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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_<씨네21>은 20년간 한국영화계의 감독들과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엔‘나와 한국영화, 나와 <씨네21>’이라는 주제로 네분의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우선 <씨네21>과는어떤 인연들이 있으셨나요.
김지운_저는 <씨네21> 때문에 영화계에 들어오게 됐어요. <씨네21> 시나리오 공모전에 낸 <조용한 가족>(1998)이 당선이 돼서 감독 데뷔를 했죠. 당시에는 하이브리드 장르여서 이상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씨네21>이 감독으로서 밥을 먹게 해준 장본인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인연이 각별한 감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씨네 21>_장준환 감독님은 직접 <씨네21>을 몇권 들고 오셨던데, 어떤 사연이 있는 호인가요.
장준환_제가 나왔던 호를 찾아봤어요.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2003)의 신하균씨가 표지로 나왔던 호
<씨네21>, 친구처럼 오래 곁에 있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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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_여기 계신 관객은 정말 계 탄 분들이네요. (웃음) 사람 나이로 따지면 스무살, 청춘이죠. 청춘이라는 말에 걸맞은 두 배우를 모셨습니다. 이젠 중후함까지 느껴지네요. (일동 웃음)
정우성_지난해가 저희 데뷔 20주년이었거든요. 스물하나인 거죠. <씨네21>과는 연년생이네요.
이정재_마인드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 말이에요. 저는 항상 청춘인 것 같습니다.
<씨네 21>_지난 20년을 돌아봤을 때 <씨네21>과의 추억이라고 할 만한 얘기가 있다면요.
정우성_작품 개봉 때마다 거의 표지를 장식했던 것 같아요. 우리의 영화인생과 <씨네21>의 영화인생이 궤를 같이하고 있네요. 창간기념호마다 우리를 빼놓고 이런 토크쇼도 여러 번 진행하신 것 같은데 참 섭섭하고요. (일동 웃음)
<씨네 21>_20주년 때까지 기다린 거죠. (웃음)
이정재_개인적으로도 <
“우리는 친해진 과정이 묵언수행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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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14일 창간한 <씨네21>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이 기념비적 숫자를 독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보았다. <씨네21>과 함께해온 영화인들과 만남을 주선하고, <씨네21>이 선택한 영화를 함께 본다면 의미가 있으리라 여겼다. 5월14일부터 4일간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씨네21>의 선택-스무살의 영화제’는 그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영화의 인상적인 순간을 꼽아보았다. 정우성과 이정재의 청년기를 한 작품에서 보는 호사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고, 김지운•장준환•임필성•류승완 감독을 필두로 개성 있는 감독들이 대거 출현하는 풍요로운 순간들이 있었다. 배우 이경영이 언제나 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고 ‘어린’ 배우 변요한이 독립영화계를 바탕으로 배우로서의 정신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씨네21>은 언제나 그 자리에 함께했고 영화인들을 응원해왔다. ‘
스무살의 영화제 현장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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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김성수_오래전 <무뢰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너무 좋았다. 시나리오 초기부터 기획자 중 하나로 이름이 올라간 박찬욱 감독의 모호필름에서 만들어질 뻔했던 시절까지, 이 작품이 지나온 과정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로젝트다. (웃음)
오승욱_같은 작품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김성수 감독님에게는 박광수 감독님 연출부 출신이라는 진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좋아하는 영화 성향이 비슷하다. 싸이더스 전신 우노필름 시절에도 차승재 대표님이 “어쩌면 너희 둘은 좋아하는 영화도 똑같고, 생각하는 것도 똑같냐”, 이런 얘기까지 하셨을 정도니까. (웃음)
김성수_굳이 나누자면 나와 이현승, 여균동 감독이 박광수 감독님 연출부 1세대이고 오승욱 감독은 허진호, 박흥식, 이창동과 같은 2세대다. 이른바 ‘박광수 아카데미’ 출신들이 잘 뭉치다 보니 함께한 작품이 없어도 만날 일도 많고 친했다. 특히 오승욱
내 영화의 주인공들이 행복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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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시간이 있다. 하루에 단 두번, 낮이 밤으로 밤이 낮으로 바뀌는 새벽과 해질녘. 그 시간을 일컬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저기 저 언덕 너머에 보이는 형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그런 때다. 적과 동지를,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힘든 이 모호한 시간 안에서 모든 사물의 윤곽은 흐릿해지고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맥이 풀린다. 이때를 빌려 사물의 실체를, 저간의 사정을 명확히 포착해내려 한다면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였는지 모른다. <무뢰한>은 이처럼 이상한 시간에 기대고 있는 영화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는 시종 여명인지 어둠인지 알 수 없는 푸르스름한 빛 사이를 부유한다. 이것은 단지 영화의 분위기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무뢰한>의 남녀주인공 정재곤(김남길)과 김혜경(전도연)은 이 애매하고 불명확한 시간 속에서 운신하는 사람들이다. 살인사건의 용의자 박준길(박성웅)을 쫓는 형사 정
이 남자,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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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한>은 ‘이해할 수 없는 남자’에 대한 질문의 영화다.”(<씨네21> 992호) 오승욱 감독의 말 그대로다. 감독이 <킬리만자로>(2000) 이후 무려 15년 만에 내놓은 신작 <무뢰한>(개봉 5월27일)은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형사 정재곤(김남길)을 따라간다. 영화는 정재곤이 용의자의 애인인 김혜경(전도연)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감정적인 변화에 주목한다. 오승욱 감독은 누아르 장르 안에서 주인공들의 폭발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대신 시종일관 인물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인물의 속내를 더 많이 보여주기보다는 조금 덜 드러냄으로써 얻게 되는 묘한 긴장감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다. 한국영화계에 오랜만에 찾아온 묵직하고 서늘한 누아르, 오승욱 감독표 하드보일드 멜로물에 대한 궁금증을 짧은 영화 리뷰로 풀어냈다. 이어서 <무뢰한>으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칸을 다녀온 오승욱 감독과, 역시
하드보일드 멜로 혹은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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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은 부조리한 내 모습이었다.” 강원도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정철(박정범)을 중심으로, <산다>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조카 하나(신햇빛)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갑갑했던 유년기의 자신을,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정신장애를 앓는 누나는 친구를 잃고 공황장애를 겪었던 청년 시절 자신의 방황을 모티브로 삼았다. 박정범 감독은 어느 하나 관계를 끊으면 설명할 수 없는 하나로 연결된 캐릭터를 통해 자신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정철에게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누나 수연(이승연)이 ‘짐’이자, 또 보호해야 할 ‘집’이다. 그 존재감이 절대적이다. 트리트먼트에서는 형이었던 캐릭터가 여성으로 바뀌었다.
=죽음에 대한 내 공포가 누나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실제 모델은 자살자들 모임에서 대상을 찾아서 수차례 인터뷰를 했다. 수원에 살고 있는 여성이었는데, 우울증 때문에 자살 시도를 일삼고(영화에서는 자신을 채찍으로 벌하는 모습으로 구현된다),
“이미 내 안에 있어서,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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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범 감독이 장편 <산다>로 돌아왔다. 장편 데뷔작 <무산일기>(2010)에 쏟아진 관심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다. <산다>는 절박한 영화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감독이 그 고통을 담아낸 작품이라서 절박하고, 첫 작품과 마찬가지로 시스템에 편입되는 대신 독립제작방식하에서 어렵게 찍어 절박했다. 165분이라는 장대한 서사나 제작방식 모두, 어떤 타협도 거부한 채 밀어붙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산다>는 온전히 박정범의 영화다. 강원도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정철(박정범)을 중심으로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 안에서, 그는 노동과 자본, 인간성 회복이라는 주제를 꺼내놓는다. 간결하고 묵직했던 전작에 비해 할 말이 많아졌고, 한결 따뜻해진 시선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2014 프로젝트로 이 작품의 탄생을 지켜본 장병원 프로그래머의 비평과 이화정 기자가 만난 박정범 감독의 인터뷰를 수록한다.
공전
현실의 무게를 견디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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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最古)의 독립영화 축제인 ‘인디포럼2015’가 개최된다. 지난 1996년 시작된 인디포럼은 한국 독립영화인들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동시에 자율적 참여로 조직된 독립영화인들의 재생산 가능한 다양한 활로를 모색해왔다. 꽃다운 20살, 청춘의 시간을 맞이한 인디포럼에서는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 특별전도 마련했다. 올해 영화제에는 총 850편이 출품되어 그중 단편 65편과 장편 10편이 신작전으로 소개되며, 초청작 23편을 포함해 총 98편이 상영된다. 인디포럼2015는 5월21~28일 총 8일간 종로의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개막작으로는 <어디가도 잘살 사람>(권항)과 <연희>(백해선) 두 작품이 선정되었다. <어디가도 잘살 사람>은 취업난과 불황에 굴하지 않는 능청스러운 청춘의 당차지만 조금은 서글픈 현실 적응기를 다룬다. <연희>는 배우 윤금선아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창작의 윤리를 고
독립영화 진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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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 종로에 위치한 국일관에서 ‘인디포럼 심야식당’이 문을 열었다. 인디포럼 작가회의팀(김곡 감독, 장리우 배우), 부산국제영화제팀(남동철 프로그래머), 김창환을 비롯한 배우팀, 정동진독립영화제팀(박광수 프로그래머), <씨네21>팀(윤혜지, 정지혜 기자)이 참여했다.
시작 전부터, 참가자들 사이에서 SNS와 페이스북을 통해 불꽃 튀는 신경전이 펼쳐졌던 장안의 화제, ‘인디포럼 심야식당’이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번 행사는 5월21일부터 진행되는 인디포럼영화제의 전야제 격으로 일반 관객과 독립영화인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다. 올해의 테마는 ‘요리등급심사’로 음식 맛을 본 손님들이 직접 전체 시식가, 10세 초딩맛, 19세 성인맛, 제한 시식가를 판별한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남동철(왼쪽) 프로그래머가 만면에 온화한 웃음을 머금고 명란젓 파스타 조리에 매진 중이다. 남 프로그래머는 다년간 해외 영화제를 순회하며 세계의 맛들을 두루 경험해본 미식가로 알려져 있
이 요리의 등급은 제한 시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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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_1996년 인디포럼 작가회의에 기반해 시작된 인디포럼영화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영화 축제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집행위원장은 인디포럼 초창기 멤버이고, 다른 세분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 상임작가로 활동 중이다. 인디포럼의 20주년을 맞는 각자의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이송희일_‘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한다. (웃음) 상임작가 의장으로 9년째인데 너무 오래했다. 사실 영화제를 4년 운영하고 도망가려고 했다. 그다음해 1월까지 잠수를 탔는데 영화제 운영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더라. 어쩔 수 없이 다시 준비해서 2011년 그해만 인디포럼이 5월이 아닌 7월에 열렸다. 내년에도 이 지랄을 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
조영각_당시 나는 프로그래머였다. 사실 그때는 프로그래머가 하는 일이 상영시간표 짜는 게 전부였다. 출품된 영화 편수도 100편이 안 됐고 두편인가 빼고는 거
독립영화 친정집 잔치는 계속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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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인 인디포럼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인디포럼은 1996년 5월 영화 창작자들이 주축이 돼 작품 연출은 물론이고 상영까지 직접 해보자는 취지로 인디포럼 작가회의를 만든 게 그 시작이었다. 영화 창작자들 스스로가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영화 제작 및 상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유례가 없는 자주적 작가 공동체다. 인디포럼에서 매년 진행하고 있는 인디포럼영화제는 그해 독립영화계의 가장 뜨거운 문제작부터 주목할 만한 신진 감독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장이 돼왔다. 올해도 5월21일부터 8일간 열린다. 영화제에 앞서 <씨네21>이 좌담이라는 형식을 빌려 인디포럼의 지난 20년을 짧게나마 되돌아봤다. 올해로 9년째 상임작가의 의장으로 인디포럼을 이끌고 있는 이송희일 감독과 독립영화 PD라는 흔치 않은 타이틀을 가지고 독립영화 제작, 배급사인 시네마 달을 운영하는 김일권 PD, 2009년부터 상임작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첫 번째 상업영화 <카트>
독립영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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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외과 의사를 꿈꾸며 의대에 진학한 청년은 시드니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수련의로 근무하며 끊임없이 밀려드는 부상자를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그는 당시 도로 상황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던 퀸즐랜드주에서 빈번히 발생한 교통사고 탓에 끔찍한 부상을 입은 다양한 중상자와 사망자들을 숱하게 목격했고, 그 역시 10대 시절부터 함께하던 친구 셋을 교통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 청년의 이름은 다름아닌 조지 밀러(George Miller). 외과 의사 출신으로 호주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 중 한명이자 영화사에 숱한 기록을 남긴 액션 프랜차이즈영화 <매드맥스> 3부작의 아버지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청년 조지 밀러의 관심사는 전공으로서의 의학 외에도 어쩌면 그 이상으로 영화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달랐다. 1971년 여름, 그는 멜버른대학에서 계절 학기 수업으로 개설한 영화제작 특강을 통해 아마추어 영화 제작자 바이런 케네디를 만나면서 인생의 방향타를 돌려
전설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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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는 80년대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의 대부가 아니라 21세기 카체이싱 영화의 출발이 될지도 모른다. 제작 당시부터 <엠파이어> 등 여러 매체를 통해 고난과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그 와중에도 조지 밀러는 은연중 기쁨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가 공개되자 조지 밀러의 수줍은 투정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대번에 납득됐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대사 없이 행동과 표정, 눈빛, 음악, 액션으로 최대한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영화인 만큼 거꾸로 단 한마디 말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엠파이어> <버라이어티> 외 기타 공식 인터뷰상에서의 답변을 묶어 조지 밀러 감독이 펼쳐놓은 생각들을 모았다.
-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로 돌아갔나.
=일단 경제적이다. (웃음) 몰락한 디스토피아로 가는 건 중세로 돌아가는 일과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이 명확하게 주어져있다. <매드맥스>
“대사 없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