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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은 지금까지 <허스토리>의 팬들이 마련한 모든 GV에 참석했다. 그는 한국영화 최초 마니아 팬덤을 양산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의 공동연출자이기도 하다. 한국영화 팬덤의 시작을 열었고, 그 역시 관객의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해왔다는 민규동 감독을 만나 <허스토리>에 대한 조금 긴 후일담을 나누었다.
-최근 <허스토리> 단체 관람 현장의 열기를 보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때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겠다.
=극장 개봉은 3주 정도로 짧게 했지만, 이후 VHS 비디오 출시 기간이 더해져 굉장히 긴 시간 동안 팬덤이 지속됐다. 관객의 감상이 책 세권 분량으로 나올 정도였다. 비디오로 50번 넘게 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팬들끼리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대사 암기 대회 등 자신들만의 축제를 열었으며, 팬 커뮤니티나 팬 사이트도 생겼다.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두 영화 팬덤 사이의 차이점도 감지되겠다. 우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 여성영화를 소비하는 팬 문화의 확장, 새롭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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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힙한 김희애.” 지난 7월 28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배우 김희애가 ‘8비트 떠그 라이프 선글라스’라 불리는 안경을 끼고 머니건을 쏘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아이돌 팬 사인회 최신 유행 아이템을 두른 그의 모습은 최근 자체적으로 상영관을 마련하고 있는 <허스토리> 팬덤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저녁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20관에서 진행된 <허스토리> 3차 단체 관람(이하 단관)에 참석한 380여 관객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는데, 아이돌 그룹 혹은 젊은 배우 팬덤과 비슷한 모습으로 문정숙 역의 김희애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직접 플래카드를 만들어오고, 여기 저기서 “사장님 멋있어요”, “아! 귀여워!” 같은 사랑 고백이 쏟아지는 분위기에서 김희애는 영화 속 대사 “돈은 내 좋다고 따라다닙니더!”를 외치며 객석에 가짜 돈을 뿌린다든지, 극중 신 사장(김선영)에게 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키스를 해달라는 여성 팬을 꼭 안아주는 등 다양한 팬 서비
<허스토리> 단관 현장, '허스토리언'들이 모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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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2004)로부터 <어느 가족>(2018)에 이르기까지 14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서사 속에서 가족은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모두 하나같이 때론 징그럽고, 그럼에도 내다버릴 수 없는 존재로 자리한다. 부자지간으로 일관하는 이야기 같았지만 어느새 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지는 <어느 가족>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고레에다 영화 속 가족들을 소환해보았다.
가족을 감싸안는 포근함 할머니
할머니는 늘 고레에다 가족의 버팀목이었다. 고지식한 아버지의 아내였고, 변변히 자리잡지 못한 못 미더운 아들들의 어머니였고, 손자를 예뻐하던 푹신한 스펀지 같은 존재였다. 부자가 괜한 신경전을 벌일 때도 어머니는 언제나 한 귀로 흘리며 집안에서 바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생활인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어느 가족>에서는 죽는다. <아무도 모른다>부터 시작된 고레에다 가족 연작에서 ‘직접적’으로 할머니의 죽음을 맞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의 가족 구성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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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돌아오자마자 윤종빈 감독은 언론·배급 시사 직전까지 재편집과 후시녹음에 매달렸다. 칸영화제 상영 때 들었던 피드백을 반영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칸영화제가 가져다준 명예 못지 않게 “국내 개봉이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다. 언론·배급 시사가 끝나자마자 따로 만난 윤종빈 감독은 “모든 영화가 고생한 만큼 온전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라며 “먼저 개봉한 <신과 함께-인과 연>의 김용화 감독이 학생회장 시절 내게 과 대표를 맡기고 새벽에 깨우는 등 많이 괴롭혔는데 이번에 후배를 위해서 배려해줘야 하지 않을까. (일동 폭소)”라고 농 섞인 출사표를 던졌다. <공작>은 <군도: 민란의 시대>(2013) 이후 윤종빈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칸영화제 상영 후 편집을 다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칸 상영 버전의 어디를 손댔나.
=처음 편집할 때 칸 상영에
<공작> 윤종빈 감독, “너무 완벽한 스파이를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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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바람이 불면 집권당에 표가 더 몰렸다. 지금은 약발이 많이 떨어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누군가에게 ‘북풍’(北風) 재미는 쏠쏠했다. ‘북한 변수’를 뜻하는 북풍은 선거철 단골손님이다. 국민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해 선거에 슬그머니 개입한 북풍 의혹은 항상 있었다. 1987년 대선 전 일어났던 KAL 858 폭발사건, 선거 전날 연출된 폭파범 김현희의 압송 입국, 1996년 4·11 총선을 엿새 앞두고 판문점에서 이상하게 벌어진 북한군 무력시위 사건(영화 <공작>에도 언급된다) 등이 떠오른다. 남한의 보수정권에 북풍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김영삼 정권 시절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부장이 주도한 북풍사건을 수사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대성 파일’(이대성 안기부 해외공작실장(영화에선 조진웅이 연기한 최학성)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작성한 권영해 안기부장 시절의 북풍 공작 문건)에 잠자고 있던 ‘흑금성
<공작> 북핵에 대한 불안은 어떻게 정치에 이용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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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극장가 경쟁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이 8월 8일 개봉을 앞두고 몸을 풀고 있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먼저 공개돼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공작>은 안기부 대북 공작원 ‘흑금성’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윤종빈 감독이 실화를 재구성해 1980년대 풍경을 풍자하고 그려낸 적은 있지만(<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실존 인물을 그대로 취해서 시대의 한복판으로 깊숙이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종빈 감독은 20년 전 일을 통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을까. 다음장부터 시원한 스파이 세계로 안내한다.
<공작> 그의 조국은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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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이 당면한 가장 시급하고 풀기 어려운 숙제 중 하나가 바로 난민 문제다. 영국의 브렉시트도, 보수정권 득세의 이면에도 난민/이민자 문제가 관여되어 있다. 미하엘 하네케, 자크 오디아르 등 유럽 출신 감독들이 난민 이슈를 꾸준히 조명하는 이유도 그것이 지금의 유럽인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3살짜리 시리아 난민 에이란 쿠르디를 기억할 것이다. 그 후로도 지중해를 건너다 바다에서 숨진 난민은 해마다 1천명에 이른다. 유럽에서 발생한 잇단 테러는 반난민 정서를 부추기고 있고, 난민 수용에 한계를 느끼는 국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난민 문제에 관한 한 유럽의 상황은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졌다고 할 수 없다.
유엔난민기구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폭력, 박해로 인한 강제이주민(난민, 국내 실향민, 난민 신청자를 포함한 용어) 수는 5년 연속 증가해 2017년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콩고
['우리' 확장하기⑤] 최근 유럽의 난민 이슈와 정책은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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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하르> Kandahar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 / 제작국가 이란 / 제작연도 2001년
한때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무장 정치단체 탈레반 정권으로 인해 거의 모든 여성들이 사회적 활동을 금지당하고 부르카 뒤에 존재를 숨기며 살아야 했다. <칸다하르>는 수많은 국민이 난민이 되어 유럽 전역을 떠돌게 만들었던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나파스(닐로우파 파지라) 역시 난민이 되어 조국을 탈출했다가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여동생의 편지를 받고 그녀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조국을 탈출했던 나파스가 다시 끔찍한 억압과 고통의 세계로 돌아가는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의 시선처럼 침착하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 세계 속에는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을 짓밟고 위태롭게 버티고선 어리석은 남성들만 남아 있다. 부르카를 뒤집어쓴 여성들을 거느리듯 살아가는 남성들의 일상 장면 등 거의 모든 장면을 통해 무너진 사회체제와 왜곡된 종교적 신념을 고발한다. 그중 지뢰 때
['우리' 확장하기④] 난민 이슈를 다룬 영화 15선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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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하루> Mia Aioniotita Kai Mia Mera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 / 제작국가 그리스 제작연도 1998년
어떤 오후는 평생 삶의 한가운데 박혀 있다. 불치병을 앓는 초로의 시인 알렉산더(브루노 간츠)에겐 젊은 시절에 아내와 함께했던 눈부신 여름날이 그렇다. 병원 입원을 하루 앞두고 정처없이 떠돌던 시인이 신호등 앞에 잠깐 정차한 사이, 대로변에 줄지어 서 있던 알바니아 난민 소년 중 하나가 뛰어와 유리창을 닦아준다. 자신의 유장한 내면 세계를 떠돌다 말고 냉랭한 현실을 마주한 그리스의 시인은 소년이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 있도록 옆자리를 내어준다.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이 서로의 삶에 불쑥 뛰어드는 것처럼 연출된 이 장면 이후로 알렉산더에겐 얼마 남지 않은 삶 동안 평생 기억하게 될 또 하나의 오후가 생긴다. 90년대 후반에 극심한 내전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알바니아 난민들을 마주해야 했던 조국에 보내는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전령과도 같은 작품
['우리' 확장하기③] 난민 이슈를 다룬 영화 15선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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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판> Dheepan
감독 자크 오디아르 / 제작국가 프랑스 / 제작연도 2015년
2015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 스리랑카 내전을 피해 망명한 세 인물이 프랑스에 정착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스리랑카 군부 출신의 디판은 일면식도 없는 여자 얄리니, 그녀가 데려온 부모 잃은 소녀 일라얄과 프랑스에서 위장 가족으로 살아가게 된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직업. 이들에겐 더이상 자신의 것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가 남아 있지 않다. 디판, 얄리니, 일라얄이라는 이름조차 사망한 스리랑카인의 여권에서 취한 것이다. 하지만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 위장 가족에겐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다. 세 사람이 가족으로서의 관계를 형성해갈 무렵, 마을의 폭력적인 마약상들이 디판의 가족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장르적 연출에 능한 자크 오디아르는 등장인물간의 인위적인 관계로부터 진실된 멜로드라마를 이끌어낸 다음,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영화
['우리' 확장하기②] 난민 이슈를 다룬 영화 15선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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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도 선(善)이다. 목적과 과정, 행위가 모두 일치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이상적인 순간은 극히 드물게 허락된다. 때문에 나는 선한 의지가 초래한 안타까운 결과, 왜곡된 의지가 의도치 않게 빚어낸 선한 결과 모두를 긍정하려 한다. 제목부터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책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저자 라인홀드 니버는 집단이 이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한다. 집단이 커질수록 이기심이 팽창하는 게 아니라 도덕심이 둔감해진다. 필요악으로서의 공권력이 책임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집단, 최종적으로는 국가를 통해 지속 가능한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권력을 위임하고 강제력을 허가하게 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공동체 내부의 평화를 위해 정의를 희생시키고, 또한 공동체간의 평화를 파괴하기도 한다”(라인홀드 니버). 말하자면 국가, 그리고 국경선은 선택된 불의이자 허용된 차별이다.
2015
['우리' 확장하기①] 난민, 차별, 증오, 공포... 영화가 세계를 사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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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주도에 561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가 입국하기 전까지 난민 문제는 남의 나라 일이었다. 적어도 난민 인정률이 4.1%(2017년 기준)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난민은 대중의 관심사에 오르내리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영역이었다. 미지의 영역은 종종 무지에 대한 변명처럼 오용되기도 한다. 난민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유럽 사회를 보며 확인되지 않은 공포가 손 쉽게 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본래 공포는 미지의 어둠을 먹고 자라는 법이다. 때마침 난민을 소재로 한 두편의 영화가 우리 곁에 도착했다. 2017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더 스퀘어>와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SF <주피터스 문>이다. 두 영화는 유럽 사회가 품고 있는 난민에 대한 문제의식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영화가 사회의 반영이라면 이 영화들이 난민을 대하는 유럽의 변화와 현재를 짚어줄 바로미터가 될
'우리' 확장하기 ① ~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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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열린 <데이비드 보위 이즈>(David Bowie is) 전시회를 찾은 건 평일 오후였다. 관람객이 몰리는 피크 타임이 아니었음에도 전시회장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로 전시회 내부의 열기는 바깥의 찜통더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전시회장을 찾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그곳에 펼쳐진 데이비드 보위의 세계에 깊이 몰입했다. 돋보기안경에 지팡이를 짚고 <Rebel, Rebel>의 공연 실황 영상에 매료된 할머니, 소형 콘서트홀을 연상케 하는 전시회 바닥에 앉아 보위가 입었던 의상들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 보위의 노래를 듣고 자랐다고 하기엔 다소 어려 보이는 젊은이들, 가족 단위로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그곳에 있었다. 2년 전 지구를 떠난 ‘지기 스타더스트’는 그렇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당신에게 데이비드 보위는 어떤 존재인가? 뉴욕의 전시 관객이 현재형으로 받았던 질문을 한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전시 투어 마감한 <데이비드 보위 이즈>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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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멜로즈를 연기하는 것은 내 버킷리스트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일생일대의 꿈은 그가 <셜록> <스타트렉>에 이어 <닥터 스트레인지>까지 굵직한 캐릭터를 연기한 이후에 실현됐다. 그는 “이 책은 아주 특별한 상황과 개인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이 현명해지는 것도 맞지만, 이 책을 위해서는 그의 나이에 맞는 어딘가에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데드라인>)라며 그가 버킷리스트를 지금 실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는 실제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고 약물 중독에 시달렸던 그가 오랜 기간 치료 목적으로 글쓰기에 몰두한 결과물이다. <괜찮아>(1992), <나쁜 소식>(1992), <일말의 희망>(1994), <모유>(2005), <마침내>(2012) 등 총 5부작이 완결되기까지 세인트 오빈은 20
[영국 드라마②] <패트릭 멜로즈> 베네딕트의 모노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