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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고전적인 유령 이야기를 사랑한다. 자신이 “멕시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자주하는 델 토로 감독은 가족과 친구, 이웃들의 ‘유령 목격담’을 듣고 자랐다고 밝혔다. 할리우드 고전 장르영화들을 답습하며 성장한 그는 이제 새로운 세대의 영화팬들에게 ‘델 토로의 프리즘’으로 재조명한 ‘잊혀진 장르영화’를 소개한다. 근래 할리우드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고딕 로맨스’라는 장르에 대한 매력과 이를 스크린에 담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쓴 부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크림슨 피크>를 고딕 로맨스 장르라고 불렀는데, 오랫동안 생각해온 작품인지.
=고딕 로맨스 장르라 하면 대부분 여자주인공이 약하고 순수하게 표현된다. 나는 정반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섹스도 즐길 줄 알면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그런 여자주인공 말이다. “스포일러 경고”를 포함시켜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고딕 로맨스의 결말을 정반대로 표현하는
사랑은 고통에서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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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로도 좋은 결과라 하긴 어렵다. 5500만달러의 예산이 들어간 <크림슨 피크>는 11월29일까지 전세계 박스오피스 7500만달러 남짓한 수익을 기록했다. 평단의 반응도 대체로 미지근한데 스토리에 대해선 결말이 일찍부터 예상되어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등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나마 칭찬이 이어지는 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미술적인 성취에 관한 것들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늘 지적받던 한계, 이를테면 비주얼에 경도되어 내러티브를 등한시한다는 푸념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 영화 앞에 쉽사리 실패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일 수는 없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송곳처럼 델 토로는 항상 익숙함과 식상함을 비틀어 새로운 시점을 제공한다.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두 배우의 긴 인터뷰를 계기 삼아 델 토로가 꿈꿨던 지점에 대해 다시 돌아보려 한다. <크림슨 피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 이 매혹적인 고딕 로맨스가 남
욕망-사랑-불안으로 세운 고딕 로맨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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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이름은 미아다. 혹은 민아이거나, 미나이거나, 민하일 수도 있고, 아미이거나, 유미이거나, 윤미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아이는 미아라고 불리고, 아이 스스로도 자신의 이름을, 미아라고 생각한다.” 한유주의 첫 장편소설 <불가능한 동화>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그녀의 소설은 대부분 화자가 마치 결정장애라도 있는 듯 자신의 생각에 가장 부합하는 언어를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게 고르고 있고, 그 고민의 흔적을 모두 활자로 옮겨 펼쳐놓은 것 같다. 게다가 뚜렷한 ‘이야기’ 없이 진행되고, 종종 말장난처럼 반복, 변주되는 표현들과 주어 없는 문장의 주인을 찾아가며 읽어야 할 때도 있다. 명확한 사건이 없는 소설, 혹은 작가 자신의 표현처럼 “수다스러운” 소설들에 대해 우찬제 평론가는 “일단 읽힌다면, 현존 세상과 인간, 말과 이야기 문화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서사로 받아들여진다”라고 썼다. 그도 오죽했으면 ‘일단 읽힌다면’이란 전제를 달았을까. 물론 그녀
세상 모든 것의 이름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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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향하는 문학은 바로 ‘항문발모형’(肛門發毛形) 문학이다.” 지난 2010년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등단할 당시, 최민석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항문발모형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건 (독자들이) 울다가 웃어서 엉덩이에 털이 나는 작품을 써보겠다는 작가의 굳은 의지를 표현한 말이었다. 물론 그의 글을 읽고 정말로 그곳에 털이 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독자를 울다가 웃게 하겠다는 최민석 작가의 선언은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 꽤 성실하게 지켜져왔음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최민석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유머와 페이소스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룬다는 점이다. <능력자>의 두 주인공, 미치광이 전직 복서 공평수와 ‘청순문학’을 꿈꾸지만 현실은 야설작가인 남루한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질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이지만 “너절해져도 찢어지진 않는다”는 그들의 결기 앞에서는 가슴 한켠이 뭉클해진다. 한편 <
울다가 웃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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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소설.’ 조해진의 첫 번째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에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조해진의 소설을 읽는 코드 중 하나’를 그렇게 말해뒀다. 에이즈에 감염된 여자(<그리고, 일주일>), 시력을 잃은 연극배우와 죄지은 것 없이 전과자가 돼버린 남자(<기념사진>), 한국 남자와 결혼한 뒤 버림받은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여자(<인터뷰>), 거인병에 걸린 여자와 사랑하는 남자의 침묵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까지(<여자에게 길을 묻다>, 2004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한 등단작).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내쳐졌거나 존재하되 그 존재감이 점점 더 희미해져가는 사람들이다. 뿌리 없이 부유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조해진 소설의 인물들은 누구보다 많이 아파하고, 누구보다 먼저 상대방의 아픔을 감지한다. 조해진은 “결핍된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야말로 소설의 운명”이라고 담
위로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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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1983년 대구 출생. 작가. 후장사실주의자!? 정지돈을 비롯한 오한기, 이상우 등 일군의 젊은 작가들의 한줄 프로필에도 후장사실주의자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후장은, 그 후장(anal)이 맞다. 이들은 얼마 전 이라는 독립잡지까지 펴냈다.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에 <눈먼 부엉이>가 당선돼 등단했을 때 정지돈이 쓴 당선소감엔 후장사실주의의 탄생설(!)이 나와 있다. “2012년 여름 오한기와 후장사실주의 그룹을 결성했다. 통화 중에 우연히 나온 것으로 내가 후장사실주의를 결성하자고 말하자 오한기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후장사실주의는 <야만스러운 탐정들>(로베르토 볼라뇨)에 나오는 내장사실주의의 패러디다.” 기성문단을 공격하고 기성질서를 파괴하길 서슴지 않았던 로베르토 볼라뇨가 20대 초반 초현실주의를 패러디해 인프라레알리스모(밑바닥사실주의-내장사실주의)를 결성했고, 정지돈과 오한기는 다시금 로베르토 볼라뇨의 말을 패러디
나는 후장사실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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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은 겨루기에 능한 작가다. “신념이나 지향과 무관하게 도구를 제대로 다루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나 음악과 달리 문자는 감각을 이용하지 않는 비교적 빈약한 도구다. 도구가 빈약한 만큼 그것만으로 사람을 끌어당겨 책 한권을 다 읽게 만들고, 떠나는 순간 한방 남기고 싶은 것 또한 작가의 욕망일 거다.” 장강명의 소설을 읽는 일은 비유하자면 줄다리기 같다. 줄이 하나 있다. 독자가 한쪽을 잡고 작가가 한쪽을 잡는다. 당긴다. 작가는 힘껏 줄을 당기다 가끔 슬쩍 힘을 푼다. 가벼운 마음으로 줄을 잡았던 독자는 점점 작가를 이기고 싶어져 필사적으로 손에 힘을 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작가가 줄을 탁 놓아버리고 독자는 망연히 줄과 작가를 번갈아 쳐다볼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 장강명의 소설을 읽고 난 대개의 독자가 그런 기분이었을 거다. 요는 “제일 해답이 궁금한 시점에서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들어라. 그러면 네가 가진 것의 가치가
편집술의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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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의 스릴러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영화화 제의가 쇄도했던 송시우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스타 평론가 수빈이 칼럼 연재를 위해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추리소설이다. 그때 그 시절, 다가구주택의 안방과 건넌방, 별채 등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사람들을 찾아나선 수빈 앞에 서서히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은 때론 섬뜩하고 선정적이면서도 애잔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이 소설을 주목한 이유도 뚜렷한 배경 설정과 ‘범죄 동기’가 분명하고도 다양한 캐릭터 등 장르소설의 기초공사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시절에 ‘셜록 홈스’와 ‘뤼팽’을 마스터하고 중학생 때 이미 국내 출간된 모든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은 작가 송시우는 더이상 읽을 소설이 없어 방황하다가 PC통신 시대를 맞이하여 ‘추리동’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범죄와 서글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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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력을 이기고 날아오를 수 있게 도와주세요.’(<폭우> 중) ‘당신은 언젠가 중력에 맞서서 날아오를 거요.’ (<과학자의 사랑> 중) 손보미 작가가 어느 날 꾼 꿈에서 출발한 두 갈래의 작품은 각각의 인물을 통해 중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들은 개별 서사의 중력에서 벗어나 대화를 건네고, 그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리듬을 그려넣는다. 그녀의 소설은 한국 문단에서 단연 보기 드문 개성을 지녔다. 등단 후 한권의 단편집을 냈을 뿐이지만, 2012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2013년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1년, 아들을 잃은 남자와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가를 그려낸 단편 <담요>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마치 <담요> 속 작가와도 같은 포즈를 취한다. 그녀는 미국 드라마 <오피스>의 등장인물 마이클 스캇의 말을 빌린다. “우주에 어떤 망원경이 있어서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중력에서 이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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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빌려드릴까요?” 녹음기를 켜자 김태용 작가가 소형 마이크를 건넨다. 주변의 소음을 잡아주고 스마트폰에도 호환 가능한, 녹음에 유용한 물건이란다. 김태용 작가는 소리를 채집한다. 독특한 억양을 지닌 사람의 목소리,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 물소리. 일상적인 순간에서 포착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예전부터 문학의 음성적 역할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첫 장편소설 <숨김없이 남김없이>를 낸 뒤 사운드아티스트 유한길씨에게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음성적’인 소설을 한국에서 보게 되어 흥미롭다고 하더라. 그 뒤로 유한길씨의 제안으로 사운드텍스트그룹 A.Typist에 참여해 소리에 대한 작업을 함께해왔다. 사운드아트를 하는 친구들과 일하며 소리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주변에 떠도는 잡음, ‘화이트 노이즈’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소리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고 어디서부터 이 소리들이 반복되고
소리로 소설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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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은 누구나 하지 않나. 망상에서 1mm만 더 나아가면 상상이 된다. 상상으로 단련돼, 당장 눈앞에 아가미 달린 소년이 나타나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웃음)” 충만한 상상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 구병모는 2008년 마법사가 운영하는 빵집을 배경으로 한 <위저드 베이커리>로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과 동시에 첫 책을 출간했다. “15년간 등단의 문을 두드린” 그녀는 오랜 갈증을 풀어내듯, 데뷔 후 1년에 한권 이상의 책을 탄생시켰다. 아가미가 달린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낸 <아가미>, 폐쇄적인 학교의 배후를 밝히는 <피그말리온 아이들>, 노년의 여성 킬러가 주인공인 <파과>, 그리고 단편집 <고의는 아니지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과 고전동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신작 <빨간구두당>까지. 각양각색의 캐릭터를 내세우는 그녀의 작품들은 “뚜렷한 캐릭터, 흥미로운 소재, 분명한
1mm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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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서’(晝耕夜書)라고나 할까. 소설가 곽재식은 전업작가가 아니다. 그는 한 화학 회사에서 행정 관리직으로 일하는 회사원이다. 종종 연구원이기도 하다. 인터뷰 시간을 평일 점심으로, 장소를 자신의 회사 근처로 정한 것도 그가 회사원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회사원이었다가 밤이 되면 작가로 변신하는 셈인데 정작 곽 작가는 이 사실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른 작가님들도 생계를 꾸리기 위한 일을 하고 계시지 않나. 회사에서도 소설 쓰는 사실을 아냐고? 알다마다. ‘곽재식 사원에게 배우는 글 쓰는 법’ 같은 사내 행사가 열린 적도 있다. (웃음)” 마땅한 취미가 없어 회사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게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힘들진 않다고 하니 소설 쓰기를 진정 즐기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빌딩숲이 가득한 선릉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장 차림의 그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상냥한 수다쟁이 아저씨였다. 이야기가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고, 평범한 일상을 재미있게 묘사해 지
직장인의 상냥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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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10인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만났다. 곽재식, 구병모, 김태용, 손보미, 송시우, 장강명, 정지돈, 조해진, 최민석, 한유주 작가가 그들이다. 해마다 진행하는 <씨네21>이 추천하는 도서 목록에 그치지 않고, 이번엔 아예 우리가 주목하는 작가에게 한층 적극적으로 파고든 시도다.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계에서 벌써 이들 작가에 대한 관심 역시 뜨겁다는 점이다. 소설 출간과 함께 영화계의 판권 문의가 쇄도한 작가들도 있고, 영화적 방식을 자신의 소설 쓰기에 결합한 작가들도 있다. 10인의 작가들의 작품과 작업 스타일, 사회를 향한 다양한 시선은 문단의 새로운 흐름이자, 한국영화계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다고 본다. 이번 특집이 단순히 작가를 소개하고 책을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결국 콘텐츠의 경계를 넘나들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로 읽히길 바란다. 여기 추천하는 이들 외에 당신이 주목하는 또 다른 작가는 누구인가?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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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 모인 FBI 요원과 CIA 요원 그리고 정체불명의 암살자의 서로 다른 목표를 따라가는 영화다. 감독의 전작 <그을린 사랑>(2010), <프리즈너스>(2013), <에너미>(2013)와 일정 부분 닮았으나 꽤 다른 매력 또한 장전하고 있다. 에밀리 블런트, 베니치오 델 토로, 조시 브롤린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와 문제의식을 힘 있게 밀고 나가는 드니 빌뇌브의 연출이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배가한다. 선악의 경계가 무너진 혼돈의 세계에서 드니 빌뇌브가 본 것은 무엇이고 말하려 한 것은 무엇일까.
드니 빌뇌브는 세계를 혼돈으로 가득한 미로(迷路)로 인식하는 감독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곧잘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던져진다. 길은 쉽게 단절되고 또 엉뚱한 곳에서 연결된다. 이쪽과 저쪽, 무관해 보이는 점들은 어느 순
선과 악이 교차하는 회색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