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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충무로, 홍대 투어 다녀왔습니다.” 신인배우들이 오디션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종종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온다. ‘투어’란 캐스팅 기회를 얻기 위해 신인배우들이 자신의 프로필을 들고 직접 영화·드라마 제작사를 찾아가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다. 하지만 ‘투어’를 통해 신인배우가 오디션 기회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제작사에는 늘 수백장 분량의 신인배우 프로필이 쌓여 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원하는 배우를 찾길 바라는 제작사 관계자들은, 실제와는 많이 다를지도 모를 이력서 안의 프로필 사진을 눈여겨보기보다 캐스팅 디렉터의 추천을 더 신뢰한다. 이미 유수의 매니지먼트와 네트워크를 구축한 캐스팅 디렉터들은 자신의 인맥을 통해 배우를 추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경력이 짧거나 소속사에 들어가지 못한 수많은 배우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콘텐츠 제작자들 또한 제한된 인력풀 안에서 뉴페이스를
국내 최초 오디션 전용 동영상 애플리케이션 ‘셀프테이프’, 오디션 지원부터 커뮤니티 참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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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대저택>(1961)
매혹적인 저택에서 어린이가 등장하는 후대의 심령물들은 대부분 헨리 제임스의 중편소설 <나사의 회전>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중 잭 클레이턴 감독의 <공포의 대저택>은 <나사의 회전>을 직접 각색한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영화다. 기든스(데버러 카)는 몇년 전에 고아가 된 두 아이의 삼촌(마이클 레드그레이브)으로 부터 남매를 돌봐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교구 목사의 딸이자 무엇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에게 블라이 저택의 가정교사 자리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기든스는 주변 경관까지 매혹적인 이 저택에서 만난 소녀 플로라(파멜라 프랭클린)는 물론 가정부 그로스(멕스 젠킨스)를 비롯한 저택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낀다. 다만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후 집으로 돌아온 소년 마일스(마틴 스티븐스)가 걱정이었는데, 막상 접한 그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자꾸 저택에서 정
<유전>에 영향을 미친 60~70년대 오컬트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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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전>은 <컨저링> <애나벨> 시리즈로 이어진 하우스 호러물이나 최근 <곤지암> 같은 공포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 다소 당혹스러운 작품일 수 있다. 장르적으로는 1960~70년대 오컬트 무비와 더 가까우면서, 가족 유대의 붕괴를 공포의 진짜 근원으로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전>은 고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를 매혹적으로 21세기에 계승하는 법을 찾는 데 성공해냈다. 영화사에서 중요한 오컬트 무비의 계보에 마땅히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이 작품의 매력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더불어 아리 애스터 감독이 “인물이 중심이 된 정교한 구성의 영화로, 천천히 전개가 된다”는 점에서 창조적 영감을 준 작품으로 언급한, <유전>과 맥을 함께하는 작품도 정리해보았다.
<유전>은 정말 무서운 영화인가?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그다지 무섭지
공포영화 <유전>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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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물에서 의상은 특히 “그 시대만의 분위기”를 구현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허스토리>의 의상을 담당한 최의영 의상감독은 “90년대, 그리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의상을 만든다는 점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영화 초반, 대한여행사 사장인 문정숙(김희애)을 필두로 모인 여성경제인협회가 등장할 때면 저마다의 화려하고 과시적인 패션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눈이 즐겁다. “성공한 사업가, 정치가들의 스타일엔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는 최의영 실장의 말처럼 자기 힘으로 부와 명예를 꾸린 여성 경제인들은 “과감한 패턴과 컬러”를 입고 자신감을 드러낸다. 배우 김희애와 더불어 김선영의 존재감이 빛나는 것도 의상과의 시너지가 큰 덕분이다.
문정숙의 의상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강경화 장관 등 “사진 한장만 봐도 어떤 성격인지가 느껴지는 거침없는 여성 인물들”의 실제 의상을 참고했다. 90년대 부산을 담은 사진 자료와 다큐멘터리를 거쳐 “투피스 정장, 볼드
<허스토리> 의상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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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사진을 토대로 미술을 넓혀갔다.” <허스토리>의 미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시대배경도, 특정 자료도 아닌 문정숙(김희애)의 캐릭터 그 자체였다. “소신과 뚝심을 가진” 문정숙이라는 걸출한 여성의 이미지가 이나겸 미술감독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문정숙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의 사진도 영향이 컸다. 사진 속 그는 왠지 “부산 사람답게 스트레이트한” 인상을 줬다. “일례로 영화상에서 남편의 부재가 전혀 부각되지 않는 것처럼” 문정숙의 기죽지 않는 스타일과 화려함은 공간 미술에도 스며들어 있다. 영화 초반의 주요 공간인 대한여행사와 정숙의 집은 생기 있는 색감으로 가득 차 있고, 이는 자연히 문 사장의 경제력까지 보여준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된 관부 재판의 실화를 다룬 영화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수차례 반복해 오간다. 중요한 건 한국과 일본으로 잘게 쪼개지는 영화의 내러티브를 미술적으로도 확연히 구분짓는 것이었다. 이나겸 미술감독은, 문정숙의 공간은
<허스토리> 미술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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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23일 관부 재판 원고단 일본 출국. 이후 총 20회의 구두 변론 진행 후 1998년 판결문이 나오기까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부산에서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을 오가는 6년의 시공간을 화면에 구현해야 했다. “90년대 시대극이자, 장소와 계절의 변화가 드러나야 했다”는 박자명 PD는 총 34회차를 25억원의 적은 제작비로 커버하기에 빠듯한 상황을 돌파해야 했다고 말한다. “원래 10억원 미만으로 책정되어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그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규모의 영화였다.” 부산과 시모노세키, 실제 위안소로 쓰인 곳이 아직 남아 있는 중국의 난징까지 해외 로케이션 진행이 필요했다. 효율성을 높이고자 주 배경이 되는 부산의 여행사, 법원을 세트로 충당하다보니 해외 로케이션의 예산은 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세트 하나 만드는 예산이 사극만큼 드니 꼭 필요한 부분을 빼고 모두 한국에서 진행했다.”
중국은 크랭크인 전 2박
<허스토리> 로케이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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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6년간의 법정 투쟁, 90년대 풍경을 스크린 속에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박자명 PD, 박정훈 촬영감독, 이나겸 미술감독, 최의영 의상감독에게 제작과정을 들었다.
촬영
“뭔가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고 담백하게 접근하는 게 유일한 컨셉이었다.” <악녀>(2017)를 찍은 박정훈 촬영감독이 <허스토리>를 찍으면서 세운 단 하나의 원칙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였다. 슬픔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클로즈업을 최대한 배제했고 인물들에게서 가능한 한 거리를 둔 것이다. “기본에 충실했고 멋보다는 안정적인 프레임, 객관적인 이미지에 신경 썼다. 할머니들의 그룹 숏이 언뜻 사이즈가 어정쩡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쌓이고 쌓여 자연스런 거리가 만들어진다. 워낙에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라 포커스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찍었다.” 색감도 주목할 만하다. <허스토리>
<허스토리> 촬영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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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아닙니다. 카메라에 허락된 건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리는 겁니다. 중요한 건 언제나 그다음입니다.” <쇼아>(1985)의 클로드 란즈만 감독은 홀로코스트를 영화의 소재로 삼았다는 비난에 대해 이와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첼모 수용소, 트레블링카 집단처형장,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리고 바르샤바 게토까지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이 건조한 다큐멘터리는 과거를 재현하거나 조작하려는 일말의 움직임도 없이 지금(그러니까 1980년대)의 흔적들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혹자는 홀로코스트가 너무 많이 소비되었다고도 한다. 인류사의 거대한 비극은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똑바로 바라보자. 우리에겐 여전히 이 비극과 과오를 되새길 책임이 있다. 홀로코스트는 너무 많이 소비된 게 아니라 제대로 이야기된 적이 없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의 종군위안부와 여자근로정신대에 관한 영화들에 대해서도
위안부 소재의 영화들 그 이후를 말하는 <허스토리>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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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는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다.” 위안부 문제를 조명하는 <허스토리>의 연출 곳곳에 민규동 감독의 낮고 힘 있는 한마디가 지지대가 되어주었음이 틀림없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6년간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피해 사실을 증언한 위안부 할머니들, 그 23번의 기나긴 재판의 기록이다. 위안부 소재를 통해 예상하는 지점에서 벗어나, 이 영화는 어느 한명을 영웅으로 만들지도, 어떤 승리의 환호를 안겨주지도, 피해 사실을 노골적으로 가시화하지도, 인정의 호소로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 감독의 말대로라면 ‘상업화된 문법에서 벗어난’ 영화다. 과감하게도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착취당했던 우리의 역사이자, 이후 다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했던 우리의 현재, 그 각각의 ‘그녀들의’ 이야기를 둘러싼 오해와 이해, 그리고 변화의 시간을 치우침 없이 담아내는 강수를 둔다. 주연 대부분이 여성만으로 구성된 이 ‘낯선’ 현장은 데뷔작 <여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 위안부 영화가 아니라 동시대성의 여성영화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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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 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근로정신대 피해자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진행된 재판이다. 1992년부터 무려 6년의 시간, 23번의 지난한 재판 끝에 일본 사법부는 1심 판결에서 일본 정부의 일부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금 지불을 판결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동남아 11국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재판 중이었으나 유일하게 관부 재판만이 일부 승소를 거두었으며 국가적 배상을 인정받은 최초의 케이스였다. <허스토리>는 6년의 재판 과정 속, 위안부 피해자와 그들을 조력해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사에 기록된 ‘히스토리’를 통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위안부 개개인의 인권이다.
힘없는 여성이라 피해자가 되었고, 그 이유로 피해자이면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사회의 편견으로 숨죽인 채 살아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그야말로 우리가 진짜 숙고해야 할 역사다. ‘허스토리’의 방점은 바로, 오늘로 치환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여성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수면
<허스토리> Brave Story, 피해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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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KBS는 이영표 해설위원의 깔끔하고 정확한 해설에 힘입어 중계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이영표의 예언에 가까운 예측도 화제였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이영표의 날카로운 ‘촉’은 여전할까. 브라질에는 가지 못했지만 이영표 해설위원의 데뷔 중계를 함께했고 K리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광용 KBS 아나운서도 자신의 첫 월드컵 현지 중계를 앞두고 예리하게 정보 분석 중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승부 예측이나 시청률 경쟁보다 중요한 건 자신들이 먼저 즐겁게 경기를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설로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영표 위원과 성공한 축구 팬 이광용 아나운서를 만났다.
-러시아월드컵 준비는 잘하고 있나.
=이광용_ 이영표 위원의 2014년 멕시코전 해설 데뷔 중계를 함께했는데, 이후 브라질월드컵 중계엔 동행하지 못했다. 월드컵 현지 중계는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기존에 했던 방송들을 보면서
[2018 러시아월드컵②] KBS 이영표·이광용, "중계도 경기처럼 신뢰하는 파트너라면 감점 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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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해설자 박지성이라니, 선뜻 상상이 안 된다. 일찌감치 축구 해설에 발을 들인 다른 선수 출신 해설자들과 달리 그는 은퇴한 뒤 대학원에 진학해 축구행정을 공부하고, 박지성 재단(JS 파운데이션) 일에 전념하며,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을 맡아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방송과 거리를 두었던 그를 러시아월드컵 해설위원으로 꾀어낸 사람은 ‘배거슨’ 배성재 SBS 아나운서다. 당대 최고의 ‘드립력’을 구사하는 배성재라면 박지성의 봉인된 입에서 선수 시절 경험담과 분석력을 끄집어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면서 수많은 리그 우승컵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렸던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였던 그를 말이다. 배성재가 또 박지성을 <씨네21>에 꾀어내준 덕분에 SBS 박지성 해설위원과 배성재 캐스터를 러시아로 출발하기 직전에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지난 6월 6일 방영된 MBC <라디오스타&
[2018 러시아월드컵①] SBS 박지성·배성재, "에너지와 자신감이 흐름을 잘 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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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만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났으니 눈을 러시아로 돌려야 할 때다. 2018 러시아월드컵이 6월 14일부터 시작됐다. 덩달아 시청률 전쟁에 뛰어든 MBC, KBS, SBS 각 방송사의 ‘입’도 분주해졌다. <씨네21>은 이중에서 SBS의 박지성 해설위원과 배성재 캐스터, KBS의 이영표 해설위원과 이광용 캐스터를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붙잡아 축구 얘기를 나눴다. 이들과 나눈 대화가 한달간의 월드컵 대장정을 앞둔 축구 팬들에게 친절한 가이드가 되길 바란다. 그런데 <씨네21>이 왜 월드컵을 취재하냐고? 4년에 한번쯤은 축구 얘기도 괜찮지 않은가,
2018 러시아월드컵 해설자들과의 만남- 박지성·배성재 × 이영표·이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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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 산문집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를 읽다가 역자의 이름에서 눈을 멈췄다. 옮긴 이 박창학. 가수 윤상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이라면, 또는 한국 뮤지션의 노래를 들을 때 크레딧을 꼼꼼히 챙겨보는 독자라면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박창학은 <달리기> <사랑이란> 등 윤상을 대표하는 거의 모든 곡의 가사를 썼으며 김동률, 윤종신, 장혜진, 강수지, 정재일 등과 함께 작업한 작사가다. 담백하지만 긴 여운과 문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표현으로 써내려간 그의 가사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사랑받았다. 윤상은 “내 음악의 절반은 박창학”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였으며 김동률은 인터뷰를 통해 “작사는 대한민국에서 박창학과 이적, 이 두 사람이 제일 신뢰가 간다”고 말한 바 있다.
작사가 박창학이 오랫동안 일본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한 영화연구자이기도 하다는 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는 1995년부터 10여년간 와세다대학 문학부에서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맨살>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번역가 박창학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