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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라마, 예능에 이어 연극무대에 처음으로 도전 중이다.
매일 행복하다. 고난마저 달갑다. 이런 기분은 대학 연기과 입시 이후로 처음이다. 그땐 혼나고 깨져도 아랑곳않고 마냥 행복했는데 그 기쁨을 연극무대에서 다시 누리는 중이다. 무대의 매력도 알았고 연극에 꼭 한번 도전하겠다는 꿈도 컸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까지 연극을 좋아할 줄은 몰랐다. 신구 선생님을 포함해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이하 <불란서 금고>)를 함께하는 선배 배우들이 무대와 연기를 대하는 마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감동이 남다르다. 연습부터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진지하게 작품에 임하는 선배들을 볼 때마다 내가 첫 연극에서 이런 축복을 누려도 되나 싶고. 이젠 어느 현장에 가도 막내가 아닌데 <불란서 금고>에선 막내인 점도 좋다. (웃음)
- 같은 텍스트를 가지고 관객 앞에서 매일 다른 연기를 선보이는 희열도 느끼나.
나와 상대 배우의 호흡 위로 관객
[인터뷰] 알아서 대본이 들어오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 연극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 배우 금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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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금새록을 포털에 검색하면 ‘금새록 복싱’이 자동완성됐다. 일찍이 영화 <카브리올레>에서 권투 실력을 자랑한 바 있지만, 복싱 예능 <무쇠소녀단2>에서 보여준 악바리 근성이 배우 이름과 운동 종목을 연관짓게 만들었다. 올해 금새록은 검색어 ‘금새록 연극’을 새로 생성할 전망이다. 장진 감독이 연출한 연극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로 대학로 무대에 데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스포일러를 암시할 수밖에 없는, 미스터리한 은행원으로 분한다. 연극 데뷔 한달차에 접어든 배우 금새록을 만나 그의 첫 연극 도전기 그리고 지금의 금새록을 있게 한 수많은 승부수를 물었다. 데뷔 11년. 음색에 태도를 담고, 연기에 인생을 걸어온 금새록의 ‘2라운드’를 전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배우 금새록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금새록을 입력하세요 - 연극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 배우 금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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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씨네21>엔 저널리즘 영화비평의 오늘날을 고심하게 하는 몇개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이러한 흐름에 관한 (셀프) 리액션이다. 2주 동안 이어진 창간 기념호 특집 ‘잡지, 안녕하십니까’는 전 세계 영화잡지들의 고민을 전했다. 세계 최고(最高), 최고(最古)라 불리는 영화잡지들마저 너나 할 것 없이 비평 지면의 미약해진 힘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이 현상의 구체적 원인은 무엇일까. 단서들은 곳곳에서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다.
먼저 비평계의 트롤을 자처한 gkd는 “지금의 영화 문화는 보편성을 탐구한다는 차원에서 분명 퇴행적”이라며 작금의 영화비평이 사회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씨네21> 1546호). 한편 에이드리언 마틴은 정체성 정치를 중심으로 한 사회정치적 기준이 영화비평을 잡아먹고 있다고 토로했다(<씨네21> 1550호). 한쪽은 영화 문화와 사회의 교환 관계가 공허하다고 말하고, 한쪽은 그 교환 관계가 과잉이라 비판한다. 우연히
[기획]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 오늘날 영화비평의 어휘사전이 빈곤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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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납치당하고 싶다”, 작가 수전 손택이 2000년 <뉴요커>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영화가 자신의 의식을 주변 환경으로부터 강제로 낚아채주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손택에게 영화관이란 자신을 내맡기는 곳, 그녀가 4년 전 에세이 <영화의 쇠퇴>(The Decay of Cinema)에서 썼듯 “이미지의 물리적 현존에 압도되는” 곳이었다.그 에세이에서 손택은 집에서 TV로 영화를 보는 빈약한 경험을 개탄했다. 오늘날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고 영화에 관한 글을 읽는 것에 대해 그녀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인터넷은 분명 우리를 현재로부터 휩쓸어간다. 나 자신을 포함해 손바닥에 꽉 쥔 기기 위로 몸을 구부린 채 거리를 몽유병자처럼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증거다. 그러나 인터넷은 우리를 황홀하게 납치하는가? 손택이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우뚝 다가서는 거대한 스크린의 장관에 대해 말했듯, 인터넷은 “우리의 온전한 주의를 요구”하는가? 온라인에서 우리는 스와이프하거나 스크
[특집] 오늘날 영화잡지 편집자로 산다는 것 - <사이트 앤드 사운드> 편집팀장 이저벨 스티븐스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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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현존하는 영화 전문지 중 가장 오래된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극적으로 변모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그래픽디자이너인 마리나 빌러와의 협업을 통해 전면 리디자인을 단행한 것이다. 오랫동안 고집한 ‘&’를 ‘and’로 바꾸고 영화 슬레이트에서 영감을 받은 굵직한 타이포그래피와 격자 디자인, 서체의 현대적 재해석이 핵심이었다. 무엇보다 사랑받는 것은 새로운 표지 전략이다. 개편 첫호는 네 감독의 초상- 클로이 자오, 스티브 매퀸, 소피아 코폴라, 루카 구아다니노- 을 각각 표지로 내세운 4종 커버였다. 이후에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2024년 10월호), 데이비드 린치(2025년 3월호), 봉준호(2025년 4월호), 폴 토머스 앤더슨(2026년 3월호) 감독 등이 표지를 장식해오고 있다. 매호 ‘감독의 의자’(Director’s Chair) 칼럼에서는 현역 감독이 필자로 참여하며, 감독을 게스트 에디터로 초대하기도 한다. 최초의 게스트 데이터는 2020년
[특집] 언제나 현대적인 -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공적 토대에 기반한 현실적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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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봄, 도쿄시 긴자 도심에 있는 <키네마 준보>편집국의 문을 두드렸다. 한동안 맥이 끊겼던 <씨네21>과 <키네마 준보>의 기사 제휴 등을 논의하고,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잡지사답게 20여년 전과 필진에 변화가 크게 없었으므로, 다행히도 연락이 닿았다. <키네마 준보>의 필진이자 <씨네21>과도 연이 깊은 사토 유 영화평론가가 만남을 주선해줬다.
100년 넘은 잡지이니만큼 <행복한 사전>(2014)에 나오는 근대풍의 출판사 사무실을 상상했으나,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정갈한 화이트 톤의 최신식 오피스였다. 아주 살짝 실망하려는 순간 입구에서 방문객을 반기는 <키네마 준보> 창간호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무려 1919년에 발행된 잡지다. ‘역시 <키네마 준보>구나!’ 싶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편집국 내부를 보니 무언가 기시감이 들었다. 아
[특집] 그쪽은 괜찮으신가요? - <키네마 준보> 편집국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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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마 준보>는 1919년 7월 창간된 일본의 영화잡지다. 현존하는 주요 영화잡지 중 가장 긴 역사를 지닌다. 가장 최근에 발간한 2026년 4월호가 무려 1943호째 잡지다. 시작은 자그마했다. 도쿄공업고등학교(현재 도쿄과학대학) 재학생인 다나카 사부로 등 4명의 친구가 모여 만든 동인지로 출발한 것이다. 초기엔 자국 영화를 비판하고 해외 영화를 물신화하는 경향이 짙었다. 1910~20년대에 일본에서 일어난, 이른바 ‘순수영화운동’에 가담하는 쪽이었다. 노가쿠나 신파극 등 기존 연기 예술의 연극적 요소를 배제한 영화 매체의 순수한 역량을 발견하자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초기 성질은 1924년 시작된 <키네마 준보>베스트 텐 시상식이 얼마간 해외 영화를 대상으로만 이뤄졌다는 사실에서도 발견된다. 다만 1926년 <키네마 준보>베스트 텐에 일본영화 부문이 도입되고, 일본의 영화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최근엔 자국 영화를 다루는 비중이 훨씬 커졌다. 현재
[특집] 107년의 축적 - <키네마 준보>, 종이 잡지에 기반하는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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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 가르송 영화평론가는 2020년 <카이에 뒤 시네마>부편집장에 임명됐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2년간 외부 필진으로서 꾸준히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글을 기고한 그는 잡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적임자였다. 중간에 7~8년간 <카이에 뒤 시네마>를 떠나 다른 매체에서 글을 발표하고 라디오에 출연하며 평론 활동을 하던 기간이 있었지만, 2020년 마르코스 우잘 신임 편집장이 부편집장 역할을 제안하면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말해 제안받고 주저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잘 알기 때문에 만만치 않을 거라고 마르코스 우잘 편집장과 페르난도 간조 공동 부편집장에게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쉽지 않은 여정도 어느덧 6년째다. 그 시간은 어떤 경험이었을까. 지금 그가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서울과 파리, 7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영화잡지란 공통점 하나로 그와 화상으로 만나 나눈 긴 대화를 꼼꼼히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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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만 살아남고 싶지 않다” - 샤를로트 가르송 <카이에 뒤 시네마> 공동 부편집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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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는 한권의 종이 뭉치를 넘어 영화사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 영화잡지다. 시작은 1951년, 7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편집장은 영화의 리얼리즘을 특별히 강조한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이다. 바쟁은 영화잡지 <레뷰 뒤 시네마>에서 글을 써오다가 1949년 창업자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폐간을 경험한 뒤 <카이에 뒤 시네마>를 창립하고 스스로 편집장에 올랐다. 바쟁은 1호의 커버로 미국 할리우드영화 <선셋대로>를 내세웠는데, <카이에 뒤 시네마>를 떠올릴 때 프랑스의 영화잡지란 인상이 강하지만 창간호부터 미국영화를 비추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창간 초기부터 프랑스영화계와 심하게 불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1954년 <카이에 뒤 시네마> 1월에 실린,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평문이 된 ‘프랑스영화의 어떤 경향’은 22살의 젊은 평론가가 쓴 프랑스영화 살생부에 가까웠다.
[특집] 역사를 만든 사람들 - <카이에 뒤 시네마>의 ‘작가주의 이론’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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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잡지의 문을 닫는 사람들은 거창하거나 뭉클한 고별사를 마다하곤 한다. 대개 원치 않는 결과였을 터다. 2024년 봄, 캐나다의 영화 계간지 <시네마스코프>의 편집장이자 비평가인 마크 퍼랜슨은 97호 에디토리얼에서 종간을 알리며 이렇게 썼다. “이 잡지를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들 방법은 구걸이 아니고서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가이 매딘 감독이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을 표지로 두른 마지막 호는 특별한 장식도 없이 평소처럼 발행됐다. 한 시대의 종언치고는 담백한 퇴장이다.
<시네마스코프>의 폐간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국제 잡지·미디어 산업 협회인 FIPP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잡지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연평균 3.1%씩 줄어들고 있었고, 2020년에는 전년 대비 16% 급락을 기록했다가 2022년 들어서야 소폭 회복했다. 이들의 예측은 앞으로도 연평균 약 2.1%의 감소가 지속될 거란 전망이다. 전세계 종이 잡지 시장의 하강 곡선 안에서
[특집] 종이는 무엇을 기념할 수 있을까 – 전 세계 주요 영화지들의 운영 현실을 개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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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씨네21>을 정기 구독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매혹시키는 이 영화잡지를 직접 사는 것은 특별한 의식이었다. 경남에 살던 어린 시절 <씨네21>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날은 목요일이었다. 그날이 되면 아파트 앞 편의점 신문 가판대에서 잡지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걸어갔고, 문화 소양이 깊은 시민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유광 컬러 표지를 일부러 미끌거리면, 표지가 내지와 부드럽게 분리되는 촉감이 좋았다.
훗날 세르주 다네가 <카이에 뒤 시네마>를 사는 의식에 대해 고백한 책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를 읽으며 내 얘기처럼 느껴져 놀랐다. 그는 노란 테두리가 둘러진 잡지를 살 때 “그날만을 기다렸으면서도 마치 관심 없다는 듯이 집어왔다”고 했다. 내 유년 시절보다 겸손했던 다네. 그가 영화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낼 때 <카이에 뒤 시네마>를 소환했듯이 <씨네21>은 영화에 대한
[특집] 잡지, 안녕하십니까 vol.1 - <카이에 뒤 시네마> <키네마 준보>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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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이야기해보고 싶다.
1993년 베이징 영화학교(베이징전영학원)에 입학했다.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내게 거대한 스승과 다름없었다. 풍부한 문화 생태를 갖춘 곳이었고, 역사의 변화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시절 베이징에 불어오는 돌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중요한 신념을 세웠다. 영화는 고립된 예술이 아니어야 한다. 영화는 폐쇄 속에 존재할 수 없다. 영화는 예술이므로 관객이 살아가는 동시대의 일부여야 한다.
- 당시의 결심을 조금 더 부연해준다면.
수많은 매체가 각기 다른 각도에서 우리의 삶을 이해하려 든다. 그럴 때마다 동시대의 예술을 다양하게 접할 필요가 있다. 나 역시 학생 시절 다녔던 전시회와 그 당시 관람한 영화를 서로 융합시키며 성장했다. 사회 속에 살며 다양하게 직면하는 사건과 딜레마를 종합해온 것이다. 영화는 종합예술의 한 형태라고 배웠고, 영화 이외의 매체를 통해서도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간절히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기획] 기법 너머 단어와 문장을 선택하는 시나리오를 - 지아장커 감독 마스터클래스 지상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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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듣고, 보고, 느끼라.” 장이머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로 데뷔해 <2046> <게이샤의 추억> 등 수많은 영화에서 활약한 배우 장쯔이는 여전히 예술대학에서 배운 가르침을 바탕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제19회 아시안필름어워즈에서 아시아 영화 엑설런스상을 수상한 그가 시상식 직전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연기 인생 중 잊을 수 없는 몇 순간을 호쾌한 웃음과 함께 회상했다.
<와호장룡>
“당시 현장은 ‘생고생의 구렁텅이’였다. (웃음) 내가 학교에서 배운 무용의 기초를 총동원해 모든 무술 시퀀스를 소화했다. 수련(양자경)과 교룡(장쯔이)이 결투하는 장면을 찍을 땐 손톱이 통째로 뜯겨나갈 정도였다.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머릿속엔 온통 다음날 찍을 액션 생각만 가득해서 자다가 몽유병에 걸린 듯 깨어나 연습한 날도 부지기수였다. 당시엔 연기 경험이 적어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진 못했다. 어린 나는 교룡을 어른 말 안 듣는 재벌
[기획] 장쯔이가 말하는 ‘내 인생의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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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아시안필름어워즈가 3월14일부터 22일까지,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의 시취센터에서 열렸다. 올해 아시안필름어워즈는 지난해 홍콩에서 발생한 왕푹코트 화재 참사를 추모하는 의미로 경쟁부문 시상과 레드카펫 행사를 생략하는 등 그 어느 해보다 조용히 치러졌다. 하지만 아시안필름어워즈는 화려한 볼거리 없이도 행사의 본질을 지켜냈다. 동아시아영화의 역사를 이룩한 영화인들의 특별 강연 ‘마스터클래스’와, 지금 동아시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인들이 한데 모이는 ‘아시안 시네라마’와 ‘인 컨버세이션’ 행사에 집중하며 영화를 찍고 만드는 행위의 의미를 전 세계 관객들과 함께 다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아장커 감독과 배우 장쯔이가 각각 나선 마스터클래스는 취재진과 현지 관객, 영화학도들의 열띤 신청으로 일찌감치 표가 매진됐다. 두 중화권 영화인의 마스터클래스 내용은 이어지는 지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영화인들의 활약 또한 두드러졌다. 황동혁 감독이 지아장커, 장쯔이에 앞서 마스터클래스의 연
[기획] 영화의 내일이 더 밝기를, 세상이 보다 평화롭기를! - 제19회 아시안필름어워즈 축소 개최, 한국 영화인들의 활약 두드러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