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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이에요.” “섬세하지.” “디테일에 강해!”그녀를 설명해달라고 하자 쏟아지는 말들이다. “아무래도 연출 지향형 PD가 맞나보다”며 머쓱하게 웃어 보인 제정주 PD는 작가로서의 감독을 누구보다 존중한다. 홍상수, 이창동, 임상수 감독의 제작부에서 한번씩 일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그들의 “작가주의적 영화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문학적 기질이 다분한 제정주 PD는 부산에서 영화의 꿈을 키우던 소녀였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그녀는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이 “산소가 부족할 정도로” 영화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분위기에 고취됐다. “영화의 A부터 Z까지 모든 걸 총괄하고 싶어 제작자가 되려고 결심”하고, 서울로 상경한 그녀는 <마들렌> 제작부로 현장 일을 시작해 <몽정기2> 제작팀장을, <오래된 정원>과 <밀양>의 제작실장을 맡았다. 현장 경험을 쌓으면서 그녀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예종 영상원 기획 전공에 지원했다.
[스페셜] 아토를 이끄는 4인의 프로듀서 - '아토의 연출지향적 PD' 제정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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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밝아 아토의 대표를 맡게 된 이진희 PD는 증권사 출신이다. 전산을 전공했던 그녀는 증권사를 다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쉬면서 그녀는 학창 시절 좋아하던 영화를 떠올렸다. 중학생 때부터 <키노> 창간호를 사고,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듣고, 정성일 영화평론가를 추종하는 친구 무리와 어울리던 그녀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려고 영화 일을 한번 시작해봤다. “막상 좋아하는 걸 시작하니 발을 빼기 어렵더라. (웃음)” 그녀는 그래서 지금까지 아토의 대표로서 영화를 하고 있다. 숫자와 친한 그녀는 <오로라공주> 제작회계로 일을 시작해 <불꽃처럼 나비처럼> 등의 제작실장으로 일했으며, 한예종 영상원 전문사에 기획 전공으로 입학했다. “자기 계발의 시간”을 갖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일복 많은 그녀는 교수로 강의를 하러온 영화사 봄 오정완 대표를 만나 스카우트됐고 학교와 일을
[스페셜] 아토를 이끄는 4인의 프로듀서 - '아토의 살림꾼' 이진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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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PD는 “저지르는걸 잘한다”. 아토의 시작이 된 한예종 영상원 기획 전공 동문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았고, 회사를 창립하자마자 단편 <용순>의 영화화를 계약했다. 저지른 만큼 수습도 훌륭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받은 1억원으로 말끔히 영화 <용순>을 찍어낸 것은 그녀의 뚝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추진력과 뚝심을 갖춘 김지혜 PD는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한 될 성부른 싹이었다. 대학을 졸업 하자마자 영화 수입·배급사에서 6개월 동안 일했고,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그녀는 <일단 뛰어> 제작팀 막내로 들어가 기획시대에서 3년간 제작부 일을 했다. 감독을 꿈꾸던 그녀는 막상 현장에 뛰어들어보니,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영화를 끌고 가는 사람은 제작자”라는걸 알고 제작자를 꿈꾸게 됐다. 그녀는 제정주 PD와 함께 명필름에 1박2일간의 지난한 면접을 통과해 입사했고, <광식이 동생 광태> &l
[스페셜] 아토를 이끄는 4인의 프로듀서 - '아토의 추진력과 뚝심' 김지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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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 4명의 PD 중 청일점, 김순모 PD는 자타공인 아토의 “얼굴마담”이다.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덕에 항상 전면에 나서 있기 때문. 투자·배급사와의 ‘미팅’ 담당인 것도 얼굴마담이 된 한 이유다. “필요하면 직접 부딪혀 뚫는다”는 신념을 지닌 그는 <용순>의 시나리오를 들고 대뜸 리틀빅픽쳐스의 문을 두드려 투자·배급을 따냈다. 김기덕 필름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프로듀싱하고 배급한 노하우로, 1인 제작 및 배급 시스템엔 도가 텄다. “상업영화는 철저히 분업해 전체를 보기 어렵지만, 작은 영화는 혼자 하다보니 전체를 다 아우르게 된다.” 그 결과, 그는 그냥 직접 다 해버린다. “편집 마무리나 영자막 스포팅 정도는 직접 한다.” 김기덕 감독의 총애를 받기 전엔 숱한 영화 현장을 거쳤다. 이민용 감독의 제작부로 시작해 해천필름을 거쳐, 준비하던 영화가 계속 엎어지던 참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재학 중이
[스페셜] 아토를 이끄는 4인의 프로듀서 - '아토의 얼굴마담' 김순모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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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영화 제작사의 변신은 계속된다. 창립작 <우리들>을 선보이며 등장한 아토 ATO(이하 아토)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 기획 전공 출신인 4명의 프로듀서가 뭉친 신생 제작사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연남동 길목, 한 건물 2층에 간판 없이 자리한 아토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어제 크랭크업해서 좀 어수선하다. 하하.” 아토의 청일점이자 “얼굴마담”이라는 김순모 PD가 객들을 맞이하자, 그를 따라 삼삼오오 모인 동갑내기 세여자, 제정주, 김지혜, 이진희 PD는 “올해 이렇게 넷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라며 수다를 쏟아놓는다. 그만큼 그들은 각자의 프로젝트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어제 김지혜 PD의 <용순>을 크랭크업했다. 하반기엔 김순모 PD의 <홈>, 김지혜 PD의 <영아의 침묵>을 크랭크인할 거고, 제정주 PD는 <용기>의 시나리오를 개발하면서 영화 <은닉> 프리
[스페셜]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프로듀서 4명이 모여 만든 제작사 아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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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상반기, <우리들>은 예기치 못한 선물처럼 찾아온 반가운 영화였다. 아이들 세계의 역학 관계와 작동 원리를 투명하고 섬세하게 접사해낸 <우리들>은 상반기 굵직한 한국영화들 사이에서도 오롯이 존재감을 빛냈고, 고요하지만 말간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7월12일 3만 관객을 돌파하며 독립영화의 길고 꾸준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들> 뒤에는 숨은 공신들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기획 전공을 한 4인의 프로듀서가 뭉친 제작사 아토ATO(이하 아토)가 그들. 첫 창립작으로 영상원 출신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을 제작한 아토는 ‘따로 또 같이’를 표방하며 제작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젊은 프로듀서 집단이다. 이제 막 창립작을 선보인 아토는 앞으로 더 바빠질 예정이다. 7월10일 두 번째 작품 <용순>을 크랭크업했고, 하반기 크랭크인할 <홈>과 <영아의 침묵> 프리 프로덕션에 매진 중인
[스페셜] 새로운 가능성 찾아 따로 또 같이 - <우리들> 제작한 ATO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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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시사가 있던 하루 전 ‘여름 블록버스터 변칙 개봉’ 기사가 먼저 쏟아졌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의 독립애니메이션을 연출하고 극장 상황 때문에 개봉까지 애를 먹은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2016)을 제작한 연상호 감독으로서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런 상황에 대해 “두 골룸이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한다. 115억원이 투입된 좀비 액션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연상호의 전작에서 그렇게나 멀리 떨어져 보이는 작품이다. 더불어 ‘실사영화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던 연상호 감독이 실사영화를 만들었을 때 일어날 법한 모든 근심과 우려, 기대가 한곳으로 수렴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액션과 서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꽤 근사한 결과물이 나왔다. 앞서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
[스페셜] 힘 있고 단단하게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연상호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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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질문 하나. 어째서 감독 연상호는 <부산행>을 자신의 첫 번째 실사영화의 자리에 올렸을까. 애니메이션을 연출해온 연상호 감독은 그간 실사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을 꾸준히 밝혀왔다. 무엇보다 연상호표 애니메이션을 본 관객이라면 몸서리치게 섬뜩한 그의 애니메이션 속 사실적인 드라마에 놀라며 이런 이야기가 실사의 세계에서 펼쳐진다면 어떨까를 상상해봤을 것이다. <사이비>(2013)나 <서울역>(2015, 8월 개봉예정)의 리메이크가 논의되기도 했지만 연상호의 선택은 <부산행>이었다. 올해 초 <씨네21>(1037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그는 “재난 상황에서 빚어질 드라마, 유머, 액션이 모두 담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달려가는 목적성이 분명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부산행>은 연상호의 바람들이 응축된 결과물임이 틀림없다. KTX 기차에 정체불명의 바이러
[스페셜] <부산행>의 어떤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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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문제적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연상호 감독이 첫 번째 실사영화 <부산행>(2016, 개봉 7월20일)을 만들었다. <부산행>은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평단의 호평을 이끌며 올여름 최고의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영화는 부산행 KTX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공포에 휩싸이는 인물 군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나가는 블록버스터다.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심이 부른 악(惡)에 대한 연상호의 탐구는 이번에도 계속된다. 괴생명체의 등장 앞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인간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이어갈까. 선택 이후에 이들은 좀더 나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작은 규모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이어오던 연상호 감독에게 순제작비 85억원의 <부산행>은 분명 거대한 도전의 장이었을 것이다. 그 시도의 영화 <부산행>에 대한 리뷰의 글을 먼저 실었다.
[스페셜] 살아남기 위해 달린다 - 최악의 상황과 군상의 실체를 속도감 있게 전하는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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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을 때, SNS상에서 가장 자주 공유되었던 이미지 중 하나는 <쉬린>(2008)의 스틸컷이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인의 얼굴. 무엇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 없는 여인들의 이미지를 통해 게시자들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세계가 여기서 멈춰버렸다는 상실감과 슬픔을 에둘러 전하고자 했다. 짐작건대 이건 키아로스타미가 바라던 추모의 방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텐>(2002)을 만든 뒤 그는 “예술의 미란 그것이 일으키는 반응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어떤 연극도 상연되지 않는 무대(영화에서는 <코스로우와 쉬린>이라는 12세기 페르시아 연가 원작의 연극을 본다는 설정이다)를 보며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길어올려 눈물을 흘려야 했던 <쉬린>의 여배우들처럼, 사람들은 <쉬린>의 한 장면을 공유하며 그 이미지에 사적인 추모와 슬픔의 의미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영화는 멈췄지
[스페셜] <사랑을 카피하다>를 지나 <사랑에 빠진 것처럼>, 2010년대 이후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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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리피스에서 시작해서 키아로스타미로 끝난다, 라는 고다르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05년, 한 행사에서 나온 관객의 질문에 키아로스타미는 이렇게 대답했다. “드디어 이 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기쁘군요. 그 말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1)를 만든 직후 나온 것이니 벌써 6~7년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고다르는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그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고다르가 저에 대해 그리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죠. 저는 제 영화가 이제 약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텐>(2002)이 그렇죠.”
<텐>이라는 제목의 분기점
그런데 이상하게도 키아로스타미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의 부고 기사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고다르의 말이 인용됐다. 키아로스타미의 대답도 십년이 훌쩍 넘었고 <텐> 이후 연출한 영화도 10여
[스페셜] <텐>부터 <쉬린>까지, 디지털 세계로 이행한 키아로스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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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전체 필모그래피를 짚어보며 새삼스럽게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 번째는 그가 연출한 작품 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거였다. IMDb를 기준으로 그는 극영화-다큐멘터리, 장편-단편을 합쳐 모두 44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리고 그중 거의 절반이 우리가 ‘초기작’으로 여기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즉 키아로스타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세계영화계에 이름을 알렸을 때 그는 이미 19편의 영화를 만든 중견 감독이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앞줄에 놓이는 (경이로운) 목록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클로즈업>(1990), <그리고 삶은 지속된다>(1992),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 <체리 향기>(1997),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1999)- 은 엄밀히 따져 그의 ‘중기’에 해당한다. 어
[스페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부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까지, 그를 본격적으로 알렸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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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5일 새벽, 나는 그저 별 생각 없이 트위터의 타임 라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멘션이 하나 올라왔다. R.I.P.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순간 약간 멍해졌다. 이게 무슨 말일까. 내 첫 반응은 슬픔이 아니라 비명을 지르고 싶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때부터 10분 만에 100개에 가까운 180자가 뒤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찌해볼 수 없는 이 죽음 앞에서 거의 손쓸 수 없을 만큼 재빠르게 마치 확인이라고 해주듯이 새로운 추모의 문장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문장들은 키아로스타미 영화들의 장면을 첨부하거나 혹은 그 어디에선가 찍은 사진을 올려놓았다. 자비에 돌란은 몇번이고 반복해서 추모의 문장을 올리고 또 올렸다. 그저 나는 지구상의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올리는 문장들과 영화 장면들과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게 마치 주마등처럼 내 앞에서 흘러갔다.
그와의 첫 만남에 대한 말들
나는 여기서 키아로스타미 영화를 순서대로 열거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어, 라고
[스페셜] 당신은 벌써 제 곁에 없습니다 - 정성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추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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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불현듯 우리 곁을 찾아왔다. 2016년 7월4일. 이란의 영화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세상을 떠났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굽이치는 키아로스타미 영화 속 어느 이란 마을처럼 그의 삶 또한 끝없이 이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지그재그 3부작’의 배경이 되는 이란 북부 마을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결국 위암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거장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유산처럼 남긴 수많은 영화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의 질문에 응답해야 할 때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죽음을 기억하며 정성일 평론가가 진심어린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더불어 세명의 필자가 키아로스타미의 주요 작품을 통해 그의 영화 세계를 돌아보는 지면도 마련했다. 이렇게 당신의 유산과 우리의 삶은 앞으로 오랫동안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렇게 영원한 이별을 보류하며 이 글을 쓴다.
[스페셜] 영원한 물음표로 남다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6년 7월4일 일흔여섯의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