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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첫 흑백 장면에 등장하는 두 마리 당나귀를 보며 괜히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1966)를 떠올려본 것이 딱히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두 단어의 접붙임으로써, 마치 브레송이 무협영화를 만들면 이러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험한 세상 속에 놓인 인물의 내적 갈등, 침묵을 응시하는 것만 같은 고요한 정경이 그러했다. 발타자르는 물론 브레송의 다른 영화 <무셰뜨>(1967)의 무셰뜨가 겪는 고난의 여정만큼이나 섭은낭이 처한 상황(지방 세력인 번진이 저마다 세력다툼을 하던 혼란스런 당나라 시대의 자객)도 그러했다. 우리가 ‘무협영화’라고 상정할 때 예상하는 그 모든 것들을 비켜가는 리듬과 정서의 엮임 또한 그러했다. 그래서 ‘자객 무셰뜨’라는 제목을 붙여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 나아가 때로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1957)과 <란>(1985)이 겹쳐 보이
우아하고 자극적인, 차원이 다른 세계의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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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 섭은낭>은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8년 만의 장편 연출작이자, 무협영화로는 첫 도전 작품이다. 당나라 시대 소설 <섭은낭>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통해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자객으로서의 임무와 인정이라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흔들리는 자객 섭은낭의 내면을 보여준다. 무협영화가 추구하는 화려한 액션 신과는 대조적으로 ‘중력에 구애를 받는’ 현실적인 액션 장면 연출 안에서, 이 영화는 상상했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 비켜나가 무협영화의 또 다른 기준점을 제시한다. 주성철 편집장의 <자객 섭은낭> 분석에 더해 이화정 기자가 개봉을 맞아 한국을 찾은 허우샤오시엔 감독을 만났다.
머뭇거림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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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강하늘_대본이 좋아서 선택했다. 윤동주라는 인물은 인생에서 단 한번 맡을 수 있을 역할이잖나. 윤동주 하면 한국 사람 모두가 사랑하는 시인이고. 거기에 대한 부담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이라는 생각에 출연하게 됐다.
박정민_나는 (윤)동주 역할이 아니라서, 다음에 동주 역할 한번 해보는 걸로. (웃음) 내가 할 말을 하늘이가 다 했다. 대본이 굉장히 좋았고, 이걸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영화 중간중간에 윤동주 시인의 시가 나온다. 하늘이가 내레이션을 하고. 그 부분이 나는 정말 좋았다. 마치 그 상황의 윤동주 선생님이 시를 쓴 것처럼 적재적소에 시가 등장하는 걸 보고 정말 괜찮다, 그런 생각을 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어떤 인물이라고 봤나.
=강하늘_그냥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윤동주라는 분을 내가 이렇게 표현하겠다는 생각보다, 어떤 상황 안에서 윤동주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고민을 했
“그냥 흘러갈 수 있는 인생의 1분을 시로 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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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를 연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윤동주뿐만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시대의 다양한 소재와 인물을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전 제작했던 <아나키스트>(2000)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20년 가까이 해왔다. 그게 윤동주라는 인물로 구체화된 건 3년 정도 됐다. 감독조합워크숍에 참석한 뒤 신연식 감독과 함께 제천에서 서울로 돌아오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신 감독에게 <동주>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한번 써보지 않겠냐고 했다. 윤동주 평전과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이라는 영화의 형식을 참고해서, 후쿠오카 감옥에 있는 윤동주의 현재와 북간도 용정 시절로부터의 과거가 병렬로 진행되는 시나리오로 한번 진행해보자고 얘기를 했다. 신 감독의 장점이, 말한 대로 금방 쓰더라고. (웃음) <사도>보다 시나리오가 먼저 나왔다. 그래서 <사도>를 찍고 내가 다시 각색 작업을 해서 만들게 된 거다.
-식민지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어떤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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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늘(오른쪽), 박정민(왼쪽)은 <동주>를 통해 처음으로 같은 작품에서 만났다. 같은 소속사(샘컴퍼니) 선후배 사이로 평소에도 잘 알고 지냈다는 두 사람은 강원도에서 함께 뛰는 장면을 촬영할 때부터 호흡이 잘 맞았다고. “형이랑 잘 맞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였다.” (강하늘)
<동주> 촬영현장에서 두 배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준익(가운데) 감독. 그는 <동주> 같은 저예산영화의 현장에는 “돈으로는 메울 수 없는, 마음과 정신과 몸으로 대신하는 충만함이 있다”고 말했다.
연희전문학교 캠퍼스 벽보에 붙은 창씨개명 독려문을 어두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동주(강하늘). 저 멀리서 창씨개명 서류를 나눠주는 녹색 셔츠의 교직원은 <동주>의 제작과 시나리오를 맡은 신연식 감독이다.
창씨개명 독려문을 찢어버리는 동주. 배우 강하늘은 이날의 촬영분이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라고 했다.
“아유,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세포가
윤동주의 시, 이전에 윤동주의 삶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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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논리를 앞세워 어떤 초자연적 상황 앞에서도 침착하게 행동하는 스컬리는 매사에 충동적인 멀더에게 있어 일종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다. 질주하는 멀더를 유일하게 보듬어주던 그녀는 진실에 다가갈수록 조금씩 변화한다. 스컬리를 연기할 때면 언제나 머리로 계산해 연기했던 서혜정 성우 역시 그런 스컬리의 변화를 감지했던 것 같다. 14년 만에 다시 진짜 스컬리로 돌아가려는 그녀에게 소감을 물었다.
-두분도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 아닌가.
=아니다. 우린 자주 만난다. 여전히 광고 녹음을 같이 하니까. 멀더와 스컬리 버전으로. (웃음)
-2002년 시즌9 종영 이후 14년이나 지났는데 오랜만에 다시 만나본 스컬리는 어떻던가.
=더빙을 위해 시사를 하는데 주인공들이 나이가 든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스컬리가 많이 변했더라. (이규화 성우가 옆에서 “질리언 앤더슨이 감기 걸린 상태로 촬영한 것 같다”고 하자) 원래 허스키한 목소리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 굵어진 것 같다. 그
나와 정반대의 성격이 매력적인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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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더와 스컬리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 된 캐릭터다. 그중 멀더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이규화 성우의 삶도 그로 인해 완전히 달라졌다. 1982년 KBS 성우 17기로 입사해 멀더를 만나게 된 이후 그는 줄곧 이규화가 아니라 멀더의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 말에는 어떠한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 성격도 극중 멀더의 성격과 흡사하다는 인상을 받았을 정도로 그는 완전한 멀더 그 자체였다.
-시리즈가 재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어땠나.
=내가 녹음했던 다른 외화와 차이점이 있다면 <엑스파일>은 1990년대 인터넷 문화의 태동과 함께 동호회와 팬클럽이 생기는 등 많은 인기를 누린 첫 번째 수혜 작품이라는 거다. 내겐 성우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다. 시리즈가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지 감격스러운데 어떻게 표현이 안 되더라. 너무 벅차서. (웃음) 요새 대부분 자막 방영을 하는 추세라 더빙을 못할 줄 알았다. 여러모로 감
의상까지 맞춰 입고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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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돌아왔을까. 2002년 9번째 시즌 종영을 끝으로 영영 끝난 줄로만 알았던 TV시리즈 <엑스파일>이 14년 만에 10번째 시즌으로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20세기 음모론의 총망라와도 같았던 역사적인 드라마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라도 이 시리즈가 왜 다시 돌아왔는지 캐묻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가리키던 수많은 ‘X파일’ 문서들이 영구 폐기되기엔 아직 이른 세상이 아니던가. 스포일러에 대한 공포도 잠시 접어두고 함께 추리해보자. 그보다 더한 공포, 세상의 추악한 맨 얼굴이 어디선가 우릴 노려보고 있을지 모른다. <엑스파일> 시리즈와 함께 수십년의 세월을 살았고 또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멀더와 스컬리로 살아갈 이규화, 서혜정 성우도 시리즈와 함께 돌아온다. 반드시 더빙판으로 방영해야 한다는 팬들의 성원에 힘입은 결과다. <엑스파일>의 10번째 활약상은 캐치온 채널에서 오는 1월29일부터 총 6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이다. 추악
“멀더, 이제 다시 시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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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5 <글로리데이>
2012 단편 <도시의 밤>
2012 단편 <동거>
2012 단편 <도깨비의 숲>
드라마
2016 <치즈 인 더 트랩>
2015 <두 번째 스무살>
2015 <프로듀사>
차기 국민 남동생의 탄생일까.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탁예진(공효진)에게 능청맞게 굴다가도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던 남동생 탁예준, 배우 김희찬이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의 홍설(김고은)의 철딱서니 없는 동생 홍준으로 돌아왔다. 제멋대로 유학을 때려치우고 돌아와 성가시게 엉겨붙지만, 사랑받고 자란 인물 특유의 애교에는 도통 당할 도리가 없는 그런 남동생으로 말이다. 풋풋한 외모와 발랄한 연기, 어떤 누나든 남동생으로 두고 싶어 할 법한 김희찬은 사실 여동생을 둔 장남이다. “항상 누나를 갖고 싶었는데 작품들에서 소원풀이했다. 공효진, 김고은 선배님 모두 누나처럼 잘 챙겨주시더라. 실제
최초의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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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해어화>
2015 <그놈이다> <더 폰> <사돈의 팔촌>
2014 <메이드 인 차이나> <우는 남자>
2013 <끝까지 간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드라마
2015 <부탁해요, 엄마> <미세스 캅> <후아유-학교 2015> 외
“젊은 시절의 한석규, 2PM의 준호, 그리고 조승우!” (박흥식 감독)
장인섭과 닮은 사람을 떠올리다가 나온 인물들의 리스트. 또 다른 누군가는 장인섭의 얼굴에서 배우 온주완, 가수 김종국이 보인다고도 말한다.
래퍼가 되는 줄 알았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간 것도 음악을 하고 싶어서다. 친구들끼리 랩 배틀을 하는가 하면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해 타이거 JK, 윤미래 심사위원 앞에서 당당히 1등을 하기도 했다. <아메리칸 허슬>(2013)식으로 말해보자면 그는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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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우리 손자 베스트>
2016 <예술의 목적>
2015 <바라던 바다>
2015 <최고의 감독>
2015 <간신>
전여빈은…
“씩씩하고, 감독의 말을 잘 알아듣고,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신경쓰지 않는 배우다.” <최고의 감독>을 연출한 문소리는 전여빈을 아침에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그 자리에서 캐스팅을 결정했다면서.
“열정이 진실된 친구.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스스로 맹렬하게 움직이는 배우. 찍은 사진을 보면 바라보는 것 자체가 좋은 배우.” 필름있수다의 수장인 장진 감독이 전여빈을 두고 한 이 말은 단순히 소속 배우를 알리려고 한 얘기가 아니다. 누구보다 연기에 까다롭고 엄격한 그가 아닌가. “회사 입장에서 트렌드를 떠나… 2, 3년 안에 배우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찬스를 함께하고 싶다”는 게 장진 감독의 속내다.
문소리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 <최고의 감독&g
연기의 희열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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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울보>
2014 <소셜포비아>
“기운이나 느낌이 정말 강한 배우다.” (홍석재 감독)
민하영(레나)이 <소셜포비아> 마지막에 웹캠으로 보여주는 얼굴을 두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표정인데, (하)윤경씨의 얼굴이 잘 살렸다”면서.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를 대동하는 보통 배우들과 달리 하윤경은 혼자였다. 인터뷰 일정도 알아서 결정하고, 사진 찍을 때 입을 옷도 직접 골라왔다. <소셜포비아>를 인상적으로 본 매니지먼트사 몇 군데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그는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아직은 자신에게 회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하고 싶지 않은 작품까지 할 수 있는 마음이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연극과 영화 모두 하고 싶은 가치관을 존중해주는 회사가 있다면 긍정적인 마음을 열 수 있지만 말이다.” 신인답지 않게 곧은 심지와 유연한 생각을 두루 갖췄다.
포털 사이트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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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여교사>
드라마
2015 <발칙하게 고고> <하이드 지킬, 나>
2014 <12년만의 재회: 달래된, 장국> <그리다, 봄> <드라마 페스티벌-형영당 일기>
2013 <일말의 순정> <열애>
2012 <해를 품은 달>
“배우 같지 않은 친구다. 예뻐 보이려 하고, 잘 보이려 하고, 잔머리 쓰고, 그런 게 전혀 없다. 인간적 매력은… 술 잘 마시는 거? (웃음)” (김태용 감독)
“작품이 끝났는데도 계속해서 호기심이 생기는 친구”라며, 인간적이고 꾸밈없는 이원근에 대한 애정을 담뿍 쏟아냈다.
한파주의보도 물리칠 기세의 눈웃음과 그에 따라 새침하게 올라가는 입꼬리. 거기에 187cm의 훤칠한 키와 피아노를 쳤을 것 같은 길고 섬세한 손가락. 상대의 마음을 단번에 저격하기에 충분한 외모지만 이원근의 진짜 매력은 다른 데 있다. 쉽게 훼손될 것 같지 않은 순수함,
노력이라는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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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가족계획>
2015 <로봇, 소리>
2015 <방 안의 코끼리> 중 <치킨게임>
2014 <야간비행>
드라마
2015 <다 잘될 거야>
2015 <오 나의 귀신님>
“곽시양은 ‘봉선화 연정’ 같은 배우다.” (이송희일 감독)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노랫말처럼 디테일하게 반응하는, 감정선이 풍부한 배우라는 뜻에서
어느 모로 보나 완전무결 ‘우결형’ 남자다. 187cm의 큰 키, 자상함, 애교 같은 요소가 리얼 버라이어티쇼 <우리 결혼했어요>와 너무나 잘 어울렸던, 곽시양은 그런 남자다. 부드럽고(<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파트너 김소연과 함께일 때), 귀엽더니(<오 나의 귀신님>의 멋진 셰프 서준), 강하기도(<라디오스타>에서 죽어라 눈싸움할 때) 하더라. 트레이드마크인 눈 말이다. 웃는 순간 표정이 만개하면서 특유의 인상을 만들어내
‘착한’ 마스크의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