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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덕 <꽃할머니>
심달연 할머니는 나물 캐러 갔다가 13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대만, 만주 등지를 떠돌며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성폭력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몇 십년간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채 살았다. 이후 꽃누르미를 하며 원예 치료를 받았고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꽃할머니’라는 애칭이 생겼다. 권윤덕 작가는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림책 <꽃할머니>에 담았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그림책은 <꽃할머니>가 처음이다. 아이들이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작가의 마음이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한지에 먹물로 스케치한 다음 붓으로 색을 입힌 그림은 세밀하고 정갈하다. 은유와 상징이 풍부하지만 그것이 지시하는 바는 명확하다. 일본군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위안소 장면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난 꽃이 좋아. 사람들이 꽃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아름다운 말
책이 말해주는 역사 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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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잊힌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으로 그 소명을 다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가 결국은 사실이 아니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영화는 허구와 재현을 전제로 하는 만큼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고급 과정에서는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법과 영화의 윤리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레드 툼>과 <액트 오브 킬링>
1949년 이승만 정권은 좌익인사를 계몽,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어 불특정 다수를 가입시켰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이 인민군에 동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무차별 살해했다. ‘빨갱이 무덤’을 뜻하는 <레드 툼>은 국민보도연맹 학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생생히 되살려낸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집단 학살은 그 자체로도 끔찍하지만 아무런 진상 조사나 관련자 처벌도 없이 그대로 묻혀버린,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라는 점이 더 참담하다. 기자 출신인 구자환 감독은 자신의 관
STEP 03 고급. 우리 자신과 타자를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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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를 위한 대안 역사 영화 가이드를 통해 지금의 현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역사 상식을 쌓았는가. 그렇다면 이번 단계에서는 역사에 대한 당신의 생각과 태도를 확장해보자. 중급자에게 권하고 싶은 이 다섯편의 영화는 제목과 내용만 보아서는 역사와 큰 연관이 없어 보이기도 할 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작품은 역사에 관한 논쟁이 여전히 첨예하고 뜨겁게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잊지 말아야 할 태도와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
“적어도 납득할 만한 설명은 해줘. 미안하다고 한번 말하는 걸로는 부족해. 적어도 세번 이상은 미안하다고 해.” 곤히 잠든 딸의 코트 주머니에서 금자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발견한다. 금자가 유괴살인죄로 교도소에 복역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딸 제니는, 13년 만에 비로소 만난 엄마에게 왜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듣길 원한다. <친절한 금자씨>(200
STEP 02 중급. ‘헬’의 수첩공주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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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 고 김근태 의원의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사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5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이 작품들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직접적으로 비추는 거울 같은 영화다. 역사를 재현하고 변형하는 방식이 인상적인 3편의 극영화와 각자의 방식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에 다가간 2편의 다큐멘터리가 던지는 교훈은 명확하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라는 것. 똑바로 기억하라는 것.
<26년>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26년>(2012)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현재로 소환해 비극을 초래한 ‘그 사람’(이라 쓰고 전두환이라 읽는다)을 단죄하는 영화다. 5•18 민주화운동과 연관된 조직폭력배, 국가대표 사격 선수, 현직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암살’이라는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다. 실화/역사에서 출발하지만 영화적 상상력이 현실 논리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26년
STEP 01 초급. 지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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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의로운 해결 세계행동 및 제121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1월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의 존재에 대해 최초로 증언한 김학선 할머니의 동상을 만져보고 있다.
할머니는 씨앗을 뿌리며 말씀하신다. “항상 얻어물 수만인나? 우리 힘으로 농사를 해가지고 오시는 분들도 맛있는 거 좀 이래 갈라주고, 갈라 묵는 세상이 돼야재.”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3부작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기억과 오늘의 삶, 그리고 내일을 향한 시선을 담는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연을 대중적으로 알린 1편(1995)과 할머니가 할머니를 인터뷰하는 독특한 형식이 인상적이었던 <낮은 목소리3: 숨결>(1999)도 기억에 남지만, <낮은 목소리2>(1997)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할머니들의 사연이 특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모진 세월을 버
대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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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벽두부터 어수선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에 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합의했다는 소식에 각계각층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역사전쟁이 시작됐다. 이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저들이 귀를 막고 우리의 외침을 듣지 않더라도 우리는 말하기를 멈출 수 없다. 역사는 흘러간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이 치열한 전투를 앞둔 이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를 준비했다. 국정 교과서 시대, 당신의 ‘혼’을 정상화해줄 대안 콘텐츠들이다. 당신이 이 전투를 앞두고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살피기 위해 간단한 시험도 마련했다. 초•중•고급 과정이 있으니 문제를 풀어보고 자신에게 알맞은 콘텐츠를 찾아가보길 권한다. 물론 전부 다 봐도 좋다. 그들이 아무리 가려도 우리는 볼 것이고, 아무리 왜곡해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퀴즈 정답
1 ② 2 ② 3 ④ 4 ③ 5 ④ 6 ③ 7 ② 8 ② 9 ③ 10 ④ 11 ①
3점 이하
여기 사람 있어요 역사 앞에 사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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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2006)의 맛깔나는 대사와 <도둑들>(2012)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지난 12월18일 CGV압구정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주최하고 CGV아트하우스와 <씨네21>이 함께하는 KAFA+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이날의 마스터클래스는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스토리텔링 노하우를 공유하는 스토리텔링 마스터클래스로, 충무로 최고의 이야기꾼 최동훈 감독이 그 세 번째 마스터가 되어 강단에 올랐다. 최동훈 감독은 알토란 같은 다섯 작품의 제작기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구축해나가는 자신만의 방식에 대해 가감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범죄의 재구성>
<범죄의 재구성>(2004) 시나리오를 고민하던 차에 어느 영화제에서 오승욱 감독을 만났다. 언제나 선배 감독을 만나면 요새 무슨 책 보고 있냐고 묻고 사서 보는 게 습관이다. 오승욱 감독이 “고려원에서 나온 <앤더슨의 테이프> 봐. 교보문고에 두권 남았어”
내가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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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헤이트풀8>를 준비하면서 2014년 4월19일, LA에 위치한 한 극장에서 대본 리딩 라이브 퍼포먼스라는 전대미문의 행사를 열었다. 1600여명의 관중 앞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마치 연극 공연처럼 대본 리딩을 선보인 것이다.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타란티노 감독이 직접 집필한 시나리오가 워낙 소설과 연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타란티노 감독은 약 8개월 후 무사히 영화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고 배우들도 이 영화에 최적화된 연기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란티노 감독은 실제 촬영에 들어가서도 또 하나의 도전을 하게 된다. 촬영을 맡은 로버트 리처드슨 감독이 파나비전 본사 창고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던 울트라 파나비전 70(Ultra Panavision 70) 아카이브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타란티노 감독이 고대 유물이 될 뻔한 이 거대한 과거의 렌즈로 영화를 찍기로 결정한 것이다. 파나비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필름 개척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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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자신의 8번째 장편 연출작 <헤이트풀8>를 들고 돌아왔다. 영화광으로서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장르 요소를 차용해 독특한 무국적 취향의 영화로 재창조해내는 타란티노 감독의 연출 세계는 이번에도 특유의 빛을 뿜어낸다. 이번에는 특히 미국의 역사를 신화적으로 다룬 서부극 장르를 빗대어 현재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 예를 들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촉발된 폭력 문제 등을 매섭게 비판한다. 물론 <헤이트풀8>는 설명만 듣다가도 지쳐버릴 묵직한 주제로 일관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그야말로 타란티노 감독 아니던가. <헤이트풀8>는 유머와 서스펜스와 호러와 스릴러가 뒤섞여 결말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리고 유혈이 사방으로 튀다 못해 뿜어져 나올 정도로 잔인한 장르영화다. 그리고 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재미를 볼모 삼아 유려한 빛의 세계를 필름의 질감으로 담아내는 영화적 체험의 장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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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볼모 삼은 변종 서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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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 이후 포스트 누벨바그 세대를 대표하는 필립 가렐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11월25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되는 필립 가렐 회고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1964년부터 활동해온 필립 가렐의 작품 중 <비밀의 아이>를 비롯한 16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세편의 흑백영화 <폭로자> <처절한 고독>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냈다…>가 설치미술의 형태로 재구성돼 <필립 가렐-찬란한 절망>이라는 이름의 전시로도 소개된다. 16살 때 첫 영화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1964)을 만들어 유럽영화계를 놀라게 한 이후 그는 줄곧 자신의 영화적 지평을 확장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1970년대까지는 서사를 배제한 채 이미지를 활용한 실험영화를 제작했고 그 후에는 영화 안에 서사성을 끌어와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변화를 계속해왔다. 관습을 뛰
미술관에서 영화 보기, 영화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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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스크린을 벗어나 극장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영화와 현대미술의 크로스오버는 진즉부터 진행되어왔고 올해 주목받은 작품 중에도 미술에 뿌리를 둔 영화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15년의 끝자락, 공교롭게도 미술관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꽃피운 세 가지 영화, 전시가 동시에 찾아왔다. 2016년 3월1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스탠리 큐브릭전>, 2016년 2월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필립 가렐: 찬란한 절망전>, 2016년 3월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 서울관에서 진행되는 <윌리엄 켄트리지: 주변적 고찰>이 바로 그것이다. 각기 다른 전시를 관통하는 흐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 영화미디어학자 김지훈 교수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미술관으로 간 영화들은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남기는가. 이 전시들이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무엇인가. 예술과 영화의 경계에 대한 간략한 답이 여기에 있다. 회고
미술관으로 간 영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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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처럼 시작하고 싶다. 이 글은 여행기가 아니다. 아마 그래야 할 것이다. 나는 임권택 감독님의 전작 회고전을 따라 프랑스 낭트영화제에서 시작해서 파리 시네마테크(La Cinematheque Francaise, 이하 ‘파리(에 있는) 시네마테크’로 표기)로 이어지는 열흘에 걸친 모험극의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일정은 살인적이었고 나는 거의 매일 숨 돌릴 틈도 없이 무대에 올라가서 영화를 소개하고 라운드 테이블에 앉아야 했다. 물론 수없이 많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져보았고 그보다 더 많은 영화를 관객 앞에서 소개했으며 종종 기이한 라운드 테이블에도 앉아보았다. 하지만 단 한번도 프랑스 관객을 상대로 영화를 소개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가늠할 수 없었다. 나라마다 다른 영화 ‘관객’ 문화가 있으며, 시네 클럽을 이끌던 앙드레 바쟁과 앙리 랑글루아의 전통 아래 진행되어온 스타일의 디테일이 무언지 누구도 내게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다. 원칙을 알
임권택이라는 102편의 영화, 혹은 공존할 수 없는 영화들이 이루는 임권택이라는 하나의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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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드는 일은 갈등하고 의기투합하길 반복하며 같은 지향점을 향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영화현장은 사회 안의 또 다른 사회다.” 인터뷰 중 임훈 스틸작가가 들려준 얘기다. 현장에선 무수한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만 접하게 되는 관객은 영화의 ‘바깥’을 좀처럼 체감하기 힘들다. 스틸작가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들이고, 그들이 발로 뛰어 건진 사진 한컷, 대상에 애정을 쏟아가며 찍은 사진 한컷이 때론 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홍보용 A컷으로 선택받지 못한 B컷 스틸,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미공개 현장 스틸들을 모았다. 사실 지면에 싣지 못한 사진들이 더 끝내주는데 아직 그 사진들은 세상의 빛을 볼 때가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암살> <사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물> <간신> <검은 사제들> <무뢰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런 장면, 영화에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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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 감독은 그간 제작, 프로듀서 역할과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연출을 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극영화 개봉 소식이 뜸해 궁금증을 모아왔다. 그런 그가 최근 <하나와 앨리스>(2004) 이후 12년 만의 극영화 신작 <립반윙클의 신부>로 국내 개봉 소식을 전해왔다. 12월10일부터 11일간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와 엣나인필름이 공동주최하는 ‘이와이 슌지 기획전’에 참석차, 신작 후반작업 중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러브레터>(1995)가 제작된 지 올해로 20주년이 된다. 이번 기획전은 초기작부터 국내 개봉하지 않은 다큐멘터리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2011)과 <뱀파이어>(2011)까지 모두 아우르는 터라 관객에게도 더없이 뜻깊은 기회다.
=처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게 1999년, <4월 이야기>(1998)를 통해서였다. 한국은 내게 홈타운 같은 그리운 장소
이 사회에 대해 지금 느끼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