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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전도사.’ 서민 교수가 불리곤 하는 말이다. 탐욕과 기회주의의 아이콘이었던 기생충을 유머러스하고 친근하게, 심지어 귀엽게 표현해 대중의 선입견을 상당 부분 해소한 그에게 딱 맞는 말이다. 어릴 적 외모 콤플렉스로 속앓이를 한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해 기생충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기생충이 선입견처럼 나쁜 게 아니더라. 나도 어릴 때 외모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고, 내면을 보여줄 기회가 없어 아쉬웠는데 기생충도 마찬가지였다. 생김새 때문에 받고 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이들의 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생충학에 투신한 그는 장기인 글쓰기를 통해 기생충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2002년 <기생충의 변명>을 통해 기생충이 해가 없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고, 영화 <연가시>(2012) 열풍 후에는 네이버 캐스트에 기생충의 다양한 생태를 친근하게 써낸 글을 연재해 기생충 붐을 이어갔으며 이는 <기생충 열전>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그는
“생김새 때문에 받는 오해를 풀려고 기생충 편이 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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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바쁜 사람이다. 어제는 무크(Massive Open Online Course, 온라인 공개강좌)에서 ‘일반인을 위한 상대성이론’을 강연하고, 오늘은 팟캐스트에서 <인터스텔라> 속 과학에 대해 방송한다. 각종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썼나 싶더니 어느새 크고 작은 과학 관련 복합 문화 콘서트도 준비 중이다. 재미있는 건 글과 강연, 공연의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꼭 과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 칼럼도 상당히 오래 써왔고, 과학적 방법론으로 사회문제를 정면에서 비판하기도 한다. 공연 역시 강연 형식의 토크 콘서트를 넘어 여러 문화인들과 이색적인 형태로 구상 중이다.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신의 입자를 찾아서>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 등을 저술한 이종필 박사는 2000년 중반 이후 한국 과학 대중화의 선두에 선 사람 중 한명이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입자물리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는 고려대 전기전자공
“과학은 복합 문화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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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세포만 놓고 보면 단순한 형태인데 어째서 이것들이 모이면 정신(精神)이라는 복잡한 것이 생길까. 흔히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선택을 이어가는 걸까. 정재승 박사는 지난 10여년간 이 질문의 답을 찾아왔다. 이른바 뇌과학, 그중에서도 의사결정 신경과학 분야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의사결정을 하기까지 인간의 뇌 속에서 벌어질 일들을 분석하는 데 있다. 이 연구를 통해서라면 어떠한 요소들이 인간의 기억을 형성해가는 데 영향을 주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또 자살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는 우울증이 감기처럼 지나갈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이때 각각의 뇌의 차이를 살펴 의학적 진단이 가능해진다. 한편 이때의 자살은 개인적인 충동의 결과가 아니라 뇌가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고 판단해 내린 결과로서 인간의 합리적 사고 과정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뇌과학에 뿌리를 둔 그의 이러한 연구는 미
가장 위대하고 고등한 사고는 ‘자기 객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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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땐 배우들 만나는 거 아니에요? 재미있겠네요. 근데 과학자들 이야기가 재미있을까요.” 서로가 신기하고 궁금했다. 한때 아이들의 장래희망란 제일 첫칸을 과학자가 차지한 적도 있었다. 어느 순간 그 꿈들이 공무원과 연예인으로 바뀌어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납득하면서도 조금 슬프다. 한데 얼마 전부터 분위기가 다시 바뀌고 있다. 2000년 중반부터 여기저기서 싹을 틔우기 시작한 과학의 대중화는 이제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는 단계다. 방송, 공개강연, 공연, 팟캐스트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과학자들이 대중 속으로 스며들고 과학의 흥미를 다시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인터스텔라>에 천만 관객이 몰리는 건 어쩌면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분출할 곳을 찾고 있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그간 <씨네21>에서도 과학 또는 과학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여러 과학자들에게 물어왔다. 하지만 뒤돌아보건대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많아도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이에 과학
과학자 5인과 함께 배우는 영화 속 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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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평범하지 않은 일을 평범하게 해내고, 쉬운 일을 쉽지 않게 해냈군요.” 동료 배우 유덕화의 말이 정확하게 성룡이 걸어온 길을 설명한다. 성룡은 반백년 가까이 온몸을 던져 액션영화의 지평을 넓혀왔다. 새로운 길을 닦는 과정이 쉬웠을 리 없다. 다만 성룡은 겁이 없었고 꿈이 많았다. 이제 막 출간된 성룡의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에는 그 겁 없는 도전과 실패의 반복된 과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거기에 천둥벌거숭이처럼 활개쳤던 어린 시절과 할리우드에 진출해 맛본 쓴맛과 단맛의 경험, 유명인들과의 일화와 연애담까지 담겨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후루룩 넘겨 읽게 된다.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성룡의 인간적 모습에서 깨닫게 되는 바가 많다.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에 실린 귀한 사진들과 함께 인상적인 이야기를 추렸다. 현재 그는 영국 런던에서 피어스 브로스넌 등과 함께 <더 포리너>를 맹촬영 중이다
‘따거’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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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인터넷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 IPTV 등의 성장세에 밀려 DVD 시장이 몰락하고 차세대 저장 매체로 주목받던 블루레이 역시 극장 바깥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날이 급변하는 미디어 매체 환경 변화 속에서 VHS, CD, LD 등 어떤 저장 매체도 가차 없이 쓰러져가던 때에 블루레이를 이른바 ‘컬렉터 문화’와 접목한 국내 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리미티드 에디션’을 표방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국내뿐만 아니라 나아가 세계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블루레이 제작사 플레인 아카이브, 더 블루 콜렉션, 노바미디어의 수장들을 소개한다.
“내가 소장하고 싶은 블루레이를 만든다”
플레인 아카이브 백준오 대표
한마디로 플레인 아카이브의 타이틀을 요약하자면 ‘사고 싶은 블루레이’다. 많은 컬렉터뿐만 아니라 해외 업계에서도 플레인 아카이브의 짧고 강렬한 성장에 놀란다. DVD 시절부터 직접 사모으고 즐겨보는 걸 좋아했던 백준오 대표의 손길이 닿은 블
최고의 블루레이를 굽는 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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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Tahiti)는?
정식 명칭 /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본 섬인 타히티로 통용됨)
수도 / 파페에테(Papeete)
사용 언어 / 공용어는 타히티어와 프랑스어. 호텔, 레스토랑, 관광지 등에서는 영어 통용.
시차 / 한국시간보다 19시간 늦음(타히티시간=한국시간+5시간-1일).
통화 / 프렌치 퍼시픽 프랑(CFP, XFP). 유로로 환전해 현지에 도착한 뒤 공항이나 리조트에서 현지 화폐인 퍼시픽 프랑으로 환전하면 된다. 리조트 안에서는 신용카드나 유로화로 통용.
항공편 / 우리나라에서 타히티까지 직항편이 없다. 일본 도쿄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며, 비행시간은 도쿄에서부터 11시간10분 정도 걸린다.
프롤로그
“타히티는 왜?” 타히티에 출장 간다고 하니 회사 동료, 친구,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자. 타히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버킷리스트의 단골 메뉴이자 신혼여행지인 보라보라 섬? 타히티와 보라보라는 각기 다른
Ia Ora na, FIFO! 안녕, 오세아니아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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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ggy, Windy, Rainny, but you must pretend it’ s luxurious natural mist.” (안개 끼고, 바람 불고, 비가 와도 그냥 고급 천연 미스트라고 생각하자고!) 연일 찌푸린 겨울, 예테보리의 궂은 날씨를 잠재울 운율 맞춘 진행자의 발언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래, 이렇게 웃으며 이들 모두 스웨덴에서 가장 암울하다는 겨울의 끝, 2월을 보내고 있구나 싶었다. 스톡홀름에 이은 스웨덴 제2의 도시로 알려진 항구도시 예테보리에 도착하던 날, 공항에 픽업 나온 영화제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에 내린 20cm의 폭설에 비하면 다행”이라며 이곳의 짓궂은 날씨를 경고했다. 눈 대신 연일 비가 오는 날씨 덕분에 ‘천연 미스트’를 온몸에 맞은 초대 손님들이 2월6일 저녁 드래곤 어워드 시상식이 열린 스토아 극장에 모였다. 올해로 제39회째를 맞은 예테보리국제영화제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아우르는 최대의 영화제로 전세계 영화를 이곳에 불러오고,
양성평등과 다양성, 스웨덴영화에선 기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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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서울, <씨네21> 사무실에 두장의 초청장이 도착했다. 한장은 스웨덴 남부 도시 예테보리에서 열리는 예테보리국제영화제로부터, 그리고 또 한장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섬 타히티에서 열리는 오세아니아다큐멘터리영화제로부터였다. 2월 최저기온 영하 5도로 밤이 지속되는 겨울의 도시와, 고갱의 그림에서나 보았던 남국의 풍경이 살아 있는 연일 29도의 더위가 지속되는 여름의 도시에서의 초대. 두 지역의 기온차는 잊자. 한곳은 영화제의 열기로 긴긴 겨울 끝자락의 무료함을 상쇄시키고 있었고, 한곳은 영화제의 활기로 피할 수 없는 더위를 만끽하고 있었다. 영화라는 연결고리로 시작된 투어는 종국에는 스웨덴과 타히티를 향한 애정과 찬사로 끝맺음되었다. 자고로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치고 좋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 않았나. 이 시즌을 기억해뒀다 한번쯤 두곳을 찾길 강력 추천한다. 이방인을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맞아주는 축제의 시간을, 지면으로 풀어보았다.
Invitations to Film Festiv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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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두레소리>(2012), <파울볼>(2014)과는 사뭇 다른 방향의 영화다.
=기승전 ‘귀향’이었다. <두레소리>를 할 때도 <파울볼>을 할 때도 항상 <귀향> 이야기로 끝을 맺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만들고 싶지 않으면서도 언젠가는 만들어야 하는 영화였다.
-이슈보다 영화에 방점을 두었을 때 어떤 안배들을 했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다룬 다른 영화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3부작은 좋은 참고가 되었다. 최근 들어 가장 깊이 자문하고 있는 건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느냐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보면 전쟁 중의 강간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배경처럼 지나쳐가기도 한다. <귀향>은 그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영화이기 때문에 분명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혼돈 속을 헤매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소녀’였다. 여성으로서의
“그저 이 땅에 영령을 모셔오고 싶었던 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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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8일에 작성 완료된 기사입니다.
“집에 가자”는 말이 이토록 슬프게 들리는 때가 또 있을까. 조정래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귀향>은 위안부로 납치돼 고단한 삶을 살아내고 할머니가 된 영옥이 신녀 은경의 몸을 빌려 비참하게 숨을 거둔 친구들의 혼백을 고향으로 불러오는 과정을 그린다. 무엇이 감히 할머니들의 지옥 같은 생을 어루만질 수 있겠냐마는 적어도 “타지에서 구천을 헤매지는 마시라는 마음”으로 조정래 감독은 <귀향>을 만들었다. 하지만 조정래 감독에게도 <귀향>은 천형 같은 작품이었다. 14년의 시간을 오롯이 기록할 순 없으나 지난한 제작 과정의 일부를 여기 옮긴다. 조정래 감독과 은경 역 배우 최리의 인터뷰도 함께 실었다. 안타깝게도 지난 2월15일 또 한분의 할머니가 별세했다. 고인의 명복을 빎과 동시에 이제 생존자는 45명이 되었다는 슬픈 사실을 함께 되새겼으면 한다.
조정래 감독이 “구원과 치유의 영화”에 도달하기까지 꼭
나비로 부활한 소녀들 고향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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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상
후보
<빅 쇼트>
<스파이 브릿지>
<브루클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마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룸>
<스포트라이트>
<씨네21>의 선택 ▶ <스파이 브릿지>
<스파이 브릿지>가 받아야 한다. 온전히 마음이 가는 작품들을 꼽으라면 선택의 폭을 좀더 넓힐 수 있겠지만, <캐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엑스마키나> 등이 주요 부문에서 또 한번 외면당하며 오스카의 보수적 성향을 새삼 입증한 마당에 작품상에서 의외의 결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마찬가지 이유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를 꼽은 기자들도 많았지만 좀더 의외인 것은 <스파이 브릿지>가 이토록 저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주요 수상작으로 거론하는 매체가
2016 오스카의 선택, <씨네21>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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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지명된 후보들은 영미권 매체의 수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해외 포털사이트에 흘러넘치는 그들의 아카데미 관련 발언 중 인상적인 말, 말, 말을 정리해 소개한다.
“(1976년)오스카 후보가 발표되던 날 아침, 방송 카메라맨들에게 나를 찍게 한 건 나쁜 선택이었다. 그들은 ‘TV에서 후보작이 발표될 때 당신 반응을 찍어가도 될까요?’라고 말했는데, 그때 나는 <죠스>로 감독상 후보에 지명될 것을 너무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그래도 돼요’라고 말했고 그날 큰 교훈을 얻었다. 절대 어떤 것을 확신해선 안 된다는 교훈 말이다.”
▶ <스파이 브릿지>로 작품상 후보에 지명된 스티븐 스필버그, <죠스>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정말로 솔직하게 말하면, 내게는 아내 마거릿이 편집상 후보로 지명된 게(내가 감독상, 작품상에지명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녀는 우리가 찍은 모든
타란티노의 설득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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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는 반성하라 #다양성이슈 #OscarsSoWhite #OscarsSoStraight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전초전부터 시끌벅적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누가 어떤 상을 받을 것인지보다 어떤 유색인종 출신의 영화인이 부당하게 후보에 오르지 못했는지가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본격적인 논쟁은 지난 1월13일,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가 발표되면서부터 시작했다. 작품상, 연기상 등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주요 부문 후보가 모두 백인으로 채워졌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지난해에 이어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OscarsSoWhite)는 해시태그가 다시 한번 전세계 SNS를 강타했다. 올해의 아카데미가 더욱 거센 비판에 직면한 이유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시상식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수많은 유색인종 출신의 영화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록키>의 속편인 <크리드>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마이클 B. 조던, 강력한 남우조연상 후보로 손꼽히던 &
이젠 달라져라, 오스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