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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이미지 상영회와 워크숍을 열고, 시각예술 기반의 창작자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무형의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곳’ 혹은 ‘Formless community for moving images’ . 공간 ‘소리그림’에 대한 정의는 미묘하다. 열평 남짓한 공간에 펼쳐져 있는 상영 공간과 30석 정도의 객석은 전통적인 마이크로시네마의 형태를 띠고 있는 듯하지만, 책장 너머 마련돼 있는 구성원들의 (반)개방형 작업실은 공간의 정체성을 흥미롭게 융합한다. 상영회와 토크 행사, 워크숍 위주로 운영하는 공간이면서 그 범주가 영화뿐 아니라 문학과 시각예술 전반에 걸쳐 있다는 점도 종래의 시네클럽이나 마이크로시네마와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이를테면 소리그림은 에른스트 루비치의 무성영화를 틀고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상영회 및 강연 ‘올리베이라의 방: 소리 들린 그림’을 열어 여러 시네필의 욕구를 채우면서, (비)극장전 기획을 통해 홍다예, 이원영, 최승우 감독 등 지금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제
시각예술 기반의 무형적 커뮤니티, 소리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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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업적, 틈새(niche) 취향의 영화를 상영하는 소규모 공간을 뜻하는 마이크로시네마는 학문적으로 명료하게 정립된 개념은 아니다. 인가된 영화관, 전시 공간, 공연 공간뿐 아니라 대학 강의실이나 강당, 클럽, 사무실, 카페, 버려진 건물, 개인용 거주 공간도 포괄하는 마이크로시네마의 상영 실천은 북미와 유럽, 일본 등에서 각자 상이한 영화 문화 및 제도적 조건을 바탕으로 표준적 영화산업과 상업적 영화 공간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개되어왔다.
1990년대 초 본격화된 마이크로시네마 실천
마이크로시네마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전에도 마이크로시네마 실천의 역사적 전거들을 북미와 유럽의 비대중적, 대안적 영화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파리와 런던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결성되었던 시네-클럽들, 아모스 보겔이 비영리적 회원제를 기반으로 1947년부터 1963년까지 운영하며 유럽의 실험영화, 전후 미국의 전위영화, 교육영화를 포함한 다큐멘터리
대안적인, 실험적인, 동시대적인, 틈새들을 찾아서: 마이크로시네마의 짧은 역사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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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2025년 1분기 극장가에선 <서브스턴스> <더 폴: 디렉터스 컷>을 위시한 해외 아트하우스영화, 재개봉작의 관객몰이가 주를 이루는 모양새다. 한국영화의 경우 설 연휴를 지나며 <히트맨2> <검은 수녀들>이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그 밖의 작품은 괄목할 만한 반등을 보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주류 한국영화계의 침체기가 지속되는 반면 해외 아트하우스영화, 재개봉작이 화제성을 견인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감지한 듯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겨냥한 ‘2025 아카데미 기획전’(씨네Q 신도림점, 롯데시네마 등)이 다수 극장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계획하고 있다. 신작 상업영화를 주로 트는 멀티플렉스에서도 왕가위 감독 걸작선(메가박스), 티모테 샬라메 배우 기획전(롯데시네마) 등 지난해 다양한 특별전이 열렸다.
그러나 세부 타기팅을 시도한 특별전들이 관객의 니즈를 완전히 충족시키진 못했다는
영화 문화의 새로운 확장 한국의 마이크로시네마 현황… 관객의 가장 세부적인 니즈를 충족시키는 운영 방식부터 상영회마다의 특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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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전후로 영화 매체의 위기론이 정점을 찍을 무렵, 국내 곳곳엔 주로 ‘마이크로시네마’ (작은 극장)로 불리는 몇개의 공간과 활동들이 감지되어왔다. 1980~1990년대 한국에서 비디오테크 문화를 중심으로 꾸려졌던 극장 기반의 공간들과 다르게 더 지엽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마이크로시네마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십명 규모의 관객을 알음알음 불러 모아 기성 제도권이 신경 쓰지 못했던 구역까지 영화의 범위를 확장하고, 온라인 SNS 기반의 홍보를 이용해 인터넷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개인들을 한 공간에 모으고 있다. <씨네21>은 이러한 마이크로시네마의 흐름을 왜, 어떻게, 누가 만들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폈으며, 최근 왕성하게 활동하는 세 군데의 마이크로시네마인 소리그림, 시네마토그래프, INK의 관계자를 만나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편 김지훈 영화미디어학자이자 중앙대학교 교수는 해외 마이크로시네마의 역사를 정리했다. 큰 변화는 언제나 작은 움직임에서 태동한다
[특집] 마이크로시네마 가이드 - 국내외 마이크로시네마의 흐름과 소리그림, 시네마토그래프, INK 관계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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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인간의 예술 활동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창작 활동의 기술적인 소도구로서 AI를 ‘사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지만,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 현재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영화계에서 일어나는 AI 논쟁은 과연 예술가를 위협하는 경고일까. 매일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고 심지어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퀄리티도 향상되어 영화의 미래가 어디로 튈지 호기심을 버리기도 어렵다. 2025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영화제작 과정에서의 AI 기술 사용에 대한 흐름과 반응 역시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양상이다. 올해 아카데미를 장식할 것으로 기대되는 영화들 역시 AI 기술과 얽힌 논쟁을 피해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마냥 부정적으로 보거나 배척해야 하는 것인 양 침묵하는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AI 기술이 영화에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 현실을 똑바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획] 할리우드는 AI 논쟁 중, 예술의 영역에서 AI의 사용은 반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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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2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리뷰나 구구절절한 설명을 따로 보태진 않겠다. 지금부터 하려는 건, 주로 보이는 것 ‘그다음’ 혹은 ‘그 주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한번쯤은 들어봤을 ‘세카이계’에 대한 동시대적 해석본에 가깝다.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이하 <데데디디>) 시리즈는 세카이계의 계보에 뚜렷한 궤적을 남길 만할 문제작이고, 이곳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히로시다. <데데디디>의 표면적인 주인공은 물론 절대적 관계로 맺어진 두 여학생 카도데와 오란이겠으나 <데데디디>적 정서의 핵심축은 다름 아닌 히로시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19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기점으로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그 종결 혹은 변주를 꿈꾸는, 속칭 세카이계의 실타래에서 히로시는 우리에게 새로운 풀이의 가능성을 던진다. 미성숙한 소년·소녀의
멀티-세카이계의 어른,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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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센터>를 보면서 ‘10초 앞으로’ 버튼을 눌렀나 하는 착각을 자주 했다. 그만큼 빠르게 느껴졌다. 이 빠름이 뭔가 달랐던 건 그동안의 시리즈에서 느껴본 적 없는 속도였기 때문이다. 캐릭터 빌드업 구간이 짧고, 잘게 쪼갠 편집은 쇼츠 시대의 요즘 시리즈가 가진 공통적 특징이니 이게 이유의 전부일 리 없다. 그렇다면 이 기묘한 속도감은 의료진이 긴 병원 복도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장면이 많은 탓일까. 아니면 속전속결을 절대 추구하는 주인공의 장악력이 컸던 걸까. 빠른 체감 속도의 근원을 찾다가 불현듯 기시감이 들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점프한 것 같고 모든 장면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동시에 사라지는 이 스피디함은 시리즈 요약본 콘텐츠에서 느끼던 감각을 닮아 있었다.
“딱 보면 감 안 와?”
시리즈 전체를 몇 시간 분량으로 정리해주는 요약본 콘텐츠에서 중요한 건 속도와 핵심이다. 배경 공간과 등장인물의 기본 설정, 회차마다의 주요 사건 등 꼭 필요한 정보만 빠르고
속도 빠른 깔끔함 덕분에 혹은 그 때문에, <중증외상센터>, 분명 재미있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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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두번 완성된다. 첫 번째는 감독의 손을 떠날 때, 두 번째는 관객이 화답할 때다. 완성도와 성취, 흥행이나 평가와는 무관하게 작품이 끝나고 나면 보는 이가 어떤 식으로든 말을 건네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 최근 개봉한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은 좋은 의미에서 괴작이다. 마치 미지의 존재처럼 쉽사리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힘든 이 작품은 외계인,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삼은 단순한 장르물을 넘어 일본의 현재와 집단의 무의식을 더듬을 수 있는 비밀의 통로 같다. 한편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는 높은 화제성과 인기만큼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 만큼 이를 둘러싼 흥미로운 반응들이 눈에 띄는데, 어쩌면 거기에 이른바 ‘시대정신’이 녹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꼭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작품만큼이나 작품을 둘러싼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아야 한다. 이 불균질하고 매혹적인 결과물들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해석과 더
[기획] 이 영화, 할 말 있습니다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과 <중증외상센터>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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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으로 거듭난 <퇴마록> 세계관을 마음껏 즐길 방안은 단연 원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섬세하게 기술되는 소설의 특성과 달리 생략되거나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애니메이션 버전을 유연 하게 이해하기 위해 짧은 안내서를 준비했다. 소설과 애니메이션, 두 주축으로 건설된 <퇴마록> 세계관을 즐겁게 탐험하길.
1. 숲을 헤매던 현암은 대체 누구인가
어려서부터 기계체조로 신체를 단련해온 현암은 오랫동안 기공을 연마했다. 비밀리에 전해 지던 태극기공의 비급을 훔쳐 수련을 시작했지만 잘못된 수련 방식으로 전신이 마비되고,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빈 거사에 의해 목숨을 구한다. 스승의 도움으로 새로운 무예까지 배운 행운도 잠시, 스승이 떠난 후 무리한 수련으로 온몸의 혈도가 뒤틀려버린다. 그때 그의 곁을 지나간 두 번째 생명의 은인이 바로 도혜스님이다. 애니메이션 <퇴마록>에서 현암이 사찰에 도착하자마자 “도혜 스님에게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 전하는 이유
그날의 이름은 ‘하늘이 불타던 날’. 원작 <퇴마록>으로 보는 애니메이션 <퇴마록>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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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오컬트 장르의 효시로 각인된 0세대 웹소설 <퇴마록>은 1993년 PC통신 하이텔에 연재된 이래 다양하게 리메이크되었다. 첫 연재 시점 이후 32년 만에 로커스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원작이 가진 힘을 살린 리메이크작을 바라는 오랜 팬들의 기다림과 애니메이션으로 그 방대한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될 새로운 관객의 기대를 사로잡아야 하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2월 개봉을 앞두고 <퇴마록>의 김동철 감독과 원작자 이우혁 작가를 만나 애니메이션 제작 비화를 즐겁게 청해 들었다.
-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이다. <퇴마록>을 리메이크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과 목표가 있었나.
이우혁 애니메이션 제작은 개인적으로 불감청고소원이었다. 이 작품에 환상적인 요소가 많으니 애니메이션이 가장 현실적인 수단 같았다. 실사영화라면 세트 제작도, 특수효과도 제작비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나. 중요한 건 애니메이션이기에 캐릭터의 이미지
죄와 무구 사이…오컬트적 세계를 복합적으로 그려내다, <퇴마록> 김동철 감독 , 이우혁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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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여름, PC통신 시절 하이텔에 연재된 <퇴마록>은 이듬해 1월 단행본으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모든 퇴마사가 힘을 합치기 시작하는 ‘국내편’을 비롯해 ‘세계편,’ ‘혼 세편’ , ‘말세편’까지 <퇴마록>은 완결에 이르는 동안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너른 세계관 설정과 혼합된 전례 없는 한국형 오컬트는 원작자 이우혁 작가를 한국 판타지 문학의 0세대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극초반까지 이어진 <퇴마록>의 연재 기간은 작품의 중요한 정체성이기도 하다. 어떤 현실이 펼쳐질지 쉽게 예측할 수 없어 대중적 불안이 점진적으로 오르던 세기말 풍토는 인간을 향한 희망과 불신을 함께 품었고, 과학이나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에 의지하고 싶어 했다. 특히 구원자의 등장과 여러 능력자가 힘을 합쳐 싸우는 인류애적 소망은 (PC통신 커뮤니티에 SF 게시판 자체가 없던 시절임에도) 오컬트를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그
“내가 필요한 곳이라면…어디든 가는 거지”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태어난 <퇴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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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루탈리스트>에는 미국에 도착한 이민자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매춘부를 품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상하게 이 장면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매춘부보다 라즐로의 몸을 전시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매춘부의 머리 위로 라즐로의 조각상 같은 몸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 몸을 파는 것인지 다소 모호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생각나는 문장 하나. 미국 현대건축의 대부로 불리는 건축가 필립 존슨은 잘 알려진 그의 건축 글래스 하우스만큼이나 도발적인 말을 남겼다. 보통 “건축가는 창녀다”라고 짧게 알려져 있지만 전체 문장을 소개하면 “건축가는 상류층의 창녀다. 매춘부가 고객을 거절하는 것처럼 건축가도 프로젝트를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각자의 직업에서 살아남으려면 둘 다 누군가에게 ‘예’라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이다. 필립 존슨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일찍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신이 건축주가 되어 사면이 유리인 글래스 하우스를 설계
건축가의 눈으로 본 영화 <브루탈리스트>, ‘아름다움’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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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과거의 데이터가 소용없는 춘추전국시대”다. 업계 관계자들은 극장에서의 성패를 가늠할 때 무엇보다 기존 관행에서의 탈피가 필요한 시점임을 한목소리로 말한다. “감독, 배우가 주는 기대감으로 만족되는 시대는 끝났고 관객의 허용을 바라는 장르적 컨벤션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음”이 증명됐다. “예측 가능한 감동, 틀에 짜인 이야기 흐름, 스타 캐스팅에 의존한 작품”은 “세대 변화를 반영하지 않아 영화 주요 소비층인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나리오와 메시지가 흥행을 좌우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는 체감은, 달리 말해 작품성이라는 오래된 정답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막 지나온 2024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척도로 볼 때 도대체 ‘작품성’이란 무엇일까. 관계자들은 주로 마니악함, 명확한 타깃층 상정, 젊은 소비자들의 입소문에 부응하는 작품을 다수 거론했다. 한편 “시나리오와 대본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자칫 현실적으로 마케팅이 편
결국 시나리오, 결국 메시지 - 극장산업의 미래와 배우들의 세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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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장 왕성한 제작력과 개발력을 갖춘 제작사.” 2년 연속 주목해야 할 스튜디오 1위로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선정되었다. <서울의 봄>만큼 압도적인 흥행작은 없었지만 “중견 제작사로서 꾸준하고 튼튼한 실적을 쌓아”온 한해였다. <핸섬가이즈> <보통의 가족> <하얼빈>을 내놓으며 “2024년 모두가 영화시장의 축소를 이야기할 때도 투자자들에게 ‘한끗’ 달라진 이정표”를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뚝심”, “기본”, “꾸준함”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 탁월한 캐스팅, 투자 유치, 론칭 능력” 등 “흥행을 꿰뚫고 있는” 제작사가 갖춰야 할 덕목을 고루 갖췄기 때문이다. 올해도 <야당> <열대야> <보스>, <행복의 나라로> 등 “꽉 찬 라인업”이 줄지어 대기 중이다. 이동욱, 이성경 주연의 <착한 사나이>, 우민호
기획력부터 성적까지, 2025년 주목해야 할 스튜디오/연출자 - 2년 연속 하이브미디어코프가 1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