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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세 나오미 감독에게 영화는 스스로를 위한 치유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이별한 아픔이 있는 그의 첫 작품은 아버지를 찾아나가는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따뜻한 포옹>(1992)이었다. <수자쿠>(1997)에서 <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로 이어지는 그간의 필모그래피도 상실감을 극복해가는 연대의 범위가 넓어지는 과정이었다. <빛나는>은 시력을 잃어가는 포토그래퍼 마사야(나가세 마사토시), 그리고 시각장애인의 영화 감상을 돕기 위해 음성해설을 녹음하는 내레이터 미사코(미사키 아야메)가 갈등을 넘어 소통하는 이야기다. “예술이 곧 삶인 아티스트”라는 개인적 접점을 발견하고 소재로부터 결핍이 주는 상상력의 힘을 배웠다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을 만났다.
-첫 배리어프리영화(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이 들어가 있는 영화)였던 <앙: 단팥 인생 이야기>가 이번 작품에 영감을 줬다고.
=원래 내 작품은
[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④] 가와세 나오미 감독 -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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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아서 더 좋은 것들이 있다. <맨헌트>는 오우삼 감독이 가장 잘하는 것, 멋들어진 액션과 낭만의 귀환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아니, 귀환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었고, 70이 넘은 지금도 한결같이 흰 비둘기의 날갯짓으로 스크린을 장식 중이다. 부산을 찾은 오우삼 감독의 외양은 어느덧 칠순이 넘어 이제 세월의 흔적이 완연히 묻어났지만 영화를 향한 에너지는 여전했다.이번엔 아예 흰 비둘기를 포스터 중앙에 내세운 <맨헌트>는 다카쿠라 겐의 대표작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1976)를 리메이크했다. 전설은 현재진행 중이다.
-일본영화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를 리메이크했다. 2014년 세상을 떠난 다카쿠라 겐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들었다.
=60, 70년대 일본영화를 비롯한 예전 영화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영화가 훨씬 좋고 재미있었다. <그대여, 분
[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③] 오우삼 감독 - 액션영화의 화양연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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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부족한 구석이 없어 보이는 남자다. 키 크고 잘생기고 가수와 배우로서 모두 성공을 거둔 그는 20년 넘게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주연을 맡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가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필모그래피까지 갖게 됐다. 그의 대표 캐릭터가 반듯한 의대생 아들(드라마 <한 지붕 아래>(1993)), 천재 물리학 교수(드라마 <갈릴레오>(2007)) 그리고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 사카모토 료마(드라마 <료마전>(2010))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이미지의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유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 출연할 때 격랑에 휩싸인다. 산부인과에서 아기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몇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된 아빠 료타를 연기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이어 <세 번째 살인>에서 그는 살인범 미스미
[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②]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 - 더 깊어지는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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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더 많이 대화하고 더 많이 논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거다.” 그렇다면 <마더!>는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의도가 적중한 영화다. 종교적 상징과 세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가득한 <마더!>는 일종의 멸망을 향해가는 창세기다. 영화는 집으로 찾아온 무례한 손님들, 그들을 관대하게 품어주는 남편(하비에르 바르뎀), 그런 남편 때문에 힘겨운 아내(제니퍼 로렌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상징을 발견하는 재미, 폭주하는 이야기의 힘을 느끼는 재미가 큰 작품이다. <블랙스완>(2010), <노아>(2014)보다 더욱 격렬한 영화 <마더!>를 들고 한국을 처음 찾은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을 만났다.
-5일 만에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했는데, 어떤 생각과 질문이 실마리가 되어 탄생한 이야기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과 역사를 담으려 했다. ‘지
[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①]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 - 영화만이 주는 강렬한 체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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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고개를 들었는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이가 올리버 스톤이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이런 반가운 만남이 깜짝 선물처럼 주어진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열흘 동안, <씨네21>은 반가운 손님들과 영화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들을 나눴다. <마더!>의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을 비롯해 오우삼·가와세 나오미·구로사와 기요시·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자기만의 영화 세계를 확고히 다져온 영화인들과의 대화가 영화제 폐막의 아쉬움을 달래줄 것이라 믿는다. 부산에서 만난 한국 감독들의 이야기는다음주에 계속된다.
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 ① ~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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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후반부에서 첫째 사치(아야세 하루카)와 막내 스즈(히로세 스즈)가 함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가마쿠라의 기누바리산 정상까지 다녀왔다. 감독님께서 이번 <씨네21>에서 영화 속 촬영지로 꼭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추천한 장소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굉장히 높고 힘들어서 걷는 내내 감독님을 원망했다.(웃음)
=기누바리산 정상에서 촬영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도 촬영 기자재를 가져가느라 정말 고생했다. 대형 크레인까지 가져가야 해서, 대학 산악부 동아리 학생들이 도와줬다. 사치와 스즈가 정상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땀 흘리며 함께 올라갔다고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말없이 산을 오르면서 이미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주요 촬영지인 가마쿠라 지역과 에노시마섬은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만화에 종종 등장하는 곳이다. 이 지역이 일본인들에게, 그리고 감독님에게 어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아직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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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허지웅과 <씨네21>이 일본정부관광국의 지원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촬영지 투어를 다녀왔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일본에서 ‘동쪽의 교토’라 불리는 가마쿠라 지역과 에노시마섬의 정취를 근사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도쿄에서 1시간 거리로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 속 에노시마섬의 바다고양이 식당, 자매들이 헐레벌떡 출근하던 고쿠라쿠지역, 첫째 사치(아야세 하루카)와 막내 스즈(히로세 스즈)가 속마음을 털어놓던 기누바리산 정상, 그리고 네 자매가 마지막에 이르러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던 시치리가하마 해변 등을 돌아다니며 다시 한번 영화를 곱씹었다. 그중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직접 추천한 장소와 음식도 있었다. 허지웅의 기행문과 함께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의 인터뷰를 더한다.
공항을 나설 때면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쉬는 버릇이 있다. 다른 동네에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촬영지 가마쿠라를 찾아나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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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해리슨 포드는 훗날 <블레이드 러너>(1982)의 속편이 만들어질지 조금이라도 예상했을까. 레이첼(숀 영)의 손을 붙잡고 방을 나가는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주 잠깐 머뭇거리는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모습은 영원한 퇴장을 원치 않는 듯 했다(고 믿고 싶다).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보여준 연기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이 35년 만에 제작돼 우리 앞에 당도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봤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35년 전, 그러니까 <블레이드 러너>(감독 리들리 스콧)에서 타이렐 회장이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를 만나 신형 복제인간(리플리컨트 넥서스6)의 모토라고 알려준, 아이러니한 이 말은 아주 틀린 얘기가 아니었다. “인간 못지않게 오래 살고 싶다”는 요청을 들어주지 않아 자신의 창조주인
걸작!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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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국 감독의 <천화>와 지혜원 감독의 <앵그리버드와 노래를>은 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천화>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의 소통이 불발되는 과정을, <앵그리버드와 노래를>은 수많은 충돌을 극복하고 끝내 음악으로 소통을 이뤄내는 과정을 조명한다. 이 두 작품은 각각 제주도와 인도 푸네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 다양성영화의 로케이션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제공한다.
-두 작품 모두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 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혜원_ 이 영화에는 문화와 문화의 충돌이 있고, 자식과 부모 세대의 충돌이 있고, 가르치려는 자와 배우려는 자의 충돌이 있다. 이 충돌을 극복하고, 음악을 통해 서로 소통하면서 콘서트라는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KBS에서 방영한 케냐 지라니 합창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이 합창단의 지휘자 김재창씨를 알게 됐다. 나중에 안부를
[G-시네마④] <천화> 민병국 감독 & <앵그리버드와 노래를> 지혜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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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부부>의 전규환 감독과 <괴물들>의 김백준 감독은 경계에 위치한 인물들에 대한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상업영화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주변부의 이야기를, 1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만들어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극장에 걸기는 쉽지 않은 지금의 한국영화 생태계에서, 두 감독이 고군분투하며 지켜온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숲속의 부부>는 해고노동자가, <괴물들>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이 주인공이다.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인 인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뭔가.
=전규환_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많다. 지금까지 9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만든 모든 영화에 무의식적으로 비정규직과 난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나 싶다. 이제는 그런 영화를 만들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영화를 찍다보면 노동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웃음)
=김백준_
[G-시네마③] <숲속의 부부> 전규환 감독 & <괴물들> 김백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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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시네마’ 배급지원 사업의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남연우 감독의 <분장>과 이동은 감독의 <환절기>는 지난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분장>), 뉴 커런츠(<환절기>) 부문에 초청돼 많은 주목을 받았다. 가족이 성소수자였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은 엄마(<환절기>)와 형(<분장>)이 경험하는 마음의 격랑을 조명하는 이 두 작품은 젠더 이슈를 영화의 중심부로 끌어왔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두 작품 모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주목받았다. <분장>은 얼마전에 개봉했고 <환절기>는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데, 영화제와 극장 개봉 사이에서 어떤 온도차를 느끼나.
=남연우_ 극장 개봉을 준비하며 현실의 벽을 실감했다. 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때는 꿈을 꾸는 듯했고 모든 게 순탄한 느낌이었다. 극장 개봉을 준비하면서도 영화로 관객을 만난다는 생각에 즐거웠던 건 매한가지지
[G-시네마②] <분장> 남연우 감독 & <환절기> 이동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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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감독의 <파란 입이 달린 얼굴>과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는 여성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영화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은 삶의 진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으로부터 빈곤과 장애,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끌어내고, <피의 연대기>는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많은 이들이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 ‘월경’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여성을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하는 영화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실감하게 하는 두 영화의 감독들을 만났다.
-여성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는.
=김수정_ 처음부터 여성 문제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투병 중인 어머니와 장애인인 오빠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로 먼저 접근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세다고 피드백을 많이 하더라. 그런 반응을 듣다보니 내가 30여년 넘게 여성으로서 살아오며 느꼈던 것들이 서영이라는
[G-시네마①] <파란 입이 달린 얼굴> 김수정 감독 &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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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는 있지만, 만든 영화를 극장에 걸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진 시대다. 특히 다양성영화의 경우 상업영화와의 경쟁에 밀려 상영관은 물론이고 양질의 상영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지난 2013년부터 다양성영화 사업인 ‘G-시네마 사업’을 추진 중인 경기도는 개봉을 예정하고 있지만 배급·홍보에 어려움을 겪는 다양성영화에 대한 마케팅 비용을 직접 지원하고, 도내 다양성영화관에서의 상영 기회를 제공하는 배급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 ‘G-시네마’ 배급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은 모두 아홉편이다.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남연우 감독의 <분장>, 김동원 감독의 <내 친구 정일우>와 김백준 감독의 <괴물들>,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 김수정 감독의 <파란 입이 달린 얼굴>, 민병국 감독의 <천화>와 이동은 감독의 <환절기>, 전규환 감독의 <숲속의 부부>와 지혜원
[G-시네마] 경기도 다양성영화 지원사업 ‘G-시네마’ 여덟 감독 이야기 ① ~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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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2회를 맞는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는 북미 최대 영화축제다. 상영작품 수도 많지만, 이듬해 초 오스카상으로 정점에 달하는 영화상 시즌 구도가 처음 감지되는 장소라 주목도가 높다. 기본적으로 비경쟁이지만 토론토국제영화제의 관객상 수상작은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빈번히 지명돼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슬럼독 밀리어네어> <킹스 스피치>처럼 수상까지 이른 작품도 있다. 조금 앞서 오붓하게 열리는 텔룰라이드영화제와 맨해튼 시네필들이 몰리는 뉴욕영화제를 택하는 화제작도 있지만, 규모와 미디어 주목도는 토론토가 앞선다. 올해 상영작은 장편 255편 단편 84편으로 지난해보다 20% 정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매머드급. 지리적으로 미국과 가까워 할리우드 스타 영화인들의 방문이 많다는 특징도 쾌활하고 적극적인 관객 분위기와 맞물려 붐을 형성한다. 지난 9월 7일부터 17일까지, 선댄스영화제와 칸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들이 흘러들어오고
제42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