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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를 구상할 당시 <걸어도 걸어도>풍의 가족극이 될 거라고 예고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과연 아버지는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인생을 사셨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됐다. 그 생각을 이어가다가 이 이야기가 시작됐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린 시절 꿈꾸던 미래의 자신의 모습대로 어른이 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이 어른이 된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있는지를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료타는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뒤늦게 깨닫는다.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와 했던 일들을 아들 싱고와 함께해보며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가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15년이 됐다. 그사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살아 계실 땐 오히려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에 대해 이
[스페셜]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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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또 한편의 가족 드라마 <태풍이 지나가고>가 7월27일 개봉했다. 어린 시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궁금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의 아파트 단지의 풀밭은 어째서 그토록 아름다운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태풍이 몰아친 간밤에 마치 뭔가 크게 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은 이 신기하고 이상한 변화, 혹은 변화라고 느끼게 되는 그 감정에 대해서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그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한폭의 풍경화와도 같다. 곧 태풍이 몰아칠 거라는 뉴스가 전해지던 어느 여름날, 철부지 아들이자 아버지인 료타(아베 히로시)와 그의 가족이 겪어가는 한때의 이야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세계의 원형이라 해도 좋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로 돌아보는 ‘살아간다’는 일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그것은 거창하고 복잡한 게 아니다. “인생은 단순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일상이란 원래 그렇게 지난한 것들의 연속이
[스페셜] 부재와 상실 뒤의 풍경을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사려깊은 시선 <태풍이 지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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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안전이 또 한번 무너졌습니다.” <터널> 속 TV뉴스 앵커의 대사가 콕 박힌다. 자동차 영업대리점의 과장 정수(하정우)는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무너져내린 터널 안에 홀로 갇히고 만다. 그가 가진 것은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과 생수 두병, 그리고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대형 터널 붕괴 사고 소식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정부는 긴급하게 사고 대책반을 꾸린다. 사고 대책반의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은 꽉 막혀버린 터널에 진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구조는 더디게만 진행된다. 자연스레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등 한국 사회가 겪었던 재난 상황이 내리꽂히듯 연상된다. 터널이 무너졌고, 그 안에 사람이 갇힌 상황. 구조대 출동은 더디고, 언론은 특종에만 급급하고, 정치인들은 기념촬영하기에 바쁘다. <터널>은 스피디한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구성으로 주목받은 <끝까지 간다>(2013)의 김성훈 감독의 신작이다. 블랙코미디와
[스페셜] “생명이 승리하는 걸 보고 싶었다” - <터널> 김성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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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이 차기작으로 <덕혜옹주>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생각만큼 프로젝트에 가속이 붙지 않아 궁금증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손예진과 박해일의 캐스팅 소식을 접했을 땐 궁금증에 믿음이 더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가 완성됐다. 비극적 운명을 뜻대로 헤쳐나가지 못한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옹주의 삶을 허진호 감독은 비극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비극성을 강요하지 않는 건 생략과 절제를 아는 연출 덕이다. 허진호라는 멜로드라마의 장인은 1910~60년을 아우르는 방대한 시대극 안에 절제된 사랑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중국과의 합작영화 <위험한 관계>(2012)가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긴 했지만, 역사적 인물을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 실재와 허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덕혜옹주>를 준비하며 가졌던 고민과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허진호 감독에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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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덕혜를 좀더 능동적인 인물로 만들고자 했다” - <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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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9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올여름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곧 다가오는 추석 시즌 개봉작인 김지운 감독의 <밀정>과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 등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화제작 두편이 눈길을 끈다.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와 김성훈 감독의 <터널>은 장르와 결이 뚜렷이 다른 작품이다. <덕혜옹주>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시대의 아픔에 희생된 한 실존 인물을 조명하고 있다면, <터널>은 현재 대한민국의 세태를 깊게 반영하고 비판하는 작품이다. 여름영화의 최전선에 선 허진호 감독과 김성훈 감독을 만났다.
[스페셜] 덕혜옹주 vs 터널 - 허진호 감독과 김성훈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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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메라가 돌아가도, 꺼져도 즐거운 술자리. “이원근이 오징어 다 먹었어요.” 지윤호가 제작팀에 고자질하자, “맛있어서 그랬어”라는 이원근. “나중에 내가 하나 사줄게.” 친구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한 배종옥이 상황을 정리한다.
2. 이동은 감독과 이원근의 작전타임. “아깐 맨정신이었고, 지금은 조금 더 취한 거니까 톤을 더 높이자.” “이 대사에선 수현과 눈을 마주치는 게 나을까요, 응시하지 않고 가는 게 나을까요?” “미경이 빠지고 나서 둘은 서먹하니까 굳이 안 마주쳐도 돼.” 섬세하게 하나하나 디렉션을 주는 감독과 그 이상으로 하나하나 되짚어 묻는 배우. 이원근 배우는 “이런 방식은 처음”이라지만, 둘 사이의 소통은 편안해 보인다.
3. 저마다 각자의 상념에 잠겨 있는 용준, 수현, 미경. 담담한 시선 속 많은 감정을 감추고 있다. 이원근은 이 신에서 밀도 높은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4. 용준(이원근)을 불러세우는 수현(지윤호). 돌아선 이도 부른 이도
[스페셜] 계절과 계절 사이 감정과 감정 사이 - 이동은 감독의 <환절기>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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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대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는 철종과 영훈(왼쪽부터). 두 배우는 “최국희 감독이 애드리브를 많이 주문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최국희 감독은 “애드리브를 많이 주문했다기보다는 컷 사인을 늦게 하는 편”이라며 “계속 카메라를 돌릴 수 있다는 게 디지털의 장점이지 않나? 컷 사인을 안 하니 배우들이 뭔가를 하나씩 더 하게 되는데, 그게 재미있었고, 그걸 즐겼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2. 내기 볼링의 판을 설계하는 백 사장 역의 권해효(오른쪽 두 번째). 차가워 보이는 극중 역할과 달리 그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최국희 감독의 큰 체구를 두고 “완전 UFC 출전 선수의 몸 같다”고 농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 “시나리오가 매력이 있었다. 전형적인 스포츠영화와 다른 재미가 있었다”며 “백 사장은 볼링장 신에서만 등장한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이 영화에 출연하기 전 홍상수 감독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2016)과 제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또 다른
[스페셜] 도박 볼링의 세계가 펼쳐진다 - 최국희 감독의 <스플릿>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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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가고 날이 밝아도 현장은 열정을 잃지 않는다. 더군다나 신인감독의 데뷔작 현장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무더운 여름밤, 더위와 싸우며 밤샘 촬영을 진행한 두 작품 <스플릿>과 <환절기>의 현장을 찾았다. 도박 볼링의 세계를 박진감 넘치게 펼쳐낼 영화 <스플릿>은 단편 <블루 디코딩>으로 제1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필름매체상을 수상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를 졸업한 최국희 감독의 작품이다. 저마다의 아픔을 지닌 인물들이 한 계절을 통과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려낼 영화 <환절기>는 시네마서비스, CGV무비꼴라쥬 등에서 일했으며 명필름영화학교 1기생인 이동은 감독이 연출한다. 결은 달라도, 자신만의 시선과 화법으로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두 신예 감독의 데뷔작 현장을 찾았다.
[스페셜] 주목해야 할 두 신인감독의 촬영현장을 가다 최국희의 <스플릿> , 이동은의 <환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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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의 대표작 <돼지의 왕>(2011)을 보며 <말죽거리 잔혹사> (감독 유하, 2004)를 떠올리지 않기는 어렵다(교실 안 폭력의 정점에 두 무리가 있고, 한쪽 세력은 학생들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힘을 휘두르며, 주인공은 그 상대편 무리의 하부에 위치하면서 폭력의 질서에 끌려간다).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쉬는 시간 교실에서 이소룡 역을 맡은 ‘짱’이 악당들을 물리치는 역할극을 펼친다. 놀이를 제안하는 ‘짱’은 이렇게 말했을 터다. “나 이소룡, 너 나쁜 놈 두목, 나머지 너희들은 그 부하들이야. 자, 다 덤벼.” 제안이 아니라 지정이다. 이제 정해진 역할에 따라 예정된 스토리가 시작된다. 10대 남자애들의 역할극에서 악당은 어쩌다 악에 물들게 됐는지, ‘부하2’의 어머니는 얼마나 자식을 걱정할지 따위를 돌아볼 여유란 없다.
전형적이라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부산행>은 솜씨 좋은 상업 기획영화다. 인
[스페셜] 충무로가 강박적으로 기존의 성공 코드를 답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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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에는 마치 영화의 작은 결말처럼 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할머니 인길(예수정)이 좀비로 변한 순간 동행자였던 할머니 종길(박명신)이 좀비들의 객실 문을 열어젖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많이 언급된 좀비 액션만큼이나 중요하게 거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부산행>이 현실의 문제를 텍스트 내에서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있다고 느껴지는 거의 유일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세태를 비판적으로 반영하는 장치가 이것 하나뿐이라는 말이 아니다. 가령 4·16을 환기시키는 요소들만 해도 영화 곳곳에 심어져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날카롭지 않고 뭉툭하다. 뭉툭해서 그것을 빼놓더라도 전개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열차 신은 다르다. 영화의 서사는 이 장면을 위해 처음부터 꽤 많은 것을 차근차근 준비한 뒤 열차 신에 이르러 생존주의라는 문제를 테이블의 중앙에 올려놓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러니 만약 <부산행>이 현실의 무언가를
[스페셜] <부산행>이 생존주의를 다루는 방식에 동의하기 어려운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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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80년대 한국 호러영화들을 보면 “이 사람들, 정말 해머 호러영화를 만들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당시 유행한 긴 머리 여자 귀신 나오는 영화들을 보라. 대충 보면 조선시대스럽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들 커다란 드라큘라 이빨을 달고 있고 툭하면 지나가는 과객을 문다. 그들이 흉내냈던 건 해머 영화만이 아니었다. 로저 코먼 영화들, 60, 70년대 유로 트래시 영화들, 유니버설 영화들, 물론 일본 호러물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아무리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도 한국 호러영화는 대부분 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의 재료로 만들어졌고, 한국 호러영화의 역사는 아직까지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토착화의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왜’와 ‘어디에서’에 신경 쓰지 않는 장르적 특징
최근 들어 이 토착화의 과정이 점점 쉽고 짧아지고 있다. 그만큼 세계가 평준화되고 장르가 현대화된 것이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호러는 오로지 머나먼 유럽의 고성을
[스페셜] 좀비물을 한국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안타깝도록 얄팍한 ‘아저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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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영화 시장의 승자가 일찌감치 결정됐다. 개봉 7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은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선점을 넘어 각종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상업적인 성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흥행영화’라는 한 단어로 모든 걸 설명하고 넘어가기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결이 그렇게까지 단순하진 않은 것 같다. 잘 기획된 여름 상업영화, 한국에선 이색적이라 할 만한 좀비물에의 도전, 문제적 애니메이터 연상호의 첫 번째 실사영화, 그리고 유료 시사를 통한 변칙 개봉 논란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부산행>을 둘러싼 말들이 영화보다 훨씬 풍성하고 흥미로울지도 모르겠다. 이에 듀나, 박소미, 송형국 평론가에게 <부산행>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설명을 부탁했다. 3인의 필자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부산행>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부산행 열차에 오를 또 다른 출입구가 되어줄 것이다.
[스페셜] 영화평론가 듀나, 박소미, 송형국 <부산행>에 대해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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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탕헤르에서의 추격
<본 얼티메이텀>(2007)
CIA 암살요원 데시가 블랙브라이어 작전의 실체를 밝힌 지부장 닐을 폭탄으로 암살하면서 시작되어 골목길 오토바이 추격전,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넘나드는 파쿠르 액션, 본과 데시의 육탄전까지 약 12분간 쉼 없이 이어지는 이 시퀀스는 추격의 서스펜스와 각기 다른 종류의 격렬한 액션이 릴레이 경주처럼 배합된 명장면이다. 무엇보다 이 장면 마지막의 격투 액션의 백미는 데시와의 근접전 격투. 본 시리즈 전체에서 유일하게 무적이었던 제이슨 본이 적에게 육체적으로 압도당하는 위기 상황을 볼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데시는 칼리 아르니스와 절권도만이 아니라 카포에이라 기술까지 구사한다.
2. 모스크바에서의 카체이싱
<본 슈프리머시>(2004)
자신이 암살한 러시아 정치인 네스키의 딸을 찾아 모스크바에 온 본은 인도에서 마리를 죽인 암살자 키릴의 추격을 받게 된다. 택시를 탈취하면서 경찰과 키릴의 추격을 동시에 받지만
[스페셜] 본 시리즈 액션 신 베스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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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이 돌아왔다. 더이상 시리즈를 지속할 뜻이 없음에도 스튜디오가 속편 제작을 강행하자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을 포함해 주요 스탭이 이탈한 <본 레거시>는 엄청난 혹평과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에 직면해야 했다. 3부작의 골격을 잡았던 각본가 토니 길로이가 직접 메가폰을 쥐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가 <제이슨 본>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많은 팬이 환호한 것은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이 선사했던 경이로움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조재휘가 지난 시리즈를 되돌아보며 지금의 <제이슨 본>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맷 데이먼의 화려했던 과거를 5개의 장면으로 추억한다.
<제이슨 본>(2016)은 종적을 감춘 제이슨 본의 후일담으로 막을 연다. <본 얼티메이텀>(2007)에서 블랙브라이어 작전의 실체를 폭로한 지 12년이 지
[스페셜] 본 시리즈를 돌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