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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클로드 샤브롤과 함께 히치콕에 대한 연구서를 썼고 57년부터 63년까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던 에릭 로메르는 동료 누벨바그 멤버들 가운데 지적으로 가장 깊이있는 글을 쓴 평론가였다. 그가 48년에 쓴 ‘영화, 공간의 예술’이란 글은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의 ‘카메라 만년필’이란 글과 함께 누벨바그적 사고에 원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뛰어난 평론가이기도 했던 로메르가 다른 몇몇 위대한 시네아스트들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그 일단이나마 들어보도록 하자. 로베르토 로셀리니 나는 영화에 대해 생각을 하기 전에 실존주의 시기를 거쳤는데, 그것은 첫 영화를 만들 때에도 내게 영향을 주었다. 나를 실존주의로부터 멀리 하게 한 사람이 바로 로셀리니이다. <스트롬볼리>를 보고 있을 때였다. 그 영화를 몇분 정도 보자 나는 사르트르적인 리얼리즘의 한계를 느꼈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게 싫어졌다. 그래서 <스트롬볼리>가 위
평론가 에릭 로메르가 말하는 시네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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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는 10년이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여섯편의 도덕이야기 시리즈를 완결짓고 나서는 전작들과는 다른 세계 속으로 진입을 감행했다. 그의 다음 작품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소설을 충실하게 각색한 이었는데, 로메르는 고전적 기품과 균제의 아름다움을 갖춘 이 시대극을 만든다는 게 스스로 아주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앞으로 자신의 창조적 노력을 오로지 이런 영역에만 바치겠다고 단언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건만 허락되었다면 과연 로메르는 그렇게 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여하튼 더 많은 제작비가 필요하고 그렇다고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지도 못하는 이런 프로젝트에 그는 실제로는 더이상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매우 혁신적인 또다른 시대극 <갈로아인 페르스발>을 끝으로 로메르의 영화는 친숙한 동시대 이야기로 되돌아왔고 그리고는 다시는 과도한 ‘일탈’을 시도하지 않았다.과 <갈로아인 페르스발>을 만들었던 7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시기는 아마도 로
에릭로메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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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걸작선> 제작진은 판권을 반드시 확인하고, 판권에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보류한다. 김기영, 신상옥 감독의 작품 가운데도 실제로 그런 문제가 걸려 방영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주)시네라인 코리아(대표 정진향) 등 배급업체 몇 군데가 판권자 확인, 계약 등의 과정을 전담하고 있다. 개인이 계약문제를 처리하기엔 세금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시네라인 코리아의 경우 교육방송과 1년 정도 함께 일을 하기로 약속했고, 지금까지 약 30여편을 계약했다. 먼저 이승훈 PD와 어떤 영화를 방영할 것인지 이야기한 뒤, 충무로 원로 영화인들을 통해 판권자를 확인한다. 그걸 ‘구전’ 확인이라 부른다. 그리고 영상자료원에서 필름 존재여부와 네거필름 입고자 이름을 확인한다. 그 두 가지가 일치하면 곧바로 판권자에게 연락한다. 직접 하는 경우도 있고, 예전에 호남권 배급업자 출신 한정희씨나 길박사라 불리는 길창익씨 등의 에이전트(?)를 통해 연락을 취한다. 계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판권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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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1958년, 감독 김소동 출연 김승호, 최은희감독이자 직접 배우로 출연하기도 하는 김소동씨의 연기는 일품이다. 숏 등에서 프랑스 작가영화 느낌이 많이 난다. 이런 맥이 끊기지 않고 누군가에게 이어졌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아트영화의 계보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대사가 별로 없이 화면으로 이야기하는데, 그 구성이 탁월하다.<어느 여배우의 고백>1967년, 감독 김수용 출연 김진규, 남정임, 허장강초반 40분은 장 뤽 고다르의 <경멸>이 떠오를 정도로 훌륭하다. 한계라면 나중에 신파로 빠진다는 것. 충무로에서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다. 메이킹 필름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배우들이 모두 실명으로 출연한다. 김진규의 “제작자는 장사꾼이 아니라 예술가란 말이요!”라는 대사는 인상적이다. 당시 영화인들의 고민이 우리가 지금 하는 고민과 똑같다는 데서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십년세도>1964년, 감독 임권택 출연 신영균, 김동원, 전계현, 허장
<한국영화 걸작선>이 발굴한 영화,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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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70년대 한국영화 방송하는 EBS 프로그램 <한국영화 걸작선>이 궁금하다● 일요일 밤 10시10분. 채널13으로 가보자. ‘한국영화 걸작선’ 두툼하고 육중한 고딕체 타이틀이 떴다가 사라지면, 중년 남자가 극장 객석 사이 통로를 걸어내려오며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그가 영화, 혹은 영화라는 이름의 추억 여행 가이드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그 남자, 김홍준 감독은 객석에서, 영사기 옆에서, 그날의 영화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한국영화 걸작선’이라는 요리를 선택한 시청자들을 위한 전채인 셈이다. 그리고 메인 디시인 영화가 시작되고, 끝난다. 여기서 바로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끈다면, 그는 ‘초짜’ <한국영화 걸작선> 시청자다. ‘진득한’ 마니아들은 2, 3초 동안의 검은 자막을 지켜보며 한숨 돌린다. 달콤한 디저트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주 방영작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듣는 영화이야기나 김홍준 감독이
<한국영화 걸작선>을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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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de의 [Saturday Night] 3분짜리 영국식 드라마최근에 가장 히트하고 있는 모던 록 밴드의 하나인 스웨이드의 [Saturday Night]은 스토리 구조를 갖는 비디오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매우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수작이다. 이 비디오에서 우리는 화자의 복수성과 서사 구조의 복합성, 그리고 공간의 중층성, 상징적 이미지 등이 뮤직 비디오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표현되는가를 잘 볼 수 있다.Bjork의 [I Miss You] 콘돔 속에서의 춤, 악몽의 한 유형종종 뮤직 비디오는 꿈에 비유되곤 한다. 꿈의 전개 방식과 뮤직 비디오의 장면구성이 유사하다는 경험적 관찰을 여러 사람이 한 바 있다. 3분이라는 짤막한 시간동안 영상들을 '상징적'으로 다루어야 하므로, 그리고 사람들에게 많은 그 영상들을 기억시키기 위해서 꿈의 형식을 빌어 무의식 속에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 뮤직 비디오이다.Beastie Boys의 [Sabotage] 싸구려, 일상, 허위와 전복스파이크 존스 감
인상적인 뮤직 비디오 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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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TV의 시대는 TV를 '보는' 시대가 아니다. 이 시대는 '채널을 돌리는 시대'이다. 나는 오늘도 TV를 본다. 아니, 정확히는 채널을 돌린다. 채널을 돌리는 걸 TV 보는 것과 착각하는 시대가 케이블 TV의 시대이다. 채널을 돌린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손에 쥐어진 리모콘이라는 총을 쏨으로써 한 채널의 한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지속성, 문법적인 맥락을 죽이는 행위이다. 채널을 돌리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탈 맥락적인 행위이다. 나는 무슨 신경증 걸린 사람처럼, 그 총을 마구 쏘아댄다. 드라마가 나왔다가 뉴스가 나왔다가 39쇼핑의 광고가 나왔다가 2차대전의 어느 전선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왔다가 불교 방송이 나오기도 하고 그 다음엔 만화가 나오기도 한다. 그 모든 걸 나는 거의 동시에 관람하고 있다. 너 미쳤니? 이렇게 리모콘을 쏘아대는 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총을 쏘아대는, 알고 보면 정신병에 걸린 살인범일지도 모른다...광고와 뮤직비디오, 구분할 수 있
케이블TV 시대를 사는 MTV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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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램버트는 <Like a Prayer> <Material Girl> 등 마돈나의 초기 뮤직비디오를 많이 만들었다. 마돈나의 가수로서의 전환점이 된 <Like a Prayer>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연속되는 도발적인 작품이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대표작은 스팅의 <All This Time>. 알렉스 프로야스는 <크로우>를 만든 뒤, MTV를 위해 아주 짧은 단편영화도 만들었다. 한 여자가 누군가에게 쫓기는데, 알고보니 사람의 거대한 눈이었다는 내용.데이비드 핀처가 <에이리언3>의 감독으로 발탁된 이유는 여성의 근육질을 탁월하게 잡아낸다는 것이었다. 마돈나의 <Vogue>가 바로 문제의 작품이다. 운동으로 단련된 마돈나의 탄탄한 육체를 매혹적으로 잡아낸 뮤직비디오를 본 영화사에서 리플리를 그런 모습으로 묘사해달라며 맡겼다. 마돈나의 <Express Yourself>도 데이비드 핀처의 작품. 지금도 걸작
뮤직비디오에서 출발한 영화감독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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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문화는 잡종일 때 더욱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더욱더 체질이 강해진다. 한때 TV라는 경쟁자에게 위협을 느끼기도 했지만, 100여년간 대중예술의 중심을 지켜온 영화의 경우도 그렇다. 1895년 ‘발명’된 영화는 소설, 연극, 미술, 음악 등 선발주자에게서 자양분을 얻으며 성장해왔다. ‘종합예술’답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영화’라는 매체의 일부분으로 삼은 것이다. 영화의 왕성한 식욕과 소화력은, 자본주의의 그것과 꼭 닮았다. 하지만 그런 영화 자신도, 독립적인 매체나 장르도 아닌 케이블 채널 하나에 불과한 MTV에게 그토록 휘둘림을 당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현란’하고 ‘빠른’ 신세대 영상문법이제는 MTV 스타일의 영상이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MTV가 영화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속도와 편집, 그리고 소리의 조화다. 뮤직비디오는 어떤 형식도 가능하다. 가사를 영상으로 옮길 수도 있고, 독자적인 이미지를 창조할 수도 있고, 비디오아트 스타일의 전위적인 영상도 가능
MTV가 영화에 끼친 영향 - 속도와 편집, 그리고 소리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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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MTV가 공식적으로 선을 보인 것은 1995년 케이블방송 시작과 함께 m.net에서 일부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부터. m.net와의 계약이 만료된 2001년 초부터는 온미디어의 온게임넷을 통해 방송을 이어나갔다. 최근 MTV는 온미디어와 MTV 아시아가 출자한 ‘MTV 코리아’라는 법인을 공식적으로 출범시키고 7월1일부터 독자적인 채널을 확보, 공식 방송을 시작했다. MTV 코리아 김순철 대표로부터 계획을 들어봤다.+ MTV 코리아의 기본전략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현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음악은 국제적 성격이 강하긴 하나 상당히 많은 나라가 자국 시장이 강하다. 한국 음악시장 역시 자국 대 해외의 비중이 7 대 3 또는 8 대 2다. 국내에선 MTV라고 하면 외국 음악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만약 MTV에 무언가 에센스가 있다면 그것은 해외 콘텐츠 같은 게 아니라 젊음이다. 즉 젊은이가 공감하는 음악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얘기다.+ 기존 케이
MTV 코리아 김순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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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는 크게 두개의 조직으로 나뉜다. 하나는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둥지를 틀고 있는 미국 로컬 채널 MTV이고 다른 하나는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MTV 네트웍스 인터내셔널이다. MTV 네트웍스 인터내셔널은 세계 20여개국에 계열사를 두고 140여개국 340만 가구를 상대로 프로그램을 방송을 펼치고 있다. 이 MTV 네트웍스 인터내셔널의 부사장인 리사 해킷은 MTV의 20여개국 31개 채널의 프로그래밍을 책임지고 있다. 그녀에게 20주년을 맞이하는 MTV의 생각에 관해 물어봤다.+ MTV 20주년에 대한 감회는, 어떤 특별행사가 준비되어 있는가.= MTV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스타들이 총출연하는 올 최대의 라이브 콘서트 <MTV 20 : Live & Almost Legal>을 준비중이다. 8월 1일, 오전 8시부터 MTV의 역사를 보여주는 24시간짜리 프로그램 두에, 오후 8시부터 머라이어 캐리, TLC, 빌리 아이돌, 본 조비, 에어로 스미스 등의 뮤지
MTV 네트웍스 인터내셔널 부사장 리사 해킷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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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는 올해 초 2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년 동안 `가장 대단했던 순간 베스트 20`(MTVs 20 Most Outrageous Moments)를 발표했다. 1위는 단연 1981년 8월 1일의 `MTV개국`이 차지했다. 24시간 동안 음악을 방송하는 MTV의 개국이야말로 그들에게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첫 방송물도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다니 혹시 그들은 성공을 예감했던 것일까. 2위는 올해 3월 방송햇던 <스프링 브레이크>. 미국 대학생들의 전통적인 `섹스 홀리데이`인 봄방학에 맞춰 매년 편성되는 이 프로그램에선 세명의 대학생이 완전히 벌거벗은 채 휘핑크림으로 수영복을 만들어 마구 흔들어댔다. 3위는 1993년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네버랜드에서 아동 성추행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의 방송을 생중계한 것이, 4위는 2000년 비디오뮤직어워드 행사 도중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베이시스트 팀 밥 코머포드가 무대 위
대단했던 순간 베스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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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월드>(Real World)생면부지의 젊은이들이 일정한 공간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다. 어디서 본 듯하다고? 이제 MTV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리잡은 <리얼 월드>는 92년부터 이렇한 아이디어로 방송을 해왔다. 이 프로가 인기를 얻은 것은 젊은이들의 문제를 극단화해 자극적으로 보여줬다는 점 때문이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친구를 얻고 배신을 하는 `일상사`외에도 게이의 결혼이나 임신중절, 죽음을 앞둔 에이즈 환자, 알코올중독자 등의 이야기를 다루며 이 프로그램은 결국 `리얼 소프 오페라`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미국의 <서바이버>에서 프랑스의 <로프트 스토리>를 거쳐 한국의 <러브투어>에 이르기까지 `리얼`프로그램은 모두 <리얼 월드>에 큰 빚을 지고 있다.`Total Request Live`라는 원제처럼 톱스타의 뮤직비디오를 실시간으로 신청받아 방송하는 것이 주내용이다. MTV 채널에서 가장 인기있는 뮤직
MTV의 프로그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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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엔 뮤직비디오가 없다.미국의 MTV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려는 것은 붕어빵을 먹으며 담백한 생설살의 감촉을 느끼려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사실 `Music Television`이라는 MTV에서 뮤직비디오를 만날 수 없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자매채널인 VH1, M2, MTV 베이스 등으로 터전을 옮긴 뮤직비디오의 자리를 메우는 프로그램들은 일반인들이 참여해 환상과 사랑의 모험을 펼치는 <리얼 월드><로드 룰스>, 또는 엽기적인 일만 골라서 행하는 <앤디 딕 쇼><잭 애스>, 대학생들의 봄방학 철인 3월이면 어김없이 방송되는 비치 댄스 파티 <스프링 브레이크>, 우리의 <주부가요열창>의 10대 버전쯤 될 <Say What? 가라오케>등이다. “우리 오빠가 내 친구와 `거시기`하는 것을 봤어요”등등의 `고민`을 낄낄거리며 토론하는 토크쇼, `치정극`을 스포츠로 표현한 프로레슬링 게임, 스타들의 시시콜콜
MTV 20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