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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코믹스(comics), 일본에 망가(manga)가 있다면 한국에는 만화(manhwa)가 있다. 이들은 흔히 만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별반 구분 없이 소비되지만 조금만 파고들어보면 각기 다른 결을 지닌 독립 장르라 봐도 무방하다. 탄생부터 성장과정까지 다른 문화적 배경이 녹아들어 있어 사실상 대체 불가능한 역사적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의 웹툰을 여느 인터넷 만화와 구분지어야 하는 이유다. 웹(web)과 카툰(cartoon)의 합성어인 웹툰은 이제 단순히 웹을 기반으로 서비스되는 만화의 의미를 넘어섰다. 웹툰이라는 말에는 웹툰이 공급되는 환경, 다양한 장르와 다채로운 문법들, 소비자들의 이용 형태까지를 아우르는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2003년 다음의 ‘만화속세상’ 코너에 정식으로 연재를 시작한 이래 웹툰은 포털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초기엔 포털 사이트의 서비스 유인책으로 시작했지만 2005년 최대 규모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던 네이버가 웹툰 서비스를 본격화하
웹툰,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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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은 만화가 될 것이다.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웹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웹툰 전문 플랫폼이 속속 생기고 있는 요즘 더이상 유료 웹툰이 어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웹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탄생으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변화의 바람 한가운데에서 풍성하게 피어나는 중인 웹툰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웹툰 시즌2, 출발이다.
진격의 웹툰 시즌2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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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타 디지털은 <반지의 제왕> <아바타> <호빗> 등으로 ‘영상 혁명’을 이뤄냈다는 평을 받은 디지털 그래픽 스튜디오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CG 및 모션 캡처를 담당한 웨타 디지털은 이번에도 ‘라이브 퍼포먼스 캡처’라는 신기술을 선보인다. 웨타 디지털의 임창의, 최종진 선임 조명기술감독(Senior Lighting Technical Directors)이 지난 6월27일 한국을 방문해 웨타의 기술력, 웨타에서의 생활에 대해 들려줬다.
-웨타 디지털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임창의_한국에서는 모팩 등에서 10년 정도 FX 일을 했다. 런던의 더블 네거티브에서 FX기술감독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아바타> 작업에 너무 참여하고 싶어 웨타 디지털에 들어갔다. <아바타> 작업을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아바타>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 원래 계획은 웨타에서 2년 일하고 다시 더블 네거티브로
그래픽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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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혹성탈출>(1968) 이후 6편까지 만들어지고, 팀 버튼의 <혹성탈출>(2001)을 거쳐 루퍼트 와이어트의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이 만들어지기까지, 이 장구한 시리즈는 ‘진화한 유인원’과 ‘멸종 위기의 인류’의 거대한 대결을 그려왔다. 전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 ‘시미안 플루’가 세상을 휩쓴 뒤 10년, 급속도로 진화한 유인원들은 도시를 떠나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었다. 유인원과 인류는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도 될 테지만, 전력을 필요로 하는 인간과 그 인간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일부 유인원의 존재는 필연적인 전쟁을 불러일으킨다. 루퍼트 와이어트로부터 메가폰을 넘겨받은 맷 리브스를 비롯해 많은 것이 뒤바뀐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전격 해부하고,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은 ‘웨타 디지털’의 한국인 스탭 임창의, 최종진과 만나 시각효과에 관한 얘기도 들었다.
유인원이 드디어 총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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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긴 사건들 뒤에는 언제나 이를 날카롭게 응시하는 시선이 있다. 한국 최초프로파일러 표창원 박사는 해결하기 힘든 난제가 발생할 때마다 범죄자의 심리를 파고드는 예리한 분석으로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그는 지난 2012년 경찰대학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더 바빠졌다. 대중의 감시하는 눈, 대변하는 입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일 뿐만 아니라 오는 8월부터는 제1회 ‘CSI/Profiling 체험전’을 개최하는 등 프로파일링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을 대중이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 생기면 찾게 되는 한국의 셜록 홈스 표창원 박사에게 한국형 연쇄살인의 특징과 사회적 의미, 그리고 2000년 이후 영화가 연쇄살인을 다뤄온 방식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에 대해 물었다.
-연쇄살인이라는 말은 자주 쓰지만 정확히 구별해서 사용하는 것 같진 않다. 연쇄살인의 정의가 무엇인가.
=일단 공식적인 정의라는 건 있을 수 없다. F
사회적 난치병을 어떻게 치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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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작자만큼이나 관객도 장르를 만들어낸다”는 그레이엄 터너의 말을 전제로 한다면,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하는 일련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일종의 ‘(소)장르화’되어가는 것은, ‘사회와 영화의 상호 영향 관계’를 잘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왜 이런 (끔직한) 영화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흔히 그런 일이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이런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첫째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많은 관객/대중이 왜 그런 영화를 찾아서 보는 것일까? ‘고어영화’ 같은 끔찍한 이미지를 수반하는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양들의 침묵> 같은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면) 대개 ‘비주류 장르’에 속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해명이 필요한 문제이자 동시에 쉽고 단순하게 답할 수 없는
누가 그를 사이코패스라 불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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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는 적어도 두 가지 지점에서 연쇄살인마를 소재로 한 기존의 영화들과 달랐다. 하나는 범인을 쫓는 것이 경찰이 아니라 보도방을 운영하는 포주라는 점, 또 다른 하나는 그의 추격이 끝내 실패한다는 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추격자>는 추적, 추리가 아니라 추격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지금 와서 새삼 눈길이 가는 건 바로 이 추격행위의 주체와 목적이다.
살인범의 검거를 목적으로 하는 경찰과 잠재적 희생자의 구출을 위해 움직이는 엄중호(김윤석)는 애초에 목적도 접근 방식도 다르다. 엄중호의 목적은 미진(서영희)의 죽음을 막는 것이었고, 그는 결국 실패했다. 반면 경찰의 목표는 자신들의 체면을 구긴 연쇄살인범을 검거하는 것이었고 과정이야 어찌 됐건 그들은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추격에 성공한 자는 실패하고, 추격을 시도하지 않은 자들은 성공하는 이상하고 찜찜한 상황. 당시엔 경찰의 무능과 시스템의 허점을 조롱하고 추격의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
우린 아직 잠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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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졌듯,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다. 5년간 10명의 부녀자들이 강간 살해당했고 수많은 경찰이 투입되었으나 공소시효가 끝난 2006년을 지나 오늘날까지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2003년에 제작된 <살인의 추억>은 1986년을 시작으로 연쇄살인마의 행적과 정체를 쫓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정확히 말해, 연쇄살인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연쇄살인마를 제외한 당대 한국 사회의 다른 모든 것을 겨냥한 이야기다. 단순히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는 차원이 아니라, 끝내 범인의 자리를 공백으로 두려는 몸부림 같은 것이 이 영화에는 있다. 그 공백을 둘러싼 실패와 좌절과 혼란 속에서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은 영화는 그 어떤 가능성도 차단한 채, 더 깊은 어둠의 심연 앞에서 막을 내린다. ‘왜 그런 잔혹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나’ 하는 질문은 폐기되고, ‘왜 잡지 못했나’에 대
악은 어둠만을 잘라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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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영화 속에 연쇄살인마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믿기 어려운 말이겠다. 한국 영화사에서 연쇄살인마는 그다지 환대받는 소재가 아니었다. 1999년에 개봉한 <텔미썸딩>에 이르러서야 이 소재가 대중의 큰 환심을 샀고 <텔미썸딩>은 그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영화는 <텔미썸딩>이 아니라 몇년 뒤 2002년에 나온 <공공의 적>이다. 심은하라는 당대의 스타 혹은 철저한 장르성으로 접근한 <텔미썸딩>과 다르게 사회와 영화가 영향을 주고받은 차원에서 보자면 <공공의 적>이 훨씬 기념비적이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에는 잔혹한 살인마 조규환(이성재)이 등장한다. 그는 주인공 강철중(설경구)의 강력한 적수다. 조규환은 화이트칼라 계층에 성공한 펀드매니저이자 거침없는 살인마다. 그의 악마성은 여과 없이 묘사된다. 사소한 시비가 붙은 택시기사를 기어이 집까지 찾아가 살해하는
사람이 사람 죽이는 데 무슨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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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범죄에 관한 전시(<죄악의 시대>)를 제안받은 것이 이 영화의 출발 지점이라고 들었다.
=그 전시에 참여하며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일종의 아카이브 같은 책을 만들었다. 당시 자료를 조사하면서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그 사건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이후에 ‘지존파 사건’에 대한 작업을 따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건 중 유독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을까.
=지존파보다 1990년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살인의 추억>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연쇄살인이라는 행위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90년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다. 지존파 사건에 특히 흥미를 느낀 건, 원한 관계 같은 이유가 아닌, ‘자본주의’를 범행 동기로 내세운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대한
“연쇄살인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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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런 일이 얼마든지 올 수 있어. 올 수 없다고 장담 못해요. 미리미리 방지해줬으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요….”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절규한다. 눈물을 흘리고,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다. 이건 2014년의 풍경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외침이었다. <논픽션 다이어리>에 삽입된 이 장면이 올해 재현되었다.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올해 4월16일 진도 앞바다의 그 사고 현장에서, 유가족이 전 국민을 향해 외치던 절규는 20년 전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외침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앞으로 얼마든지 발생 가능하다’고 누군가가 말했던 불행은 실현되었다. 2014년의 대한민국 사회는 1994년에 예견한 불행을 막는 데 실패했다.
21세기 비극의 뿌리
정윤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는 최근 몇년간 1990년대를 소환한 뭇 영화와 드라마가 미처
한국 사회라는 이름의 연쇄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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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상반기, 죽음의 유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했다.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했고, 버스터미널과 요양병원이 불탔으며 꽃다운 나이의 장병들이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모두가 이 상실감을 잊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영화가 있다. 7월17일 개봉하는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연쇄살인과 대형사고가 난무했던 혼란스러운 1990년대 한국 사회의 한복판으로 보는 이들을 이끈다. 거대한 비극을 경험하고도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과거를 망각한 죗값이 어떤 것인지 상기시키는 이 작품은 수십년간 한국 사회 도처에 존재했던 죽음의 배후로 국가를 지목한다. 사회와 개인의 죽음의 구조적 상관관계를 탐구한 <논픽션 다이어리>의 개봉과 더불어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영화 속 연쇄살인범들을 다시금 소환했다. 당대의 사회상과 욕망을 밀접하게 반영하는 것이 영화라면, 우리는 연쇄살인마를 다룬 그때 그 영화들을 통해
망각을 먹고 다시 태어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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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들>의 이도윤 감독은 한양대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단편 <우리, 여행자들>(2006)과 <이웃>(2008)으로 각각 부산국제단편영화제와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영화 속 세 친구와 비슷한 나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눈이 반짝거려 좀더 어려 보이는 인상이다. 같은 카페에서 인터뷰 중이던 대학 동문인 배우 지성이 휴식을 틈타 슬쩍 고개를 내밀고 “우리 과의 희망”이었다고 감독을 소개했다. 아주 농담만은 아닌 것 같았다.
-중국 설화집 <태평광기> 16권 ‘기의’ 편 중, ‘파경’(破鏡)의 어원을 그린 이야기를 모티브로 <좋은 친구들>을 구상했다고 들었다. 전란이 닥치자 부부가 반으로 나눈 거울을 정표로 나눠 갖고 헤어졌다 재회하는 일화인데 구체적으로 연관성을 설명한다면.
=‘파경’의 고사는 여러 판본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재회한 부부의 거울 조각이 어긋나는 이야기다. 남편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고스
‘취급주의’의 삶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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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인터뷰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국제영화제들이 먼저 발견한 독립영화 <한공주> <10분> <도희야>에 이어, 2014년 기억해둘 한국영화 데뷔작 목록에 충무로 상업영화 한편을 보태도 좋을 것 같다. 이도윤 감독의 <좋은 친구들>(제작 오퍼스 픽처스, 공동제작 초이스컷 픽처스)을 소개한다.
누구나 아는 영화사의 걸작에서 빌려온 제목, 훤칠한 세 남자배우가 폼나게 어우러진 검푸른 색조의 포스터. <좋은 친구들>은 1년이면 십수편 마주치는 충무로의 남성 주도 장르영화의 일원으로 보인다. 의리, 배신, 사기, 살인, 비리. <좋은 친구들>을 이루는 성분도 무엇 하나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 총합은 뜻밖이다.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일”이라는 합리화에서 출발한 보험 사기가 엇나가며 빚어진 사태가 중심 사건인 범죄 드라마에 속하지만, <좋은 친구들>은 범인의 정체가 수수께끼인 스릴러도 아니고 이렇다 할 액
우정의 파경(破鏡), 불신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