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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아녜스 바르다 작고 후 프랑스 현지에서는 각 언론의 추모 기사와 지난 인터뷰 기사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그 내용을 파리 현지에서 김나희 평론가가 일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편집자)
“바르다는 갔지만 아녜스는 우리와 함께 여전히 이곳에 있을 겁니다. 지혜롭고 생생한 데다 다정하고 영적이며 크게 소리내어 웃고, 재미있으며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작품처럼요.”
3월 29일,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전 칸국제영화제 위원장 질 자코브가 트위터에 추모의 메시지를 올렸다.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들은 프랑스의 정신이 담긴 국가적 보물입니다.” 프랑스의 거의 모든 매체가 앞다투어 바르다를 오마주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1928년생인 바르다는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전세계 영화제에 참석해왔다. 2019년 1월, 파리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전작전과 마스터클래스는 물론 2월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도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
영화 바깥에서 아녜스 바르다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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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88살에 만들고 89살에 내놓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나왔을 때, 전세계 관객이 그녀의 영화가 여전히 아름답고 혁명적이라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유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의 말을 속삭였다. 하지만 바르다는 영화 바깥에서도 프레임 부수기를 즐기는 아티스트였다. 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2019)로 올해 2월에 열린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찾았고, 명예황금카메라상을 직접 수상했다. 그녀는 은빛과 자줏빛으로 물들인 특유의 투톤 헤어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미꽃이 그려진 실크 가운을 입은 채 연단에 올랐다. 전보다 쇠약한 인상이었지만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듯한 유쾌한 ‘퍼포머’의 태도는 여전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9일(현지시각), 겨울과 함께 바르다는 홀연히 떠났다. 향년 90살. 암 합병증으로 파리의 자택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 타계하기 한달 전쯤에 카타르의 DFI(
아녜스 바르다는 여전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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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오독이 가능하려면 정독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하려는 일은 정답 풀이와는 다르다.” 영화를 글로 옮긴다는 무모하고 지난한 항로에 등대가 되어준 말이 있다면, 허문영 평론가가 슬쩍 건넨 한마디 조언이었다. 얕은 시선과 무지를 들킬까 두려운 나는 지금도 저 한마디 말의 끈을 부여잡은 채 불안을 견디고 영화를 근심하다가, 매번 실패한다. 지금부터 털어놓고 싶은 건 한편의 영화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나 통찰력 있는 시선이 아니다. 그저 사적이고 단편적인 고백, 나는 아직 잘 모른다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자 하는 발버둥이다. 강력한 자장으로 우리를 뒤흔드는 영화를 어떻게, 어디까지 읽어내야 할지 근심해온 한 사람의 실패의 기록이라 해도 좋겠다.
홍상수 영화를 마주할 때마다 도망치고 싶다. 그에게로 가는 길은 늘 무겁고 부담스럽고 어렵다. 이미 여러 차례 고백했지만 나는 홍상수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 부끄럽진 않다. 위
[한국영화 비평③] <강변호텔> 홍상수라는 세계를 읽고자 한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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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상>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많은 기자와 블로거들은 <우상>이 너무나 많은 상징과 은유를 포함한 영화라고, 그래서 이 영화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로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나는 묻고 싶다. <우상>에 상징과 은유가 있다면 얼마나 있고, 또 무엇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지 말이다. 나는 <우상>이 불친절한 영화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지나친 상징과 은유로 인해 어려운 영화로 완성되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내게 <우상>은 꽤 직선적인 드라마를 가진 영화고, 상징적으로 표현된 그 주제 역시 너무나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영화를 모호성이 내재한 영화, 관객이 이해하기 벅찬 영화로 오인하도록 만든 것일까?
모호성을 오독한 모호성
내게 <우상>의 흥미로운 지점은 작품 자체보다는 그에 대한 여러 평자의 반응이다. <우상>이 개봉하자마자 많은 평자는 이
[한국영화 비평②] <우상> 모호성이라는 이름의 스노비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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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본 뒤 무엇보다 앞선 궁금증은 이 영화를 본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소감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연락이 닿는 유족들에게 영화에 대한 감상을 여쭸다. 최종 편집본이 나오기까지 2차례에 걸쳐 유족 대상 시사회를 거친 터였다. 단원고 2학년 7반 곽수인 학생의 어머니 김명임씨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우리 아이들 이야기가 이렇게 드러나도 되는 세상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웠어요. 위안이 됐지요.” 2학년 7반 정동수 학생의 어머니 김도현씨는 아들 생일 모임을 못 챙긴 게 아쉽다고 했다. “동수랑 친한 친구들이 지금 동수랑 같이 있어서, 참석할 친구가 없을까 봐 생일 모임을 못했어요. 생일 영상은 영화로 처음 본 거예요. 참 예쁘더라고요. 생일 모임 못해준 게 미안하고, 영화가 고마웠어요.” 다행이었다. 이종언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되도록 큰 규모로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의도와 유족의 뜻이 닿았다. 그거면 됐지 비평의
[한국영화 비평①] <생일> 애도의 정서를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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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징후를 읽는 작업이다. 간혹 비평이 영화를 보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순 있지만 빼어난 해석이나 가이드가 모두 좋은 비평이 되는 건 아니다. 영화를 재단하고 평가하는 대신 함께 고민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부딪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법이다. 적어도 200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의 풍성함은 그렇게 쌓여왔다고 믿는다. <씨네21>은 최근 한국영화의 흥행 성적과 별개로 몇몇 영화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징후들이 있다는 판단에 이번 특집을 마련했다. 우선 송형국 평론가가 <생일>을 중심으로 한국영화가 세월호의 상처를 위로하는 방식에 대해 살폈다. 다음으로 안시환 평론가가 <우상>을 통해 작가주의적 모호성에 기댄 감독들이 어떻게 장르를 오인, 오용하는지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송경원 기자가 작가성의 관점에서 <강변호텔>을 읽으며 영화를 어디까지 적극적으로 해석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2019년 상반기 한국영화의 위치를 가늠할 좌표가
비평으로 읽는 한국영화의 현재 ① ~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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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디테일이다.” 장률 감독은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 담긴 여러 요소, 이를테면 캐릭터의 성격이나 자주 쓰는 대사나 건물의 디자인 같은 영화를 이루는 모든 것이 자신이 평소 생각하고 고민한 것을 반영한 거라고 이야기한다. 개봉 시기에 많은 경로를 통해 영화의 이모저모를 이미 접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영화에 담긴 사소한 것들에 대해 물었다.
-이야기를 처음 구상할 때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 목포를 배경으로 정했다가 여건상 군산으로 바꾸면서 영화의 방향도 일정 부분 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장소를 먼저 떠올리고 그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입장에서는 색다른 시도였을 것 같다.
=내 영화의 이야기는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어느 날 목포에 다녀온 뒤로 줄곧 그곳이 생각났다. 마치 식민지 시절의 옛 거리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럼 거기 가서 찍어야 하지 않겠나. 목포에서 꼭 찍고 싶은 건물이 문화재라서 촬영이 금지된 곳이었다. 하는 수
[히든픽처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장률 감독, "역사를 일상으로 마주하는 공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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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떠나간 뒤 남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2018년 9월 개봉한 정재은 감독의 한·일 합작영화 <나비잠>은 다소 진부해 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물음표로 남아 있는 질문을 탐구한다. 유전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삶을 정리하는 소설가 료코(나카야마 미호)와 소설가를 꿈꾸는 한국인 유학생 찬해(김재욱)가 사랑에 빠진다.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감정은 녹음 짙은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료코의 소설 <한여름의 연회>처럼 농염하고 뜨겁지만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두 사람의 관계도 점점 변해간다. <말하는 건축가>(2012), <말하는 건축 시티:홀>(2013), <아파트 생태계>(2017) 등의 건축 다큐멘터리를 경유해 12년 만에 당도한 정재은 감독의 극영화는 관계의 생성과 소멸, 인물에 공명하는 공간을 감각적인 영상과 정교하게 구축된 서사를 통해 구현한다.
-<나비잠>의 주인공 료코는 소설가다. 그는 “내
[히든픽처스] <나비잠> 정재은 감독 - 죽음 앞에 선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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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민지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버블 패밀리>는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BS국제다큐영화제 등에서 공개됐을 당시부터 많은 화제를 모으고 여러 피칭 프로그램에서 수상하며 감각적인 신인감독의 탄생을 예고했다. 하지만 개봉까지 1년 넘는 시간이 걸렸고, 개봉 성적은 전국 관객 2천명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버블 패밀리>는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영화다. 21세기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과연 부동산의 유혹을 떨쳐내고 훨훨 날아다니며 살 수 있을까. 오늘날의 부동산은 누군가의 욕망을 부추기는 블랙홀이기도 하다. 한때 땅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또 그 땅 때문에 고생해야 했던 한 가족의 욕망이 기록된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 개봉 이후 마민지 감독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 다시 만남을 청했다.
-지난해 12월 20일 <버블 패밀리> 개봉 이후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개봉 스트레스 때문인지 대상포진에 걸려 한동안
[히든픽처스] <버블 패밀리> 마민지 감독 - 부동산 나라에서 사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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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물의 명가, 미국 <CBS>의 최장수 TV시리즈 중 하나인 <하와이 파이브-오>가 시즌9으로 돌아왔다. 하와이 전역에서 일어나는 온갖 범죄를 일망타진하는 특수수사팀 파이브-오(five-0)의 활약상을 담은 드라마다. 청명한 하와이의 하늘 아래 근심 한점 없는 휴양지의 풍경 너머로 온갖 흉악 범죄와 첩보전의 실상이 드러난다. 범죄 수사극이 안기는 특유의 스릴과 액션은 극대화하되 일말의 피로감도 안기지 않는 산뜻한 엔터테이닝 드라마의 미덕이 돋보인다. 2010년 방영을 시작해 올해로 9년차, <하와이 파이브-오>가 믿음직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시리즈가 지닌 전통의 힘이 컸다. <하와이 파이브-오>는 1968년부터 1980년까지 12부작을 방영하여 변함없는 인기를 구가했던 동명의 인기 드라마를 리메이크했다. 원작의 탄탄한 원천 소스는 물론, <CSI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한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와 <NC
<하와이 파이브-오> 시즌9, 4월 8일 캐치온에서 국내 최초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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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윤석과 오랫동안 작업했던 동료 감독들을 어렵게 한자리에 모았다. 그의 연출 데뷔작 <미성년>을 보고 훈수 같은 덕담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하던 그의 모습은 언제나 우리에게 지독하리만치 무서운, 때로는 현실에서 무심히 지나칠 법한 이웃의 캐릭터로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의 연출 데뷔작 <미성년>을 보고 나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의 모습에 대해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지 모른다. 미성년이라는 단어에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 혹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미처 덜 자란 상태란 의미, 그리고 아름다운 어른이란 의미가 모두 담겨있다.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어 한 진짜 미성년의 모습은 어떨까. <추격자>(2008), <황해>(2010)를 함께한 나홍진, <1987>(2017)을 함께한 장준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2016)를 함께한 홍지영 감독
<미성년> 김윤석 감독, 배우 김윤석과 영화를 찍었던 나홍진, 장준환, 홍지영 감독과 마주 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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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6부작 <리틀 드러머 걸>에서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가 준비 중인 다음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다. 희곡은 표지만 등장하지만 <뜻대로 하세요> 속에는 <리틀 드러머 걸>과 통하는 대사가 있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배우에 불과하지. 그들은 무대에 들락날락하며 살아 있는 동안 여러 역을 하게 되지.” 존 르 카레의 원작 소설 속 한 인물은 다음과 같이 변명하기도 한다. “배우라는 존재는 무대에선 인간의 고뇌를 연기하지만 무대를 내려가면 채울 수 없는 허무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배우의 소심함, 왜소함, 무력함을 어른 세계에서 빌려온 거친 명분으로 채우려고도 한다.” 박찬욱 감독이라면 담대함과 용기, 타인의 정체성을 훔치는 재능, 연쇄적으로 열정에 휘말려 자아를 소진하는 기질을 배우와 스파이가 공유한 돌연변이 유전자로 꼽을 것이다.
<리틀 드러머 걸>은 1979년 독일 주재 이스라엘 외교관의 집이
<BBC> 6부작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공개한 박찬욱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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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그 실낱같은 보도자료의 키워드를 붙들고 처절하게 인터뷰를. (웃음) 이게 또 다 되는구나. 가능하네. 그러네.” 인터뷰를 하다 말고 웃는 소리를 들으니 어떤 순간에도 좀체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 봉준호 감독 그대로다. 반갑다. 지난해 5월 18일 크랭크인, 약 4개월간(9월 19일 크랭크업)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마무리 짓는 단계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기생충>(제작 바른손이앤에이,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은 <설국열차>(2013), <옥자>(2017)로부터 8년, 전작 <마더>(2009) 이후 10년 만에 다시 충무로로 돌아와 만든 프로젝트로 국내뿐만 아니라 가까이는 5월 열리는 칸국제영화제 조직위, 세계 영화 팬들의 조급증을 증폭시켜온 작품이다. 자본주의사회, 서울 도심에서 살아가는 두 계급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중년의 봉준호 감독이 보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그리게 될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케
봉준호 감독을 만나 <기생충>에 대해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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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개봉 2003년 4월 25일 / 출연 송강호, 김상경, 박해일, 김뢰하, 송재호, 변희봉
전국 510만 관객 동원, 각종 영화제 석권, 2003년 개봉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살인의 추억>은 제작진, 감독, 관객, 평단 모두 만족할 만한, 다방면에 성과를 안겨준 기념비적 작품이다. 지금은 이 작품의 제작 비화로 언급되는, 전작의 흥행에 실패한 감독, 범인이 잡히지 않는 형사물, 어두운 배경과 제목 등 영화의 모든 것이 대중영화로 제작하는 데 ‘기우’로 작용한 이 작품이 빛을 볼 수 있었던 데는 재능 있는 작가를 발굴해 기다려주고, 지원하는 2000년대 중반 제작사 중심 시스템의 공이 크다. 첫 작품인 <플란다스의 개>(2000)의 흥행 실패 이후 봉준호 감독이 세계적 감독으로 부상하는 기틀 역시 이때 마련됐다. 충무로 범죄 형사 누아르 장르의 새 역사 역시 <살인의 추억>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봉준호
[한국영화를 빛낸 영화 30편⑧] <살인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