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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사진을 토대로 미술을 넓혀갔다.” <허스토리>의 미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시대배경도, 특정 자료도 아닌 문정숙(김희애)의 캐릭터 그 자체였다. “소신과 뚝심을 가진” 문정숙이라는 걸출한 여성의 이미지가 이나겸 미술감독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문정숙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의 사진도 영향이 컸다. 사진 속 그는 왠지 “부산 사람답게 스트레이트한” 인상을 줬다. “일례로 영화상에서 남편의 부재가 전혀 부각되지 않는 것처럼” 문정숙의 기죽지 않는 스타일과 화려함은 공간 미술에도 스며들어 있다. 영화 초반의 주요 공간인 대한여행사와 정숙의 집은 생기 있는 색감으로 가득 차 있고, 이는 자연히 문 사장의 경제력까지 보여준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된 관부 재판의 실화를 다룬 영화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수차례 반복해 오간다. 중요한 건 한국과 일본으로 잘게 쪼개지는 영화의 내러티브를 미술적으로도 확연히 구분짓는 것이었다. 이나겸 미술감독은, 문정숙의 공간은
<허스토리> 미술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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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23일 관부 재판 원고단 일본 출국. 이후 총 20회의 구두 변론 진행 후 1998년 판결문이 나오기까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부산에서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을 오가는 6년의 시공간을 화면에 구현해야 했다. “90년대 시대극이자, 장소와 계절의 변화가 드러나야 했다”는 박자명 PD는 총 34회차를 25억원의 적은 제작비로 커버하기에 빠듯한 상황을 돌파해야 했다고 말한다. “원래 10억원 미만으로 책정되어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그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규모의 영화였다.” 부산과 시모노세키, 실제 위안소로 쓰인 곳이 아직 남아 있는 중국의 난징까지 해외 로케이션 진행이 필요했다. 효율성을 높이고자 주 배경이 되는 부산의 여행사, 법원을 세트로 충당하다보니 해외 로케이션의 예산은 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세트 하나 만드는 예산이 사극만큼 드니 꼭 필요한 부분을 빼고 모두 한국에서 진행했다.”
중국은 크랭크인 전 2박
<허스토리> 로케이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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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6년간의 법정 투쟁, 90년대 풍경을 스크린 속에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박자명 PD, 박정훈 촬영감독, 이나겸 미술감독, 최의영 의상감독에게 제작과정을 들었다.
촬영
“뭔가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고 담백하게 접근하는 게 유일한 컨셉이었다.” <악녀>(2017)를 찍은 박정훈 촬영감독이 <허스토리>를 찍으면서 세운 단 하나의 원칙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였다. 슬픔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클로즈업을 최대한 배제했고 인물들에게서 가능한 한 거리를 둔 것이다. “기본에 충실했고 멋보다는 안정적인 프레임, 객관적인 이미지에 신경 썼다. 할머니들의 그룹 숏이 언뜻 사이즈가 어정쩡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쌓이고 쌓여 자연스런 거리가 만들어진다. 워낙에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라 포커스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찍었다.” 색감도 주목할 만하다. <허스토리>
<허스토리> 촬영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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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아닙니다. 카메라에 허락된 건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리는 겁니다. 중요한 건 언제나 그다음입니다.” <쇼아>(1985)의 클로드 란즈만 감독은 홀로코스트를 영화의 소재로 삼았다는 비난에 대해 이와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첼모 수용소, 트레블링카 집단처형장,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리고 바르샤바 게토까지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이 건조한 다큐멘터리는 과거를 재현하거나 조작하려는 일말의 움직임도 없이 지금(그러니까 1980년대)의 흔적들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혹자는 홀로코스트가 너무 많이 소비되었다고도 한다. 인류사의 거대한 비극은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똑바로 바라보자. 우리에겐 여전히 이 비극과 과오를 되새길 책임이 있다. 홀로코스트는 너무 많이 소비된 게 아니라 제대로 이야기된 적이 없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의 종군위안부와 여자근로정신대에 관한 영화들에 대해서도
위안부 소재의 영화들 그 이후를 말하는 <허스토리>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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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는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다.” 위안부 문제를 조명하는 <허스토리>의 연출 곳곳에 민규동 감독의 낮고 힘 있는 한마디가 지지대가 되어주었음이 틀림없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6년간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피해 사실을 증언한 위안부 할머니들, 그 23번의 기나긴 재판의 기록이다. 위안부 소재를 통해 예상하는 지점에서 벗어나, 이 영화는 어느 한명을 영웅으로 만들지도, 어떤 승리의 환호를 안겨주지도, 피해 사실을 노골적으로 가시화하지도, 인정의 호소로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 감독의 말대로라면 ‘상업화된 문법에서 벗어난’ 영화다. 과감하게도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착취당했던 우리의 역사이자, 이후 다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했던 우리의 현재, 그 각각의 ‘그녀들의’ 이야기를 둘러싼 오해와 이해, 그리고 변화의 시간을 치우침 없이 담아내는 강수를 둔다. 주연 대부분이 여성만으로 구성된 이 ‘낯선’ 현장은 데뷔작 <여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 위안부 영화가 아니라 동시대성의 여성영화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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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 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근로정신대 피해자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진행된 재판이다. 1992년부터 무려 6년의 시간, 23번의 지난한 재판 끝에 일본 사법부는 1심 판결에서 일본 정부의 일부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금 지불을 판결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동남아 11국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재판 중이었으나 유일하게 관부 재판만이 일부 승소를 거두었으며 국가적 배상을 인정받은 최초의 케이스였다. <허스토리>는 6년의 재판 과정 속, 위안부 피해자와 그들을 조력해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사에 기록된 ‘히스토리’를 통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위안부 개개인의 인권이다.
힘없는 여성이라 피해자가 되었고, 그 이유로 피해자이면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사회의 편견으로 숨죽인 채 살아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그야말로 우리가 진짜 숙고해야 할 역사다. ‘허스토리’의 방점은 바로, 오늘로 치환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여성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수면
<허스토리> Brave Story, 피해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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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KBS는 이영표 해설위원의 깔끔하고 정확한 해설에 힘입어 중계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이영표의 예언에 가까운 예측도 화제였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이영표의 날카로운 ‘촉’은 여전할까. 브라질에는 가지 못했지만 이영표 해설위원의 데뷔 중계를 함께했고 K리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광용 KBS 아나운서도 자신의 첫 월드컵 현지 중계를 앞두고 예리하게 정보 분석 중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승부 예측이나 시청률 경쟁보다 중요한 건 자신들이 먼저 즐겁게 경기를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설로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영표 위원과 성공한 축구 팬 이광용 아나운서를 만났다.
-러시아월드컵 준비는 잘하고 있나.
=이광용_ 이영표 위원의 2014년 멕시코전 해설 데뷔 중계를 함께했는데, 이후 브라질월드컵 중계엔 동행하지 못했다. 월드컵 현지 중계는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기존에 했던 방송들을 보면서
[2018 러시아월드컵②] KBS 이영표·이광용, "중계도 경기처럼 신뢰하는 파트너라면 감점 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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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해설자 박지성이라니, 선뜻 상상이 안 된다. 일찌감치 축구 해설에 발을 들인 다른 선수 출신 해설자들과 달리 그는 은퇴한 뒤 대학원에 진학해 축구행정을 공부하고, 박지성 재단(JS 파운데이션) 일에 전념하며,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을 맡아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방송과 거리를 두었던 그를 러시아월드컵 해설위원으로 꾀어낸 사람은 ‘배거슨’ 배성재 SBS 아나운서다. 당대 최고의 ‘드립력’을 구사하는 배성재라면 박지성의 봉인된 입에서 선수 시절 경험담과 분석력을 끄집어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면서 수많은 리그 우승컵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렸던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였던 그를 말이다. 배성재가 또 박지성을 <씨네21>에 꾀어내준 덕분에 SBS 박지성 해설위원과 배성재 캐스터를 러시아로 출발하기 직전에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지난 6월 6일 방영된 MBC <라디오스타&
[2018 러시아월드컵①] SBS 박지성·배성재, "에너지와 자신감이 흐름을 잘 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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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만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났으니 눈을 러시아로 돌려야 할 때다. 2018 러시아월드컵이 6월 14일부터 시작됐다. 덩달아 시청률 전쟁에 뛰어든 MBC, KBS, SBS 각 방송사의 ‘입’도 분주해졌다. <씨네21>은 이중에서 SBS의 박지성 해설위원과 배성재 캐스터, KBS의 이영표 해설위원과 이광용 캐스터를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붙잡아 축구 얘기를 나눴다. 이들과 나눈 대화가 한달간의 월드컵 대장정을 앞둔 축구 팬들에게 친절한 가이드가 되길 바란다. 그런데 <씨네21>이 왜 월드컵을 취재하냐고? 4년에 한번쯤은 축구 얘기도 괜찮지 않은가,
2018 러시아월드컵 해설자들과의 만남- 박지성·배성재 × 이영표·이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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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 산문집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를 읽다가 역자의 이름에서 눈을 멈췄다. 옮긴 이 박창학. 가수 윤상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이라면, 또는 한국 뮤지션의 노래를 들을 때 크레딧을 꼼꼼히 챙겨보는 독자라면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박창학은 <달리기> <사랑이란> 등 윤상을 대표하는 거의 모든 곡의 가사를 썼으며 김동률, 윤종신, 장혜진, 강수지, 정재일 등과 함께 작업한 작사가다. 담백하지만 긴 여운과 문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표현으로 써내려간 그의 가사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사랑받았다. 윤상은 “내 음악의 절반은 박창학”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였으며 김동률은 인터뷰를 통해 “작사는 대한민국에서 박창학과 이적, 이 두 사람이 제일 신뢰가 간다”고 말한 바 있다.
작사가 박창학이 오랫동안 일본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한 영화연구자이기도 하다는 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는 1995년부터 10여년간 와세다대학 문학부에서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맨살>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번역가 박창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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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유일무이하다. 그의 영화 앞에는 대개 괴상, 괴이, 기묘, 파격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45일 동안 호텔에 머물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버린다는 설정의 영화 <더 랍스터>(2015)처럼 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파격적인 소재와 설정들을 주저 없이 차용한다. 신작 <킬링 디어>에서는 그리스 비극과 성서의 막달라 마리아 등 종교적인 요소들을 끌어와 또 한번 숨막히는 이미지들을 뽑아냈다. 2017년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공동 수상한 <킬링 디어>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평가도 다소 엇갈린다.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레퍼런스의 사용이 능숙하고 조율되어 있어 독특한 시각이 다소 줄었다는 아쉬운 목소리가 있는 반면 떨쳐내기 힘든 불편함이 전에 보지 못했던 잔혹미의 정점을 선보인다는 호평도 있다. 어느 쪽이건 확실한 건 이 영화가 당신에게 전에 겪어보지 못한 체험을 선사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질문이든 경탄이든 조롱이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부조리극 <킬링 디어>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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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6월 4일 열린 여성영화제의 쟁점 토크 ‘여성가족부XSIWFF 토크콘서트: #WITHYOU’에 참석했다. 영화 <아니타 힐>(2013)을 보고 우리 사회의 미투(#MeToo), 위드유(#WithYou) 운동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다. <아니타 힐>은 1991년 미국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클래런스 토머스의 성희롱을 세상에 고발한 아니타 힐의 이야기로, 아니타 힐은 미국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및 양성평등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흑인 여성이다. 정현백 장관을 직접 만나 27년 전의 아니타 힐 사건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지,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어떤 정책과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지 물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된 정현백 장관은 시민사회운동을 하던 학자 출신으로, 올해 7월이면 임기 1년을 맞는다.
-한명의 여성으로 그리고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아니타 힐>을 본
[서울국제여성영화제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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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씨네21>에서 시작한 ‘영화계 내 성폭력’ 연속 대담 첫 번째 대담자로 배우 이영진에게 참석을 요청하자 그녀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이영진의 발언은 이후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영화계 내에서 공론화가 되는 데 포문을 열어주었다. 이영진의 ‘날선’ ‘사이다’ 언어는 여성에게 차별이 가해지는 곳, 미투 운동 곳곳에서 큰 힘을 실어주었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여성영화제 역시 차별과 억압을 향해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이영진의 그 확고한 언어를 필요로 했다. 김아중, 한예리에 이어 3대 페미니스타로 선정된 이영진은 영화제 첫날부터 개막식 사회, 아시아단편경쟁 심사위원, 토크 참석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페스티벌 곳곳에서 영화제의 ‘얼굴’이 아닌, 그 정신과 가치를 대변할 ‘언어’로 그녀의 말들이 관객에게 큰 힘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그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마침 데뷔 20주년이기도 한 그녀에게 이번 홍보대사 활동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⑤] 배우 이영진,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페미니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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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큐레이팅이다.” 호주 감독 사만다 랭과의 만남은 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램 이야기로 시작됐다. 그녀는 “여성의 삶을 사회, 정치, 문화 등 다각도로 조명한” 올해 영화제의 상영작이 세계 어느 영화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사만다 랭은 지난 2015년부터 호주감독조합 회장으로 영화계 내 성평등을 위한 정책 수립에 힘쓰고 있는 호주 출신 감독이자 작가, 비주얼 아티스트다. 그녀는 올해 여성영화제가 신설한 한국 장편경쟁부문의 심사위원, 국제 컨퍼런스 행사 ‘영화산업 성평등을 위한 정책과 전략들’의 발표자로 한국을 찾았다.
-어떤 기준으로 심사를 했는지 궁금하다.
=한국 장편경쟁부문의 시상은 올해가 처음이다. 그렇다보니 창조성도 중요하지만 여성 영화인들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되는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영화제를 표방할 수 있는 파워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작품인지를 보았고, 영화적 미학과 스토리텔링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우리
[서울국제여성영화제④] 사만다 랭, 한국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호주감독조합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