촬영을 맡은 로버트 리처드슨 감독이 파나비전 본사 창고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던 울트라 파나비전 70(Ultra Panavision 70) 아카이브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타란티노 감독이 고대 유물이 될 뻔한 이 거대한 과거의 렌즈로 영화를 찍기로 결정한 것이다. 파나비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필름 개척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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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자신의 8번째 장편 연출작 <헤이트풀8>를 들고 돌아왔다. 영화광으로서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장르 요소를 차용해 독특한 무국적 취향의 영화로 재창조해내는 타란티노 감독의 연출 세계는 이번에도 특유의 빛을 뿜어낸다. 이번에는 특히 미국의 역사를 신화적으로 다룬 서부극 장르를 빗대어 현재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 예를 들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촉발된 폭력 문제 등을 매섭게 비판한다. 물론 <헤이트풀8>는 설명만 듣다가도 지쳐버릴 묵직한 주제로 일관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그야말로 타란티노 감독 아니던가. <헤이트풀8>는 유머와 서스펜스와 호러와 스릴러가 뒤섞여 결말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리고 유혈이 사방으로 튀다 못해 뿜어져 나올 정도로 잔인한 장르영화다. 그리고 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재미를 볼모 삼아 유려한 빛의 세계를 필름의 질감으로 담아내는 영화적 체험의 장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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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볼모 삼은 변종 서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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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 이후 포스트 누벨바그 세대를 대표하는 필립 가렐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11월25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되는 필립 가렐 회고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1964년부터 활동해온 필립 가렐의 작품 중 <비밀의 아이>를 비롯한 16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세편의 흑백영화 <폭로자> <처절한 고독>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냈다…>가 설치미술의 형태로 재구성돼 <필립 가렐-찬란한 절망>이라는 이름의 전시로도 소개된다. 16살 때 첫 영화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1964)을 만들어 유럽영화계를 놀라게 한 이후 그는 줄곧 자신의 영화적 지평을 확장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1970년대까지는 서사를 배제한 채 이미지를 활용한 실험영화를 제작했고 그 후에는 영화 안에 서사성을 끌어와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변화를 계속해왔다. 관습을 뛰
미술관에서 영화 보기, 영화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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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스크린을 벗어나 극장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영화와 현대미술의 크로스오버는 진즉부터 진행되어왔고 올해 주목받은 작품 중에도 미술에 뿌리를 둔 영화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15년의 끝자락, 공교롭게도 미술관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꽃피운 세 가지 영화, 전시가 동시에 찾아왔다. 2016년 3월1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스탠리 큐브릭전>, 2016년 2월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필립 가렐: 찬란한 절망전>, 2016년 3월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 서울관에서 진행되는 <윌리엄 켄트리지: 주변적 고찰>이 바로 그것이다. 각기 다른 전시를 관통하는 흐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 영화미디어학자 김지훈 교수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미술관으로 간 영화들은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남기는가. 이 전시들이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무엇인가. 예술과 영화의 경계에 대한 간략한 답이 여기에 있다. 회고
미술관으로 간 영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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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처럼 시작하고 싶다. 이 글은 여행기가 아니다. 아마 그래야 할 것이다. 나는 임권택 감독님의 전작 회고전을 따라 프랑스 낭트영화제에서 시작해서 파리 시네마테크(La Cinematheque Francaise, 이하 ‘파리(에 있는) 시네마테크’로 표기)로 이어지는 열흘에 걸친 모험극의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일정은 살인적이었고 나는 거의 매일 숨 돌릴 틈도 없이 무대에 올라가서 영화를 소개하고 라운드 테이블에 앉아야 했다. 물론 수없이 많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져보았고 그보다 더 많은 영화를 관객 앞에서 소개했으며 종종 기이한 라운드 테이블에도 앉아보았다. 하지만 단 한번도 프랑스 관객을 상대로 영화를 소개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가늠할 수 없었다. 나라마다 다른 영화 ‘관객’ 문화가 있으며, 시네 클럽을 이끌던 앙드레 바쟁과 앙리 랑글루아의 전통 아래 진행되어온 스타일의 디테일이 무언지 누구도 내게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다. 원칙을 알
임권택이라는 102편의 영화, 혹은 공존할 수 없는 영화들이 이루는 임권택이라는 하나의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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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드는 일은 갈등하고 의기투합하길 반복하며 같은 지향점을 향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영화현장은 사회 안의 또 다른 사회다.” 인터뷰 중 임훈 스틸작가가 들려준 얘기다. 현장에선 무수한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만 접하게 되는 관객은 영화의 ‘바깥’을 좀처럼 체감하기 힘들다. 스틸작가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들이고, 그들이 발로 뛰어 건진 사진 한컷, 대상에 애정을 쏟아가며 찍은 사진 한컷이 때론 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홍보용 A컷으로 선택받지 못한 B컷 스틸,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미공개 현장 스틸들을 모았다. 사실 지면에 싣지 못한 사진들이 더 끝내주는데 아직 그 사진들은 세상의 빛을 볼 때가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암살> <사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물> <간신> <검은 사제들> <무뢰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런 장면, 영화에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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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 감독은 그간 제작, 프로듀서 역할과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연출을 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극영화 개봉 소식이 뜸해 궁금증을 모아왔다. 그런 그가 최근 <하나와 앨리스>(2004) 이후 12년 만의 극영화 신작 <립반윙클의 신부>로 국내 개봉 소식을 전해왔다. 12월10일부터 11일간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와 엣나인필름이 공동주최하는 ‘이와이 슌지 기획전’에 참석차, 신작 후반작업 중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러브레터>(1995)가 제작된 지 올해로 20주년이 된다. 이번 기획전은 초기작부터 국내 개봉하지 않은 다큐멘터리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2011)과 <뱀파이어>(2011)까지 모두 아우르는 터라 관객에게도 더없이 뜻깊은 기회다.
=처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게 1999년, <4월 이야기>(1998)를 통해서였다. 한국은 내게 홈타운 같은 그리운 장소
이 사회에 대해 지금 느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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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와이 슌지 감독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한국을 찾았다. 각각 신작 홍보와 기획전 참석으로 방한한 것이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기획전이 열리는 강남에 있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신작 상영회가 열리는 강북에 있었다. 62년생 고레에다 감독과 한살 아래인 이와이 감독은 최근 일본의 모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뒤 친분을 다지게 됐다고 한다. 두 감독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으나 스케줄상 여의치 않았다. 이날 사석에서 만난 두 감독은 일본의 현재를 비판하는 영화를 계획 중이지만 투자 받기가 어렵다는 연출가로서의 고민을 나누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두 감독이 작품 스타일은 다르지만 일본이라는 바탕에서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으로서의 고민, 그 지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짐작이 갔다. 일본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와이 슌지. 두 감독들이 인터뷰에서 밝힌 견해를 통해 지금 일본영화계의 흐름을 짐작해볼 수 있을
일상적인 언어로 쓰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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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가 진통을 겪으며 넷이 되어가는 순간, 그렇게 또 ‘하나의’ 가족이 형성된다. ‘자매’라는 특수한 여성의 코드와 디테일은 배우 아야세 하루카, 히로세 스즈, 나가사와 마사미, 가호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그들을 곁에서 세심하게 관찰하고 역할과 접목시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협업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일본영화계의 주축인 아야세 하루카부터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 점차 연기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나가사와 마사미와 가호, 이번 영화에서 발견된 신성 히로세 스즈까지, 네 배우에게 고레에다 감독과의 이번 작업에 대해 들어보았다(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정해진 대본대로가 아닌 현장에서, 혹은 배우들의 말투를 통해 새롭게 대본을 꾸리는 방식으로 작업하기로 유명하다. 이번 작업은 어떤 경험이었나.
=아야세 하루카_보통은 ‘촬영 들어갑니다-’라는 느낌으로 촬영이 시작되는데, 이번 영화는 촬영이 아닌 일상처럼 느껴져 촬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더
네 여배우들이 함께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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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집 나간 아버지에게서 온 부음을 통해 만나게 된 이복동생. 가마쿠라의 세 자매는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으로 갑자기 한가족이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네 자매에게 닥친 변화된 일상으로 들어가 그간 견지해온 가족, 죽음, 관계의 순환에 대해서 또 한번 질문한다. 아야세 하루카, 나가사와 마사미, 가호, 히로세 스즈가 들려주는 고레에다 감독과의 작업에 대한 기억도 함께 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큼 지독한 관찰자가 또 있을까. 그의 시선은 항상 누군가가 묻으려고 하는 기억에 가닿는다. 시간의 축적 속에 덮여 있었을 뿐 상실은 예나 지금이나 빈 공간으로 남아 메워지지 않으며, 상처는 감추고 싶은 흉터로 남아 있다. <환상의 빛>(1995)의 유미코는 5년이 지나 남의 아내가 되었음에도 문득 전남편이 자살한 이유를 찾아 나서야 했고, <걸어도 걸어도>(2008)의 가족들은 15년 전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고 죽은 아들의 기억 속에서 함께 허우적
그렇게 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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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도시락 하나 달랑 싸들고 산으로 산으로. 호시절의 등산객 얘기가 아니다. 지난여름 매일같이 산을 타야 했던 <대호> 연출부의 사연이다. 2인1조로 팀을 이뤄 하루에 산 하나를 오르고 또 올랐다. <대호>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하지만 지리산은 험준하기로 유명한 데다 촬영 허가가 쉽게 나지 않아 대체할 수 있는 산을 찾아야 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길 6개월여 끝에 제천, 포천, 곡성, 합천, 남해, 전주, 대관령 등 10여 군데가 넘는 전국의 산들을 로케이션 장소로 확정했다.
최종 헌팅까지 다녀온 뒤 이모개 촬영감독은 <대호>의 산에 대한 생각이 확실해졌다.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대호>는 천만덕과 대호 그리고 산이 주인공이구나 생각했다. 산은 이야기의 무대만이 아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곧은 정신과 같은 것을 영화 속 산이 품고 있어야 했다. 산이 주는 경외감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호랑이 등 CG 작업을 하기에 용이한 지형의 산
시원(始原)적 정신의 숲속으로 가는 인간과 CG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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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히말라야 눈밭에서 대체 얼마나 구르다 온 걸까. 예상과 달리 휴먼 원정대는 강원도 영월의 한 채석장에서 두달 반을 보냈다. 에베레스트와 칸첸중가 근접 촬영의 대부분이 영월 채석장에서 촬영됐기 때문이다. 비전문가 눈엔 눈 덮인 산이 거기가 거기 같지만 에베레스트와 칸첸중가는 산을 구성하는 돌의 색이 크게 다르다. 주승환 프로듀서는 근 2년간 경남을 제외한 전국의 채석장을 죄다 돌아보았다고 한다. 주승환 프로듀서는 강원도 군청을 통해 영월군수와 만났고 영월군에서 60년 넘게 성업 중인 채석장 쌍용양회를 소개해줬다. 워낙 넓은 곳이라 회색빛의 에베레스트와 갈색빛을 띠는 칸첸중가의 표현이 모두 가능한 곳이었다. 베이스캠프 장면도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폐채석장에서 찍었다. 폐채석장은 손질이 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기 때문에 산 초입의 베이스캠프 장면을 촬영하기에 적절했다. 뜻밖에도 다른 영화 제작진이었다면 쌍수들고 환영했을 ‘따뜻한 겨울’은 <히말라야>팀엔 이도저도 못할 계륵
장비를 몸처럼 다루며 산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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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大虎)를 어떻게 만들어내서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가. 이 막막한 질문 앞에서 <대호>의 박민정 프로듀서는 확실한 비전을 제시했다. “호랑이는 <대호>의 주인공이지만 호랑이만이 이 영화의 전부는 절대 아니다.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천만덕과 대호가 살아가는 지리산이야말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천만덕, 호랑이 그리고 산을 통해 서사의 균형을 맞추는 게 호랑이 그 자체보다 더 중요했다.” 호랑이를 100% CG로 구현하기로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호랑이를 실사로 촬영할 때 호랑이를 조련하는 등의 한계도 있었지만 산을 CG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건 <대호>의 서사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었다. “무엇이 <대호>에 필요한가를 정확히 파악해 선택과 집중을 했다”는 게 박민정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호랑이 만들기는 방대한 자료 수집에서부터 시작됐다. 연출팀, 미술팀, VFX팀
내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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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 2005년, 휴먼 원정대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서 눈감은 고 박무택, 백준호, 장민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겠다는 숭고한 결단을 내린 것은 산악인들이 산으로 향하는 궁극적 이유가 결국 사람에 닿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이동규 대장으로 나오는 실제 인물, 손칠규 원정대장에게 엄홍길 대장이 무전을 친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무택이를 만났는데 도저히 함께 내려갈 수가 없어 동쪽 해 잘 드는 데에 묻어줬다’고 하는데 그 목소리가 강하게 각인이 됐다.” 엄홍길의 그 목소리가 주승환 프로듀서를 히말라야 설산으로 한발 한발 내딛게 만들었다. 실화의 위엄이 막강한 만큼 JK필름은 4년에 걸쳐 <히말라야>의 이야기를 다듬었고, 완결된 이야기로서의 구색을 갖춘 뒤에야 프로덕션에 제대로 시동이 걸렸다.
2004년 5월18일 오전 ‘2004 계명대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이끌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박무택 산악대장은 불과 한
영화가 다 말할 수 없었던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