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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기억>(가제) 하라 가즈오 감독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 미군과 일본군은 오키나와에 주둔하며 오키나와 주민들을 각기 다른 형태로 억압한다. 이때 주민들에게 여러 잔학 행위가 가해졌다. 종전 뒤에도 주민들은 트라우마로 오랫동안 고통받았다. 1945년에 태어난 하라 가즈오는 스무살이 돼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중 오키나와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전쟁후유증을 앓는 주민들을 치료하는 의사 시마 시게오를 만났다. 그 이후 하라 가즈오의 가슴속엔 오키나와가 특별한 의미로 자리잡았고,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두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하라 가즈오는 다시 한번 오키나와가 품은 피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국내엔 <치카의 여러 얼굴>(2005) 이후 행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지내고 있었나.
=미나마타병에 관한 17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쓰치모토 노리야키 감독이 2008년에 작고하셨다. 그분 이후 아무도 미나마타병에
오키나와의 과거, 싱가포르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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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3일부터 26일까지 열린 홍콩인터내셔널필름&TV마켓(이하 홍콩필름마트)에 다녀왔다. 23일 제39회 홍콩국제영화제(HKIFF)도 개막했고, 홍콩필름마트 기간 중인 25일엔 아시안필름어워즈와 홍콩-아시아필름파이낸싱포럼(HAF)의 시상식이 열렸다. 인파로 꽉꽉 들어찬 부스마다 호시탐탐 ‘건질 것’을 찾아다니는 각국 바이어간의 밀고 당기기,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긴 줄을 기다리는 영화인들의 열정이 서늘한 전시장의 온도를 뜨겁게 달궈놓았다. 그러나 홍콩필름마트 폐장 직후인 4월1일부터 중국 광파전영전시총국의 인터넷미디어 콘텐츠 규제 정책이 시행됐다. 다음 장에서 홍콩필름마트의 활력과 그 후의 여러 소식을 함께 전한다.
“One Belt, One Road.” 렁춘잉 홍콩 행정수반은 지난 3월28일 보아오 포럼에 참석해 중국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을 홍콩에서 실현할 것을 선언했다.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인 보아오 포럼의 올해 주제는 ‘아시아의 새로운 미래,
홍콩, 아시아영화의 허브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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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두편의 영화 <버드맨>과 <위플래쉬>, 그리고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삽입곡 <Glory>로 주제가상을 수상한 영화 <셀마>는 모두 재즈 뮤지션들이 영화음악에 참여했다. 이 세편의 영화음악을 주목하는 이유는 재즈 고유의 역사와 장르적 특성이 영화의 주제나 형식과 맞아떨어져 음악을 단순 전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버드맨>은 영화 전체가 단 한컷으로 이뤄진 것처럼 보이게끔 형식적 실험을 감행한다. 프레임 혹은 영화에 갇혀 주인공 리건(마이클 키튼)의 상황을 관객이 체험할 수 있게끔 하려는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의도가 담긴 연출이다. 거기에 더해 영화 전체에 생동감을 부여하기 위해 재즈의 즉흥성을 빌려온다. 사운드 디자이너인 마틴 헤르난데스는 리건이 어딘가로 이동할 때마다 타이밍에 맞춰 타악기 후렴구가 계속 나오도록 배치했다. 멕시코의 드럼 연주자 안토니오 산체스가 이를 위해
재즈로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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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 있다면, 우리는 그가 외계인인지 사람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언더 더 스킨>은 ‘인간의 탈’(문자 그대로다!)을 쓰고 지구를 배회하는 외계인의 눈에 비친 인간세계를 투사하는 영화다. 그가 어째서 지금, 여기에 당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을 한 외계인을 외계인답게 하는 건 불균질한 사운드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들릴 법한 노이즈, 조율이 잘못된 현악기에서 흘러나올 듯한 불협화음. <언더 더 스킨>의 일상적인 풍경은 뮤지션 미카 레비가 작곡한 매혹적인 불균형의 음악과 맞물려 긴장감 넘치며 위험이 서려 있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인간의 몸과 외계인의 마음, 이유 있는 친절함과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냉혹한 의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위태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영화에 어울릴 만한 음악가로 미카 레비는 최적의 선택지다. 1987년생으로, 다양
마치… ‘죽음’ 같은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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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래디컬스의 <You Get What You Give>가 발표된 1998년, 당시 라디오만 틀면 주야장천 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정규 앨범이라곤 ≪Maybe You’ve Been Brainwashed Too≫ 달랑 한장 내놓은 게 전부지만, 뉴 래디컬스의 프런트맨 그렉 알렉산더는 이 노래로 일약 평단과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뮤지션이 된다. 그리고 <비긴 어게인>이 개봉한 2014년, <Lost Stars>는 많은 이들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겨 무한 재생된다. <Lost Stars>를 부른 건 마룬5의 보컬 애덤 리바인과 배우 키라 나이틀리지만, 그들의 이름 뒤엔 작곡가 그렉 알렉산더가 있다. <Lost Stars>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알렉산더는 뉴 래디컬스 해체 뒤 작곡과 프로듀싱에 전념했다. 그의 음악은 꽤 대중적이다. 그가 작곡한 산타 나의 <The Game of Love>가 대
노래가 당신의 삶을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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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존즈는 <존 말코비치 되기>(1999)로 데뷔하기 전부터 소닉 유스, 비스티 보이스, 위저, 다프트 펑크, 벡, 비욕 등 쟁쟁한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수도 없이 찍었다. 즉 귀가 예민한 감독이란 얘기다. 아케이드 파이어가 스파이크 존즈의 레이더망에 포섭된 것도 그러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부인 윈 버틀러와 레진 샤사뉴를 주축으로 한 록밴드 아케이드 파이어는 거물 탄생의 예감을 짙게 풍긴 데뷔 앨범 ≪Funeral≫을 포함해 ≪Neon Bible≫ ≪The Suburbs≫ ≪Reflektor≫까지 총 4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으며 록신의 총아가 되었다.
<그녀> 이전, 스파이크 존즈는 아케이드 파이어의 ≪The Suburbs≫에 영감을 받아 단편영화를 찍는다. 28분짜리 단편의 제목은 <신스 프롬 더 서버브스>(Scenes from the Suburbs, 2010). 스파이크 존즈와 아케이드 파이어의 멤버 윌 버틀러, 윈 버틀러가 함께 쓴
멜랑콜리의 50가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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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블롬캠프 감독의 <채피>에서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갖게 되는 인공지능 로봇 채피는 길거리 갱단 닌자(왓킨 투도르 존스)와 욜란디(욜란디 비서)에게서 일종의 ‘인간수업’을 받는다. 그래봐야 총기사용법, 표창던지기, 무섭게 욕하기, 건달처럼 걷기 따위를 배우는 것이지만, 채피는 그 안에서 인간의 조건을 깨달아간다. <채피>는 로봇 액션 대신 채피의 인간적 고뇌와 인간수업 과정을 보여주는 데 치중하면서 영화 전체의 정서적 여운을 다잡는 역할로 강렬한 영화음악을 내세운다. 공교롭게도 영화에 출연한 닌자와 욜란디가 속해 활동하는 힙합그룹 디 안트워드(Die Antwoord)의 곡이 영화 전반에 두루 쓰였다. 닌자와 욜란디라는 이름은 이들의 실제 활동 예명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해 활동 중인 디 안트워드는 현재 남아공 젊은이들의 의식 문화를 일컫는 제프(Jef) 문화를 앞장서서 표방하는 등 음악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
인간이 되고 싶은 악마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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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갓 헬프 더 걸>은 벨 앤드 세바스천의 활동 연장이기도 하고, 밴드의 리더인 스튜어트 머독의 순수한 ‘외도’이기도 하다. 머독이 <갓 헬프 더 걸>을 처음 구상한 건 10년도 전의 일인데,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2003년, 조깅을 하다 악상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가 빠른 속도로 곡을 만들었는데 그 음악은 벨 앤드 세바스천의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악상은 다른 악상으로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브 캐릭터가 등장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빛나던 여름, 글래스고, 소년과 소녀, 소박하고 진솔한 음악. 스튜어트 머독은 이 단출한 재료로 뮤지컬영화 <갓 헬프 더 걸>을 만들었다. 벨 앤드 세바스천의 팬이었던 프로듀서 베리 멘델(<식스 센스> <뮌헨> <로얄 테넌바움>의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벨 앤드 세바스천의 음악을 들을 순 없는 노릇이다. 스코틀랜드 모던포크 밴드
막 사랑에 빠질 때의 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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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버린 그 여인을 찾아라. 토머스 핀천의 탐정소설을 영화화한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탐정이 주인공인 여느 영화들이 그렇듯 명확한 하나의 목적으로부터 출발하나, 종국에 어떠한 ‘끝’에 다다르게 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건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니까. 약에 취해 비틀거리며 조금씩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사설탐정 ‘닥’(호아킨 피닉스)의 뒤를 쫓다보면 결국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건 마약과 환각, 개발과 폭력, 섹스와 환락의 그림자가 드리운 70년대 미국의 풍경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와 <마스터>(2012) 그리고 <인히어런트 바이스>. 폴 토머스 앤더슨과 이 세편의 작품을 함께하며 그의 음악적 페르소나로 자리잡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파편화된 서사를 아우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여인, 샤스타가 닥을 떠나는 순간에 흐르는 캔의 <Vitamin C>
토머스 핀천풍의 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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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은 오직 60%의 영화를 완성했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중요한 영화적 조력자이자 그와 더불어 세기의 영화 콤비로 평가받았던 음악감독 버나드 허먼은 종종 이 말을 즐겨 했다고 한다. 히치콕의 영화를 완성하는 건 자신의 음악에 달려 있다는 강한 확신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여덟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한 버나드 허먼을 히치콕은 무척이나 아꼈다. 그는 영화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 자주 허먼을 대동했고, 미완성의 편집본을 허먼에게 미리 보여주며 음악적 영감을 부추기곤 했다. <현기증>의 제작 노트에 히치콕이 남긴 말은 이 영화음악의 거장에 대한 그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시퀀스에 허먼이 어떤 음악을 넣느냐에 모든 것이 달렸다.”
좋은 영화음악은 때때로 영화를 구원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버나드 허먼은 물론이고 존 윌리엄스와 엔니오 모리코네, 한스 짐머 등 영화사에 자신의 족적을 화려하게 새겨넣은 위대한 영화음악가들의 작품이 너
새롭게, 다르게 더 도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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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ny Greenwood <Inherent Vice>
Stuart Murdoch <God Help the Girl>
Die Antwoord <Chappie>
Mica Levi <Under The Skin>
Gregg Alexander <Begin Again>
Arcade Fire <Her>
Antonio Sanchez <Birdman>
Jason Moran <Selma>
Justin Hurwitz <Whiplash>
뮤지션들의 영화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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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방랑자 캐릭터 탄생 101주년을 기념해 ‘찰리 채플린 기획전’이 열린다. 3월19일 <모던 타임즈>의 일반 개봉을 시작으로 3월26일부터 4월1일까지 KU시네마테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키드>(1921), <파리의 여인>(1923), <서커스>(1928), <시티 라이트>(1931) 등을 묶은 Part1 기획전이 열린다. 4월2일부터 12일까지 아트나인에서도 상영된다. 이후 상반기 중 시작될 Part2 기획전에서는 <위대한 독재자>(1940), <황금광 시대>(1942), <살인광 시대>(1947), <라임라이트>(1952), <뉴욕의 왕>(1957)을 만날 수 있다. 이중 8편의 리뷰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싣는다. 이번 기회에 차례대로 놓치지 말고 챙겨보자.
1921 <키드>
흑백 / 무성 / 53분 / 감독 찰리 채플린 / 출연 찰리 채플린, 에드
채플린 월드 A2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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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찰리 채플린의 방랑자 캐릭터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된 해였다. 전세계에서 그를 기리는 크고 작은 행사가 이어졌고 조금 늦었지만 우리에게도 생생한 찰리 채플린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4월 초부터 상반기까지 찰리 채플린의 걸작 10편이 극장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모던 타임즈>를 시작으로 KU시네마테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5편의 영화가 Part1으로 개봉하고 상반기 중으로 5편의 영화를 추가 개봉할 예정이다. Part1 5편은 4월2일부터 12일까지 아트나인에서도 상영된다. 풍문으로 들어본 사람은 많아도 제대로 본 사람은 드물다는 걸작들. 조각조각 기억하던 명장면을 한 호흡으로 감상하다 보면 전에 몰랐던 감정들이 말을 걸어올 것이다. 언제나 유효하고 지금도 필요한 이야기들. 왜, 지금, 다시, 찰리 채플린을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단상과 함께 각 작품의 리뷰와 채플린에 대한 짧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곁들였다. 지금 봐도 생생하다. 다시 봐도 재
일생에 한번은 채플린을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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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에 대한 많은 암시가 사방에 있다. 하지만 스포일러 없이 작품에 대한 인터뷰가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나는 예의상 먼저 당신에게 이 사실을 알려드린다. 그러니 이 인터뷰를 읽고 난 다음 영화를 볼 것인지, 아니면 아껴두었다가 영화를 본 다음 읽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판단이다. 한 가지 더, 인터뷰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문장의 수순이 구어체를 옮겼기 때문에 일부 문장이 문법적으로 어수선할지 모르지만 정리하는 과정에서 빚어낼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그냥 놓아두기로 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읽기보다는 말하듯이, 혹은 귀기울여 들어보듯이 따라가길 권한다._정성일)
정성일_아마도 이 인터뷰가 <화장>에 대한 공식적인 첫 번째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다소 장황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영화쪽에서도 감독님의 102번째 영화이자, 또 한편으로는 명필름이라는, 이제는 한국 영화산업에서 독립적인 영화 제작사들이 대기업의 자본과 배급 때문에 힘겨운 전투 끝에
“그래서 나이만큼이란 말을 쓰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