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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랬지만 폴 토머스 앤더슨의 <인히어런트 바이스> 역시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더 많은 의문이 생긴다면 영화를 제대로 본 셈이다. 이 영화를 이해하려는 당신의 노력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말들을 모아봤다. 부디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해줄 실마리가 되길 희망하며 <사이트 앤드 사운드>와 <롤링스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편집, 재구성하여 옮긴다.
-토머스 핀천의 작품 중 영화화되는 첫 작품이다. 그의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재미. 핀천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새로운 세계에 푹 빠져버린다. 그의 작품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도전적이면서도 재미있다. 처음 접한 소설은 <중력의 무지개>라는 작품이었다. 순전히 작품의 명성에 이끌려 읽었는데 토머스 핀천에 대해 알고 싶은 이에게 첫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진 않다. 너무 두껍다. (
“핀천의 원작보다는 웃기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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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뒤집어 말해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될 때 애정도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폴 토머스 앤더슨(이하 PTA)은 매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의 영화는 열정적인 지지자들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로 확연히 갈린다. 하지만 그것이 PTA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수 없는 이유가 될 순 없다. PTA의 신작 <인히어런트 바이스>가 극장 개봉 없이 IPTV로 직행한다는 황망한 소식을 듣고 실망한 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PTA를 사랑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그에게 관심이 없는 이들마저 PTA를 거부할 기회를 빼앗겼다. 그럼에도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일단 보고 나서 이야기를 나눌 가치가 있는 영화다.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히어런트 바이스>에 대한 논의를 멈추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비록 늦었지만 <인히어런트 바이스>에 대한 여러 필자
폴 토머스 앤더슨으로부터 온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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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과 두려움, 집착과 강박증. <버드맨>이 주요하게 다루는 테마를 한 시대 앞서 선보여왔던 ‘선배’ 영화들이 있다. 예술가의, 예술가에 대한 영화들을 한데 모았다.
<선셋 대로> 1950
“좋아요, 데밀씨. 난 클로즈업 준비가 되어 있어요”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수작.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진 무성영화 시대의 대스타 노마 데스먼드가 주인공이다. 화려한 시절에 대한 향수와 재기에 대한 집착이 극대화된 캐릭터인 노마 데스먼드는 영화사에서도 손꼽을 만한 강렬한 여성 캐릭터로 남아 있다. 그녀를 연기하는 이가 실제로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였던 글로리아 스완슨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몰려든 경찰과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스튜디오의 조명처럼 느끼는 데스먼드의 광기를 성공적으로 소화해낸 건 20여년의 공백기를 가져야 했던 스완슨의 상황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캐스팅의 묘가 영화에 한층 복합적인 맥락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버드맨>과 관련지
명성의 쌍둥이는 강박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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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작품이 탄생할 것인가. 지난 2012년, <버드맨>의 제작 소식이 처음으로 들려왔을 때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 거다. 당대를 풍미했던 슈퍼히어로영화의 주인공이었으나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져 퇴물배우가 되어버린 남자. 그 남자가 자신의 커리어를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제작하려 한다. 이것이 당시까지 알려진 <버드맨>의 기본 줄거리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한 건 코미디 장르로 알려진 이 영화를 멕시코의 중견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연출한다는 소식이었다.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 <바벨>, 이른바 ‘죽음 3부작’이라 불리는 그의 전작들은 파괴적 에너지와 상실감으로 가득한 작품이었으며 <21그램>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뒤에도 이냐리투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보다 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이 더 사랑하는 이름이었다. 슈퍼히어로와 코미디. 할리우드 상
추락하라 그리하면 비상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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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가에게나 빛나는 재능으로 무장한 전작을 넘어서는 작품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의 신선한 충격은 작품이 거듭될수록 옅어지고, 예술가가 작품에 인장처럼 새겨놓은 고유의 개성은 종종 동어반복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솔직히 고백하면, 4년 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비우티풀>을 세상에 공개했을 때 이 감독에게 앞으로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버드맨>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귀환했고 지금은 그 누구도 이냐리투 영화세계의 제2막이 시작되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버드맨>을 통해 그는 어떻게 다시 비상하게 되었나. 영화의 제작 과정과 이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하는 다양한 영화적 요소들, <버드맨>과 맥락을 함께하는 예술가에 대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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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2, 3월은 아카데미 특수 효과를 노리는 양질의 외화들이 국내 관객을 만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영화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여기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모은 두편의 미국영화가 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4년 만의 신작 <버드맨>과 토머스 핀천의 탐정소설을 원작으로 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인히어런트 바이스>가 그것이다. 각각 뉴욕과 LA를 배경으로 하는 이 두 영화는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버드맨>), 뉴욕영화제(<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첫선을 보인 뒤 2014년의 베스트영화를 꼽는 영미권 평단의 리스트에서 종종 그 이름을 비쳤다. 유난히 자국영화에 호들갑스러운 영미권 평단의 반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지만, 믿을 만한 매체와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투 섬 업’을 외치는 영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된다. 올해 오스카의 최대 수혜자로
TWO THUMBS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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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이경영이 안 나오네?” 무려 <인터스텔라> 리뷰 밑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지난 1년간 오죽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면 그런 댓글까지 등장했을까. 도대체 그는 왜 그렇게 강박적으로 많은 영화에 얼굴을 비쳤던 걸까. 2011년 <씨네21> 신년호(786호)를 통해 거의 10년 만의 공식적인 인터뷰를 가졌던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사는 일산으로 갔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그는 동네라는 ‘구역’을 정해두고, 그곳을 중심으로 지낸다고 했다. 겉으로는 조용한 생활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는 이 휴지기에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과 제작자를 만나고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무실도 매니저도 없는 그에게 일산에서의 시간은 다음 작품을 위한 암중모색을 의미하기도 했다. 일산에서 그를 만난다는 건 이 모의의 시간이 어떻게 구성되나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1997년 5월, 박찬욱 감독의 <3인조> 개봉을 앞둔 이경영은 당시 데뷔 11년차의
누가 그를 대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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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니?” 자신을 찾아온 조카 안나에게 이모는 묻는다. 안나는 자신의 뿌리를 되짚어가야만 한다. 이 물음은 <이다>를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다>는 서원식을 앞둔 견습 수녀 안나가 이모 완다를 만나 자신을 억압하던 것들을 걷어내고 본래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스탠더드 화면비의 흑백 화면 속에는 수녀복, 팝송과 재즈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뒤엉켜 있다. 기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여정을 따르다 보면 1960년대 전후 폴란드 사회가 품고 있던 어둠이 보일 것이다.
보기 드물게 개봉하는 폴란드영화 <이다>(2013)는 극도로 조용한 흑백 영상으로 폴란드 사회가 안고 있던 어둠과 죄의식을 담아낸 작품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에 유럽 영화계를 석권했던 전성기 폴란드파 영화의 흔적이 느껴지는, 아울러 그 시기의 폴란드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가령, 폴란드는 원래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
‘이다’라는 이름의 60년대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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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의 재공모 심사 결과는 해당 사업 개편의 신호탄이었다. 이미 한 차례 공모됐다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심사 결과가 반려되고 재공모된 결과는 대구 동성아트홀 등 5개 지역 예술영화관의 탈락이었다. 영진위의 입장은 “상급 기관으로부터 지역극장의 수입이 지원금보다 적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잠재 관객 개발을 위해 극장 시설, 접근성 등 환경을 주요 기준으로 선정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1월23일,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 개편을 위한 비공개 간담회가 영진위의 주최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과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개봉을 지원해온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 사업을 폐지하고, 신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협조를 당부했다. 새롭게 제안된 사업은 ‘한국예술영화 좌석점유율 보장 지원’이다.
<다이빙벨>은 왜 인디플러스에서 상영되지 못했나
‘한국 예술
입맛에 맞는 영화만 지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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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관련 규정을 개정해 영화제 상영영화의 (관람) 등급분류를 면제하는 대상영화의 폭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영화인들이 영화제 출품을 거부하려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영화인들은 기존의 영화등급분류제도가 영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이 있는데 영진위가 추진하려는 개정이 이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화에 대한 등급분류제는 미국 영화산업이 1950년대에 확립한 민간자율의 사전규제방식에서 연유한다. 우리나라에는 오랜 기간 지속되던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도가 1996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검열에 해당하기에 위헌’이라고 결정된 후 1997년 4월10일 개정된 영화진흥법이 심의기관인 한국공연예술진흥위원회가 등급을 부여하는 ‘상영등급부여제’를 신설하면서 도입되게 된다. 물론 이 상영등급부여제는 등급을 주지 않음으로써 상영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등급분류보류제’를 두고 있어 사실상 검
등급은 시민이 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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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2월11일 오후 3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용관 위원장은 “부산시의 지도점검 결과에 대한 소명자료와 쇄신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부산시가 유출한 자료가 사실과 다르게 보도되는가 하면 불순한 의도로 영화제에 흠을 내는 이들이 기승을 부리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했던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판단해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용관 위원장은 일련의 상황이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보복조치 아니냐는 질문에 “20년간 놓치고 있었던 점들이 불거진 것으로 생각한다. 개선하고 쇄신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보복조치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겠다”고 에둘러 피해갔다.
이어 부산시가 내놓은 지도점검 결과 지적사항에 대해 “명백한 과실이거나 착오 또는 부주의로 인한 행정 미흡인 사안은 조금의 재량도 없이 즉각 시정하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엄하게 감독하겠다”고 말하고, “불가피한 사
“전화위복의 단초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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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돌풍이 몰아쳤던 해운대가 여전히 스산하다. 당장 거센 파도는 잦아들었지만 태풍의 여진인지, 먼바다에 도사리고 있는 너울의 전조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권고 파문이 소강 상태로 접어든 듯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분위기는 아직 긴장감이 역력하다. 지난 1월23일 부산시장이 이용관 위원장에게 사퇴를 권고한 이후 공방이 오가다, 1월27일 이용관 위원장과 부산시장이 직접 만나 어정쩡하게 봉합하는 듯한 ‘할리우드 액션’을 연출했다. 겉으로는 서로 유감을 표하고 쇄신안을 내라는 시장의 요구를 이용관 위원장이 받아들여 일단락하는 모양새였지만 사실은 본 게임을 앞둔 스파링이었던 셈이다.
상황을 요약하면, 지도점검 결과가 안 좋으니 집행위원장이 물러나고 쇄신을 해야 한다는 부산시의 요구에, 부산영화제는 행정절차가 미흡하거나 오류가 있으면 개선하면 될 일이지 집행위원장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의도라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사실
대타협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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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도, 몸담고 있는 분야도 다르다. 하지만 ‘영화인’으로서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최근의 한국 영화계를 뒤흔드는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10명의 국내외 영화인들이 우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부터 충무로 현장까지, 다양한 곳에서 보내온 그들의 목소리를 싣는다.
영화를 보여주는 것, 영화제의 역할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예술감독
현재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 소식을 들으니 충격적이고 비통하다. 이 위원장은 칸영화제를 포함한 세계 영화계에서 존경받는 동료이며,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함께 창립한 부산국제영화제도 세계 영화인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이같이 존경받고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칸영화제와 닮은 영화제이며, 칸영화제와 공동의 보조를 맞추는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영화제란 독립적인 영화제를 말한다. 위대
우린 모두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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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영화제 상영영화에 대한 사전심의 면제 조항의 개정을 거론 중이다. 제한적으로나마 숨통이 틔었던 해방구까지 틀어막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번지고 있다. 검열의 잣대와 기준은 그때그때 달랐건만 그 의지만큼은 참으로 한결같다. 표현의 자유마저 유행 따라 1990년대로 돌아가려는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검열과 탄압의 역사를 훑어봤다. Back to the 90’s!
1990 한국영화감독위원회가 공연윤리위원회 철폐와 민간자율심의기구 구성을 주장한다.
이정국 감독의 <부활의 노래>가 심의 과정에서 25분13초를 삭제당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재심 끝에 1993년 개봉했다.
공연윤리위원회에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중 에릭 쿠의 <면로>, 료스케 다카하시의 <침묵의 함대> 등을 문제 삼아 심의의 압박을 가한다. 개막작 <크래쉬>가 영화 관계자, 기자, 평론가에만 공개된다는 조건으로 무삭제 상영을 하기로 했지
그때 그 시절이 그립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