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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입사 후 올해로 64년째 한해도 거르지 않고 출근 중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장수 애니메이터 버니 매틴슨이 제19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디즈니에 입사해 사내 우편배달부부터 경력을 시작한 버니 매틴슨은 보조 애니메이터, 스토리 작가를 거쳐 감독과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설립자 월트 디즈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년간 함께 근무했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현역 애니메이터로 활약 중인 디즈니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08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큰 기여를 한 아티스트로서 ‘디즈니 레전드’에 선정되었고, 2013년 60년 근속상을 받았다. 걸어온 길이 곧 역사가 된 거장이지만, 그는 스스로 무언가 되고자 의식했다면 지금의 위치에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지내며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라는 그는 내일도 출근 도장을 찍고 책상에 앉아 손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버디 매
디즈니의 살아 있는 전설, 버니 매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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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가득 채운 눈동자가 우리를 바라본다. 아니, 우리가 거대하게 찍은 눈동자를 목격하는 걸까. 두 문장은 같지만 전혀 다르다.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이하 <2049>)와 1982년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의 관계가 정확히 이러하다. <2049>는 리들리 스콧이 스크린에 붙들어 맨 세계의 형태에 경배를 바치며 충실한 복제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블레이드 러너>의 오프닝을 먼저 떠올려보자. 칠흑 같은 암흑에 별처럼 박힌 건물의 불빛들과 간헐적으로 솟아오르는 불기둥이 익스트림 롱숏으로 펼쳐진다. 이윽고 클로즈업된 눈동자가 화면을 메우는데 녹색의 눈동자에는 불빛과 화염들이 거울처럼 반사되고 있다. <2049>의 경우 시작과 함께 화면을 메우는 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눈동자다. 영화는 눈동자를 한참 바라본 뒤에야 익스트림 롱숏으로 하얀 바닥에 점처럼 박힌 단백질 농장의 전경을 천천히
<블레이드 러너 2049> 세계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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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마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더!>를 보다 떠오른 건 즈비뉴 립친스키의 단편 <탱고>(1981)였다. 미국 아카데미에서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고 어느덧 고전이 된 이 작품은 보통 ‘반복과 단절’의 주제로 읽힌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작지만 단정하게 정리된 방이 배경이다. 앞쪽으로 침대가 놓여 있고, 반대쪽으로는 문과 창이 보인다. 문은 좌우 벽에 하나씩 더 있으며, 오른쪽 벽으로는 아기 침대가, 왼쪽 벽으로는 옷장이, 가운데엔 원탁과 의자 두개가 배치되어 있다. 반복되는 탱고 음악이 흐르고 제목이 제시된 다음, 창을 통해 공이 튀어 들어오고 한 아이가 뒤따라와 공을 들고 나간다. 아이의 행동이 반복될 동안, 두 번째 인물인 여성이 뒤쪽 문을 통해 들어와 원탁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린 다음 침대에 누인다. 세 번째 인물인 검은 선글라스의 남자가 몰래 침입해 옷장 위에 놓인 꾸러미를 훔쳐 달아
<마더!> 여기서 파라다이스를 꿈꾸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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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과 이견이 분분하다고 좋은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는 반드시 영화를 둘러싼 말이 넘쳐난다.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마더!>는 흥행과 별개로 어떤 방식으로든 좀더 이야기되어야 할 영화들이다. 누군가는 그 앞에 문제작이라는 팻말을 붙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걸작이라며 칭송해 마지않을 것이다. 이것은 평가가 아니라 논의의 시작이다. 몇 마디 말과 몇편의 글로 전부를 갈음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이어질 이야기에 물꼬를 틔우는 심정으로, 송경원 기자와 이용철 평론가의 글을 부친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마더!> 문제작 심층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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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웃긴 영화를 봤나.’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 권해효가 심사 후 내내 <밤치기>의 장점을 말하느라 바쁘다.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뉴 커런츠 부문 등 심각한 사회 반영으로 ‘몸살’을 앓는 영화의 한가운데에서 ‘하루에 자위 두번 해본 적 있어요?’ 같은 말을 진지하고 집요하게 물어대는 <밤치기>는 한마디로 ‘골 때리는’ 영화였다. 감독 이름은 볼 것도 없이 정가영이다. 전작 <비치온더비치>(2016)의 독특한 대사와 화법은 그대로. 사비를 털어 만든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레진엔터테인먼트가 투자자로 나서 ‘300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열배로 뛰었다. 어디 제작 규모의 확장뿐일까. 속속 내놓는 단편에 이어 두편의 장편으로 정가영의 세계는 보다 또렷하게 관객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밤치기’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말이다. 시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쓰려고 했다. 가영이 하룻밤 사이에 진혁(박종환)과 진
[한국영화감독 7인⑦] <밤치기> 정가영 감독 -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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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도 이 영화가 영화 제작사 ‘광화문시네마’의 작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족구왕>(2014)과 <범죄의 여왕>(2016)의 배우들이 대거 주·조연을 맡은 이 작품은 광화문시네마의 일원 전고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소공녀>의 미소(이솜)는 집이 없다는 점에서 광화문시네마의 이전 작품 속 캐릭터보다 상황은 더 나쁘지만, 담배와 위스키와 남자친구만 있으면 이대로도 괜찮다고 말하는 낙천성은 좀더 뚜렷하다. <소공녀>가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하기 며칠 전 전고운 감독을 만나 영화와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공녀>는 어떻게 시작한 작품인가.
=택시비가 100원, 200원만 올라도 뉴스에서 난리가 나는데 담뱃값이 2천원이나 오른 것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더라. 담배가 아주 나쁜 것처럼 사회에서 격리시킨다. 하지만 담배는 돈 없는 노동자도 많이
[한국영화감독 7인⑥] <소공녀> 전고운 감독, "미소는 내가 생각하는 용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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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최고의 영화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 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중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영화를 꼽으라면 <박화영>의 자리는 제일 앞줄이 될 것이 틀림없다. <박화영>은 엄마에게 버림받고 누군가에게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녀 박화영에 대한 영화다. 제목 그대로 박화영이라는 한 인물에 집중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건 소녀의 주변을 둘러싼 폭력적인 환경이다. 상영시간 내내 쏟아지는 욕의 홍수를 견뎌야 하는 이 영화를 두고 이환 감독은 사실적인 재현임을 강조한다.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영화적 수사를 더한 건 하나도 없다. 배경이나 상황은 요즘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그들의 말투를 배우기 위해 취재도 부지런히 했다. 수사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영화는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이환 감독은 장편 데뷔작 <박화영>을 들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을 두드렸다. 장편 연출 데뷔작이라고 하지만 이환 감독에게 부산국제
[한국영화감독 7인⑤] <박화영> 이환 감독 - 과장이 아니다,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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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살아남은 아이>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의 영화로 읽힐 것이다. 익사 사고로 죽은 소년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란 점에서 그런 연상과 짐작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살아남은 아이>는 신동석 감독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영화다. “20대 초반에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연달아 경험했다. 이유 없이 우울하고 화가 나고 슬픈 날이 많았다. ‘술이나 한잔하며 털어내라’는 가벼운 위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상투적 위로는 도리어 불편했다. 한동안 감정의 기복을 겪었다.” 신동석 감독은 “지나고 보니 그게 일종의 애도의 과정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도 반영됐다. 글을 쓰면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되기 일쑤였다. <살아남은 아이> 또한 그렇게 운을 뗀 영화였다.
물에 빠져 아들이 죽었다. 아들은 친구를 구하고 의사자가 됐다. 아버지 성
[한국영화감독 7인④] <살아남은 아이> 신동석 감독 - 우리의 애도는 어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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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은 나쁜 선택을 반복하며 조금씩 궁지로 내몰리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됐던 전작 <가시>에 이어 다시금 부산을 찾은 김중현 감독은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가시>보다 조금 온화해진 듯하지만 김중현 감독이 마주보는 세계는 여전히 춥고 엄혹하다. <이월>은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한줌 온기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영화를 통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과정에 있다는 김중현 감독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진심이 묻어난다. 오랜 침묵을 깨고 신중히 내디딘 두 번째 걸음은 단순한 듯 묵직하다.
-<가시> 이후 5년 만이다.
=벌써 그렇게 됐다. 그동안 바쁘게 지냈는데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니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 <가시>를 찍고 이런저런 제안들을 꽤 받았다. 그중에 상업영화 시나리오도 있었고 3, 4년 정도 거기에 매달렸다. 결과적으로는 뜻대로
[한국영화감독 7인③] <이월> 김중현 감독 - 내가 바뀌면 영화도 바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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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실종됐다. 자살로 추정되는 이 사건을 두고 부모와 경찰, 교사와 학생들이 책임 공방을 벌인다. 교사들은 평소 그 학생의 행실을 되짚으며 학교에는 책임이 없다는 구실을 찾기 바쁘고 경찰은 소녀의 마지막 행적이 찍힌 CCTV를 보며 함께 있었던 친구들을 추궁한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부모는 자기 딸이 차디찬 강바닥을 향해 마지막 걸음을 옮기기까지 어느 누구도 손 내밀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을 수상한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는 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요를 통해 이 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인간의 도덕, 윤리적 모순을 동시에 드러내고자 한다. 영화제 상영 일정을 함께하며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던 김의석 감독이 연출 의도를 묻는 관객의 질문에 “나라는 사람을 고발하고 인간성의 한계를 내뱉고 싶었다. 좀 추악할 수도 있는데 최선을 다해 울부짖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라고 말한 답변에서 영화의 정서 내지 영화
[한국영화감독 7인②] <죄 많은 소녀> 김의석 감독 - 모두가 패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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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숨 쉬는 법>은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2017)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간을 흥미롭게 구성한다. 순차적으로 흐르는 듯 보였던 시간이 어느 순간 과거와 연결되는 시간의 역전, A의 시점으로 전개되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B의 시점으로 흘러가는 구성이 <덩케르크>를 연상시킨다. “내가 먼저 영화를 내놨어야 했는데. (웃음)” 이야기를 완성한 건 4년 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설계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부산에서 고현석 감독을 만났다.
-박성원 작가의 단편소설 <하루>를 각색했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초기작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1999)처럼 구성이 흥미로운 영화들을 좋아한다. 지금은 구조적인 영화에 대한 흥미가 조금 떨어졌지만 새로운 구조의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라디오의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 소설 <하루>를 소개하는 걸 들었다. 이야기가
[한국영화감독 7인①] <물속에서 숨 쉬는 법> 고현석 감독, "어떻게 이 답답한 세상을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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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막을 내렸지만, 부산에서 첫선을 보인 한국영화들은 이제 곧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채비를 할 것이다. 올해 부산의 한국영화는 풍성했다. 붕괴 직전의 인물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뉴 커런츠 부문 상영작 <죄 많은 소녀> <살아남은 아이> <물속에서 숨 쉬는 법>,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인물들에 집중한 <박화영> <소공녀> <이월>, 발칙하고 도발적인 연애담 <밤치기> 등을 통해 한국영화의 ‘오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견의 기쁨을 안겨준 7편의 한국영화, 7인의 영화감독을 여기 소개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 7편의 감독들을 만나다 ① ~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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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정감사는 7분의 예술이다. 주어진 질의 시간인 7분간 국회의원은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한 조사 결과를 가지고 피감기관을 상대로 ‘공격’을 해야 하고, 피감기관은 의원들의 다양한 질의를 방어해야 한다. 추가 질의 시간이 보통 5분과 3분으로 차례로 주어지긴 하나, 대체로 국회의원들은 7분 안에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정의당 원내대표인 노회찬 의원(경남 창원시성산구·법제사법위)이 국감장에서 신문지 두장을 깔고 누워 “유엔에 제소할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닌 일반 수용자들”이라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치소 인권 침해 발언을 꼬집은 것도,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익산시갑·법제사법위)이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에게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돌직구’를 던진 것도 그래서다. <씨네21>은 10월 12일부터 31일까지 20일간 열린 국정감사에서 영화산업과 관련된 이슈들을 골라 어떤 내용의 질의와 답변이 오갔는지 생생하게 전한다. 기사에서 소개하
2017년 국정감사에서 다루어진 영화계 주요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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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준비에 어려움은 없었나.
=5명이 함께 기획했는데, 2명은 미국에 있어 많은 부문을 온라인으로 소통해야 했다. 예산 문제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제가 열리는 공간이 원래 연극 공연 극장이라 영화의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준비하는 이들 모두 생업이 있어서, 함께 시간 내기도 어려웠다.
-이 영화제를 기획하고 준비했던 단체 코리엔테이션(Korientation)에 대해 소개해달라.
=코리엔테이션은 비영리재단이다. 12년 전 독일 동포 2세 15명이 시작했지만 독일에 아시아인이 한국인 말고도 베트남, 중국계 다른 아시아인들도 많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는 ‘아시아 독일의 시각’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문화, 정치, 미디어와 관련하여 목소리를 낸다. 이 영화제도 프로젝트 중 하나다. 모든 회원이 영화제에 자원봉사로 참여한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이루어내고 함께 성장한다는 게 가슴 벅차다. 회원은 100명 정도인데, 모두 베를린에 있는 것은
[베를린아시아영화제] 최선주 베를린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 아시아를 둘러싼 질문들이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