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영장>
La Piscine / 감독 자크 드레이 / 1969년
작열하는 태양과 이국적인 풍경, 보기 좋게 그을린 근사한 외모의 부르주아들과 기저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 자크 드레이 감독의 <수영장>은 <태양은 가득히>(1960)와 더불어 여름을 배경으로 우아한 스릴러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모든 영화감독들에게 귀감이 되는 작품이다. 당대 유럽영화계의 스타배우,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프랑스 남서부의 여름 휴양지에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은밀하고도 위험한 관계맺음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 장 폴(알랭 들롱)과 그의 연인 마리안(로미 슈나이더)은 친구의 고급 빌라에서 낭만적인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평화롭던 그들의 일상은 마리안의 전 남자친구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해리(모리스 로네)가 딸 페넬로페(제인 버킨)와 함께 빌라를 찾으면서 점점 위태로워진다. 여름의 열기 속에서 다시 가까워지는 마리안과 해리, 진짜 해리의 딸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⑦] <수영장> <시체들의 새벽> <행잉록에서의 소풍> 外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 /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 1959년
“첩보스릴러 장르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태초에 히치콕이 있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 인터뷰 중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독으로 인지한 사람이 앨프리드 히치콕이었다고 고백했다. 브래드 버드는 그 기억을 되살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옥수수밭 추격 장면을 두바이 사막의 모래폭풍 속으로 옮겨와 헌사를 바쳤다. 사실 첩보액션영화에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흔적을 발견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히치콕의 첫 번째 007 영화’라는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007 시리즈를 비롯한 숱한 첩보액션 영화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빚지고 있다. 평원에서의 쌍엽기 추격 장면은 <007 위기일발>(1963), <레이더스>(1981)에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⑥]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선셋대로> <윌로씨의 휴가> 外
-
<밀회>
Brief Encounter / 감독 데이비드 린 / 1945년
기차 시간이 임박한 어느 찻집. 복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남녀의 앞에 눈치 없는 친구가 끼어들어 대화가 중단된다. <밀회>의 초반에 나오는 이 장면은 매주 목요일에 찻집에서 만나며 불륜 관계가 된 로라와 알렉의 사연이 플래시백으로 그려진 후 후반에 재등장하며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2015)은 영감을 얻은 작품에 오마주를 바치는 탁월한 방식을 보여준다. 감독은 원작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이것은 <밀회>와 비슷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밀회>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각색하며 테레즈와 캐롤의 대화가 제3자의 방해로 중단되는 유사한 오프닝을 만들었다. <밀회>의 불륜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물이 <캐롤>의 동성애를 눈치채지 못하는 인물로 대응됨으로써 50년대 당시의 보수적 시대상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다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⑤] <밀회> <빌리 엘리어트> <분홍신> 外
-
영화가 사랑한 영화에 대한 특집은 계속된다. 지난호에 이어 세계의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중요한 영감이 되어준 50편의 레퍼런스 영화를 소개한다. 이번에는 SF, 호러 등 장르영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도 주의깊게 살폈다. <캐롤>부터 <컨저링>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21세기 영화가 어떤 작품의 궤적을 좇고 있는지 살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2주에 걸쳐 100편의 레퍼런스 영화를 소개하며, 동시대 영화 중에서는 어떤 작품이 후대의 창작자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지 궁금해졌다. 이 특집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나아가 현재와 다가올 미래의 시네마가 맺을 관계를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레퍼런스 100 2부,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 ⑤ ~ ⑨
-
-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홍콩 만다린오리엔탈호텔 24층 객실에서 몸을 던져 거짓말처럼 생을 마감했다.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으로 스타의 입지를 굳힌 장국영은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에 출연하며 배우이자 가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장국영 15주기를 맞아 3월 30일부터 기일인 4월 1일까지, <씨네21>은 그를 추억하며 독자들과 함께 홍콩 시네마 투어를 다녀왔다. 2박3일의 기록을 전한다.
3월 30일, 날씨는 더없이 맑았다. 4월 1일을 즈음하여 홍콩을 찾은 적이 여러 번이지만 15주기 때처럼 날씨가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는 이제 ‘스타의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성광대도(星光大道)라 불리는 이곳은 원래 빅토리아항을 끼고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홍콩문화센터까지 길게 이어진 거리였는데, 현재 스타의 거리가 공사 중이라 원래 있던 곳으로부터 페
<씨네21> 장국영 15주기 홍콩 시네마 투어
-
‘미투(#MeToo) 운동’ 이전에 ‘ㅇㅇ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있었다. 해시태그는 문단, 영화계 등 각 분야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해시태그를 달고 ‘ㅇㅇ계 _내_성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고발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이 일어났던 지난해,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동구갑·행정안전위원회)은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 ‘#STOP_연예계_내_성폭력 #GO_미디어_내_성평등’을 4월 19일과 5월 30일에 각각 열었었다. 진 의원은 토론회에서 나온, 영화계 성폭력 문제 예방의 필요성,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대책 등을 바탕으로 미투 운동이 한창이었던 지난 3월 8일과 3월 23일, 미투 피해자보호법과 영화계 미투 방지법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미투 피해자보호법은 피해 여성과 그의 법정 대리인을 가해자의 고소로부터 보호한다는 내용의 법안이고, 영화계 미투 방지법은 영화 근로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나 부당노동행위 강요 등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법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 우리는 신체적, 정신적 안전이 보장된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
-
<블러드 베이>
A Bay of Blood / 감독 마리오 바바 / 1971년
슬래셔영화의 인기는 <컨저링> 같은 오컬트, 하우스 호러 영화쪽으로 이동해 왔지만, 최근까지도 <유아 넥스트> <해피 데스데이>처럼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 여러 하위 장르를 뒤섞거나 변주하는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는 있다. 마리오 바바 감독의 <블러드 베이>는 슬래셔영화라는 단어가 제대로 통용되기도 전에 사실상 슬래셔영화의 정수를 담아낸 영화다.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미래의 모든 슬래셔영화가 솟구치는 동맥”과도 같은 영화라고 평하기도 했다. 즉 살인사건이 난 해변가 저택을 찾은 4명의 젊은 청소년들이 음주와 섹스, 장난에 빠지면서 한명씩 죽어나가는 일명 ‘보디카운트’ 플롯을 확립하다시피했다. 밥 클라크의 <블랙 크리스마스>(1974), 존 카펜터의 <할로윈>(1978), 숀 커닝엄의 <13일의 금요일>, 샘 레이미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④] <블러드 베이> <중경삼림> <오명> 外
-
<좋은 친구들>
Goodfellas / 감독 마틴 스코시즈 / 1990년
<대부>와는 다르다. <좋은 친구들>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긴 힘들 것이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좋은 친구들>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와 함께 갱스터 누아르의 양대 산맥으로 거론되지만 속살은 제법 차이가 난다. <대부>가 마피아의 은밀하고 귀족적인 측면을 우아하게 다루고 있다면 <좋은 친구들>은 거리의 갱스터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 개봉 당시 <대부>의 안티테제에 가깝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데다 마틴 스코시즈가 현실을 건조하게 포착하는 방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일례로 리처드 시켈이 쓴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화> 중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다. 마피아에게 당신들의 세계를 가장 잘 담은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 이탈리아 기자의 질문에 “<좋은 친구들>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③] <좋은 친구들> <사무라이> <사망유희> 外
-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전쟁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일례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의 거의 모든 전쟁영화가 현장감을 담아낸다는 이유로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채도를 한껏 낮춘 푸른 색감, 사지가 날아간 참혹한 순간의 무력함을 조용히 보여주는 카메라 등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키는 요소들이다.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미국과 소말리아간의 전투를 다룬 <블랙 호크 다운>(2001)부터 베트남전을 다룬 <위 워 솔저스>(2002), 과거의 십자군전쟁을 다룬 <킹덤 오브 헤븐>(2005), 심지어 <반지의 제왕> 시리즈 같은 판타지물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②] <라이언 일병 구하기> <글로리아> <악의 손길> 外
-
<지구 최후의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 감독 로버트 와이즈 / 1951년
외계인과의 조우를 다룬 모든 영화는 이 작품에 얼마간 빚지고 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 <사운드 오브 뮤직>(1965) 등을 연출한 미국 감독 로버트 와이즈가 감독을 맡은 <지구 최후의 날>은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 클라투와 그의 등장으로 혼란에 빠진 지구의 풍경을 조명하는 SF영화다. 인간의 형상을 한 외계인 클라투는 핵무기 개발과 전쟁을 막기 위해 지구를 찾아왔다며 멈추지 않을 경우 지구가 위험에 처할 것을 경고한다. 하지만 외계인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지구인들은 클라투를 공격하고, 클라투와 함께 지구에 온 장신의 로봇 고트가 엄청난 위력으로 인간들을 무장해제시킨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현실감 넘치는 연출과 매혹적인 외계인 캐릭터, 혁신적인 특수효과는 SF영화에 미온적이던 성인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①] <지구 최후의 날> <페르소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外
-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영향’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과거의 대중문화 레퍼런스에 우리가 울고 웃는 건 단지 추억의 이름이 반가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나의 삶에 비집고 들어와 파문을 일으켰던 어떤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로부터,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듯, 세상의 모든 영화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모든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와 미래의 영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그 영향의 흔적들을 좇고 싶었다. 창간기념호를 맞아 2회에 걸쳐 <씨네21>은 21세기 영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100편의 레퍼런스 영화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들 작품을 선정하기까지, 이들이 어떤 영화의 영향을 받았는지 확인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한다. 창작자들은 대개 누군가로부터 명백한 영향을 받았음을 말하길 꺼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레퍼런스 100, 영화사의 창작과 오마주 사이 ① ~ ④
-
“모든 순간순간이 새로운 영상 문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구범석 감독) 세계 최초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는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아주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사업 ‘2017 VR 콘텐츠 프런티어 프로젝트’의 선정작으로서, 세계 최초로 4DX와 VR, 영화 세 분야를 접목한 선례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VR 콘텐츠 개발사 이브이알스튜디오는 영화를, 영화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는 VR 콘텐츠를 이해해가며 접점을 찾아가고 그 결과물이 CJ CGV 4DX관에서 상영된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영화를 연출한 구범석 감독과 석재승 바른손이앤에이 프로듀서를 만나서, 만만찮았지만 욕심이 났던 제작 과정에 대해 들었다.
대중적이고 보편적으로, 청춘 로맨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비해 장르가 소박해 보일 수도 있겠다. <기억을 만나다>는 뮤지션 지망생 우진(김정현)과 배우 지망생 연수(서예지)의 사랑을 담은 청춘 로맨스다. 영화를 연출
[VR영화③] 세계 최초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 현장은 어떻게 달랐나
-
전세계 영화계가 조만간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야 할 것 같다. 어떤 문제냐 하면, 영화가 과연 VR영상 콘텐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손꼽히는 상호작용성을 어떻게 인지할 것이냐의 문제다. 다시 말해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극장에 조작 가능한 컨트롤러를 손에 쥐고 들어가는 관객의 풍경을 상상해보자. 이는 영화를 보는 것일까. 게임을 즐기는 것일까.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문의 해본 결과, “이미 완성된 연속적인 영상물이 매체에 담겨 재생되는 것을 비디오물”이라고 판단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런데 VR영화의 기술이 발전하면 그에 따라 콘텐츠의 영역이 급격하게 넓어질 것이고 상호작용성도 보다 뚜렷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지만 컨트롤러를 통해 사건이나 해당 장면 등을 조작하는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충분히 등장할 수 있다. 일례로 넷플릭스에서는 지난해부터 시청자가 줄거리를 선택하는 ‘스토리 선택 서비스’가 적용된 인터랙티브
[VR영화②] 상호작용성, 게임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사례
-
가상현실(VR)의 미래, 즉 VR의 현실화에 따른 영화의 변화를 막연하게 걱정하던 시기는 꽤 오래전에 지난 것 같다. 세계적으로도 많은 감독들이 이미 VR 기술을 영화에 접목하는 유의미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오큘러스 스튜디오가 내놓은 VR애니메이션 <디어 안젤리카>,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신설한 VR 경쟁부문의 최우수상을 수상한 펜로즈 스튜디오 대표 유진 청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르덴즈 웨이크> 같은 VR영화 등은 솔직히 영화의 미래 중 일부를 이들에게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혁신적인 감동을 안겨준다. 한국 역시 이에 발맞춰 VR 기술이 지닌 매체적 속성은 물론 배급 방식까지도 다각적으로 고민해 세계 최초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를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개봉시켰다(3월 31일 CGV 개봉).
국내에서 처음으로 VR 기술로 촬영하고 4DX 상영방식을 택해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 <기억을 만나다>
[VR영화①] 세계의, 한국의 VR영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