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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요시다 슈이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분노>는 신뢰와 불신이 진실과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부부가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괴한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경찰은 공개수사 TV프로그램에 용의자의 몽타주를 공개하고 용의자를 수배한다. 한편 무인도에서 살고 있는 다나카(모리야마 미라이), 도쿄에서 만신창이가 된 뒤 고향에 돌아온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와 그녀의 아버지 요헤이(와타나베 겐) 부녀의 일상에 끼어든 남자 다시로(마쓰야마 겐이치), 게이 유마(쓰마부키 사토시)와 우연히 만나 동거하게 된 나오토(아야노 고) 세 남자의 일상이 번갈아가면서 펼쳐진다(세 남자와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을 합쳐 세 그룹이라고 표기하겠다). 각각 독립된 세 그룹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하나의 서사로 연결된다.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2013)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이상일 감독과 배우
[스페셜] 신뢰와 불신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 <분노> 이상일 감독과 와타나베 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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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태풍은 안팎으로 들이닥쳤다. 지난 2년간 계속됐던 부산시와의 갈등과 제18호 태풍 차바는 영화제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겼지만 한바탕 비바람이 몰아친 뒤에도 여전히 견고한 어떤 것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21회 영화제이기도 했다. 예년에 비하면 수적으로 아쉬움이 있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많은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일본의 거장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부터 미국영화계의 라이징 스타 마일스 텔러까지, 영화제의 스물한살을 함께한 11명 영화인과의 만남을 소개한다. 이창동 감독과 대만 감독 허우샤오시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흥미진진한 대화는 다음호에 이어질 예정이다.
[스페셜] 구로사와 기요시부터 미국영화계의 라이징 스타 마일스 텔러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영화인 1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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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감이 감도는 결연한 눈, 굳게 다문 입술에 검은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고집스레 산을 걷는 중년의 여인. 조민수가 연기한 정옥은 생때같은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다. 그녀는 시나리오를 보고 단박에 정옥이 세월호 유족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더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줄 수 있는 영화라면 환영이었다.” 늘 캐릭터의 전사와 배경을 상상해 연기하는 그녀지만, 이번 영화에선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었다. “정옥의 전사는 이미 누구나가 많이 봤지 않나. 매일 아침 눈뜨면서 TV에서 본 뒤집힌 배의 모습과 유족의 모습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정옥이 된 그녀는 한여름에 지리산에서 뛰고, 넘어지고, 구르느라 풀독이 오르고 땀띠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고, 연기를 할 때마다 무척이나 울었다. “정옥의 아픈 마음을 품고 있는 게 힘들더라. 자꾸 눈물이 흘러 자제해야 했다. (웃음)”
그녀가 <미행>에서 가장 마음에 든 점은 “공권력이 약자와 약자끼리 싸
[스페셜] 울주서밋 2016 작품 <미행> 배우 조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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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등산객 무리를 이탈해 산속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자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그의 뒤를 쫓는다. 울주서밋 2016 작품 <미행>은 산을 배경으로 한 추격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개될수록 이면에 담긴 사회적 맥락이 드러나는 중단편영화다. 국가권력 피해자의 유족이 산으로 숨어들어가자 말단 경찰이 그를 쫓는 내용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이야기다. 나무에 걸린 노란 리본들, 그리고 아들을 가슴에 묻은 이정옥(조민수) 캐릭터는 세월호에 대한 강력한 은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준비할 때, 세월호 소재들의 영화가 많이 나오던 시기였다. 모두 바다로들 가니, 나는 ‘산으로 가는 세월호’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산악영화라는 주제에 현 사회문제를 접목시킨 이송희일 감독의 말이다.
이송희일 감독은 “인간에게 산이란 어떤 공간인지”를 고민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에서는 산이 사적인 치유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하지
[스페셜] 울주서밋 2016 작품 <미행> 이송희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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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렉>은 폴란드의 산악인 예지 쿠쿠치카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가난한 사회주의국가의 노동계급 출신 산악인인 쿠쿠치카는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인물로, 1989년 로체 등반 중 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전설적인 산악인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영웅이었던 쿠쿠치카를 스크린에 재현한 폴란드 출신인 파벨 비소크잔스키 감독은 성실하고 열의 넘치는 인터뷰이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낭보가 들렸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파벨 비소크잔스키 감독의 <유렉>이 국제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수상에 축하를 보내며, 그와 울주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지면에 싣는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서울엔 전작 다큐멘터리 <언젠간 행복할 거야>로 EBS국제다큐영화제(EIDF)에 초청받아 왔었고, <유렉>에 나오는 산악인 허영호를 인터뷰하러 오기도 했었는데, 울주는 처음이다. 영화제에 대한 인상은
[스페셜]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대상 수상한 <유렉> 파벨 비소크잔스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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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에 산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떴다. 고향인 이탈리아 볼차노에 메스너 산악 박물관이 설립될 정도로 저명한 산악인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1978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등정한 후,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정, 1986년 로체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검은 고독 흰 고독> <벌거벗은 산>을 비롯한 60여권이 넘는 저서를 쓴 작가이자, 영화 <운명의 산: 낭가파르밧>(2010)의 실화 속 주인공이기도 하다. 첫 내한해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방문한 라인홀트 메스너를 만났다.
-어떻게 그 수많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나.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웃음) 하지만 나는 계속 시도했고,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며 무릎을 꿇어야 했을 때도 또다시 일어났다. 물론 운도 따랐다. 산악인들 중 나보다 실력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산에서 죽음을 맞이한 분들이 많다. 최고의 산악가 중 60
[스페셜]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방문한 ‘산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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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에서 국내 최초의 국제산악영화제인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렸다. 산악영화제라는 개념은 다소 생소해 보이지만, 여느 국가보다 아웃도어 시장이 넓고 등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은 한국이라면 그 미래는 꽤 낙관적이지 않을까?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엔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관객이 문전성시를 이뤘고, 산악계의 거성 라인홀트 메스너가 등장할 때마다 아이돌급의 환호성이 뒤따랐다. 물론,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발걸음도 이어져 23회차 상영 중 13회차의 매진을 기록했다. 전시, 도서전, 공연, 에코마켓 등 다양한 이벤트도 영화제의 활기찬 분위기에 한몫했다. 그중 산악 액티비티를 체험할 수 있는 트리클라이밍은 기자가 직접 체험에 나섰다. 다양한 관객층과 이벤트만큼이나 게스트 라인업도 흥미로웠다. 영화제 탐방기와 함께, 산악영화감독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 국제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한 <유렉>의 파벨 비소크잔스키 감독, 국내
[스페셜]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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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껏 나온 여러 비평과 반응들을 보면서 어딘가 미진한 지점이 있다고 느꼈고, 그를 해소해줄 적임자가 오승욱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이 지난해 5월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 개봉 당시 인터뷰어로 나서준 적 있기에(<씨네21> 1006호, 김성수 감독이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을 만나다), 그 자리를 바꿔 만나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것 같았다. 당시 김성수 감독은 “오승욱 감독 영화에는 상처받고 외로운 인물들이 비슷한 처지의 인물을 만나 더 큰 실패담을 만들어낸다”며 “인물들을 그렇게 끝까지 몰아붙여서, 그래서 과연 행복한지?” 하고 물었다. 1년의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오승욱 감독이 김성수 감독에게 <아수라>에 대해 꼼꼼하게 물었다. 대담을 준비하며 시나리오를 다시 읽고 이전 편집본까지 챙겨본 오승욱 감독은 <아수라>에 대해 “이건 김성수
[스페셜] <아수라>에 대해 김성수 감독과 오승욱 감독이 긴 대화를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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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격한 언행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에게 분노와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잘난 체하고 절제를 모르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르소나를 가졌다.”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 예술, 기술, 전쟁>(이하 <광학적 미디어>)이라는 책의 서문 앞에는 미국의 미디어 역사학자 존 더럼 피터스가 쓴 ‘해제: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선사하는 빛의 향연’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존경과 찬사로 채워지기 마련인 해제와 달리, 존 더럼 피터스는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얼마나 유별난 캐릭터를 지닌 학자였는지 거침없이 묘사한다. 그것은 흡사 키틀러의 본격적인 글을 읽다보면 종종 발견하게 되는 독설과 비아냥을 닮아 있다. 그러나 곧 눈치채게 될 것이다. 아마도 꽤나 키틀러와 절친해 보이는 존 더럼 피터스는 키틀러의 분노와 짜증을 유발하는 언변과 행동을 지적하면서도 다음의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스페셜] ‘시간을 공간화’ 할 수 있게 된 영화의 도전 - <기록시스템 1800·1900>, <광학적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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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영화 우화>(2001/2011), <이미지의 운명>(2003/2014), <영화의 간극>(2011, 국내 번역본 미출간) 등 여러 저작에서 영화를 논의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그의 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반영화적이다. 랑시에르의 주장은 영화가 여타 예술들과 엄밀히 구별되는 자율적 예술이고 영화의 자율성은 영화에만 고유한 물질적, 기술적, 미학적 본성에서 비롯된다는 통념에 도전하기 때문에 반영화적이다. 영화 이론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통념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였다. 1920년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 담론은 영화의 본질을 카메라의 기계적 역량으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과 지가 베르토프는 몽타주로, 그리고 앙드레 바쟁과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물리적 현실을 구원하거나 보존하는 사진적 본성으로 정립하고자 했다.
보다 넓은 측면에서 이 주장들은 서구의 미적 모더니즘을 규정짓는 ‘매체 특정성 테제’(medium specificit
[스페셜] 이질성과 긴장의 비평적 지도 - <해방된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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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 이후 음모론자들은 이것이 TV를 통해 방영된 하나의 영화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가설을 진지하게 밀어붙인 사람들은 그 영화의 연출자로 큐브릭을 지목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짐작하건대 현실의 것이 아닌 이미지를 그렇게 실감나게 연출할 수 있는 감독으로 큐브릭보다 더 나은 사람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사람들이 큐브릭이라는 감독에 대해 갖고 있던 어떤 이미지를 추정해볼 수 있다. 큐브릭은 영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실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또는 그런 완벽한 이미지의 세계를 추구한 감독이었다.
하지만 <큐브릭: 그로테스크의 미학>(2007)을 쓴 제임스 네어모어는 큐브릭의 이런 대중적인 이미지가 큐브릭에 대한 어떤 오해를 발생시킨다고 말한다. 큐브릭이 지나치게 차갑고 냉정하며, 기계적 엄밀함만을 강박적으로 추구
[스페셜] 그가 영화를 통해 사회에 뿌린 불안의 씨앗 - <큐브릭: 그로테스크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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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영화 비평이 영화 감상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한 시절이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이 비약적으로 이뤄지던 그 시기, ‘문화’라는 화두가 사회 전면에 대두되던 그 시기에,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영화들에 대한 일종의 설명, 혹은 가이드가 필요했고 영화 비평은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현재, 누구나 SNS를 통해 영화에 대해 말하고 쓰는 이 시대에는 영화 비평에 대한 무용론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예전에는 보다 전문적인 영역에서만 통용되어왔던 정보는 넘쳐나고, 공적인 지면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1인 미디어가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평의 영역, 혹은 그 효용은 과연 어디에서 그 존재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노엘 캐럴의 저서 <비평 철학>은 정보의 홍수, 비평의 홍수 속에서 역설적으로 예술 비평의 중요성을
[스페셜] 비평, 어떻게 할 것인가 - <비평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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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몽은 아마도 프랑스의 영화학자들 중 한국 관객과 가장 친숙한 인물일 것이다. 아마도 <영화 속의 얼굴>(2006. 마음산책 펴냄)을 많이 읽었겠지만, 그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영화미학>(2003, 동문선 펴냄)을 비롯해 <이마주>(2006, 동문선 펴냄), <영화와 모더니티>(2010, 열화당 펴냄), <영화감독들의 영화이론>(2005, 동문선 펴냄) 등 적잖은 책들이 번역되었다. 그중 가장 처음 선보인 저작은 <영화 분석의 패러다임>(1999. 현대미학사 펴냄)이었고, 17년 만에 <영화작품 분석>(2016. 아카넷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새 번역과 함께 재출간되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영화 분석의 방법론과 1934~88년 서구 학계에서 이뤄졌던 분석의 흐름을 살핀다. 혹시 자크 오몽이라는 대가의 이름과 책 제목에 현혹되어, “이 책 한권만 제대로 읽으면 영화 분석의 마스터가 될 수 있다”라
[스페셜] 장기전을 요하는 학습서 - <영화작품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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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네장의 사진 이미지로부터 시작되었다. 1944년 아우슈비츠 내, 비르케나우 5호 소각장의 존더코만도 멤버 중 알렉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남자가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은 찍을 당시의 긴박함과 위험성을 알려주듯 초점이 정확하지 않은 먼 풍경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 사진 속 저편에는 분명 가스실에서 쏟아져 나온 시체 더미와 소각장의 자욱한 연기, 발가벗은 채 죽음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서 있었다(알렉스라고 알려진 이는 알베르토 에레라라는 남자로 추정된다. 그는 그리스 레지스탕스 당원으로 활동하다 붙들려 수감되었으며, 이후 벌어진 아우슈비츠 봉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해, 서구 비평계에서 가장 격렬한 찬반 논쟁을 자극한 영화 <사울의 아들>(2015)의 감독 라슬로 네메시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2001년 저널, ‘쇼아의 역사’가 발간한 특별호 <재에 묻힌 목소리>와 그 네장의 사진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또 다
[스페셜] ‘극화’가 수반하는 재현의 윤리 - <어둠에서 벗어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