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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소망한다. 비를 뿌리거나 잔뜩 찌푸려 있던 하늘에 서서히 구름이 걷히는 틈새로 쏟아지는 햇살처럼, 청명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날을.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에서 사라진 아름다운 날들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SF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는, 애니메이션의 ‘원더풀 데이’를 기다리는 이들의 바람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국산 장편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성공사례를 만들어보겠다는 ‘양철집’ 식구들의 한결같은 꿈 말이다. 인류의 유일한 터전으로 남은 남태평양의 시실섬, 인공 돔 안의 에코반과 그 외곽에 버려진 야성의 공간 마르의 대립 속에서 엇갈리는 젊은이들의 운명의 행방은 내년 여름이 돼야 알 수 있겠지만, 제작사 양철집을 찾아갔을 때 그들의 세계를 조금 엿볼 수는 있었다.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입구에 위치한 양철집은, 이름 그대로 은색으로 빛나는 양철로 된 집이다. 시내 한가운데보다는, 인공도시 에코
원더풀 디스토피아! 아름다운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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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 갓 사춘기에 접어든 말수 적은 소년. 아버지는 바다에서 돌아가셨고 횟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할머니와 살고 있다. 우연히 마리를 만나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마리 남우에게 찾아온 아름다운 환상 속 소녀. 하얀 털로 가득한 커다란 개 ‘큰 개’와 함께 남우 앞에 나타난 마리는 남우의 일상에 한 토막 아스라한 꿈을 심는다.준호 남우의 유일한 친구. 남우의 환상에 동참하게 되며 바닷가마을을 떠나 서울로 전학을 간다. 남우와 달리 밝고 장난스런 성격. 준호의 아버지 역시 뱃사람이다.감독 이성강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애니메이션 작가. <넋> <우산> <연인> 등 많은 단편을 통해 철학적이고 감성적인 그만의 작품세계를 펼쳐왔고, 한국인 최초로 그의 작품 <덤불 속의 재>가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1999년)에 진출했다. <마리이야기>는 그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850컷에 달하는 이 작품으로, 그는 새로운 실험을 선보이게 된다.제작사 씨즈
등장인물과 스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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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꿈을 꿀 때가 있다. 맑은 물이 흐른다거나 유난히 깨끗한 숲에 들어간다거나, 혹은 거기서 ‘꿈에서나 만날 법한’ 아름다운 이를 만나는 꿈. 그런 기억 하나쯤 있다면 어른이 된 뒤의 빛 안 드는 지하철역도 그리 텁텁지만은 않을 것이다. <마리이야기>는 어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젠 어른이 된 한 남자(아이) ‘남우’의 그런 오래 전 꿈 이야기다. 서울 도심에서 시작해 작은 바닷가마을로, 소년의 환상세계로, 그리고 다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돌아오는 <마리이야기>가 두어달 뒤면 세상에 나온다.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이 작품의 실체가 궁금해 작업실로 찾아가 미리 들여다보았다.소리없는 화면에서 번져온 싸한 감동“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다니!” 누군가 <마리이야기> 작업실에 와서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지만, <마리이야기> 팀의 작업실은 <마리이야기>의 어떤 풍경을 닮은 듯한 옥수동
물고기새 타고 파스텔도원을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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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이야기> 내년 1월13일 개봉, <원더풀 데이즈> 내년 여름 개봉. 그런데, 벌써 영화게가 들썩이고 있다. 한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다시 쓸, 최고작이 한해에 연거푸 나오리라는 섣부른 기대마저 나오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이처럼 색다른 질감의 이미지와 상상력의 국산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나기까지, 우리는 참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제작된 장편애니메이션 가운데 주목할 만한 시도가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외국 작품의 하청 위주로 창작 기획이 턱없이 부족한 제작환경과, 소비층이 얇고 시장규모가 협소한 국내 장편애니메이션의 척박한 토양에서, 이렇게 기존 애니메이션의 틀을 깨고 관객에게 구애를 펼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국내외를 막론하고 애니메이션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잡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만, <마리이야기>와 <원더풀 데이즈>가 빚어내는 이미지의 세계는 어딘가 낯
한국애니메이션의 신천지를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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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 성경 나는 인천 한번도 안 가봤는데 감독이 의도적으로 인천에서 동대문까지 오는 장면을 보여줄 때 인천이라는 공간의 특색을 보여주려고 한 걸 느꼈어요.● 원 인천이라는 공간도 그렇고 내용 자체도 그렇고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틀도 그렇고 암울한 분위기가 많아요.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았지만 보는 내내 가슴이 아프고 부탁하고 싶고 누가 맡아줬으면 좋겠고 그런 기분에 빠져들게 했어요.● 성경 드라마에 많이 나와서 인천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가 있어요. 월미도에서 회를 먹고 배타고 갔더니 배가 끊겨서 하룻밤 자고 그런 드라마 많잖아요. 놀이공원도 반짝반짝하고 이런 이미지였는데 <고양이를 부탁해>에선 바람이 세게 불고 서늘해보여서 얘들이 참 험난한 길을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서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혜주가 서울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게 보이잖아요. 서
“스무살, 세상은 내 것이 아니에요, 이 영화는 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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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는 스무살 또래들의 눈망울은 어떤 것일까? 찬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마지막 잎새처럼 오직 한 군데 극장에서 상영을 계속중인 이 영화에 대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거들고 있지만 정말 할말이 많은 사람들은 영화 속 인물들과 동갑내기인 82년생 개띠 젊은이들일 것이다. 스크린을 벗어나 현실에서 만나는 태희, 혜주, 지영, 비류, 온조는 과연 자기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꼈을까?영등포구청 근처에 위치한 대안교육기관인 직업체험학교 하자센터(센터장 조한혜정)에서 만난 그들은 더러 학교를 중퇴하기도 하면서 남들과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하자센터에서 매일 아침 조찬모임을 갖는 ‘우주로 통하는 골방’의 멤버들이며 ‘디지털 이미지와 디지털 텍스트’라는 영상관련 수업을 함께 듣는 그들은 “제발 작품성이 어쩌고,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 어쩌고 하는 얘기를 그만두라”고 입을 모은다. 어른들의 그런 딱딱한 주례사말고 <고양이를 부탁해>를 놓고
“스무살, 세상은 내 것이 아니에요, 이 영화는 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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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은 캐스팅도 즉흥적으로 했다. TV를 잘 보지 않는데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홍국영>에 나온 김상경을 봤고, <줄리엣의 남자>에 나온 예지원을 발견했다. “둘 다 극중 캐릭터로 보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삐죽이 나와 있는 게 보였는데, 그 느낌이 좋았다”고 한다. 추상미는 <강원도의 힘> 때 캐스팅 후보로 만났는데 이번 배역에 맞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불렀다. 홍 감독은 꼼꼼한 오디션이나 캐릭터 연구를 주로 술자리로 대신해 왔으며, 이번에도 그랬다.춘천과 경주를 오가며 홍 감독의 분신 노릇을 하고 있는 김상경은 홍상수라는 감독을 전혀 몰랐고 영화 출연은 처음이라 망설였는데, 홍 감독한테 인간적으로 끌려 참여하게 됐다. 김상경의 말. “매일 술 마시면서 친해지고 좋아졌는데, 요즘엔 둘이 닮았다고 그런다. 영화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홍 감독님 영화를 쭉 봤는데, 보다가 무지 웃었다. 이상하게 웃기고 재미있었다. 이번 영화가 어떻게
“배우가 삐죽이 나와 있는 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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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최종 편집이 끝날 때까지는 어떤 작품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영화는 시나리오가 반이라지만 그의 영화에서 시나리오란 대강의 줄거리일 뿐이며, 줄거리 자체도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작 <오! 수정>의 평에서 프랑스 <리베라시옹>의 장 막스 랄란은 “극 구성의 완전히 자의적인 어떤 요소가 모든 정당화 시도를 어렵게 만든다”고 썼다. 앞뒤가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그의 영화를 명료한 이야기로 요약하거나 전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 자의적인 디테일들도 거의 즉흥 연출로 태어난다. 홍상수의 영화는, 차라리 편집이 반이다.작업이 진행중인 그의 신작 <생활의 발견>은 아예 시나리오가 없다. 이건 놀랍거나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금껏 홍 감독에게 시나리오는 그저 제출용이었을 뿐이며, 그는 제출된 시나리오에 충실한 적이 없었다. 전작들을 찍을 때도 촬영 30분 전까지 대사를 쓰는 건 흔한 일이었다. 홍 감독은 그때나 지
진심 어쩌면 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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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 인터뷰에서 보면 그런 고민 안 하실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데 최저로 들어가야 하는 돈은 있잖아요, 아무리 감독님이 돈을 적게 받아도. 예를 들어서 7억∼8억원, 마케팅까지 10억원이면 적어도 서울에서 한 10만∼15만명 정도 봐줘야 하는 돈이잖아요. 사실 그게 쉬운 건 아닌데, 어떤 부분이 보강되면 그걸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김 >>> 많은 사람들은 소재를 그 이유로 삼지만, 그건 1/10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요. 50%는 스타 시스템과 제작비, 과대광고 뭐 이런 게 차지하죠, 사실은. 나머지 중 40%는 용감하게 관객한테 돌리고 싶어요. 관객이 이 시대의 다양한 작가들이 갖고 있는 의식세계에 대한 접근을 상당히 게을리하는 아닐까 하는. 물론 핑계죠. 그 핑계도 상관없는 것이, 결국 그런 관객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1만명을 위해서 난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그 1만
“현실적인 여건? 길은 만들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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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과 <수취인불명> 김기덕 감독. 언뜻 별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감독은, 사실 꽤 많은 고리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시선을 좇다보면, 야간업소를 전전하는 30대의 삼류밴드와 기지촌을 배회하는 혼혈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니까. 소박한 리얼리즘과 회화적인 이미지라는 화술은 달랐다해도, 이들이 그려내는 그림은 늘 소외된 인간군상의 초상으로 닮아 있는 것이다. 또한 주류의 틈새를 비집고 카메라를 들이댄 이들의 영화는, 대규모 자본이나 스타시스템과 같은 주류 영화의 공식에서도 같이 한발 비껴나 있다. 작더라도 제 목소리가 담긴 영화, 시장의 질서에 쉽게 갇히기보다는 그들만의 시선을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 만들기의 자세가, 이들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개봉이 다가온 10월 네쨋주의 첫날, 성북동의 한 고풍스런 한옥 찻집에서 두 감독을 만났다. 아껴둔 이야기로 2번째 영화
“현실적인 여건? 길은 만들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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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럽고 예민한 난니 모레티는 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 배급, 상영까지 혼자서 해내는 1인제작 시스템으로도 이름 높다.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영화계가 할리우드영화 개방문제로 흥분해 있을 때, 모레티는 아예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1인제작 시스템을 구축했다. 1987년 친구인 제작자 안젤로 바르바갈로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의 이름을 따 사케르필름을 차려 제작자를 겸하기 시작했다.1991년에는 로마의 관광명소 트라스테베레에 360석 규모의 영화관 ‘누오보 사케르’를 개관했다(그는 영화와 관련있는 사업체는 모두 사케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화관 안에는 조그마한 서점, 음료수를 파는 바도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영화를 더빙하는데, 이 영화관에선 1주일에 한번 자막을 삽입, 원어상영을 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누오보 사케르에선 할리우드영화를 전혀 상영하지 않는다.1996년엔 배급업에도 진출한다. 첫 대상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 업>이
초콜릿 케이크를 든 독불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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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운 신동 76년 장편데뷔작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발표하기 전 그도 영화수업을 받기 위해 수많은 감독들에게 조감독 자리를 부탁했지만 거절당했고, 로마의 국립영화제작학교인 첸트로스페리멘탈레에 입학하려 했지만 대학학위가 없어 이도 불가능했다. 영화광 출신 감독들이 그렇듯 모레티도 결국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감독수업을 한 게 전부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자신의 슈퍼8컬러 카메라로 연기와 촬영실습을 했고, 바로 그 과정을 영화로 찍었는데 이게 데뷔작이 됐다. ‘작품 속 작품’ 혹은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모레티가 즐겨 사용하는 복합구조는 데뷔작에서부터 발견된다.그는 60년대 이탈리아 작가감독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영화에 빠지기 시작했다. 파졸리니, 베르톨루치, 마르코 페레리, 마르코 벨로키오 등 이탈리아 감독들과 브뉘엘, 베리만 등을 특히 좋아했으며, 앤디 워홀의 영화에도 심취했었다고 말한다. 무성영화 중에서는 에이젠슈테인과 버스터 키튼의 작품을 즐
“싸움은 이제 그만 난 철학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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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을 처음 본 날 나는 약간 당황했다. 먼저 ‘삐딱이’ 난니 모레티 감독이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정서를 고전적인 구조 속에 간단하게 풀어낸 솜씨에 놀랐고, 동시에 왜 그가 자기 특유의 스타일과 거리가 먼 미학적 변신을 했을까 하는 의문에 뾰족한 즉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들의 죽음-가족의 고통-고통의 정화라는 보기에 따라서는 진부할 수 있는 고전적 이야기 구조와 눈물을 자극하는 배우들의 열연 등 할리우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매끄러운 영화가 <아들의 방>이다. 물론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그런데 모레티는 공식화된 이야기 구조를 부수는 실험정신, 당대의 사회문제를 물어뜯는 리얼리스트적 행보로 자신의 경력을 쌓은 감독이다. 영화형식에 대한 쉼없는 도전과 사회를 비판하는 불 같은 정열은 모레티 코미디의 큰 매력이다. 따라서 <아들의 방>은 모레티 특유의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에겐 실망을 줄 수도
“싸움은 이제 그만 난 철학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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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기본적인 착상은 어떤 장소에서 비롯됐다. 그 장소는 이를테면 스튜디오54(반문화의 표상이던 뉴욕의 나이트클럽) 같은 곳이다. 그곳엔 싸구려 대중문화에 중독된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젊은 연인이었고 규칙을 깬다. 여자는 사랑에 빠진다.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당신의 꿈속에 존재하는 나이트클럽이 물랑루즈인 것이다. 물랑루즈는 돈 많은 자, 권력을 가진 자와 젊은이와 미녀와 무일푼인 자가 한데 어울리는 곳이었다. 물랑루즈는 밥 딜런이나 에미넴에 비견될 만한 그들 시대의 록스타들, 전위적이고 흥미로운 예술가들의 세계였다.오페라를 연출해본 것이 이번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줬나.난 늘 뮤지컬과 음악을 사랑했다. 난 어디라고 말해도 아무도 모르는 정말 작은 촌동네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주유소와 농장을 갖고 있었는데 석유를 대주던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는 바람에 잠시 극장을 소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오페라를 보
“이야기는 얇게 음악은 풍성하게, 그것이 뮤지컬의 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