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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그녀>가 개봉 33일 만인 지난 8월28일, 전국 관객 400만명을 돌파했다. “안 잡으면 죽어!” 하던 ‘그녀’의 대사가 안 보면 안 된다는 주문이라도 된 듯 말이다. PC통신 소설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린 원작에다 전지현, 차태현이란 스타들의 캐스팅으로 관객을 유인하는 기본 주문은 이미 갖추고 출발한 터. 하지만 <쥬라기 공원3> <슈렉> <A.I.>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틈새에서 이같은 흥행성적을 올린 한국영화는 흔치 않다. 태생에 걸맞게 젊은 관객을 겨냥한 청춘스타와 코믹한 멜로드라마의 아기자기함이 눈에 보이는 이유라면, 배후의 힘은 그러한 관객의 의표를 가늠하며 구미가 당길 만한 상품으로 포장해내는 마케팅일 것이다. <결혼 이야기> <편지> <약속> 등으로 멜로드라마의 유행을 한발 앞서 끌어온 제작사 신씨네의 기획과 마케팅은 이번에도 영화시장에서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
아무나 대박치나여? 죽는 줄 알았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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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이후 1년이 훌쩍 넘도록 신철 대표는 말을 아껴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쉽게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 이후 몰려든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사양해왔다. “400만명이 들었다”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을 때도 짧게 “고맙다”고 했을 뿐이다. 사진 촬영도 싫다며, 자신의 이야기는 적게 써달라고 부탁했다.<엽기적인 그녀>를 시작할 무렵 <거짓말> 개봉과 맞물려 있었는데.판권 계약하고, 시나리오 나온 게 지난해 초 겨울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기억이 안 난다. 새 영화 하겠다고 한 게 따뜻한 봄이었다고 생각되는 걸 보면, 머릿속이 복잡했긴 복잡했던 모양이다.얼마나 복잡했기에 그런가.그땐 뉴스나 신문은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등급보류 두번 먹고, 불법 CD는 돌 만큼 돈 상황에서 하루빨리 개봉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날짜를 잡아 들어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음대협(음란폭력성조장매체시민대책협의회)에서 또 시비를 걸어왔고,
“잘되는 구멍가게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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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해머영화사는 50년대 검열제도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고어와 섹스를 미끼로 내건 공포영화를 양산하며 유행을 만들어냈다. 이번 영국 해머공포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모두 7편. 70년대 정점에 올랐던 ‘해머 스타일’의 전모를 훑어볼 수 있는 대표작들이 선정됐다.<쿼터매스 익스피리먼트>(Quatermass Xperiment, 감독 발 게스트, 1955)는 50년대 유행했던 ‘외계의 공포’를 다룬 SF공포물이다. 실험을 위해 발사된 우주선에서 알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두명의 승무원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승무원은 신체가 변형되고 살인을 저지른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괴물이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은 것은, <쿼터매스 익스피리먼트>의 큰 약점.이번 해머영화제에서는 ‘해머 스타일’을 만든 대표주자 테렌스 피셔의 대표작 <프랑켄슈타인의 저주>(Curse of Frankenstein, 1957), <드라큐라>(
일곱 색깔 공포무지개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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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 해머를 패러디하다역시 테렌스 피셔가 연출한 <드라큘라의 공포>와 <늑대인간의 저주>(1961)는 이른바 ‘고딕호러’라 명명되는 해머영화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예산상으로 볼 때 해머영화들은 분명히 저예산의 B급영화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일년에 네댓편의 영화들을 찍어냈으며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같은 배역에 같은 스탭, 그리고 같은 세트를 사용해서 찍어낸 것들도 꽤 있었다 - 비교적 공들인 분장과 화려한 색감의 화면들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전략을 채택했다. 불길하게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보름달, 첨탑이 있는 성의 안뜰에 은은히 흐르는 안개, 어두운 숲 사이로 가로질러 달려가는 마차 등의 이미지와 더불어 관객을 섹슈얼한 암시로 가득한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해가는 것이다. <늑대인간의 저주>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주의 희생자가 되어 괴물로 변해가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쿼터매스 익스피리먼트>
무섭거나, 우습거나 촌티괴물 구경가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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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의 고향 영국 해머필름스 영화들, 9월5일부터아트선재센터에서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이 성공을 거둔 이후, 부활한 십대 슬래셔무비들이 여름이면 심심찮게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귀환이 갑작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10여년 동안 할리우드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공포영화 몇편을 떠올려보자. <드라큘라>(1992), <프랑켄슈타인>(1994),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 <메리 라일리>(1996), 그리고 <슬리피 할로우>(1999). 이 영화들은 30년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공포물이나 60, 70년대 미국 공포영화 전통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오히려 고딕호러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것들이었다. 특히 코폴라는 고딕호러의 부활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드라큘라>를 연출한 것말고도 <프랑켄슈타인>과 <슬리피 할로우>의 제작을 맡기도 했다. <슬리
무섭거나, 우습거나 촌티괴물 구경가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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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부르나 오브 러브랜드의 추억
“너무 좋아해서…”
-영화 속에서 연애를 하는 기회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데 아쉬움은 없는지요.
=연애영화에는 왜 느끼한 게 있잖아. 난 그렇게 여자를 보는 게 너무 쑥스러워. 그쪽 연기에 좀 약한 편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본다든가, 어떤 욕정을 표현하는 게 쑥스러워서. 그런 식의 접근도 있지만 다른 데 매력을 느껴. <쇼생크 탈출>에 나온 모건 프리먼 같은 배우는 나이가 들어서 묘한 매력을 주거든. 그건 일반적인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고. 일반적인 러브신은 편하지가 않아.
-배역에 빠져서 미쳤었나보다, 한 적이 있나요? 늘 연기에 안정된 이성의 틀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후배배우들은 카메라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움직이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연기하는 분이라 감탄스럽다고들 하고요.
=좋은 의미에서의 광기, 그런 게 나한테는 좀 모자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연기하고 그런 편이거든. 나의 습관 같기도 하고, 또 카메라 메커
안성기 시시콜콜 Q&A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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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무사>
“나는 날마다 웃었다”
-오늘부터 <흑수선> 3일 밤샘 촬영인데, 체력은 괜찮나요.
=문제없어. 배우로서 기본이기도 하고. 아침에 집에 들어갔다가 오후에 나오면 되니까…. 괜찮아요.
-<무사> 촬영장에서도 제일 부지런하셨다고요. 끝나고는 좀 쉬셨나요.
=후반작업이 한 4개월 걸려서, 그동안 잘 쉬었어요. 1주일에 세번 헬스클럽에 나가서 그동안 못한 운동 하고. 그것도 하다보면 욕심이 나서 거울에 근육 확인하고, 웃긴다고. 그렇게 쉬었더니 지금은 일할 때가 맞는 것 같아.
-<무사>는 정말 강행군이었죠.
=정말 지독했지. 마지막 한달은 날마다 주야로 촬영했어. 밤 11시까지 촬영하고 새벽 4시까지 자고, 또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아주 강행군을 했어요. 그래도 체력에는 정말 문제가 없었어. 중국사람들이 놀라더라고. 날마다 웃는 얼굴인 게 신기한가봐. 난 현장에서 즐거운 맘으로 하는 게 편하다는 걸 체질적으로 알
안성기 시시콜콜 Q&A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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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변치 않는 편안함, 배우 안성기에 대해 알고 싶은 30가지 것들
<무사>의 시사회가 있던 8월20일, 안성기씨가 스튜디오에 들어선 것은 저녁 9시 반이 다 되어서였다. 그날 아침 11시부터 계속 인터뷰를 하느라 한끼도 못 먹었다며 약속을 좀 늦춰달라고 양해를 구한 그는, 언제나처럼 단출하게 혼자였다. 영화사 직원 한명이 동행했을 뿐, 데뷔 전의 신인들에게도 따라붙는 매니저나 코디, 메이크업 담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양새가 어떻든 이게 편해서”라는 그는 매니저 없이 직접 모든 일을 결정하는 몇 안 되는 배우다.
그는 참으로 꾸준히 우리 곁을 지켜왔다. 57년 <황혼열차>부터 시작한 아역배우 생활을 접어두더라도, 77년 <병사와 아가씨들>을 시작으로 2001년 <무사>까지 스무해가 훨씬 넘도록 거의 한해도 거르지 않고 스크린으로 우리를 찾아왔으니까. 아주 오래된 연인들처럼, 때로는 너무나 익숙한 그를 별 설렘없이 보는
안성기 시시콜콜 Q&A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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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독일인 안나는 완전한 망각을 소망한다. 누더기 같은 조각 기억들마저 힘겨운 사람에게 자아나 정체성은 잘못 배달된 초대장, 겉장만 단정한 쓰레기일 뿐이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자기의 영혼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그래서 어떤 호명도 거부한 채 허깨비처럼 살아가는 것이다.다행히 <나비>의 무대인 가까운 미래의 서울엔 망각의 바이러스가 살고 있고, 영리한 장사꾼들은 망각 바이러스를 찾아떠나는 패키지 여행상품까지 마련해두었다. 독일에서 온 안나를 가이드 유키와 운전사 K가 맞는다. 납중독자인 유키는 의사의 심각한 경고에도 7개월 된 아이를 지우지 않았다. 과거를 잃어버린 K는 기억을 찾아줄 친지를 찾고 있다. 망각의 바이러스를 나비가 인도하며, 나비가 있는 곳엔 어김없이 지독한 산성비가 내린다.세 사람의 젖은 겨울옷 같은 여정이 시작되지만, 그들이 찾는 망각의 바이러스는 눈앞에서 자꾸만 사라진다. 대신 세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알아간다. 유키는 안나의 배의 깊은 흉터를
<나비>는 어떤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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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데뷔작 <이방인>에서 로카르노가 축복한 <나비>까지, 문승욱 감독의 고단한 영화 만들기올해 부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됐던 문승욱 감독의 <나비>가 지난 8월12일 막을 내린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여우주연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함께 받았다. 로카르노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배용균 등 각국의 뛰어난 재능을 발견해온 54년 전통의 영화제다. 해외영화제 수상이 많은 걸 해결해주진 못하지만, 적어도 문승욱 감독처럼 자기 표현으로서의 영화를 만들며 영화산업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에겐 큰 힘이며 축복이다. 문승욱 감독에게 <나비> 만들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문승욱 감독은 <나비>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데뷔작 <이방인>(1998)이 실패한 지 2년. 윤기나는 이야기도 일급 스타도 없는 그늘에서 그는 두 번째 영화의 첫 릴을 힘겹게 끼우고 있었다.첫 발자욱을 잘못 내디뎌 엉뚱한 길로 접어
문승욱과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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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장면들온다체: 윌라드가 킬고어 대령의 서핑보드를 훔치고 보트로 뛰어들어가 어린아이처럼 웃어대는 새로운 장면은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많이 바꿔놓았다. 여기서 윌라드는 사춘기 소년과 다를 바 없다. 전체 스토리를 통틀어 윌라드가 가장 행복한 대목이기도 한 이 장면은 우리가 품고 있는 윌라드라는 인물의 초상에서 다른 부분까지 흔들어놓는다.머치: <니노치카>를 어떻게 홍보했던가? `그레타 가르보가 웃었다!`라는 카피였다.온다체: 수상스키장면을 뒤쪽으로 옮기면서 흥분과 희열이 생겼다. 현실적인 필요가 충족되면서 좀더 강력한 느낌이 생겨난 것이다.머치: 1979년판에서 수상스키장면은 킬고어 대령이 나오는 시퀀스들 전, 그러니까 훨씬 앞부분에 나온다. 우리는 <…리덕스>에서 이 신을 원래 시나리오가 배치한 자리, 플레이보이 바니 쇼 다음 순서로 옮겼다. 1979년 버전에는 `이 보트, 이 병사들은 이미 그리고 언제나 사납고 미쳐 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랜스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탄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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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이션, 나란히 누운 여인에게 속삭이듯온다체: 윌라드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마이클 헤르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처음부터 시나리오에 있었나? 아니면 나중에 추가된 것인가.머치: 내레이션은 존 밀리어스의 원본 시나리오에 있었다. 윌라드는 본디 내면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1977년 8월에 내레이션을 삭제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우리는 본래 12월 개봉을 위해 4개월 안에 영화를 마치게 돼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영화가 처한 상태를 고려할 때 비현실적인 스케줄이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12월을 현실적 가능성으로 보았다면 유일한 방법은 내레이션을 되살리는 거였다. 앞서 말했듯 윌라드는 소극적이고 불명료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보이스오버는 더 필요했다. 그가 관객에게 대놓고 말하지도 않고 별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내레이션의 매개를 통해서니까. 결국 내레이션 아이디어가 채택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온다체: 마이클 헤르는 뒤에 내레이션을 수정하도록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탄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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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기사 월터 머치가 소설가 마이클 온다체에게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탄생을 이야기하다 월터 머치는 할리우드의 진짜배기 괴짜다. 진정한 지식인이며, 영화 창작의 다채로운 폭풍 중심에 서 있는 지혜롭고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머치는 <청춘낙서> <도청> <대부> 시리즈와 <프라하의 봄> <잉글리시 페이션트> <리플리> 같은 영화에서 음향과 편집, 또는 둘 중 하나를 맡았다. 2년 전에는 오슨 웰스가 스튜디오에 보냈으나 무시된 58쪽짜리 메모에 기초해 <악의 손길>을 재편집했으며 `선(禪)과 편집 예술`이라는 주제를 다룬 <눈을 깜박이는 동안>(In the Blink of an Eye)이라는 제목의, 영화 만드는 이와 관객 못지않게 글쓰는 사람들과 독서가들의 관심도 끌 만한 책을 내기도 했다.작가인 나는 한권의 책을 만드는 작업의 마지막 2년은 편집에 투자된다는 사실을 터득한 바 있다.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탄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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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DVD를 출시할 때 삭제되었던 장면을 집어넣는다든가 다시 편집하는 게 유행처럼 되었지만(계약서에 DVD를 만들 때에는 감독의 요구대로 재편집한다는 규정을 넣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디렉터스 컷’을 만들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작사가 마음대로 편집을 하거나, 소수 관객의 반응이 너무나 뜨거워서 뭔가 새로운 팬서비스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 잘린 장면 등을 추가하여 ‘디렉터스 컷’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이유는 제작사의 간섭이다. 상영시간이 너무 길거나, 관객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을 내리면 따로 편집기사를 불러다가 독자적으로 편집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에 격분한 감독이 제작사와 너무 심하게 싸우다가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빼라고 할 경우에는 ‘감독 앨런 스미디’라는 타이틀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찍기는 했지만 ‘이건 내 작품이 아니오’라는 뜻이다. 이 정도까지 악화일로를 걸었을 때에 감독이 다시 ‘디렉터
영화사에 등재된 디렉터스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