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사람이면 다 초인이래.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극복하면 우리 삶은 변화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게 된대.” 수현(채서진)과 도현(김정현), <초인>의 두 주인공은 니체를 인용하며 대화를 나눈다. 성장하는 청춘이 주인공이었던 <초인>이 개봉한 지 3년이 지났다. 서은영 감독은 차기작 <고백>의 후반작업 중이다.
-이 영화는 <이방인>의 뫼르소와 <데미안>의 데미안이 만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들었다.
=뫼르소와 데미안은 상반된 캐릭터이지 않나. ‘둘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수현이 뫼르소, 도현이 데미안인가.
=시나리오 초고는 수현과 세영, 두 친구의 사연을 그린, 매우 어두운 이야기였다. 원래 둘은 소년이라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문학에 집착하게 되는 사연을 입히는 과정에서 수현과
[히든픽처스] <초인> 서은영 감독 - 문학이 고리가 된 청춘 성장담
-
억지 눈물도, 억지 미담도 없다. <엄마의 공책>은 시간강사 아들 규현(이종혁)이 어머니 애란(이주실)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알고, 그러면서 어머니의 부재를 하나둘씩 실감하는 과정을 담은 가족영화다. 전작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이하 <개훔방>)이 그랬듯이 이 영화 또한 감동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이야기를 담백하게 끌고 간다. 김성호 감독은 히든 픽처스가 “창작자의 수익 구조 개선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전작에 이어 또 가족영화다.
=이은경 영화사 조아 대표로부터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베리어프리영화위원회 대표였던 그와 함께 <마이 백 페이지>(2011), <개훔방> 등 여러 영화들을 베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한 바 있다. 평소 그는 치매와 그에 따른 문제를 공유, 해결하려는 공동체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저예산 영화로 제작하고
[히든픽처스] <엄마의 공책> 김성호 감독 - 치매와 가족, 공부하며 만든 영화
-
영화를 보면 찍은 사람이 보인다. 김종우 감독은 자신의 장편 데뷔작 <홈>을 쏙 빼닮았다. 솔직하고 올곧고 선한 시선. 영화 <홈>이 김종우 감독을 투명하게 반영한 영화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까.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홈>은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주고 마음을 나누며 가족이 되는 이야기다. 자극적인 상황으로 또 한번 인물을 몰아붙이는가 싶었던 영화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인물들의 선의를 최대한 이해하고 배려한다. 동시에 예민하고 여린 성장기 소년의 상처를 쓰다듬는 일도 잊지 않는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후에 개봉을 하고 일반 상영도 했다. 영화제에서는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는데, 그사이 관객도 직접 만나고 많은 경험을 했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다.
=이제야 하나의 언덕을 넘은 것 같다. 개봉 전에는 이렇게 부끄러운 영화로 관객을 마주해도 괜찮을지 두려움이 컸다. 관객과의
[히든픽처스] <홈> 김종우 감독 - 마음으로 함께하는 소박한 의미의 가족
-
심찬양 감독의 <어둔 밤>은 대학 영화감상 동아리 ‘리그 오브 쉐도우’의 멤버들이 히어로영화를 찍게 되는 과정을 그린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안 감독(송의성), 심 피디(심정용), 요한(이요셉), 조빙(조병훈), 상미넴(김상훈) 등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심찬양 감독의 대학 선후배거나 지인이다. 하지만 ‘리그 오브 쉐도우’는 존재하지 않는 동아리고, 이들이 크리스토퍼 놀란과 히어로영화에 열광하는 인물들이라는 건 진짜다. 극강의 아마추어리즘을 무기 삼아 웃음 펀치를 날리는 <어둔 밤>은 사실 심찬양 감독의 영화를 향한 애정 고백에 가까워 보인다.
-<어둔 밤>은 201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상을 수상한 화제작이었다. 개봉 후 영화에 대한 좋은 평가나 흥행을 기대했을 텐데, 영화가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했다.
=개봉관을 잡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개봉 첫주부터 ‘게임이 끝났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냉혹한 현실을 경험하
[히든픽처스] <어둔 밤> 심찬양 감독 - 덕후의 에너지, 영화가 뭐라고 이렇게 신나지?
-
-
-발열조끼의 효력을 현장에 전파했다는 이야기가 자자하다.
=너무 추워서 알아봤는데 가격도 5만~6만원 정도로 생각보다 저렴하더라. 보조배터리 아무거나 써도 충전이 되고. 내가 현장에서 입은 이후 감독이며 스탭들이며 다 구입했다.
-<트랩>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이재규 감독과 드라마 <패션 70’s>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 자꾸 뒷부분을 궁금하게 만들어서 1~2회 대본을 보고 하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한번 해볼 만한 내용 같더라. 고동국 형사 캐릭터에는 코미디 요소가 전혀 없다. 진지한 코드에, 유난히 액션도 많고, 매회 눈물도 많이 흘리는 아버지이자 경찰이다.
-<탐정> 시리즈를 비롯해 형사 캐릭터가 처음은 아닌데.
=<반드시 잡는다>(2017)는 과거에 집착하는 형사, <탐정> 시리즈는 사건 해결에 집중하는 형사였다면 <트랩>에서는 지금 내가 생각지 않게
<트랩> 배우 성동일 - 코믹이 전혀 없는 눈물 많은 경찰 역에 끌렸다
-
-박신우 감독에 의하면 원래 멜로가 아닌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내가 멜로를 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또한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라기보다는 드라마가 계속 발전해나가려면 다양한 장르물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지상파 3사에서만 드라마를 방송했지만 지금은 방송사가 엄청나게 많아졌고,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도 만들어진다. 그럴수록 다양한 소재의 드라마가 나와야 하고 비슷한 구도는 지양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중에서도 <트랩>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영화 <완벽한 타인>(2018)을 함께한 필름몬스터의 박철수 대표, 이재규 감독과 동갑이고 무척 친하다. 두 사람이 준 대본을 읽어보니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재미있더라. 내쪽에서 조금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몇번 더 만났다. 사실 진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품을 잘 안하려고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잘 아니까, 그런 작품이 아니면 중간에 손을 놓아버릴
<트랩> 배우 이서진 - 장르가 다양해질수록 드라마도 성장한다
-
-원래 영화로 돌던 시나리오를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1년 넘게 필름몬스터에서 영화로 준비하던 시나리오였다. 지난해 초쯤 같은 제작사의 영화 <완벽한 타인>(2018)이 촬영 중반에 접어들고 나도 <트랩>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했는데, OCN에서 제작 지원을 받기 위해 제출했던 시나리오를 우연한 경로로 접하고 드라마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역으로 제안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을 방법이라 생각해 영화를 4부작 드라마로, 그러다 7부작으로 더 확장하게 됐다. 큰 구조는 그대로인데, 강우현(이서진)과 그의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고동국(성동일)의 전사가 보강돼 캐릭터의 깊이를 만들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클럽의 캐릭터도 구체화하는 등 조·단역들의 디테일도 더 살렸다. 전반적으로 안타고니스트들이 더 강화됐다.
-두달 반 만에 7부작 드라마를 찍었다. 어느 파트에 공을 들여야 하는지 판단하는 게 관건이었겠다.
=촬영 들어가면 일정이 바쁘게 돌아
<트랩> 박신우 감독 -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되 현실과 밀착된 이야기
-
‘시네마틱 드라마’가 아닌 ‘드라마틱 시네마’다. <나쁜 녀석들> <보이스> <라이프 온 마스> <손 the guest> 등 기존 한국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장르물을 만들어온 OCN이 영화 제작진과 의기투합해 진짜 영화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그 첫 포문을 열 드라마 <트랩>은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의 박신우 감독이 영화로 준비하던 작품을 7부작 드라마로 확장한 스릴러물이다. <특수사건 전담반 TEN>의 남상욱 작가가 드라마판 각색에 참여했다. 전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국민 앵커 강우현 역에 이서진, 그를 ‘인간 사냥’한 정체불명의 사냥꾼들을 추적하는 베테랑 형사 고동국에 성동일이 캐스팅돼 지난해 12월 촬영을 마쳤다. <씨네21>이 단독으로 <트랩> 촬영 현장을 방문해 이 솔깃한 컬래버레이션의 면면을 엿보았다. 박신우 감독,
OCN <트랩>,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가 사라진다!
-
2019년, 드디어 한국영화가 100년의 역사를 갖게 됐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한국영화 100주년은 연쇄극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 1919)가 상연된 1919년 10월 27일을 기점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1966년 영화인과 정부가 이날을 ‘영화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연쇄극은 간단히 말하면 연극 무대에서의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의 스크린 영사가 결합된 공연 양식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쇄극을 한국영화사의 기원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영화인들은 어떤 기준으로 <의리적 구토>를 한국영화의 시작으로 보는 것에 합의했을까. 또 지금 시각에서 봤을 때 일제시기 조선인 신파극단의 연쇄극을 한국영화의 출발로 보는 것이 과연 설득력 있는 의견인가.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대답하기에 앞서 이러한 질문과 씨름하는 영화사 연구자라는 존재에 관해 먼저 얘기하고 싶다.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상당히 바빠질, 어쩌면 조금은 스포트라이
한국영화 100년, 그 기원에 대하여
-
갤러리보다 스크린이 친숙한 사람들은, 제이알(JR)을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생애 처음 선택한 공동 감독으로 소개받았다. 사진 이미지를 공공 공간에 설치하는 도시 아티스트이자 거리 아티스트인 JR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동안 파리의 옥상과 외벽, 지하철에 그래피티를 남기는 작업으로 10대 중반에 경력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를 이루는 긴 벽에 같은 직업을 가진 양국 시민의 초상 사진을 둘씩 짝지어 붙였고, 2008년 시작한 ‘여자들이 영웅이다’(Women are Heroes)프로젝트에서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끌어안고 관대하게 세상을 지탱하는 여성의 얼굴을 브라질 촌락과 대양을 건너는 배에 입혔다. 비일상적 크기로 확대돼 노동과 삶의 공간 전면을 점령한 보통 사람들의 클로즈업 흑백사진은 “여기 인간이 있다”고 웅변했고, 지역사회의 맥락과 만나 풍성한 메시지를 생성했다. 숨은 얼굴을 전면(façade)에 드러냄으로써 이미지의 위계를 뒤엎는 JR의 작업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공동 감독 JR을 첫 서울 전시회에서 만나다
-
“이 인터뷰를 왜 하는 거야?” 홍경표 촬영감독은 다 알면서 오리발을 내민다. 평소 무뚝뚝한 그가 오랜만에 친한 사람을 만났을 때 보여주는 특유의 너스레다. 올해 영화 팬들이 특히 기대하는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과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일 것이다. <기생충>은 모두 백수인 기택(송강호) 가족의 장남 기우(최우식)가 가족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가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그린 이야기로, 아직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다. <리틀 드러머 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가 벌어졌던 1970년대 후반, 이스라엘 정보국이 영국 여배우를 비밀 첩보 작전에 끌어들이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스릴러다. 두 작품은 각각 홍경표와 김우형이라는 한국 최고의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잡아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됐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봉준호 감독과 호흡을 맞
<기생충> 찍은 홍경표 촬영감독과 <리틀 드러머 걸> 촬영한 김우형 촬영감독의 대담
-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형사들은 없었다. 이들은 형사인가 치킨집 직원인가. 개봉하기도 전에 유행어가 된 고 반장(류승룡)의 대사를 빌려 소개한, 영화 <극한직업>의 주인공 마포경찰서 마약반 형사들이다. 형사가 위장 수사를 하기 위해 치킨집을 차렸다가 맛집으로 소문난다는 영화의 설정은 만화 같다. 비현실적인 설정임에도 이야기가 생생하고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비결은 관객을 성실하게 설득한 이병헌 감독의 연출이다. <과속스캔들>(2008), <써니>(2011), <타짜-신의 손>(2014)의 각색을 맡았고, 다큐멘터리 <힘내세요, 병헌씨>(2012), <스물>(2015), <바람 바람 바람>(2018)을 연달아 연출한 그다. 개봉을 이틀 앞둔 지난 1월 21일 만난 그의 얼굴은 다소 긴장돼 보였다(1월 23일 개봉한 <극한직업>은 개봉 첫날에만 무려 관객 36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
[설 연휴 영화④]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 코미디로 시작해 통쾌함으로 마무리한다
-
형사물과 카체이싱의 결합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뺑소니 사고를 전담하는 경찰 특수반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 <뺑반>은 당신의 예상을 기분 좋게 비껴갈 것이다. <차이나타운>(2015)에서 누아르의 전형을 신선하게 비틀어낸 바 있는 한준희 감독은 이번에도 익숙한 장르의 결합에서 기어코 새로운 지점들을 찾아내 선보인다. <뺑반>은 장르와 리얼리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시도하는 영화다. 대규모 추격전이나 현란한 카체이싱 장면이 시각적 쾌감을 극도로 추구하는 가운데 경찰들의 고달프고 열악한 수사 환경과 투철한 직업정신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화려하면서도 사실적인, 사람의 얼굴을 한 카체이싱 액션이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형사물, 카체이싱 모두 한국영화의 단골 소재지만 뺑소니 사고만 다루는 경찰 특수반을 조명한 건 처음이다.
=일상에서 뺑소니는 심각한 범죄지만 영화에서는 마약, 기업 비리 등에 비해 대수롭지 않게 그
[설 연휴 영화③] <뺑반> 한준희 감독 - 카체이싱이라는 장르, 경찰이라는 리얼리티
-
“세상의 모든 드래곤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단다.” 드래곤과 인간이 공존하는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의 세계관은 알려지지 않은 자연의 신비로 가득하다. 버크섬에 사는 <드래곤 길들이기>(2010)의 주인공들인 바이킹은 씩씩한 체력과 저돌적인 리더십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산다. 특히 마을을 이끄는 히컵의 아버지 스토이크는 이쑤시개처럼 말라비틀어진 아들을 드래곤도 제대로 못 죽인다며 불신했다. 돌이켜보면 이 시리즈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 히컵의 투쟁기였다. “드래곤을 길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히컵은 자신이 살려준 나이트 퓨어리와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히컵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사람들의 삶도 변화시킨다.
1편이 흥행에 성공하자, 제작사 드림웍스는 <슈렉> <쿵푸팬더> <마다가스카> 시리즈의 뒤를 이어 <드래곤 길들이기> 역시 3부작으로 완결되길 바랐다.
[설 연휴 영화②] <드래곤 길들이기3> 시리즈 마지막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