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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장편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건 사막에 꽃을 피우는 일이나 다름없다. 여기 두편 이상의 작품을 제작한 감독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장에서 세 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감독들이 있다. 2001년 <마리이야기>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취를 알린 이성강 감독은 2006년 <천년여우 여우비> 이후 10년 만에 신작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을 들고 극장을 찾는다. 한편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의 제작자이기도 한 연상호 감독은 2011년 <돼지의 왕>, 2013년 <사이비>에 이어 신작 <서울역>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하루 차이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두 작품 덕분에 간만에 극장가가 창작 장편애니메이션으로 붐비는,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2000년 이후 장편애니메이션의 전반과 후반을 대표하는 두 감독의 작품이 교차하는 중요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이에 그간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산업이 걸어온 길
[스페셜] 이성강 감독과 연상호 감독,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흥행, 서로의 작화 스타일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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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이하 <카이>)은 가족영화이자 이성강 감독의 세 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카이>를 설명하는 가장 분명한 코드를 꼽는다면 바로 이 두 가지 지점일 것이다. 대다수의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은 흥행 스코어가 작품에 대한 평가를 대신하였다. 그리고 비평의 주된 독자는 가족영화의 관객과는 거리가 있다. 비록 비평의 독자가 부모/보호자로서 가족영화를 볼 수는 있지만, 기존의 영화적 심미안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서론이 구구절절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다룰 <카이>는 가족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건 한편으론 무의미하고 억지스러운 접근이다. 이성강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연상호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는 사실은 일견 이 작품에 과도한 기대와 높은 기준을 요구하기도 하고, 반대급부로 지나친 비판이 뒤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카이>에 대한 감상만큼은 가족영화의 한축인 어린이
[스페셜] ‘미안해’라는 한마디 - 이성강 감독의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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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좋아한다.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해서 재생산하는 느낌들이 <부산행>과 <서울역>이 줄 수 있는 재미가 아닐까 한다.” 연상호 감독의 기획 의도는 분명하다. 세계관을 공유하며 따로 또 같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거다. <서울역>은 앞서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실사영화 <부산행>의 프리퀄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프리퀄이라고 보긴 어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라리 같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별개의 에피소드, 혹은 옴니버스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영화 속 시간상으로는 <부산행>의 KTX 기차가 출발하기 전날 밤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부산행>이 먼저 공개된 후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제작 시기는 <서울역> <부산행> 순서다. 개봉 순서를 제외한 모든 시간상으로 앞선다는 의미에서 <부산행> ‘앞에 있는’ 영화라 불러도 어색하진 않을 것이다.
<부산행
[스페셜] 연상호의 직설 - 연상호 감독의 세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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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창작 장편애니메이션 시장의 어려움은 이제 다시 언급하는 것도 새삼스럽다. 비단 애니메이션은 아동을 위한 것이라는 편견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간혹 성공한 작품이 나와도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고 여전히 가능성에 대한 목소리들만 드높은 신기루 같은 시장이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바닥을 다지기 위해 꿋꿋이 작업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8월 셋쨋주 스크린에는 한국 창작 장편애니메이션 두편이 동시에 걸리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국영화계에서 90년대 중반부터 독보적인 애니메이션 작업을 계속해온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2001), <천년여우 여우비>(2006)에 이은 세 번째 장편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과,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로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그리고 이제는 <부산행>으로 실사영화에도 성공적으로 도전하여 안착한 연상호 감독
[스페셜] <서울역>의 연상호와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의 이성강 주목할 만한 한국 애니메이션 신작과 그 연출자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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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전설적인 가수였으나 현재는 목소리를 잃은 마리안, 이탈리아에서의 언어적 혼선,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지만 침묵을 지키는 페넬로페 등 <비거 스플래쉬>는 소통 불능에 관해 다루고 있다. 이러한 설정으로 당신이 영화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건 어떤 것들이었나.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해둔 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다. 난 관객이 각자 어둠 속에 홀로 뛰어들어 내가 영화를 만든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말을 하지 못하는 마리안이나 암호처럼 알 수 없는 페넬로페 등의 내러티브 장치들로 나는 가능한 한 복잡하게 영화의 배경을 층층이 쌓아나간다는 것이다. 영화는 내게 장난감이 많은 큰 놀이터와 같다.
-인물들의 소통 불능은 각 인물들이 서로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가령 해리와 페넬로페는 부녀라고는 하지만 만난 지 겨우 일년밖에 되지 않았고,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것
[스페셜] 경험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모든 감각을 깨워두어야 한다 -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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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커플이 시골의 호젓한 저택에 살고 있다. 이곳에 남자의 친구, 그리고 여자의 ‘젊은’ 질녀가 등장하며, 네 사람의 관계에서 서서히 긴장이 잉태된다. 사랑의 힘이 빚어내는 화학작용은 인간의 모든 이성적 통제를 무력화시키고, 결국 스스로 파멸하는 데까지 이른다. 사랑은 오직 자기 자신, 곧 사랑만을 위해 돌진하는 이기적인 마력을 가졌다. 죽음이 사랑의 관계를 끝내기 전까지, 사랑은 결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중단시키는 법이 없다. 문호 괴테가 <친화력>(1809)에서 피력한 사랑의 자기 파괴적 운명이다.
괴테의 <친화력>, 네 남녀의 화학작용
괴테가 서술한 ‘친화력’의 구성요소가 네명의 캐릭터다. 남자 두명, 여자 두명, 그리고 여자 가운데는 세대 차이가 나는 젊은 여자가 포함돼 있다. 이런 관계를 저택의 ‘수영장’이라는 좁은 공간에 한정하여, 범죄에 가까운 사랑의 힘을 그린 스릴러가 자크 드레이 감독의 <수영장>(1969)
[스페셜] 연적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 루카 구아다니노, <비거 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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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러브>(2009)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비거 스플래쉬>로 돌아왔다. 전설적인 록스타 마리안(틸다 스윈튼)은 영화감독인 남편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과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어느 날 마리안의 옛 연인인 음반 프로듀서 해리(레이프 파인즈)가 뜻하지 않게 딸 페넬로페(다코타 존슨)와 함께 방문하면서 그들의 여유로운 휴가는 깨지고 만다. 마리안과의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 해리와 그런 해리가 신경 쓰이는 폴, 그리고 속내를 알 수 없는 페넬로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관계는 질투와 욕망이 뒤섞여 전개된다. <아이 엠 러브>에서도 그랬듯 <비거 스플래쉬>가 이탈리아영화 전통에 대한 오마주를 종종 드러낸다는 한창호 평론가가 글을 보내왔다. 그리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나눈 서면 인터뷰도 덧붙인다.
[스페셜] 루카 구아다니노, <비거 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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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를 구상할 당시 <걸어도 걸어도>풍의 가족극이 될 거라고 예고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과연 아버지는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인생을 사셨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됐다. 그 생각을 이어가다가 이 이야기가 시작됐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린 시절 꿈꾸던 미래의 자신의 모습대로 어른이 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이 어른이 된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있는지를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료타는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뒤늦게 깨닫는다.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와 했던 일들을 아들 싱고와 함께해보며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가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15년이 됐다. 그사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살아 계실 땐 오히려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에 대해 이
[스페셜]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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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또 한편의 가족 드라마 <태풍이 지나가고>가 7월27일 개봉했다. 어린 시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궁금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의 아파트 단지의 풀밭은 어째서 그토록 아름다운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태풍이 몰아친 간밤에 마치 뭔가 크게 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은 이 신기하고 이상한 변화, 혹은 변화라고 느끼게 되는 그 감정에 대해서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그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한폭의 풍경화와도 같다. 곧 태풍이 몰아칠 거라는 뉴스가 전해지던 어느 여름날, 철부지 아들이자 아버지인 료타(아베 히로시)와 그의 가족이 겪어가는 한때의 이야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세계의 원형이라 해도 좋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로 돌아보는 ‘살아간다’는 일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그것은 거창하고 복잡한 게 아니다. “인생은 단순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일상이란 원래 그렇게 지난한 것들의 연속이
[스페셜] 부재와 상실 뒤의 풍경을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사려깊은 시선 <태풍이 지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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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안전이 또 한번 무너졌습니다.” <터널> 속 TV뉴스 앵커의 대사가 콕 박힌다. 자동차 영업대리점의 과장 정수(하정우)는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무너져내린 터널 안에 홀로 갇히고 만다. 그가 가진 것은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과 생수 두병, 그리고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대형 터널 붕괴 사고 소식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정부는 긴급하게 사고 대책반을 꾸린다. 사고 대책반의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은 꽉 막혀버린 터널에 진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구조는 더디게만 진행된다. 자연스레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등 한국 사회가 겪었던 재난 상황이 내리꽂히듯 연상된다. 터널이 무너졌고, 그 안에 사람이 갇힌 상황. 구조대 출동은 더디고, 언론은 특종에만 급급하고, 정치인들은 기념촬영하기에 바쁘다. <터널>은 스피디한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구성으로 주목받은 <끝까지 간다>(2013)의 김성훈 감독의 신작이다. 블랙코미디와
[스페셜] “생명이 승리하는 걸 보고 싶었다” - <터널> 김성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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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이 차기작으로 <덕혜옹주>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생각만큼 프로젝트에 가속이 붙지 않아 궁금증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손예진과 박해일의 캐스팅 소식을 접했을 땐 궁금증에 믿음이 더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가 완성됐다. 비극적 운명을 뜻대로 헤쳐나가지 못한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옹주의 삶을 허진호 감독은 비극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비극성을 강요하지 않는 건 생략과 절제를 아는 연출 덕이다. 허진호라는 멜로드라마의 장인은 1910~60년을 아우르는 방대한 시대극 안에 절제된 사랑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중국과의 합작영화 <위험한 관계>(2012)가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긴 했지만, 역사적 인물을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 실재와 허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덕혜옹주>를 준비하며 가졌던 고민과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허진호 감독에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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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덕혜를 좀더 능동적인 인물로 만들고자 했다” - <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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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9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올여름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곧 다가오는 추석 시즌 개봉작인 김지운 감독의 <밀정>과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 등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화제작 두편이 눈길을 끈다.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와 김성훈 감독의 <터널>은 장르와 결이 뚜렷이 다른 작품이다. <덕혜옹주>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시대의 아픔에 희생된 한 실존 인물을 조명하고 있다면, <터널>은 현재 대한민국의 세태를 깊게 반영하고 비판하는 작품이다. 여름영화의 최전선에 선 허진호 감독과 김성훈 감독을 만났다.
[스페셜] 덕혜옹주 vs 터널 - 허진호 감독과 김성훈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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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메라가 돌아가도, 꺼져도 즐거운 술자리. “이원근이 오징어 다 먹었어요.” 지윤호가 제작팀에 고자질하자, “맛있어서 그랬어”라는 이원근. “나중에 내가 하나 사줄게.” 친구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한 배종옥이 상황을 정리한다.
2. 이동은 감독과 이원근의 작전타임. “아깐 맨정신이었고, 지금은 조금 더 취한 거니까 톤을 더 높이자.” “이 대사에선 수현과 눈을 마주치는 게 나을까요, 응시하지 않고 가는 게 나을까요?” “미경이 빠지고 나서 둘은 서먹하니까 굳이 안 마주쳐도 돼.” 섬세하게 하나하나 디렉션을 주는 감독과 그 이상으로 하나하나 되짚어 묻는 배우. 이원근 배우는 “이런 방식은 처음”이라지만, 둘 사이의 소통은 편안해 보인다.
3. 저마다 각자의 상념에 잠겨 있는 용준, 수현, 미경. 담담한 시선 속 많은 감정을 감추고 있다. 이원근은 이 신에서 밀도 높은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4. 용준(이원근)을 불러세우는 수현(지윤호). 돌아선 이도 부른 이도
[스페셜] 계절과 계절 사이 감정과 감정 사이 - 이동은 감독의 <환절기>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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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대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는 철종과 영훈(왼쪽부터). 두 배우는 “최국희 감독이 애드리브를 많이 주문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최국희 감독은 “애드리브를 많이 주문했다기보다는 컷 사인을 늦게 하는 편”이라며 “계속 카메라를 돌릴 수 있다는 게 디지털의 장점이지 않나? 컷 사인을 안 하니 배우들이 뭔가를 하나씩 더 하게 되는데, 그게 재미있었고, 그걸 즐겼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2. 내기 볼링의 판을 설계하는 백 사장 역의 권해효(오른쪽 두 번째). 차가워 보이는 극중 역할과 달리 그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최국희 감독의 큰 체구를 두고 “완전 UFC 출전 선수의 몸 같다”고 농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 “시나리오가 매력이 있었다. 전형적인 스포츠영화와 다른 재미가 있었다”며 “백 사장은 볼링장 신에서만 등장한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이 영화에 출연하기 전 홍상수 감독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2016)과 제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또 다른
[스페셜] 도박 볼링의 세계가 펼쳐진다 - 최국희 감독의 <스플릿> 촬영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