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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클럽에서 벌어진 올랜도 참사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사건이자 혐오/증오범죄로 기록되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미국 전역에 동성결혼이 인정된 지 꼭 1년 만이다.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로 불리는 6월,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퀴어 퍼레이드와 같은 자긍심 행진이 이어지는 시기에 벌어진 참사다. 전세계 성소수자들이 애통함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참사 소식이 전해진 직후 추모 행사가 열렸다. 서울광장에 5만명이 모인 역대 최대 규모의 퀴어 퍼레이드의 흥분은 단 하루 만에 바다 건너 소식에 고통으로 내려앉았다. 동성혼과 같은 제도적 보장의 수준과 관계없이 성소수자 개인이 생명을 위협받는 현실은,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증오와, 공포와, 차별의 선동이 있는 한 어디에나 벌어지고 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LGBT에 대한 폭력
그렇다. 문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와, 공포와
[스페셜] 영화관 밖 LGBT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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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를 ‘퀴어’하게 만들었거나 만들 여덟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몇몇 작품은 향후 극장가에서 만날 예정이다.
<위켄즈>
감독 이동하 / 2016년 /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관객상 수상작
<위켄즈>는 국내 유일의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의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을 앞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스무살의 신입 단원부터 중년이 된 창단 멤버까지 나이도 직업도 취향도 다양하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게이라는 것, 그리고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 이들에게 주말은 종로의 연습실에 모여 노래를 연습하고 한주의 밀린 수다를 떠는 즐거운 시간이다. 창단 10주년 공연을 며칠 앞둔 날,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결혼식이었던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러 간 지보이스는 혐오 세력이 뿌린 똥물을 뒤집어쓴다. 혐오를 면전에서 맞닥뜨린 이들은 왜 우리가 똥물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왜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한국에서
[스페셜] 개봉을 앞둔, 혹은 개봉을 촉구하는 퀴어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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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퀴어 퍼레이드를 준비 중인 서울광장 잔디밭 한가운데에 앉아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는 저주 소리를 들으며 이 원고를 쓰는 동안,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각색한 박찬욱의 <아가씨>는 300만 관객을 향해 질주 중이다. 동성애 혐오세력이 이 영화의 상영을 막으려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항의 시위도 없다.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대자본 퀴어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데도 여기에 대한 어떤 반발도 감지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것은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와 박찬욱의 힘인가? 아니면 여성 동성애자들은 이렇게 대놓고 깃발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 존재인가?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2016년은 한국 퀴어영화 역사상 흥미로운 해가 될 것이다. 우선 <아가씨>의 흥행 성공이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여성동성애를 다룬 이현주 감독의 장편 <연애담>이 한국경쟁 대상을 받았으며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스페셜] 한국 퀴어영화 역사상 흥미로운 해가 될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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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난 6월15일 336만 관객을 돌파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 대한 팬덤이 어마어마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배우 김민희가 연기한 히데코와 김태리가 맡은 숙희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이다. 이들 커플의 애틋하고도 관능적인 사랑을 응원하는 팬들은 반복 관람은 물론이고 캐릭터의 주요 대사와 디테일한 행동에 대한 의미까지 수많은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누가 봐도 명백한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가, 한국 극장가에서, 이토록 뜨거운 지지를 받게 될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징조는 있었다. 퀴어영화가 한국 극장가에서 새로운 대중적 성취를 이루기까지, 어떤 조짐들이 있었나. 또 <아가씨>의 바통을 이어받아 관객의 눈을 홀릴 ‘퀴어’한 영화로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한편 극장 밖에서 LGBT 이슈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나. 2016년의 무지갯빛 6월이 불러일으킨 몇 가지 질문들을 곱씹어보았다.
[스페셜] 2016년의 무지갯빛 6월이 불러일으킨 몇 가지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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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무이한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가씨>의 일본 프로덕션은 어찌 되었을까. ‘일본통’ 김종대 프로듀서는 <아가씨>에서 일본 프로덕션과 헌팅, 현지인 섭외 등 일본 관련 업무를 총괄했다. 용필름 임승용 대표와는 시오필름 시절부터 알던 사이라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김 프로듀서의 합류는 정해져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아가씨>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이야기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1910년대 고베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1910년대의 고베는 온갖 서양 문물이 오가던 곳이다. 주요 캐스팅을 일본인 배우로 할 예정이었고 프로덕션도 일본영화와 비슷했다. 규모가 큰 글로벌 프로젝트처럼 돼가고 있었다. 스탭 중 일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 부담이 컸는데 이야기가 지금처럼 방향을 틀면서 많이 편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책임은 막중했다. 매번 일본으로 헌팅을 가긴 어려웠기에 김 프로듀서는 현지에 임시 제작지원팀을 꾸려 방대한 자료 조사를
[스페셜] 일본 촬영분을 만들어낸 능력자 – 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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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숨은 엑스트라고나 할까. 주역까지는 아닌 것 같다. (웃음)” 정원조 프로듀서는 인터뷰에 나서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아가씨>를 기획한 임승용 대표가 얘기를 하는 것이 맞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프로듀서로서 크레딧을 올리긴 했지만 윤석찬 프로듀서나 김종대 프로듀서에 비하면 그리 고생을 한 것도 아니기에 그들과 같은 자리를 나누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가 했던 업무 비중이 다른 프로듀서에 비해 크지 않았다는 이유는 동의할 수 없어 그를 꾀어내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원작자 세라 워터스와 박찬욱 감독 사이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임승용 대표의 말대로 그는 미국 변호사와 함께 판권 계약서를 세부적으로 검토하는 일을 했다. <아가씨>의 판권 계약서에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대목이나 특정 지역을 무대로 고집하는 내용은 없었다. “매력적인 각색 방향이 있다면 원작자와의
[스페셜] 세라 워터스와 박찬욱 사이의 징검다리 – 정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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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의 유일한 여성 프로듀서이자 프로젝트의 가장 최초의 지점에 서 있던 사람이 용필름의 이유정 프로듀서다. 세라 워터스가 쓴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의 영화화 판권 구매를 주도한 사람이 그다. 2012년 8월, 용필름 설립 이전 임승용 대표는 바른손 영화사업부 본부장으로 있었고 이 프로듀서는 임 대표 밑에서 일하던 해외사업팀 직원이었다. 당시 마켓을 다니며 외화 수입 일을 하던 이 프로듀서는 2010년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포인트 블랭크>(2010)를 보고 임 대표에게 추천했고 임 대표는 이 프로듀서에게 그냥 수입이 아닌 한국어 리메이크 영화로 판권을 사게 했다. “그런 방식의 구매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평소보다 공격적으로 판권 구입을 추진했다. <핑거스미스>의 판권 구매도, 그때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맡기신 게 아닐까 혼자 짐작하고 있다. (웃음) 2010년 말부터 <핑거스미스> 구입 얘기가 나왔고 계약하기까진 일년쯤
[스페셜] 판권 계약과 관련된 신의 한수 – 이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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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제작 진행의 모든 길은 윤석찬 프로듀서로 통한다. 그는 회차 운용 계획과 촬영 일정을 짜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촬영, 상영까지 제작의 전 공정을 진행한 살림꾼이다. 총 3부로 구성돼 방대한 촬영 분량, 시대극, 일본 로케이션, 변수가 많은 여름 날씨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는 제작 환경 속에서 68회차 만에 촬영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도 단지 <스토커>(2012)를 40회차 안에 찍었던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감독의 경험 덕분만은 아닐 것이다. 큰 키, 동그랗고 큰 눈, 조리 있는 말투 등 곱상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그는 “때로는 치열하게, 또 때로는 섬세하게 야전을 지휘”했다.
<아가씨>는 윤석찬 프로듀서의 입봉작이다. 윤석찬 프로듀서는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아가씨> 프로듀서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스스로 “맡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박쥐>(2009) 제작부로 박 감독님과 인연을 맺은 이
[스페셜] <아가씨>의 A2Z – 윤석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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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가 많아야 두명인 보통 상업영화와 달리 <아가씨>에 참여한 프로듀서는 무려 4명이다. 프리 프로덕션부터 상영까지 영화의 전 공정을 이끌었던 윤석찬 프로듀서, 제작자 임승용 용필름 대표를 도와 원작 <핑거스미스>를 확보한 이유정 프로듀서, 판권 계약서를 세부적으로 검토하고, 박찬욱 감독과 원작자 세라 워터스 사이에서 의사소통을 담당했던 정원조 프로듀서, 일본 촬영을 담당했던 김종대 프로듀서가 그들이다. <아가씨>가 기획 단계부터 상영까지 큰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건 프로듀서 4인방의 숨은 노력 덕분이다.
[스페셜] <아가씨>에 참여한 프로듀서 4인방 윤석찬•이유정•정원조•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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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6월1일 개봉)와 나홍진 감독의 <곡성>(5월11일 개봉)이다. 각각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과 비경쟁부문에 초청됐음은 물론이고, 한달 정도의 차이를 두고 개봉한 6월16일 현재 각각 300만 관객을 돌파하고(<아가씨>) 7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곡성>) 있다는 점에서 관객 또한 ‘현혹’시켰다. 그동안 해외영화제나 해외 시네필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던 그들이 새로운 한국 관객과의 만남에 성공했다는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처럼 2016년 한국영화 상반기를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두 감독을 한자리에 모셨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영화를 비교 분석하고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자리일 것이다. 게다가 나홍진 감독이 <곡성>을 준비하며 박찬욱 감독에게 완성된 시나리오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나홍진 감독은 꼼꼼하게 조언해준 박찬욱 감독의 메
[스페셜] <아가씨> 박찬욱 감독이 <곡성>을 보다 <곡성> 나홍진 감독이 <아가씨>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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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단짝 친구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이 영화의 바탕이 됐다고 밝혔다. 영화로까지 탄생한 걸 보면 당시의 사건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나보다.
=물론 당시엔 큰 사건이었고 그로 인해 힘든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지나간 일이다. 친구와 관계가 뒤틀리고 난 뒤 그 원인을 알아내려고 오랜 시간 곱씹어 생각해봤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니 ‘왜 그랬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나는 그 시절의 상처받고 상처를 준 아이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를 오랫동안 미워하는 게 무척 힘든 일이란 걸 알았다. 진짜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더라.
-여러 버전의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CJ E&M의 신인감독 발굴•지원 프로젝트인) 버터플라이 프로젝트에 당선됐던 애초의 트리트먼트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주제는 같았지만 미스터리 장르였고, 누나가 남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는
[스페셜] 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다 - <우리들> 윤가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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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등교한 두 소녀가 함께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 <사루비아의 맛>(2009), 아빠의 내연녀 집에 들이닥쳐 내연녀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소녀의 이야기 <손님>(2011), 엄마를 대신해 콩나물 사러 집을 나선 7살 소녀의 이야기 <콩나물>(2013). 윤가은 감독의 단편은 모두 아이들의 감정,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린 영화였다. <손님>으로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고, <콩나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수상한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 역시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열한살 외톨이 선과 전학생 지아의 관계를 따라가는 <우리들>은 복잡미묘한 소녀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올해의 빛나는 데뷔작 <우리들>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그 시절엔 친구들과 하루걸러 편지를 주고받았다. 어제 봤고 내일도 볼 텐데, 수업도 같이 듣고 도시락도 함께
[스페셜] 발견! 소녀들의 세계 그린 윤가은 감독의 데뷔작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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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퍼물의 형식을 취하는 <아가씨>는 남근 중심적 세계에 지배되는 듯 보이지만 곧 그 법칙에서 전력으로 탈주하는 영화다. 익숙한 문법을 제시한 후, 장르적 트릭인 양 시치미를 떼며 변칙적으로 그 세계를 전복하는 것이다. 뒤집어진 세계에서 등장한 것은? 이런저런 말로 에둘러 가릴 수 없는 레즈비언이다. 그간 한국영화에선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를 비롯해 <창피해>(2010), <도희야>(2014) 등에서 레즈비언이 등장했지만 극소수에 그쳤고 이는 남성 퀴어영화에 비해서도 척박한 불모의 수준이었다. 그러니 <아가씨>는 등장만으로도 얼마나 반갑고 기꺼운 영화인가. 한국에서 여성 퀴어영화를 대중적 화법으로 풀어낸 첫 주자가 박찬욱 감독이라는 것은 여성 주체에 보여온 그의 일관된 관심을 상기해보면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다. <친절한 금자씨>(2005)의 금자(이영애), <스토커>(2013)의 인디아(미아 바
[스페셜] 퀴어영화와 성 역할로 바라본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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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목적은 희망을 버리고 밥 먹고 살아야 함에 있음을 알게 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의 영군(임수정), 이미 돼버린 것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 어른이 된다던 <스토커>(2013)의 인디아(미아 바시코프스카). 그 뒤에 <아가씨>(2016)가 왔다. ‘소녀 3부작’의 범주로 묶어 이들을 착란의 세계 밖으로 뛰쳐나온 소녀들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쩐지 <아가씨>는 그보다 더 큰 동심원, 그러니까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와 <박쥐>(2009)까지도 포함하는 박찬욱의 복수극의 계보에 둬도 무방하다. 금기를 넘음으로써 지은 죄와 복수가 끝내 닿으려 했던, 그러나 오랫동안 공란이었던, 구원에 대한 잠정적인 답변서처럼도 보인다.
박찬욱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에서 하영(송승환)은
[스페셜]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 속 여성들과 <아가씨> 속 히데코와 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