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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 감독의 <니나 내나>와 박제범 감독의 <집 이야기>는 화려한 장르영화에 별 관심이 없는 차분한 두 감독의 소신이 깃든 영화다. 명필름랩 1기 출신으로 <환절기>(2017), <당신의 부탁>(2018)을 만들며 부지런히 작업을 이어온 이동은 감독은 <니나 내나>에서 다시 한번 가족의 울타리 아래서 상념에 잠긴 개인의 얼굴을 훑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CGV아트하우스 산학협력 선정작인 박제범 감독의 데뷔작 <집 이야기>는 계급에 따라 한참을 곤두박질치거나 뛰어오르는 한국 사회의 주거 형태를 경유해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화해를 도모하려는 작품이다. “영화 자체가 점점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 사이에서 다양성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동은 감독의 말과 같이, 이들에게 상업영화와 다양성영화의 경계는 다시 한번 해체해서 면밀히 살펴볼 만한 혼란스럽고도 중요한 화두다.
-아직 두 영화 모두 촬영 전인데 현재까지 진행
[G-시네마 9인 감독들③] 이동은 감독·박제범 감독 - 내 가족의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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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시인 살인사건>의 고명성 감독과 <프랑스여자>의 김희정 감독은 해외에서 오랜 유학 생활을 거친 연출자다. 고명성 감독은 일본영화학교 출신으로 <군함도>(2017)에 해외 코디네이터로 참여했으며 북한으로 간 재일 조선인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사요나라 안녕 짜이쩬>(2009)을 연출한 일본통이다. <설행_눈길을 걷다>(2015)와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2012), <열세살, 수아>(2007)를 연출한 김희정 감독은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에서 7년간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이국에서 보낸 한철은 이들에게 한국영화 속 시공간을 참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것 같다. <남산 시인 살인사건>은 1950년대 명동 다방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시대극이며, <프랑스여자>는 1997년과 2015년이라는 시간, 서울과 프랑스라는 공간이 뒤섞이는 판타지 드라마다. 두 작품은 저예
[G-시네마 9인 감독들②] 고명성 감독·김희정 감독 - 시간과 공간 구현할 가능성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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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졌다.”(박정범) “온전히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서 반갑고 기쁘다.”(이마로) 경기도 다양성영화 지원 사업 G-시네마의 제작·투자 지원을 받게 된 박정범, 이마로, 강동헌 감독은 ‘G-시네마’의 지원이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현재의 열악한 제작 여건에서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신념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쓴소리도 함께였다. 세 감독의 영화, <이 세상에 없는>과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남자>는 상업영화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다. 한국 사회 속 개인이 마주한 위기를 대변하는 세 영화의 인물들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다양성영화의 뜨거운 에너지를 담고 있는 이들 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 작품 모두 사회파 드라마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 영
[G-시네마 9인 감독들①] 박정범 감독·이마로 감독·강동헌 감독 - 한국 사회를 담아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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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마련은 이제 막 데뷔를 꿈꾸는 신인감독과 이미 여러편의 장편영화를 만든 적 있는 감독을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두렵고 난감한 과정일 것이다. 저예산영화의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인 창작자들에게도 투자 위기의 고비는 매번 낯설게 다가온다. 2013년부터 추진된 G-시네마 사업은 다양성영화의 제작 및 배급·홍보 지원 등을 통해 참신하고 경쟁력 있는 영화를 발굴하고 도내 영화산업의 활성화를 돕는 경기도와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지난해 배급 지원 사업을 통해 총 9편의 영화가 개봉 마케팅 비용을 지원받고 다양성영화관에서 상영 기회를 얻었다. 올해는 제작·투자 지원 형태로 순제작비 10억원 이하의 장편 극영화와 경기도 내에서 70%이상 촬영, 혹은 시나리오 내용 40% 이상이 경기도 배경인 영화를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2018년 최종 선정된 작품은 총 10편으로 강동헌 감독의 <기도하는 남자>, 고명성 감독의 <남산 시인 살인사건>
경기도 다양성영화 지원사업 ‘G-시네마’를 통해 만난 9명의 감독들 ① ~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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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은 지금까지 <허스토리>의 팬들이 마련한 모든 GV에 참석했다. 그는 한국영화 최초 마니아 팬덤을 양산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의 공동연출자이기도 하다. 한국영화 팬덤의 시작을 열었고, 그 역시 관객의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해왔다는 민규동 감독을 만나 <허스토리>에 대한 조금 긴 후일담을 나누었다.
-최근 <허스토리> 단체 관람 현장의 열기를 보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때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겠다.
=극장 개봉은 3주 정도로 짧게 했지만, 이후 VHS 비디오 출시 기간이 더해져 굉장히 긴 시간 동안 팬덤이 지속됐다. 관객의 감상이 책 세권 분량으로 나올 정도였다. 비디오로 50번 넘게 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팬들끼리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대사 암기 대회 등 자신들만의 축제를 열었으며, 팬 커뮤니티나 팬 사이트도 생겼다.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두 영화 팬덤 사이의 차이점도 감지되겠다. 우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 여성영화를 소비하는 팬 문화의 확장, 새롭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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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힙한 김희애.” 지난 7월 28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배우 김희애가 ‘8비트 떠그 라이프 선글라스’라 불리는 안경을 끼고 머니건을 쏘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아이돌 팬 사인회 최신 유행 아이템을 두른 그의 모습은 최근 자체적으로 상영관을 마련하고 있는 <허스토리> 팬덤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저녁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20관에서 진행된 <허스토리> 3차 단체 관람(이하 단관)에 참석한 380여 관객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는데, 아이돌 그룹 혹은 젊은 배우 팬덤과 비슷한 모습으로 문정숙 역의 김희애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직접 플래카드를 만들어오고, 여기 저기서 “사장님 멋있어요”, “아! 귀여워!” 같은 사랑 고백이 쏟아지는 분위기에서 김희애는 영화 속 대사 “돈은 내 좋다고 따라다닙니더!”를 외치며 객석에 가짜 돈을 뿌린다든지, 극중 신 사장(김선영)에게 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키스를 해달라는 여성 팬을 꼭 안아주는 등 다양한 팬 서비
<허스토리> 단관 현장, '허스토리언'들이 모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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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2004)로부터 <어느 가족>(2018)에 이르기까지 14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서사 속에서 가족은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모두 하나같이 때론 징그럽고, 그럼에도 내다버릴 수 없는 존재로 자리한다. 부자지간으로 일관하는 이야기 같았지만 어느새 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지는 <어느 가족>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고레에다 영화 속 가족들을 소환해보았다.
가족을 감싸안는 포근함 할머니
할머니는 늘 고레에다 가족의 버팀목이었다. 고지식한 아버지의 아내였고, 변변히 자리잡지 못한 못 미더운 아들들의 어머니였고, 손자를 예뻐하던 푹신한 스펀지 같은 존재였다. 부자가 괜한 신경전을 벌일 때도 어머니는 언제나 한 귀로 흘리며 집안에서 바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생활인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어느 가족>에서는 죽는다. <아무도 모른다>부터 시작된 고레에다 가족 연작에서 ‘직접적’으로 할머니의 죽음을 맞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의 가족 구성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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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돌아오자마자 윤종빈 감독은 언론·배급 시사 직전까지 재편집과 후시녹음에 매달렸다. 칸영화제 상영 때 들었던 피드백을 반영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칸영화제가 가져다준 명예 못지 않게 “국내 개봉이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다. 언론·배급 시사가 끝나자마자 따로 만난 윤종빈 감독은 “모든 영화가 고생한 만큼 온전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라며 “먼저 개봉한 <신과 함께-인과 연>의 김용화 감독이 학생회장 시절 내게 과 대표를 맡기고 새벽에 깨우는 등 많이 괴롭혔는데 이번에 후배를 위해서 배려해줘야 하지 않을까. (일동 폭소)”라고 농 섞인 출사표를 던졌다. <공작>은 <군도: 민란의 시대>(2013) 이후 윤종빈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칸영화제 상영 후 편집을 다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칸 상영 버전의 어디를 손댔나.
=처음 편집할 때 칸 상영에
<공작> 윤종빈 감독, “너무 완벽한 스파이를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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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바람이 불면 집권당에 표가 더 몰렸다. 지금은 약발이 많이 떨어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누군가에게 ‘북풍’(北風) 재미는 쏠쏠했다. ‘북한 변수’를 뜻하는 북풍은 선거철 단골손님이다. 국민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해 선거에 슬그머니 개입한 북풍 의혹은 항상 있었다. 1987년 대선 전 일어났던 KAL 858 폭발사건, 선거 전날 연출된 폭파범 김현희의 압송 입국, 1996년 4·11 총선을 엿새 앞두고 판문점에서 이상하게 벌어진 북한군 무력시위 사건(영화 <공작>에도 언급된다) 등이 떠오른다. 남한의 보수정권에 북풍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김영삼 정권 시절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부장이 주도한 북풍사건을 수사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대성 파일’(이대성 안기부 해외공작실장(영화에선 조진웅이 연기한 최학성)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작성한 권영해 안기부장 시절의 북풍 공작 문건)에 잠자고 있던 ‘흑금성
<공작> 북핵에 대한 불안은 어떻게 정치에 이용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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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극장가 경쟁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이 8월 8일 개봉을 앞두고 몸을 풀고 있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먼저 공개돼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공작>은 안기부 대북 공작원 ‘흑금성’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윤종빈 감독이 실화를 재구성해 1980년대 풍경을 풍자하고 그려낸 적은 있지만(<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실존 인물을 그대로 취해서 시대의 한복판으로 깊숙이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종빈 감독은 20년 전 일을 통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을까. 다음장부터 시원한 스파이 세계로 안내한다.
<공작> 그의 조국은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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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이 당면한 가장 시급하고 풀기 어려운 숙제 중 하나가 바로 난민 문제다. 영국의 브렉시트도, 보수정권 득세의 이면에도 난민/이민자 문제가 관여되어 있다. 미하엘 하네케, 자크 오디아르 등 유럽 출신 감독들이 난민 이슈를 꾸준히 조명하는 이유도 그것이 지금의 유럽인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3살짜리 시리아 난민 에이란 쿠르디를 기억할 것이다. 그 후로도 지중해를 건너다 바다에서 숨진 난민은 해마다 1천명에 이른다. 유럽에서 발생한 잇단 테러는 반난민 정서를 부추기고 있고, 난민 수용에 한계를 느끼는 국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난민 문제에 관한 한 유럽의 상황은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졌다고 할 수 없다.
유엔난민기구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폭력, 박해로 인한 강제이주민(난민, 국내 실향민, 난민 신청자를 포함한 용어) 수는 5년 연속 증가해 2017년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콩고
['우리' 확장하기⑤] 최근 유럽의 난민 이슈와 정책은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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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하르> Kandahar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 / 제작국가 이란 / 제작연도 2001년
한때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무장 정치단체 탈레반 정권으로 인해 거의 모든 여성들이 사회적 활동을 금지당하고 부르카 뒤에 존재를 숨기며 살아야 했다. <칸다하르>는 수많은 국민이 난민이 되어 유럽 전역을 떠돌게 만들었던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나파스(닐로우파 파지라) 역시 난민이 되어 조국을 탈출했다가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여동생의 편지를 받고 그녀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조국을 탈출했던 나파스가 다시 끔찍한 억압과 고통의 세계로 돌아가는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의 시선처럼 침착하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 세계 속에는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을 짓밟고 위태롭게 버티고선 어리석은 남성들만 남아 있다. 부르카를 뒤집어쓴 여성들을 거느리듯 살아가는 남성들의 일상 장면 등 거의 모든 장면을 통해 무너진 사회체제와 왜곡된 종교적 신념을 고발한다. 그중 지뢰 때
['우리' 확장하기④] 난민 이슈를 다룬 영화 15선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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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하루> Mia Aioniotita Kai Mia Mera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 / 제작국가 그리스 제작연도 1998년
어떤 오후는 평생 삶의 한가운데 박혀 있다. 불치병을 앓는 초로의 시인 알렉산더(브루노 간츠)에겐 젊은 시절에 아내와 함께했던 눈부신 여름날이 그렇다. 병원 입원을 하루 앞두고 정처없이 떠돌던 시인이 신호등 앞에 잠깐 정차한 사이, 대로변에 줄지어 서 있던 알바니아 난민 소년 중 하나가 뛰어와 유리창을 닦아준다. 자신의 유장한 내면 세계를 떠돌다 말고 냉랭한 현실을 마주한 그리스의 시인은 소년이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 있도록 옆자리를 내어준다.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이 서로의 삶에 불쑥 뛰어드는 것처럼 연출된 이 장면 이후로 알렉산더에겐 얼마 남지 않은 삶 동안 평생 기억하게 될 또 하나의 오후가 생긴다. 90년대 후반에 극심한 내전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알바니아 난민들을 마주해야 했던 조국에 보내는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전령과도 같은 작품
['우리' 확장하기③] 난민 이슈를 다룬 영화 15선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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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판> Dheepan
감독 자크 오디아르 / 제작국가 프랑스 / 제작연도 2015년
2015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 스리랑카 내전을 피해 망명한 세 인물이 프랑스에 정착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스리랑카 군부 출신의 디판은 일면식도 없는 여자 얄리니, 그녀가 데려온 부모 잃은 소녀 일라얄과 프랑스에서 위장 가족으로 살아가게 된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직업. 이들에겐 더이상 자신의 것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가 남아 있지 않다. 디판, 얄리니, 일라얄이라는 이름조차 사망한 스리랑카인의 여권에서 취한 것이다. 하지만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 위장 가족에겐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다. 세 사람이 가족으로서의 관계를 형성해갈 무렵, 마을의 폭력적인 마약상들이 디판의 가족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장르적 연출에 능한 자크 오디아르는 등장인물간의 인위적인 관계로부터 진실된 멜로드라마를 이끌어낸 다음,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영화
['우리' 확장하기②] 난민 이슈를 다룬 영화 15선 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