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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21화에 출연해 세월호가 침몰 직전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했을 때 프로젝트 제목이 <화씨134>였다. 다큐멘터리 작업이 시작되면서 제목이 <인텐션>으로 바뀐 뒤 최종적으로 <그날, 바다>가 되었는데.
=굉장히 오래전 일인데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다. (웃음) 세월호에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을 찾았고, 침몰 직전 134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화씨134>는 <김어준의 파파이스> 21화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처음 만났을 때 김 총수가 프로젝트 이름을 지으라고 해서 평소 좋아하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2004)에서 본떠 지은 제목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세월호라는 거대한 사건에 덤벼들었으니 정신 나간 거지. (웃음)
-134라는 코스값
<그날, 바다> 김지영 감독 - 데이터로 접근해 사실에 다가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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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바다>가 개봉한 지 5일 만에 무려 20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세월호 정부합동 추모식이 처음으로 치러지고, 아이들의 분향소가 정리됐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 관심이 많은 건 드러나야 할 진실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지영 감독이 연출하고, 프로젝트 부가 제작한 영화 <그날, 바다>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인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사실만 가지고 과학적으로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로서 이 영화가 거둔 성취를 살펴보고, 지난 3년 반 동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데이터와 씨름하며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김지영 감독을 만났다.
배가 움직이면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배와 관련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선명, 선박 길이와 너비, 선종 및 안테나 위치 같은 배의 고유 정보는 물론이고, 선박 위치, 침로(배의 선수가 향하는 방향. 헤딩(Headin
다큐멘터리영화 <그날, 바다>는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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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수 260만명을 돌파하며 올해 상반기 최고 화제작이 된 <곤지암>이 나오기 직전까지, 한국 호러영화계에는 굴곡이 많았다. 여름 시즌에만 6편의 공포영화가 연이어 개봉하던 전성기가 있던 반면, 아예 한편도 개봉하지 않은 해도 있었다. 편당 평균 관객수가 100만명을 넘던 시절도 있었던 반면 2015년에는 2만명을 조금 넘기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중간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업계에 대한 산업적 분석이 어떤 장르가 인기를 얻는, 혹은 외면받는 결정적인 이유를 보여주는 중요한 데이터가 되는 이유다. ‘학교 괴담’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5편까지 시리즈가 이어지는 기획이 된 <여고괴담>이 개봉한 1998년부터 <곤지암>이 적은 예산으로 제작되던 2017년까지 한국 호러영화 흥행의 역사를 분석해보았다.
도약기(1998~2002)
<여고괴담>에서 <폰>까지
이전에도 학원물이나 호러영화는 존재했지만, ‘학교 괴담’을 활용해 전략
[공포영화⑥] 한국 호러영화 흥행사, <여고괴담>에서 <곤지암> 이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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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귀로 보는 영화
심장 박동 소리까지 들린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2008)는 서스펜스의 개정판 교본 같은 영화다. 폭발물 제거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전쟁과 긴장에 중독되어가는 인간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히치콕의 서스펜스가 정보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결과물이라면 <허트 로커>는 극도의 긴장이라는 감각을 고스란히 체험시키는 효과에 가깝다. 비밀의 열쇠는 바로 사운드. 제한된 시점과 사실적인 사운드, 답답한 숨소리로 쌓아나가는 긴장감은 전장 한복판에 놓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전장의 생생함을 화면으로 구현한 영화들은 대개 리얼한 사운드 디자인에 공을 들이기 마련이다. 피터 버그 감독의 <론 서바이버>(2013)는 탁 트인 공간의 이명이나 착탄음까지 다르게 표현하며 사운드의 사실감을 극대화했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음악 등 내러티브 바깥의 사운드를 줄여 작은 소리마저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있다. 특히
[공포영화⑤]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참고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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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크래신스키
존 크래신스키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다재다능 영화인이다. 그를 배우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의 경력은 다방면에서 화려하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그의 세 번째 연출작.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동명의 책을 영화로 각색한 <브리프 인터뷰 위드 히디어스 맨>(2009)으로 감독 신고식을 치른 그는 두 번째 연출작인 <더 홀라스>(2016)에선 출연까지 겸한다. 구스 반 산트의 <프라미스드 랜드>(2012)의 시나리오를 맷 데이먼과 공동으로 집필했고(출연도 했다), 자신의 제작사 선데이 나이트를 통해 방송 기획 및 제작도 꾸준히 하고 있다. 배우 존 크래신스키를 말할 땐 드라마 <더 오피스> 시리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홉 번째 시리즈까지 개근한 존 크래신스키는 ‘짐’ 캐릭터를 통해 평범함의 매력을 뽐냈다. <어웨이 위고>(2009), <노바디 웍스>(2012), <13시
[공포영화④]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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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불이 꺼지면 게임이 시작된다. 화면 속에 한 꼬마가 텅 빈 마트 안을 뛰어다닌다. 폐허와 같은 분위기의 마트 안에는 한 가족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5명의 가족은 아무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작은 소리를 내는 것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꼬마가 우주선 장난감을 손에 들고 나오자 엄마, 아빠, 누나, 형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타이른다. “이건 너무 소리가 커. 아빠 말 들으렴,” 극장 안도 어느새 조용해진다. 팝콘 먹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마저 점점 잦아들고 이내 침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침묵에 동참한다. 숨 막히는 오프닝이 끝나고 화면에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라는 제목이 뜰 때쯤이면 극장 안이 문자 그대로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된다.
관객 참여형의 공포
존 크래신스키 감독의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침묵의 확산과 유지로 이끌어가는 호러영화다. 사실 호러는 세팅과 상황만으로 분위기의 절반 이상이 판가름나는 장르
[공포영화③] <콰이어트 플레이스> 게임이 시작되는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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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2016) 이후 가장 많은 ‘해석 자료’가 쏟아진 영화였다. <곤지암>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자동완성 검색어 상단에 ‘곤지암 해석’이 딸려오고, 유튜브에서도 관련 콘텐츠가 높은 조회 수를 올린다. “기존 한국 공포영화는 어떤 원한이 있어서 이 캐릭터가 죽게 되는지 이유가 제시되는데 <곤지암>에서는 잘 제시되지 않는다. 영화가 재미없다면 관객이 그냥 짜증만 낼 수도 있는데 공포의 정도도 만족스럽고 작품을 좋게 봐줘서 관객이 해설을 덧붙이기 시작한 것 같다.” 정범식 감독은 네티즌의 능동적인 반응에 흡족한 모습이었다. 그에게 네티즌이 제기한 몇 가지 가설에 대해 직접 물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뒀다?
<곤지암>은 작품 전체가 거대한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한 작품이다. 호러타임즈 멤버들은 유튜브 라이브로 본격적인 체험 방송을 시작하기 전 물놀이를 갔고, 목욕실 및 샤워실이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며, 클라이맥스에서는
[공포영화②] <곤지암> 정범식 감독에게 물었다, 영화를 둘러싼 해석과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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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화 <곤지암>을 보고 느낀 점이나 제안하고 싶은 점을 기술해주십시오.
“오늘 엄마랑 같이 자야지.” “<컨저링>? <애나벨>? 그건 자수 놓으면서 볼 수 있을 듯.” “시사회 기회 감사합니다. 친구들한테 하나도 안 무섭다고 거짓말치고 엿먹일래요.”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너무 떨려서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습니다. ㅠㅠ.”
<곤지암>(2017) 모니터링 시사 관객 설문 13번 문항에 관객이 답한 내용들이다. 1차 모니터링 시사 결과 만족도, 추천도, 공포도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건 공포지수. 정범식 감독은 “만족도와 추천도보다 공포지수가 높게 나온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싶었다”면서도 관객이 공포영화를 제대로 무서워하며 봤다는 걸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개봉 후에도 무서움을 인증하거나 반대로 무섭지 않다고 주장하는 허세 리뷰들이 등장했다. 무서워서 악력 조절에 실패해 구겨져버린 관람권 인증숏을 올린다
[공포영화①] <곤지암> 젊은 관객을 극장으로 부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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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영화의 침체기가 길었다. 미세먼지보다 무서운 <곤지암>은 길고 긴 침체기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하며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다. 주연배우 7명이 모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배우고, 제작비 역시 상업영화 평균을 한참 밑돌며, 한국에선 비교적 낯선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를 취한 이 영화는 대체 어떻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소리내면 죽는다’는 컨셉 하나로 관객까지 더불어 숨죽이게 만드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역시 일찌감치 제작비를 회수하며 전세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팝콘 씹는 소리, 음료수 삼키는 소리까지 자체 무음 처리하게 만드는 존 크래신스키 감독의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침묵과 공포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장황한 서사와 낭자한 효과가 아닌 명료한 컨셉으로 관객을 현혹한다는 점에서 <곤지암>과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닮았다. 공포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고
한국의 <곤지암>·미국의 <콰이어트 플레이스>, 관객을 공포에 개입시켜라 ① ~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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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칸국제영화제 라인업이 발표됐다. 경쟁부문의 이창동 감독의 <버닝>, 미드나이트 스크리닝부문의 윤종빈 감독의 <공작>과 함께 눈길을 끄는 이름이 또 하나 있었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러시아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Leto, 여름)의 주연배우로 초청된 한국 배우 유태오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스튜던트>(2016)로 제69회 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후, 러시아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 신진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레토>는 1990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구소련의 전설적인 록가수이자 저항의 상징인 한국계 가수 빅토르 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그룹 키노로 활동하던 빅토르 최의 초창기 시절인 1981년. 빅토르 최를 둘러싼 삼각 로맨스를 바탕으로 젊음, 자유, 저항의 정신을 탐구한다. 유태오는 2천명의 배우들 중 주연인 빅토르 최 역할로 발탁됐다. 1981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난 그는 뉴
<레토>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 밟는 배우 유태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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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부탁>에서 임수정이 연기하는 효진은 혹독한 인생의 환절기를 조용히 나고 있다. 결혼에 뜻이 없다가 만난 이혼남(김태우)을 깊이 사랑하여 아내가 되었지만 갑작스런 사고가 남편을 앗아갔다. 효진의 트라우마는 단번에 쓰러뜨리는 대신 스며든다. 친구(이상희)와 보습학원을 운영하며 남들만큼 일상을 감당하고 있지만, 효진은 사실 아무 데도 있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훌쩍 떠나거나 은둔할 만큼 드라마틱한 인간도 아니다(그런 일에는 약간의 자기도취가 필요한 법이다). 망가지진 않았지만 고장난 효진에게 어느 날 예전 시댁 식구가 뻔뻔한 부탁을 들이민다. 남편과 전 부인 사이의 16살 아들 종욱(윤찬영)이 사고무친한 처지가 됐다며 “애는 아무래도 엄마가 키워야 하지 않겠냐”고 들이댄다. 동의해서가 아니라 아무려면 어떠랴 하는 심정으로 데려온 소년도 효진에게 바라는 바가 없다. 그러니까 <당신의 부탁>은 모성이 모두를 구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종욱은 효진을 신경 쓰
<당신의 부탁> 임수정 - 배우가 계단을 오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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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창간 23주년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배우 정우성의 별책부록 <청춘의 초상, 정우성>을 발간했다. 1994년 <구미호>로 스크린에 데뷔한 정우성은 모두가 환호하는 청춘의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은 채 진화와 성장을 거듭해온 대표 배우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데뷔 24년이 지난 지금, 정상의 자리에서 꾸준히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배우 정우성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줄 분들을 한자리에 모셨다. <비트>로부터 시작해 최근작 <아수라>까지, 정우성의 연기를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김성수 감독, 그리고 <아수라>를 함께한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정우성과 함께한 작품은 <마담뺑덕> 한편이지만 꾸준히 영화적 우애를 나누고 있는 임필성 감독, 정우성이 가진 매력의 총합을 보여준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 이렇게 네명의 영화인들과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 모두 정
정우성과 영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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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드 투 킬>
Dressed to Kill /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 / 1980년
브라이언 드 팔마만큼 오마주나 레퍼런스를 기꺼이 수용하는 감독도 없을 것이다. 흔히 그의 이름 앞에 “모방”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브라이언 드 팔마는 과거 작가들의 스타일을 수용하며 자신의 호흡으로 새로움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특히 <드레스드 투 킬>에서 그는 자신이 광팬임을 밝힌 앨프리드 히치콕의 <싸이코>에 대한 오마주이자 장 뤽 고다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의 영향을 드러낸다. <드레스드 투 킬>은 양성을 가진 정신과 전문의 엘리엇(마이클 케인)의 환자 케이트(앤지 디킨슨)의 살해를 둘러싸고, 목격자인 리즈(낸시 앨런)가 결백을 증명하려 나서는 스릴러. 자신의 인격을 여성인 보비가 지배하면 여인들을 습격하는 살인마로 변모한다.
<드레스드 투 킬>을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는 영화 초반, 엘리엇이 케이트를 엘리베이터에서 처참히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⑨] <드레스드 투 킬> <용호풍운> <어셔가의 몰락>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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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레이드>
Charade / 감독 스탠리 도넌 / 1963년
“히치콕이 만든 적 없는 최고의 히치콕 영화.” 스탠리 도넌 감독의 <샤레이드>를 수식하는 가장 멋진 한줄 소개가 아닐까 싶다. 케리 그랜트와 오드리 헵번의 신명나는 애드리브 연기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스파이 스릴러, 스크루볼 코미디, 멜로 등 여러 장르 요소의 장점을 아우른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난데없이 등장하는 충격적인 살해 장면, 아이가 해맑게 물총으로 장난치는 익살스러운 장면,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위장을 하는데 누가 봐도 귀엽고 눈에 띄는 지방시 드레스와 스카프, 그리고 화룡점정인 선글라스로 얼굴만 가린 모습 등이 영화의 종잡을 수 없는 온도 변화를 대변한다. 어느 날 갑자기 시체로 돌아온 남편의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즉 ‘너무 많은 것을 모르는 여자’와 미스터리로 똘똘 뭉친 ‘너무 많은 이름을 가진 남자’가 돈가방을 추적하고 사랑에 빠지고 범인의 실체에 다가서다 위기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⑧] <샤레이드> <이탈리안 잡> <몬티 파이튼의 성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