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일본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하 <무한열차편>)은 코로나19로 인해 할리우드 대작이 사라진 한국 극장가를 강타했다. 5년 뒤인 2025년에 공개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하 <무한성편>)은 일본에서 개봉 8일 만에 100억엔을 돌파하고, 한국 극장가에서도 개봉 1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이런 흐름이 단발적인 현상이 아님을 입증했다. 이를 이뤄낸 것은 도쿄의 대형 제작사가 아닌, 지방 도시 도쿠시마를 거점으로 한 중형 스튜디오 유포테이블이었다.
변방이었기에 가능했던 ‘자립’
이를 계기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는 것이 도쿄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애니메이션 제작 체제와는 선을 그은, 지방에 거점을 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다. 교토부 우지시에 설립된 교토 애니메이션은 본래 인근의 주부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태생부터 수익성보다는 직원 복지
[특집]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부활한 ‘전국시대’
-
누적관객수 540만명을 달성한 <좀비딸>팀에서 기분 좋게 마케팅 전략을 새롭게 정비한다는 이야기가 들릴 즈음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하 <무한성편>)이 개봉했다. 박스오피스 순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 텐트폴의 입장을 생각할 때 아마도 방어 대상은 <무한성편>으로 추측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흥행 속도가 전투적이고 가파르다. 개봉 전날 사전예매율이 79만명에 다다랐고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관객수 339만명을 돌파했다(9월4일 기준). 올해 국내에 개봉한 해외영화에서뿐만 아니라 2025년 전체 영화시장에서 봐도 기록적인 수치를 쌓고 있다. 1위를 석권한 극영화가 다른 개봉작을 염두에 두는 것은 흔한 풍경이지만 그것이 애니메이션인 것은 여전히 생경하다. 보통 이러한 흥행 풍경이 펼쳐지면 <씨네21>은 작품 속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시대상과 어떻게 맞물렸는지, 대중의 어떤 욕망을 건드렸는지, 동시대적으로 어떤 경향
[특집] 다시 또, 애니메이션이다 - 2025년의 신기록을 달성 중인 애니메이션 열풍
-
미술 교사 정하(장영남)에게 아들 진우(류경수)가 좋지 않은 타이밍에 찾아온다. 정하는 유방암으로 휴직을 신청했고, 동성 연인 지선(옥지영)은 하루 일찍 집에 돌아온 참이다. 진우 역시 비밀이 있다. 다만 캐나다에서 다닌 어학원을 그만두고 요리 유튜버를 하겠다고, 함께 온 연인 제니(스테파니 리)와는 결혼하겠다고 재빨리 고백하면서 가족의 비밀은 얽히고설킨다. <비밀일 수밖에>가 그려내는 가족의 풍경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배경인 춘천의 독특한 템포에 실려, 호젓하면서도 서늘한 정서를 빚어낸다. 배우 장영남과 류경수가 그 중심에 있다. 올해 공개된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 함께 출연했으나 마주하는 장면이 없었던 두 배우는 간만의 만남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상상극장과 호기심 천국, 고민상담소를 오가는 이들의 대화는 강물처럼 흘러갔다.
- 춘천에서 한달간 찍었다고. 지금 떠오르는 도시의 풍경은.
류경수 그때 선배님이 무척 바쁘셨다.
장영남 맞다. 일정이
[인터뷰] 서로에게 닿기를, <비밀일 수밖에> 배우 장영남, 류경수
-
<비밀일 수밖에>는 김대환 감독이 <철원기행>과 <초행>에 이어 만든 가족 소재의 영화다. 감독 스스로도 장편영화 세편을 ‘가족 3부작’이라 묶은 바 있지만 이 트릴로지의 종장엔 전작과 달리 제목에 ‘행’(行)이 붙지 않는다. 김대환 감독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정하(장영남)의 비밀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자기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목이 비밀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비밀일 수밖에’와 ‘비밀’일 수밖에 없다는 중의적 의미로 해석되는 감독의 말을 들으니, 영화가 품은 이중성을 속속들이 물을 수밖에 없었다.
- 스스로 가족 3부작을 완결하겠다고 밝힌 이후 탄생한 영화다.
<철원기행>은 아버지 그리고 이혼, <초행>은 동 세대 그리고 결혼을 다루었다. 이제 남은 건 어머니 그리고 재혼이었다. 시나리오를 구상하던 중 요즘 시대에 재혼이 별일일까 싶었다. 고민하던 중 자녀를 출산한 후 커밍아웃한 어느 여성의 기사
[인터뷰] 이제는 아들 세대를 바라보는 영화를 생각하게 됐다, <비밀일 수밖에> 김대환 감독
-
-
솔직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은 다르고, 진실과 사실 또한 다르다. 우리는 가깝고 내밀한 사이일수록 정직하게 사실을 고하지만 그들 앞에 솔직한 채 진실을 꺼내 보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비밀일 수밖에> 속 정하(장영남)와 진우(류경수) 모자도 그렇다.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지만 각자에겐 잠시 또는 평생 감춰온 비밀이 있다. 두 모자는 모처럼의 만남을 틈타 속내를 드러낼 타이밍을 잡으려 하지만 제니(스테파니 리)의 가족과 엉겁결에 며칠을 보내며 서로의 진심을 예의와 사교 속에 잠시 묻어둔다. 이들의 비밀은 언제, 어떻게 서로를 해치지 않은 채 드러날까. <비밀일 수밖에>로 가족 3부작을 완성한 김대환 감독, 영화의 두 주연인 배우 장영남, 류경수를 만나 잘 아는 만큼 모르는 가족에 관해 들었다.
*이어지는 글에서 김대환 감독과 배우 장영남, 류경수와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아는 만큼 모르는 가족에 관하여 - <비밀일 수밖에> 김대환 감독, 배우 장영남·류경수를 만나다
-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작인 <어쩔수가없다>에서 손예진이 맡은 이미리는 두 아이와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이자 ‘경력 단절 여성’이다. 그러나 영화 속 미리는 이런 단순한 규정에 머물지 않는다. 남편의 실직 앞에서는 다시 일터로 나가고, 남편의 살인을 마주한 순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한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맞닥뜨린 인물의 초상은, 다시 카메라 앞에 선 배우 손예진의 현재와도 은근히 포개진다. 차기작 촬영까지 쉼 없이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이번 영화가 지닌 의미와 지금의 감정에 대해 들어봤다.
- 베니스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한국에서는 초반에 신발을 선물받고 “여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엄청 웃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거기에서 안 웃더라. 우리는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해줬을 때 아내의 상기된 목소리가 너무 웃기지 않나. 그런데 외국에서는 그런 걸 모르는 것 같더라.
- <비밀은 없다>는 이경미 감독이 박찬욱 감독과 함께 시나
[인터뷰] 독특한 리듬감의 웃음 포인트를 잡으며, <어쩔수가없다> 배우 손예진
-
20년 넘게 ‘종잇밥’만 먹은 고지식한 인물 만수는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한 순간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해고되고, 살인을 결심한다. 합리적인 대안 대신 이상한 계획에 집착하는 이 애처로운 실직 가장의 행동은 평범하지 않지만 볼수록 납득이 된다. <어쩔수가없다>가 형성하는 설득력의 상당 부분은 배우 이병헌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객의 반응에 세심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준 이병헌은 박찬욱 감독과의 세 번째 작업에 대해 즐거운 낯빛으로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게 답했다.
- 프리미어 상영 후 반응은 어떤 것 같나.
듣기로는 우리가 본 상영보다 오전 언론시사에서 훨씬 더 웃음이 많이 나왔던 걸로 안다.
- 처음엔 코미디로 받아들여 웃음이 나오다가 나중에 진지한 분위기로 전환될 때 다들 약간 뒤통수를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만 알고 있는 어떤 이야기나 유머들이 있어서 이게 통할까 궁금했던 지점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제 관계자한테 물어봤더니
[인터뷰] 애매모호한 감정의 순간들 담아내기, <어쩔수가없다> 배우 이병헌
-
박찬욱 감독이 다시 베니스 무대에 섰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20년 만이다.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전세계 영화 팬들의 시선을 모았다. 25년 몸담은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유만수(이병헌)가 재취업을 위해 세명의 경쟁자를 제거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번 영화는,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가장 유머러스하다. 그러나 웃음 뒤에 도사린 날카로운 연출의 칼날은 여전히 박찬욱답다.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진 프리미어 상영 다음날 아침, 감독은 한국 취재진과 마주 앉아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지난번 <헤어질 결심> 칸 시사회 때는 “눈치보느라 웃지 못했다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프레스 시사 때도 그렇고 프리미어 상영에서도 웃음이 많이 나왔는데.
언론시사회 때는 웬만해서는 웃지 않는데, 이번에는 많이 웃었다는 전언에 좋은 소식이라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대목은 유만
[인터뷰] 내가 만들어놓고도 볼 때마다 많이 웃는 장면이 있다,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
제82회 베니스영화제의 흥행을 이끈 주인공에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 등 레드카펫을 밟은 할리우드 톱스타만 있는 건 아니다. 개막 3일째인 8월29일(현지 시간)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영화제 열기를 견인한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날 아침 8시30분에 상영하는 언론 시사를 보기 위해 메인 극장인 팔라초 델 시네마 건물의 ‘살라 그란데’ 앞에 선 줄은 7시30분부터 옆 광장까지 길게 이어졌다. 일반 상영에 비해 차분한 기자시사 현장에서 큰 웃음과 박수소리가 자주 나왔다. 상영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열린 기자회견장은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의 팬미팅을 방불케 했다. 진행자는 “손을 너무 많이 들었는데,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어쨌든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게 원래 영화제에 흐르는 분위기인가 했더니 이 기사를 쓰는 9월3일 낮까지 이 정도의 열기는 재현되지 않았다. 2023년 <헤어질 결심>이 초청된 칸영
[기획]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현지 리포트
-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이하 베니스영화제)가 지난 8월27일 베니스 리도섬에서 개막했다. 올해는 경쟁부문에 유럽과 미국, 중국, 대만, 한국 등에서 출품된 21개의 경쟁작들이 황금사자상을 두고 경합을 벌인다.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 에마 스톤, 드웨인 존슨, 어맨다 사이프리드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빛내며 열기를 높이고 있는 베니스영화제 현장을 아직 수상 결과가 나오지 않은 4일 오전(현지 시간) 시점으로 소개한다. 이병현 영화평론가가 박찬욱 감독, 배우 이병헌, 손예진과 나눈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현지 리포트와 영화 <어쩔수가없다> 감독 박찬욱과 배우 이병헌, 손예진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현실을 직시하는 영화의 목소리 -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현지 리포트…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현지 반응
-
지난 8월13일 국내에 개봉한 시라이시 고지 감독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이하 <긴키 지방>)는 파운드 푸티지 기법을 적극 활용한 호러 무비다. 호러 마니아들을 알음알음 극장으로 부르며 국내에서 20만 관객을 돌파(8월26일 기준)했다. 영화에서 쓰이는 파운드 푸티지란 ‘발견된 영상’이라는 뜻이다. 작품 속 영상이 실제 사건이라는 서사적 속임수를 취하면서 관객에게 극한의 현실감을 주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영화 속 주인공이 우연히 주운 실제 비디오테이프에 어떤 심령현상이 기록돼 있었고, 주인공이 그 기록을 따라 공포의 근원을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한국영화 중에선 <곤지암>이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사용한 대표적 작품으로 언급된다. <긴키 지방>의 시작 역시 일본 도심의 수많은 인파, 그만큼 수많은 미디어의 파도 속에서 떠도는 하나의 영상이다. 실종된 친구를 찾아 달라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마치 유튜브 영상의 질감처
[특집] 당연히,이것은 실화입니다 -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와 파운드 푸티지
-
9월3일 <컨저링> 유니버스의 마지막 시리즈 <컨저링: 마지막 의식>이 개봉한다. <컨저링> 유니버스는 2013년 <컨저링>이 개봉한 뒤로 10년 넘게 호러 무비의 대표적 프랜차이즈로 정통 오컬트 호러의 명맥을 지탱해왔다. 오랜 기간 세계관을 넓혀온 시리즈이니만큼 <컨저링: 마지막 의식>을 감상하기 전에 예습하면 좋을 포인트를 정리했다. <컨저링>의 마지막을 실컷 즐기고, 더 놀라시길.
Point 1. <컨저링> 유니버스의 탄생 설화
<컨저링> 유니버스의 기원은 제임스 완 감독이 유년기에 본 <폴터가이스트>(1982)라 할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 각본으로 참여한 이 작품은 당시 7천만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한 공포영화로 유명하다. 제임스 완은 이 작품이 생애 첫 공포영화로 강렬한 원초적 체험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가장 사랑하는 공포영화 중 하나로 언급한 바 있다. 스튜디
[특집] 가장 다크한 안녕 - <컨저링: 마지막 의식> 감상 가이드
-
<티탄>(2021)이 쏘아 올린 공일까. 보디 호러는 지난 몇년 동안 호러 무비의 주축을 담당하는 장르로 꿈틀대고 있다. <티탄>의 명성을 이어받은 작품은 물론 <서브스턴스>(2024)일 것이다. 두 작품에 부여된 수많은 수상 실적과 화제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두편의 영화가 보디 호러 장르에 남긴 발자취는 뚜렷하다. 데이비드 크로넌버그나 <철남>의 쓰카모토 신야가 활약했던 20세기의 보디 호러를 확장하여 각종 젠더 담론과 여타 장르와의 접합을 이끈 것이다. <티탄>을 연출한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말처럼 <티탄>은 코미디와 보디 호러, 스릴러, 가족 드라마를 섞어낸 이종교배 장르물이다. <서브스턴스> 역시 보디 호러의 중핵에 여성이 느끼는 대상화와 자기혐오의 공포를 둔 작품이었다. 이렇게 보디 호러는 자신의 외연을 온갖 영화에 포함하며 장르의 세포를 주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아킴 트리에르의 <사랑할 땐
[특집] 사랑하는 이들, 하나가 될 텐가? - <투게더>와 보디 호러
-
2025년 북미 극장가의 기둥은 단연 호러 무비였다. 호러 열풍의 기수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씨너스: 죄인들>이었다. 지난 4월 북미에서 개봉한 <씨너스: 죄인들>은 9천만달러의 제작비로 3억6600만달러의 월드 와이드 매출(출처 박스오피스 모조)을 거둬들이며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 15년 동안 북미에서 개봉한 실사 오리지널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이다. 이어진 5월엔 호러 무비의 유명 프랜차이즈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이 개봉하여 제작비 5천만달러로 2억8800만달러의 월드 와이드 흥행에 성공했다. 두 작품의 인기로 호러 무비는 올해 북미 극장가를 책임진 장르로 평가받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올해 북미 박스오피스의 티켓 판매량 17%가 호러 무비였고, 이는 2024년의 11%, 10년 전의 4%를 크게 뛰어넘은 수치였다. 9월5일 개봉할 <컨저링: 마지막 의식>까지 합친다면 올해 북미 박스오피
[특집] 왜(이렇게까지) 호러인가, 올해 호러 무비의 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