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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훈, 한혜진 감독의 <소중한 날의 꿈>(2011)은 어려운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 여건 속에서 오랜 기간 숙성시켜 만들어진 소중한 작품이었다. 7080관객의 향수를 자극하기 충분한 시대배경과 이제 막 꿈을 키워나가는 청춘의 고민, 그리고 실사영화가 표현할 수 없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환상적인 연출까지. 픽사와 디즈니, 지브리 3면에 둘러싸여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한국 애니메이션이 오랜만에 마음껏 활개를 펼친 작품이었다. 안재훈 감독이 몸담고 있는 ‘연필로 명상하기’는 <소중한 날의 꿈> 이후에도 열악한 국내 제작 환경 탓만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기술적인 제작 노하우와 애니메이터로서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여러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근대 단편소설을 기반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한국 단편문학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메밀꽃 필 무렵> <봄봄> <운수 좋은 날> 세편을 묶어 내놓은 <메밀꽃, 운수
[애니메이션 기대작③] <소나기> 안재훈 감독, "소설의 대사를 잘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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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는 무모한 프로젝트였다. 반 고흐의 일생과 죽음에 관한 추측들은 이야기의 소재로 충분하다. 반 고흐의 작품들을 하나로 모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할 법한 시도다. 하지만 이 모든 작업을 반 고흐의 작법을 살려 유화로 제작한다는 건 불가능한 도전에 가깝다. 본래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는 게 장편애니메이션의 운명이라고 하지만 모든 작화를 실제 유화로 구성한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시도다. 하지만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은 결국 해냈다. 전세계에서 120여명이 넘는 화가가 선발되어 그려낸 6만5천장가량의 유화는 고흐 작품에 생명을 부여했다. 95분의 상영시간 동안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회화는 회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고픈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빙 빈센트>는 결국 그렇게까지 했을 때, 어떤 표현과 성취가 가능한지 증명하는 작품이다. 이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가 신기한 구경
[애니메이션 기대작②] <러빙 빈센트>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 - 분리된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애니다운'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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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이 가져다준 행복은 채 1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적어도 재정적 상황만 놓고 보면 그렇다.”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은 한국의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썼다. 220만명이라는 관객수도 대단했지만, 명필름과 오돌또기의 공동제작과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투자·배급 참여로 한국 상업 장편애니메이션의 판을 키우고 유의미한 시스템과 롤모델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컸다. 그런데 <마당을 나온 암탉>이 개봉하고 6년이 지난 현재, 오성윤 감독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살아가는 것의 버거움을 토로하고 있다(인터뷰가 끝날 때쯤엔 목이 반쯤 쉬어 있었다). 오성윤 감독은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차기작으로 <언더독>(공동연출 이춘백) 작업에 곧장 착수했다. 출발은 좋았다. 기획 단계에서 이미 순제작비의 50% 이상을 투자받았고 중국쪽 투자까지 수월하게 유치할 수 있었다. 결과물도 만족스럽게 나오는 상
[애니메이션 기대작①] <언더독> 오성윤 감독, "픽사, 지브리 같은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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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부터 여름 극장가는 크고 작은 애니메이션으로 넘쳐나는 중이다. 불모지였던 애니메이션 시장이 활성화된 건가 싶어 반가우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방학을 맞이한 어린이들을 위한 아동애니메이션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창작애니메이션은 찾아보기 힘들다. 북미 대형 스튜디오의 작품들과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유럽 애니메이션들이 주류를 이룬다. 아쉽긴 하지만 해외 애니메이션 일색이라는 게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대세가 된 3D애니메이션만으로 극장이 채워지는 건 아쉽기 이를 데 없다. 인기 TV애니메이션의 극장판과 일본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들이 간간이 개봉하긴 하지만 독특한 색깔과 개성을 지닌 작품을 다양하게 만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장르로 묶어 연령대나 특색을 고려하지 않고 취급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에 <씨네21>에서는 올여름 극장가를 장식할 애니메이션들을 소개하는 대신 특색 있는 작품들을 골라 미리 소
기다림이 헛되지 않을, 애니메이션 기대작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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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을 지나 8월에도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여름영화 대전 속 다수의 작품에서 박찬욱 감독의 흔적을 발견했다. <군함도>와 <옥자>는 홍보 영상에서 그의 추천사를 소개했고, <택시운전사>의 주연배우 토마스 크레치만은 촬영현장에서 박찬욱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일화를 한국 매체에 전했다. 한해 중 한국영화계가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시즌에,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박찬욱의 존재감은 그가 동료 영화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인 영화인을 기념하는 CGV아트하우스의 한국 영화인 헌정 프로젝트, 그 세 번째 대상으로 아직 50대에 불과한 감독 박찬욱이 선정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CGV아트하우스는 지난 7월 27일 부산 서면의 임권택관, 서울 압구정의 안성기관에 이어 CGV용산 아이파크몰 아트하우스에 박찬욱관을 개관했다. 박찬욱 감독에게 헌정된 이 극장의 개관을 기념해 그의 연출작과 애정하는 영화들을 소개하는
CGV아트하우스 박찬욱관 개관 기념 특별전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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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의 숲>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해 가장 인상적인 데뷔가 아닐까. 작품성은 물론 침체기에 빠졌던 tvN 드라마의 부흥을 다시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는 <비밀의 숲>은 이수연 작가의 첫 작품이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가 쓴 대본은 작가의 이름값 없이도 드라마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조승우, 배두나가 출연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결말의 태도 역시 이 신인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한층 더 증폭시킨다. 마지막 회 방송 후 그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나눴다.
-드라마 각본을 쓰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일반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었다. 직장에 다니던 어느 날 드라마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원래 상상하는 걸 좋아했으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습작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드라마를 구상한 것은 3년 전이라고.
=법정물을 만들자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 과정에서 검찰을 주요 무대로 삼고, 내부비리에서 촉발된 조직 문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 - 공식에서 벗어난, 인간의 다면성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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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은 기본에 충실한 연출의 미덕을 보여준다. 이른바 ‘영화 같은 드라마’를 지향하지만 연출자의 존재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해당 장면에서 전달해야 할 정보는 간명하게 담아낸다. <비밀의 숲>을 제작한 소재현 프로듀서는 안길호 PD에게 연출을 의뢰한 이유를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2012), <미세스 캅>(2015) 등에서 B팀 연출을 맡으며 쌓은 탄탄한 기본기”라 설명했다. <비밀의 숲>은 주로 일일드라마를 연출했던 안길호 PD의 첫 장르물이다. 좋은 드라마 연출의 조건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 안길호 PD를 서면으로 만났다.
-<비밀의 숲>은 감독의 자의식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작품인 것 같다.
=대본이 워낙 섬세하고 디테일해서 이 작품은 ‘쇼잉’(Showing)보다는 ‘텔링’(Telling)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들의 열연이 드라마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연출이 극을 방해하지
<비밀의 숲> 안길호 PD - 넘치지 않게, 그러나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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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봤어?” 최근 몇주 사이 <씨네21> 기획취재팀에서는 때아닌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었다. 식사 때마다 종종 화제에 오르던 <비밀의 숲> 때문에 아직 시청 전인 사람은 스포일러를 피하랴, 이미 푹 빠진 사람은 출연배우의 새 소식을 전하랴 이야기꽃을 피운 것이 이곳만의 사정은 아닐 터. 지난 두달간 <비밀의 숲>에 열광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이 주는 신선한 재미에, 치밀한 각본에,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무수한 미덕에 주목했다. 뒤로 갈수록 완성도가 떨어지던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에 빠지지 않았고, 검경을 다룬 이전 드라마의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았으며, 자기 역할이 분명한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또한 <비밀의 숲>에는 이른바 스타 작가와 스타 PD가 없다. 높은 제작비가 들어갔다거나 촬영기간이 길었던 것도 아니다. <비밀의 숲>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 제작 시스템에 집중한 기획을 준비한
전문가들의 조합, <비밀의 숲>의 성공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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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사상 중요하게 다뤄지는 전쟁영화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 <덩케르크>의 배경인 다이나모 작전처럼 2차 세계대전의 흐름에서 중요하게 인식되거나 혹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문제의식처럼 전쟁 영화의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나 예술성을 알린 영화를 골라 소개한다. 사실, 방대한 전쟁사를 다루는 영화들 가운데 7편만을 선정하는 것은 무리다. 예를 들어 전투 장면 하나 없이 전쟁의 의미를 질문하는 데이비드 린의 <콰이강의 다리>(1957)나 장 피에르 멜빌이 누아르라는 장르 안에 시대의 비극을 담아낸 걸작 <그림자 군단>(1969) 등은 한데 묶일 수 없는 개성을 지니고 있어 언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여기 소개하는 7편의 영화는 세계 역사를 뒤흔들어놓은 2차 세계대전의 특정한 순간을 영화적으로 옮기는 작업에 성공한 영화들이다.
독일 패망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작전
<벌지 대전투>(1965)
히틀러는 독일 진영이 거의 무너져가던 시기에
<덩케르크>와 함께 보면 좋을 2차 세계대전 영화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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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서 있는 것 같았다.” 독일군에 포위되어 덩케르크 해변에 갇힌 채 불안에 떨던 영국과 프랑스 병사들 중에 끝내 살아남아 그날의 기억을 후세에 전한 참전병사가 남긴 말이다. 저 한마디만으로 대규모 철수 작전이 펼쳐지던 항구 도시 덩케르크의 광경을 온전히 상상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의 모습을 보다 생생하게 현대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덩케르크>는 바로 그 결과다. 흔히 전쟁영화는 역사적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다룰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묘사할 것인지에 따라 방향이 나뉜다. 그렇다면 <덩케르크>는 어떤 영화라 할 수 있을까? 개봉이 꽤 지난 시점인 지금 영화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는 것이 뒤늦은 감이 있지만, 요즘 한국 여름 극장가 흥행 풍경을 생각해보면 전혀 불필요한 일 같지도 않아 보인다. 아이맥스 상영에 열광하는 관객부터 지루한 영화라는 평을 쏟아내는 관객까지,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를 받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를 되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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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류승완의 <군함도>를 흥미롭게 봤기 때문에 이 영화 개봉 이후 불거진 여러 논란들에 대해 당사자만큼은 아니겠지만 평자로서 당혹감을 느꼈다.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링크한 글을 읽어보았는데 역사 왜곡에 관한 몇몇 수준 이하의 글들은 이 영화가 조선인 부역자들을 부각시키는 것과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하고 있었고 여론몰이에는 나름 이런 글들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논외로 두어도 될 만큼 가치가 없고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소가 나오는 현상이지만, <군함도>에는 피해자가 없다고 단정하는 이 분야의 학자 박유하의 글이 전하는 입장은 경청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군함도>가 ‘한번쯤은 일본과 대적해보고 싶었던 조선 남성의 욕망을 구체화한 영화’이며 이 영화에 등장하는 “‘피해자’는 오로지 관념일 뿐이고, 그렇게 형해화된 ‘피해자’는 쉽게 소비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면서 강제 연행, 총살, 위안부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군함도> 영화비평 - 수평에서 수직으로 운동과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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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 보인다.
=최근의 논란 때문에 잠을 못 잔 건 아니고. (웃음) 불면증 때문에 약 먹은 지 꽤 됐다. 후반작업과 무대 인사를 차례로 강행군하는 바람에 몸은 피곤한데 잠을 푹 잘 수 있어 수면 건강은 좋아진 것 같다.
-개봉 첫주 400만(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관객을 동원했는데(8월 2일 현재 <군함도>는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편집자).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극장가 반응은 좋은 것 같다. 한 젊은 제작자가 “야마다(김중희) 목이 날아가는 순간 박수가 나왔다”고 알려와서 “진짜?”라고 되물었더니 “아니, 관객 전부 다 쳤다는 건 뻥이고 100명 정도인 것 같다”고 하더라. (웃음)
-군함도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뭔가.
=<베를린>(2012) 촬영을 마친 뒤 <군함도>를 공동 제작한 김정민 필름케이 대표와 그의 친구인 신경일 작가가 보여줄 게 있다고 해서 만났다. 군함도 사진이었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
<군함도> 류승완 감독 인터뷰 - '국뽕'과 친일 두가지 논란이 동시에 불거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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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논란을 낳고 있다. “충실한 고증”부터 “역사 왜곡”까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영화 속 일부 설정과 관련된 의견이 분분하다. ‘국뽕’과 친일딱지가 동시에 붙었다. 개봉 첫주 스크린 2168개(교차상영 포함)를 차지해 스크린 독과점 비판을 호되게 받고 있다(영화는 개봉 8일 만에 500만(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관객을 동원했다.-편집자). 사방에서 불어닥친 논란에 휘말리는 바람에 영화 얘기는 쏙 들어갔다. 논란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는 주인공은 류승완 감독의 열 번째 장편영화 <군함도>다. 류승완 감독은 두 시간 넘게 영화 <군함도> 얘기부터 영화와 관련된 최근의 논란까지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김영진 평론가가 보내온 <군함도> 비평은 영화를 영화로 읽는 데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군함도>를 둘러싼 논란에 류승완 감독이 직접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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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에서 최재섭이 맡은 서울 택시기사는 역할의 이름조차 마땅하지 않은 아주 작은 배역이다. 만섭(송강호)에게 서울-광주 왕복에 10만원을 부른 ‘노다지’ 손님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를 가로채기당하는 억울한 기사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날 광주로 가지 않게 된 건 이 서울 기사에겐 다행이었을까. 적어도 배우 최재섭에겐 단 2회차 촬영의 <택시운전사> 출연이 기분 좋은 다행이었던 것 같다. “올해로 데뷔 20년차인데 첫 매체 인터뷰를 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웃음)” 최재섭은 2001년부터 배우 오달수가 대표로 있는 극단 신기루만화경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매년 봄이면 신기루만화경의 정기 공연작인 <짬뽕>을 무대에 올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택시운전사> 오디션 때 그 점을 많이 어필했다. 광주 택시기사가 되려나 싶었는데 서울 택시를 몰게 될 줄이야.” 최재섭은 장훈 감독의 데뷔작 <영
[빛낸 배우들⑧] <택시운전사> 최재섭 - 거인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