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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너무 연기를 잘하는 언니가 있어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의 시어머니 역 배우를 고심하던 김도영 감독에게 배우 이정은이 건넨 조언이다. 그는 바로 ‘부산의 박정자’라는 별명을 가진 부산 출신의 배우 김미경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고 몇번 작품에서 얼굴 보고 인사를 나눈” 사이인 이정은 배우가 왜 그의 캐스팅을 강력하게 밀었는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알 수 있다. 지영(정유미)의 남편 대현(공유)의 어머니이자 지영의 시어머니를 연기하는 김미경은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전형적인 시어머니의 모습에서 살짝 비껴나 있다. 명절날 시댁에 갔다가 뒤늦게 온 딸이 가여워 여태껏 고생한 며느리에게 상을 한번 더 봐오라고 말하는 무심함과 줄 서서 겨우 받아온 앞치마를 며느리에게 건네며 “니 꽃무늬 좋아하제”라고 묻는 천진난만함이 공존하는 얼굴. 김미경은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 상대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어긋남의 순간들을 지극히
[<82년생 김지영>의 배우들③] 시어머니 역 김미경 - 사실적인 어긋남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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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59년생 김영수’ 정도 되지 않을까요.” 이얼 배우는 김지영의 아버지 영수의 얼굴을 그렇게 그려 보았다. 버스정류장의 치한을 피하려면 ‘네가 몸조심해야 한다’고 하고, 딸은 시집 가면 그만이라고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빵은 알아도 딸의 식성은 모르는 아버지. 지영의 아버지이자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나고 자라고 사고하고 행동했던 중년의 남자. 영수가 건네는 자신의 상식 안에서의 ‘악의 없는’ 행동들은 그러나 차곡차곡 이 땅의 지영이들에게 마음의 골을 만들어냈고, 영수 역시 뒤늦게나마 조금씩 자신의 행동을 깨달아간다. 이얼은 <82년생 김지영>이 이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갈라놓고 대립하게 만드는 구도가 아니라, 서로 한번 지금까지의 과정들을 생각해보자고 말을 건넨 영화 안에서 또 하나의 대화의 장을 열어주는, 그래서 이 영화 속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한몫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스튜디오 앞에서 만나 인사를 건네는 순간부터 배우는 손사래를 치기 바쁘다. “
[<82년생 김지영>의 배우들②] 아버지 역 이얼 - 지금 나이의 얼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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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같은 내 새끼. 옥 같은 내 새끼….” 미숙(김미경)이 지영(정유미)을 부른 순간, 관객의 눈물샘도 터진다. 김미경 배우가 연기한 지영의 엄마 미숙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클라이맥스를 책임지는 인물이다. 자신이 겪었던 억울함은 경험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금지옥엽 키운 딸이, 실은 ’허깨비’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엄마의 심정은 많은 관객의 눈시울을 적셨다. 하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김미경이 연기하는 미숙은 ‘신파 담당’으로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다. 청계천에서 미싱을 돌려 가족을 건사할 만큼의 강인한 생활력, 아들만 챙기는 남편의 무심함을 지적하며 주눅이 든 딸에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용기를 북돋는, 가족의 든든한 중심축이자 한 시대를 선 굵게 관통해온 중년 여성으로서의 생명력을, 배우 김미경은 진솔하고도 힘 있게 보여준다. “배우로 살아오면서 내가 믿고 매달린 단 하나의 원칙은 ‘진심은 통한다’는 거다. 내가 진심이
[<82년생 김지영>의 배우들①] 어머니 역 김미경 - 딸 이라는 이름의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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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발견.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가장 큰 매력은 이미 익숙한 배우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빛나는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는 배우 출신인 김도영 감독의 캐스팅 원칙과도 맞닿아 있는 선택이었다. “마치 우리 주변에 정말로 있을 법한 사람, 진정성이 느껴지는 배우”를 찾던 김도영 감독은 대학로로 눈길을 돌렸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거나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 실력이 검증된 배우들을 찾았다. “사람들은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했지만 나로서는 꽤 안전한 선택이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주인공 지영의 친어머니와 시어머니를 연기한 두 김미경 배우부터 아버지를 연기한 이얼, 지영의 언니 은영을 연기한 공민정, 김 팀장 역의 박성연, 지영의 직장 동료 혜수 역의 이봉련까지, <82년생 김지영>의 배우들은 가족, 동료, 친구의 얼굴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각각의 배우들에겐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을까.
[스페셜] <82년생 김지영>의 배우들을 만나다 - 보통의 얼굴, 누구보다도 특별한 ①~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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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렸다. 대만 뉴웨이브를 이끈 거장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페이 스토리>가 34년 만에 국내 개봉한다. 에드워드 양과 함께 대만 뉴웨이브를 이끌었고,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필름 파운데이션과 함께 디지털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이 영화는 <공포분자>(1986)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과 함께 에드워드 양의 ‘타이베이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불린다.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 불릴 만큼 급격하게 성장하는 대만의 도시화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가 수시로 충돌하고, 그런 상황에 휩쓸리다시피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쓸쓸한 도시 이야기다. 이 영화는 이후 제작되는 <공포분자>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큰 토대가 된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연기력과 앳된 얼굴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이 건물들을 봐. 어떤 건물이 내가 디자인한 건지 모르겠어. 전부 똑같아 보여. 내가 있든 없든 점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페이 스토리>와 타이베이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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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더레코드.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 비공식 발언. 진짜 재밌는 이야기는 오프더레코드 상태에서 오갈 때가 많다. 배우 장혜진과의 인터뷰는 실제로 녹음기를 껐다가 켜기를 반복하며 진행됐다. 종종 오프더레코드를 요청했던 건 거짓말을 못하는 솔직한 성격 때문. 장혜진은 적당한 거짓말로 상황을 눙치는 데 영 서툴러 솔직하게 말하고서 상대를 믿어버리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척’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제일 어렵다고 할까. <니나 내나>의 이동은 감독은 그런 장혜진을 두고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직관적이고 솔직하게 연기하는 배우”라고 했다. 이동은 감독은 <환절기>(2018), <당신의 부탁>(2017) 그리고 <니나 내나>까지, 평범한 듯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처를 안고 있는 고유한 인물들을 가족 드라마로 풀어내왔다. <니나 내나> 역시 오래전 집을 나간 엄마에게서 당도한 엽서 한장으로 미정(장혜
<니나 내나> 배우 장혜진 - 지치면 쉬면 되지 힘들면 울면 되지 화날 땐 화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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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무서운 곳이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의 주인공 호다카(다이고 고타로)는 혈혈단신 도쿄로 상경하자마자 가부키초라는 유흥 거리의 만화카페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감독은 전작 <너의 이름은.>에 이어 무작정 도쿄로 떠나고 싶어 하는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번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날씨의 아이>는 세상의 형태를 바꿔버릴 아이들의 활약을 다룬 이야기라는 것. 개봉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도쿄행을 결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도쿄로 떠나던 날, 19호 태풍 하기비스가 부상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까지만해도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는 조금은 안이한 생각에 겁도 없이 도쿄로 향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날씨의 아이>의 호다카도 겁도 없이 가부키초의 밤거리를 홀로 돌아다니다가 위험천만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여러모로 위험한 도쿄에서 호다카는 우연히 뒷골목에서 권총을 줍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 배경이 된 도쿄를 탐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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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관 개봉으로 어렵게 6천여명의 관객과 만난 영화 <박화영>(감독 이환, 2018)은 사회적 약자의 처연한 쟁투를 하이퍼리얼리즘의 시선에서 포착했다는 평가와는 별개로 영화산업 생태계의 급격한 기울기를 증명하는 숱한 사례 중 하나로 잊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들이닥쳤다. 극장 상영이 완전히 종료된 이후 느닷없이 ‘박화영’이라는 키워드가 각종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등재된 것이다. 발단은 비교적 단순해 보인다. 유력 유튜브 영화 채널 <고몽>에서 <박화영>을 바로 그즈음 소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역주행의 파장은 결코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이전 시기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플랫폼이 기성의 시스템을 완전히 능가한 사태이기 때문이다. 2차 가공이 1차 창작을 압도하는 이러한 미래형 사건 앞에서 한국영화는 과연 어떠한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수행한 과제는 미래 어젠다 연구였
[한국영화 100년⑤] 한국영화 100년 미래 어젠다 연구에 대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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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서 한국영화 축제를 연다는 것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식’에 들어갈 영화 관계자들의 축전 영상을 보았는데, 마지막 멘트가 똑같다. 모두가 “한국영화를 사랑해주신 관객 여러분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영화 100주년이 영화인들의 잔치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영화를 보는 시민들, 국민들 것이기도 하잖나. 그동안 ‘영화의 날’ 행사는 거의 실내에서 열렸는데, 이번에는 광화문광장에서 행사를 열어 최대한 시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또 그분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큰 규모의 행사를 진행하는 데 다소 무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광화문광장에서의 행사를 기획했다.
-이틀간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 원칙이 있었다면.
=우선 첫날은 시민과 함께하자는 게 기본이었다. 로봇 VR 영화관은 SK의 협찬을 받아 선보이는 행사인데, 이제 영화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 5G AR·VR
[한국영화 100년④] 광화문 축제 총연출 맡은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전시·공연분과 위원장 양윤호 감독, "모두가 재능기부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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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의 뿌리는 이제, 천년의 숲으로 갑니다.”(이장호 감독, 배우 장미희) 2019년 10월 27일, 최초의 한국영화가 개봉한 날로부터 100주년 되던 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한국영화 100년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한 세기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한국영화 수록곡을 다양한 뮤지션의 목소리로 들어보고, 한국영화의 ‘시간’, ‘사랑’, ‘사람’, ‘꿈’을 주제로 세대를 아우르는 배우들이 스토리텔러로 나서 이야기를 들려주며, 공연 사이사이 한국의 영화감독 100명이 참여한 100초 단편영화 프로젝트 ‘100×100’을 상영하는 자리였다. 음악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열린 ‘한국영화 100년 기념식’에서는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이장호 감독, 배우 장미희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문화계 귀빈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영상을 통해 축하의 말을 건넨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은 “이제 온라인 플랫폼의 발전 등 5세대 통신
[한국영화 100년③] 10월 26, 27일 열린 ‘한국영화 100년 기념 광화문 축제’ 현장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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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충정로 LW 컨벤션센터에서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글로벌 한국영화 100년–사유하는 필름을 찾아서’는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국내외 영화학자들이 모여서 각자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을 하는 자리였다. 셋쨋 날 라운드 테이블 토론에서 모더레이터를 맡은 박현선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가 말했듯이 “국내에서 보는 한국영화와 해외에서 보는 한국영화는 온도차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연구 분야도, 국적도 다른 학자들이 모여 각자가 주목하는 한국영화의 단면을 한데 모아 입체적으로 조형했다. 3일 동안 진행된 학술 행사인 만큼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논의가 오갔지만 이번 기사는 크게 세 가지에 집중하려 한다. 주목할 만한 세션과 시네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출판 워크숍, 라운드 테이블 토론을 중심으로 현장을 재구성했다.
‘트랜스’ 개념으로 한국영화 사유하기
3일간 32개의 주제로
[한국영화 100년②] 한국영화 100년 국제학술대회 현장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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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오늘을 위한 이야기다. 흔히 과거로부터 차곡차곡 쌓여서 오늘에 이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는 그런 방식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수많은 과거의 사실 중에 중요한 것들을 몇 가지 골라 하나의 실로 꿰어낸 것이 이른바 역사(歷史)다. 때문에 사실 그 자체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들을 꿰어낸 실, 말하자면 누가 무엇을 위해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는가의 문제다. 2019년은 한국영화가 탄생한 지 100년을 맞이하는 해다. 올해가 100년이된 이유는 단순하다. 1919년 10월 27일 김도산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를 한국영화 최초의 영화로 지정하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탄생의 여명기, 수많은 창작물이 다양한 방식으로 민중과 소통하고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중 연극과 필름 상영이 결합된 형태의 신파극 <의리적 구토>를 최초의 영화로 공론화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최초로 상영된 영화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떤 영화를 우리의 기원으로 삼을 것인지는 오늘날
[한국영화 100년①] 오래된 미래, 앞으로의 100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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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의리적 구토>가 개봉한 지 어느덧 100년.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100년을 맞이한 한국영화의 오늘을 축하하고 단절의 역사를 봉합하여 다음 100년을 기약하기 위한 시간을 준비했다. 10월 27일까지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의리적 구토> 상영 재현과 기념 음악회를 비롯해 출판, 영상, 학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영화의 역사적 시간을 기억하는 행사들이 진행됐다. 여기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한국영화의 지난 100년을 기억하고 미래의 100년을 위한 담론을 마련하기 위한 축제의 시간,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다.
[스페셜] 한국영화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 ①~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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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해밀턴과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복장을 갖추고 세트장에 들어서던 순간, 이 영화는 성공할 거라 직감했다.” 지난 10월 21일, 배우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팀 밀러 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배우들의 매력과 노력을 치켜세우면서 이같이 말했다. 어떤 감독도 훌륭한 배우들과의 작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가 제임스 카메론조차 제작자로 컴백을 선언했던 이 거대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후속작 연출자 자리에 부담을 갖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무엇보다 <데드풀>(2016)로 연출 데뷔한 팀 밀러 감독이 두 번째 연출작으로 슈퍼히어로가 아닌 터미네이터와의 미래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30분간의 기자회견과 별도로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 단 10분 동안 게 눈 감추듯 끝나버린 대화만으로 이에 관해 솔직한 답변을 듣기란 쉽지 않았지만, <터미네이터2>(1991)의 트럭 추격 장면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그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팀 밀러 감독 - <데드풀>보다 약하다고? <터미네이터2>보다는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