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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가 될 것 같다.” 전작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창재 감독은 깜짝 선언을 했다. <길 위에서>(2012), <목숨>(2014), <노무현입니다>(2017) 등 다큐멘터리를 줄곧 작업해오던 그가 새로운 길을 가겠다니. 막연한 바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 말을 입 밖에 낸 지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정말 자신의 첫 장편 상업영화인 <모범시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언이 현실이 된 셈이다. <모범시민>은 사학 비리에 맞서기 위해 교육의원 선거에 나서게 되는 평범한 교사를 그린 이야기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제작사로부터 시나리오 초고를 받았을 때 어땠나.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됐던 이야기인데 코믹하게 풀어놓았더라. 사흘 동안 네번 정도 읽었는데 이야기가 잘 붙지 않았다. 제작자와 협의해 이야기를 새로 썼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2019년 한국영화㉖] <모범시민> 이창재 감독 - 시대정신과 사회적 담론이 매칭될 때 영화에 운이 따라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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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리 2km>(2004), <차우>(2009), <점쟁이들>(2012)의 신정원 감독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은 ‘죽지 않는 인간들’이 벌이는 죽여주는 이야기다. 전작들보다 진화한 하이브리드 장르의 영화가 될 것 같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라이터를 켜라>(2002), <불어라 봄바람>(2003), <기억의 밤>(2017)의 장항준 감독이 썼다. 코미디 ‘만렙’ 장항준 감독과 (영화적으로) 한 고집 하는 신정원 감독의 만남이라는 데서부터 벌써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풍긴다. 2월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는 신정원 감독을 만났다.
-장항준 감독이 오래전에 쓴 시나리오다.
=장항준 감독님과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닌데, 내가 본인의 시나리오를 연출하게 됐다고 하니 좋아하시더라. 시나리오에 매력 포인트가 많았다. 짧은 시간 안에 치열하게 벌어지는 소동도 재밌고, <죽지 않는 인간들의
[2019년 한국영화㉕]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신정원 감독 -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코미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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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영화가 무서워졌다. 내가 잘하고 자신 있는 작품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소공녀>(가제)는 나에게 잘 붙는 이야기였다.” <신부수업>(2004), <허브>(2007) 등을 연출한 허인무 감독은 한동안 한국영화계를 떠나 중국에서 혹은 드라마계에서 활동했다. “도회적인 젊은 여성이 나오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2011)는 시골 사람인 나에게 좀 낯설었는데, 솔직히 미진한 결과를 낳았다”고 고백한 그는 “점점 남성 위주의 영화가 즐비한 상황에서 나한텐 그런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더라”는 점도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태어나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소스가 있다”고 생각해 시작했다는 <소공녀>(가제)는 갓 태어난 동생 진주를 업고 갑자기 나타난 손녀 공주와 할머니 말순 사이에 싹트는 가족애를 다룬 휴먼 드라마다. 일견 소박한 기획처럼 보이지만 세대를 대표하는 ‘연기 귀신’ 나
[2019년 한국영화㉔] <소공녀>(가제) 허인무 감독 - 잊혀져가는 것을 붙잡고 싶은 안타까움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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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10억원, 비수기 개봉, 100만 관객 돌파. ‘알짜 흥행’으로 충무로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날, 보러와요>(2015)의 영화사 올과 이철하 감독이 다시 뭉쳤다. 엄정화 주연의 비행기 하이재킹 영화라는 기획부터가 신선하고, 공동 제작사로 사나이픽처스가 합류하면서 판이 커졌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가 잠시 들러 분위기를 한껏 띄우기도 했는데, 영화를 둘러싼 전반적인 기운이 긍정적이라는 인상을 초입부터 받았다. 이철하 감독은 “여성 주연의 비행기 하이재킹 액션 코미디라고 하면 작은 소동극을 예상하는 분도 있지만, 우린 좀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이 프로젝트의 감독으로 합류한 지 1년 반 정도 됐다고 들었다.
=원래 스케일 크고 빠른 편집을 보여주는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1975),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성룡의 <폴리스스토리> 시리즈, <
[2019년 한국영화㉓] <오케이! 마담> 이철하 감독 - 기내식이나 쟁반 등 도구 활용한 액션도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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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는 배우 이영애를 캐스팅하며 일찌감치 화제가 된 작품이다. <친절한 금자씨>(2005) 이후 13년 동안 영화를 찍지 않았으니, 어떤 이야기가 이영애의 마음을 움직였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찾아줘>는 실종된 자신의 아들과 똑같이 생긴 아이를 봤다는 제보를 받으면서 자식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엄마의 이야기다. 진부한 모성이 아닌 강인하고 특별한 모성을 그리려 했다는 김승우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종종 이영애의 미담으로 끝을 맺곤 했다.
-실종 아동과 부모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고 발전시켜나갔나.
=2008년에 처음 이야기를 썼고, 10년 동안 영화가 들어갈 듯하다 마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땐 실종 아동 사건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영화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도 조금 변했다.
[2019년 한국영화㉒] <나를 찾아줘> 김승우 감독 - 이영애 배우와 함께 ‘진짜’를 찾아가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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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찍고 영화 인생 끝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하는 거다.” <내부자들>(2015)과 <마약왕>(2018)에 이어 우민호 감독이 더 큰 현대사의 ‘고발’에 손을 댔다.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정권 18년간 ‘마피아와 다를 바 없는’ 행각으로 한국 중앙정보부(KCIA)가 벌인 정치공작과 그로 인한 비화와 비사를 기술한 김충식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첩보물. 최고 권력자 박통(이성민)을 저격한 김규평(이병헌)과 박용각(곽도원)을 중심으로 1970년대 공포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탐구한다. “현시대의 문제점, 그 뿌리는 1970년대 부모님 세대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해 10월 크랭크인해 촬영 중반에 접어든 지금, 우민호 감독은 “고발 시리즈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마약왕>을 신나게 찍었다면, 이번엔 하루하루 버티고 의심하면서 찍고 있다.” 살얼음판 같은 현장의 한가운데 있는 우민
[2019년 한국영화㉑]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 권력의 속성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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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감독에 따르면 <증인>은 광화문에서 시작해 광화문에서 마무리되는 영화다. “시민들의 의견이 가장 활발하게 교류되는 장소”인 광화문이 그에게는 소통을 바라는 한국인의 갈증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소로 다가왔나 보다. 그의 신작 <증인>은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남녀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며 불가능해 보이던 소통을 이뤄내고자 하는 이야기다. 타인의 삶에 대해 알려 하지 않고, 깊이 개입하려 하지도 않는 최근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교집합이 없을 것만 같은 두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는 순간의 기적을 조명하는 <증인>은 <완득이>(2011), <우아한 거짓말>(2013), <오빠생각>(2015) 등의 작품에서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사려 깊은 필치로 그려온 이한 감독다운 선택이다.
-<증인>은 제5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2019년 한국영화⑳] <증인> 이한 감독 -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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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메가폰을 잡지 않았을 뿐 조철현 감독은 지난 30년 가까이 한국영화계의 성실한 파수꾼으로 이름을 새겼다. 한국영화배급주식회사, 오픈시네마, 씨네월드, 타이거픽쳐스, 영화사 두둥을 거치며 한국영화 제작과 외화 수입에 힘썼고, 그가 자막 번역한 외화의 수만 800편이 넘는다. 특히 기획, 제작, 각본에 두루 참여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황산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사도>)을 살피면 역사극의 베테랑이라 할 만하다. 조철현 감독이 이번엔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세 배우와 함께 오랫동안 준비해온 훈민정음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를 둘러싸고 세종과 신미대사 그리고 소헌왕후의 우아하고도 첨예한 협업을 그려낼 작품이다. 촬영 중반을 훌쩍 넘긴, 지난해 12월 중순 조철현 감독을 만나 데뷔작의 면면에 대해 물었다.
-세종대왕이라는 익숙한 위인에게서 의외의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l
[2019년 한국영화⑲] <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 - 갈등, 질투, 화해와 협업으로 완성되는 팽팽한 파트너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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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주에 이어 2019년 또 다른 10편의 한국영화 신작과 만난다. 올해 개봉을 목표로 연말 연초를 잊고 촬영장에서, 또 편집실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감독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간 구상하고 직접 촬영 현장에서 부대끼며 열과 성을 다했고, 혹은 다할 예정인 작품들에 대한 최초 공개인 만큼 그들 모두 흥분된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인터뷰와 함께 처음 공개되는 영화의 이미지, 시놉시스를 비롯해 미리 완성된 영화를 그려볼 수 있게끔 관전 포인트도 정리했다. 이로써 3주에 걸쳐 총 28편의 기대작을 모두 소개했다. 기대 감독들의 대거 귀환, 장르의 다변화와 함께 2019년 극장가도 여전히 뜨거울 것 같다.
[연속 특집3] 2019년 한국영화 신작 감독과의 대화 ⑲ ~ 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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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은 220만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영화, 특히 장편애니메이션 분야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이후 7년, 오성윤 감독의 차기작이 나오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길어진 시간만큼 한층 성숙하고 튼실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언더독>은 유기견들의 모험담이라는 독특한 오리지널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한국만의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 그 길을 제시한다. 한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니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외적인 요소를 다 제외하고서도 이 작품은 확실히 잘 만든 장편 상업 애니메이션이라 할 만하다. 거기에 한국인이라면 좀더 깊고 넓게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알차게 집어넣어 한층 풍성해졌을 따름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드디어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쓸 기회가 왔다.
개들은 먼저 죽으면 천국에서 주인을 기다린다고 한다. 다들 그 말을 듣고 위로받듯 가슴이 따뜻해진다고 했지만 나는 덜컥 겁이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에 찾아온 단비 <언더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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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첫 장면에서 우리는 파도를 떠올린다. 바닥 청소를 하는 인물이 주기적으로 물을 뿌릴 때마다 화면 위쪽으로 물결이 되돌아가는 움직임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착시를 유도한 사운드는 철저히 디자인됐다. 잠시 후 카메라가 고개를 들면 배수구가 보이고, 그제야 우리는 그 파도가 인물의 행동과 중력이 만난 결과임을 깨닫는다. 사람의 움직임과 자연의 힘이 충돌하고 조응하며 만들어내는 차이와 반복은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그래비티>(2013)부터 보여준 운동의 본질이기도 하다. 더불어 4분34초의 이 숏에서 물에 비친 하늘은, 이곳이 벽은 있으나 지붕은 없는 안과 밖의 중간지대라는 점을 알린다. 한집에 살지만 가족은 아닌 경계인으로서 외부 계단을 이용하는 주인공 클레오(얄리트사 아파리시오)에게 계급이나 거대 시스템(항공기)은 중력만큼이나 거스를 수 없는 환경이다. 그 속에서 그저 살아내는 한 인물과 그녀가 처한 조건이 한 호흡에 담긴다.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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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현대건축을 좋아한다. 우리가 멕시코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과는 달리 멕시코에는 뛰어난 현대 건축가들이 존재한다. 나는 멕시코의 건축가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외모가, 내가 미국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멕시코 사람들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이 항상 궁금했다. 루이스 바라간, 후안 소르도 마달레노, 마리오 파니, 테오도로 곤살레스 데 레온 같은 잘 알려진 건축가들은 유럽계 백인들처럼 보였다.
인종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크게 백인, 백인과 원주민 혼혈, 원주민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밝은 피부색을 갖고 있을수록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쉽게 경제적 상층부로 올라갈 기회를 갖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멕시코의 인종, 정치, 경제 분야의 역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건축가의 ‘외모’는, 어떤 직업은 부유한 계층에 속해야 하고, 이 직업이 발현되는 형식이란 부유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로마>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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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는 클레오(얄리트사 아파리시오)가 걷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녀는 걷고 또 걷는다. 걸레질을 할 때, 아이들을 깨울 때, 조명을 끌 때에도 클레오는 사뿐사뿐 걸으며 집안 구석구석을 누빈다. 그녀가 잠시 바닥에 앉자 차를 내달라는 부탁이 떨어진다. 다시 몸을 일으켜서 계단을 내려가는 걸음이 스크린 위로 새겨진다. 그녀의 걸음은 늘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으며 제 속도를 유지한다. 걸음뿐만 아니다. 설거지를 하거나 걸레질을 할 때에도, 그녀의 움직임은 돌출이나 막힘없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어딘가 세상사에 초연한 느낌도 풍긴다.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에서 이런 움직임은 낯설지 않다. <그래비티>(2013)에서 라이언(샌드라 불럭)이 우주선 안을 유영할 때나 <위대한 유산>(1998)의 에스텔라(기네스 팰트로)가 화폭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보여주는 움직임들은 이상하게도 클레오와 겹쳐 보인다. 느리고 부드럽게 지속되는 초연한 움직임. 이것은 대개 너른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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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얄리트사 아파리시오)는 마당과 침실, 거실, 부엌을 반복적으로 드나들며 하루를 일로 채운다. 알폰소 쿠아론은 패닝과 트래킹 그리고 롱테이크의 화면 속에서 그런 클레오의 행동을 주시하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사소한 일상이 모인 그녀의 하루를, 아니 어쩌면 그녀의 삶(시간) 전체를 본다(또는 보아야 한다). 그녀의 행동에서 어떤 상징이나 은유를 발견하려 애쓰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알폰소 쿠아론에게 클레오의 일상은 또 다른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대상화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물만이 아니다. 알폰소 쿠아론은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 사물, 심지어 끊임없이 들려오는 여러 소음마저도 그 존재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려 한다. 즉 <로마>에서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는 그 어떤 큰 목적 아래 종속된 하위개념이 아니라 시청각적 이미지 각자의 존재성을 주장하고, 그때마다 <로마>는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한마디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