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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이후 10년. <북경반점> 이후 2년. 김의석 감독이 조선시대 검객 이야기 <청풍명월>로 돌아온다. <북경반점> 끝나고 곧바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으니 2년쯤 된 프로젝트지만, 첫발은 더 거슬러올라간다. 홍콩영화를 좋아했던, ‘외팔이 왕우’ 시리즈에 열광하던 초등학교 시절부터의 칼싸움영화에 대한 열망이 태초의 아이템 풀이었다. 리안 감독이 꾸었던 무협의 꿈이 <와호장룡>이었다면, <청풍명월>은 김의석 감독이 꾸는 액션의 꿈이랄까.
<청풍명월>은 17세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자 두 남자의 운명적인 대립을 그린 액션누아르다. 예상제작비 60억∼80억원에 이르는 블록버스터. 지금 캐스팅 단계이고, 소품이나 의상, 세트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예전부터 칼싸움영화를 많이 봤다. <돌아온 외팔이>부터 <동방불패> <신용문객잔>까지. 그러다보니 우리나라를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6] - 김의석 감독의 <청풍명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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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지난해 전주영화제, <오! 수정>의 첫 상영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였다.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을 읽은 박찬옥 감독은 시나리오 파운데이션 작업도 없이 막바로 대사와 지문이 들어가는 장편 데뷔작의 초고를 한달 만에 써내려갔다. “그 시에서 한 젊은 남자의 인상을 받았어요, 20대 후반, 자신을 인정할 수도, 아직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하는 시기. 결핍이 동력인, 누군가의 말대로 ‘질풍노도’의 상태에 있는 그런 남자 말이에요.”
미술학도에서 편입한 한양대 재학 시절, 영화제작소 청년 스탭들과 함께 <셔터맨> <캣 우먼과 맨> 등을 만들었고 이후 <있다> <느린 여름> 등의 단편을 통해 인간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과 초현실적이면서 독특한 분위기로 주목을 받았던 여성감독 박찬옥은 홍상수 감독의 <오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5] -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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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더스가 제작하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마누라 죽이기>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오는 엄정화도, 영화 데뷔를 하는 감우성도, 지난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만교의 원작소설도 아닌 감독 유하다. 1993년 초 개봉한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이후 10년에 가까이 절치부심해온 감독이 만들 신작의 모양새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 궁금증은 당시에 비해 급격히 나아진 제작환경 속에서 비로소 드러날 감독의 영화적 역량에 머물지 않고 <무림일기> 등의 시작(詩作)에서 보여줬던 날카롭게 후려치는 검객의 풍모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발표한 <천일馬화>라는 시집 제목처럼 “그동안 경마장이나 다니며 살았다”는 그는 한동안 영화에 대한 생각을 버린 채 지냈지만, “첫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한편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음도 숨기지 않는다.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4] -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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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그리고 지금 발 앞에 놓인 크나큰 불행이 외계인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게다가 지구가 외계인에 의해 크나큰 위협에 놓일 것이라는 과대망상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이제 그는 납치, 살인 같은 임무를 목숨을 걸고 수행해야 한다. 장준환 감독의 장편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의 주인공 병구는 그가 만든 단편영화 의 주인공과 놀랍게도 닮아 있다. 이 피해망상 또는 자가당착에 빠진 주인공은, 자신을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는 속 주인공 청년의 복사판으로 보이기도 한다. 장준환 감독 역시 이 사실을 부인하려 하지 않는다. 감독 자신이 이 두명의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내비칠 정도니까.
그가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것은 지난해 7월부터. <모텔 선인장> 연출부, <유령> 시나리오 등으로 연을 맺은 싸이더스에서 ‘엄청난 규모’의 작품을 준비하다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러워져 방향을 선회했다. 이 작품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3] -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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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어느날 불현듯 영감을 얻어 하루 만에 시나리오를 썼다. 바로 이것이 아니겠냐며 영화사에 보여줬더니 분위기 썰렁하더라. 5년간 덮어뒀다가 이제 한국영화가 좀더 다양한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 <복수는 나의 것> 제작발표회가 열린 7월24일, 박찬욱 감독은 농담 반 진담 반 이번 영화가 나온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놀라운 성공 이후 박찬욱 감독의 행보는 많은 영화인의 관심사였다. 단숨에 흥행감독으로 떠오른 그에게 돈다발을 싸들고 찾아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것은 5년 전 직접 시나리오를 쓴 <복수는 나의 것>. 어쩔 수 없이 유괴라는 범죄를 택한 남녀가 전반부를, 딸의 시신을 발견하고 복수를 결심하는 아버지의 추적이 후반부를 차지하는 독특한 이야기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를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그리겠다”고 밝혔다. 대시엘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등 미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2] -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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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종·횡·사·해, 장막을 걷어라!
2001년 확실히 한국영화는 활황이다. <친구> 덕에 시장점유율 39%를 기록한 파죽지세는 여름에도 꺾이지 않고 있다. <신라의 달밤>이 전국관객 4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다 <엽기적인 그녀> <소름> <세이예스> <무사> <베사메무쵸> <봄날은 간다>로 이어지는 하반기 라인업도 만만치 않다. 시장점유율 40% 돌파가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닌 시점이기에 현장도 활기가 넘친다. 올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한 작품들은 지금이 가장 바쁜 때다. 막 촬영준비를 끝내거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작품들이 6개월 레이스의 출발선상에 정렬해 있다. 과연 어떤 영화들이 내년 상반기 관객과 만날 것인가?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결혼은 미친 짓이다>(유하), <질투는 나의 힘>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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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화팬들은 그동안 타이영화를 국제영화제 등을 통해서만 간간이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르네상스를 선언한 타이영화들이 속속 국내에 대중적으로 소개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올 하반기 개봉 대기작 명단에 오른 타이영화는 현재 4편. 이들 작품은 전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대중성도 확보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했던 용유스 통큰턴 감독의 <철의 여인들>은 타이에서 1억 바트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며 올해 베를린영화제, 토론토영화제 등에 출품돼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 오직 한명을 제외하고 게이 또는 성전환자 등으로 구성된 한 지역의 배구팀이 전국대회에 출전한다는 설정의 이야기는 실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했다. 허술한 구석도 다분히 엿보이지만 마이너리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엿보이는 넉넉한 작품.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내부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자칫 심각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유
국내 개봉 앞둔 타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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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라논지 니미부트르의 세 번째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는 작품. 아마도 2001년도의 가장 중요한 아시아영화 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1966년에 출간된 동명의 원작소설은 타이의 젊은이들에게는 일종의 성의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많은 감독들이 이 작품을 영화화하고자 했지만, 논지가 뜻을 이루었다.40년대의 방콕을 배경으로, 사랑과 성, 증오와 배신에 관한 이야기가 잔다라라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잔다라의 어머니는 잔다라를 낳다가 세상을 뜨고, 아버지는 그를 일생 동안 증오한다. 아버지의 후처가 된 이모가 그를 감싸주지만 그의 외로움과 반항은 점차 깊어만 간다. 그는 세명의 여인과 운명적 관계를 맺게 되는데,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동급생, 그리고 이웃집으로 이사온 아버지의 옛 연인 분루엥 부인, 정략결혼을 하게 되는 사촌이 바로 그들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잔다라의 출생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면서 극적 긴장감이 증폭되며, 잔다라가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와
2001 하반기 타이영화 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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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에서 지속적으로 실험영화를 만들고 있는 거의 유일한 감독이 바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다. 국내에는 지난 전주영화제를 통해 최근작 <정오의 낯선…>(2000)이 소개된 바 있다. 그는 ‘킥 더 머신’이란 개인 회사를 만들어 실험영화 제작은 물론, 워크숍, 강좌 등을 통해 실험영화 문화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킥 더 머신’은 어떤 회사인가.= 지난해 문을 열었는데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프로젝트가 있으면 프리랜서들이 합류해서 같이 일을 하고. 타이에서 실험영화는 타이 필름 파운데이션 등에서 부정기적으로 상영하고 있지만, 제작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그래서 킥 더 머신을 만들었다.+ 실험영화 제작 워크숍도 하는데, 강사이름에 펜엑, 옥사이드도 들어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주류 영화감독인데, 잘 도와주나.= 지난해 10월에 첫 워크숍을 했는데, 펜엑은 바빠서 약속을 못 지켰다. 당시 메이저회사 사람이나 저명한 영화평론가도 와서 강의했다. 아쉬운 점은 워크숍이 끝난 이후 완성된
실험영화 위해 ‘킥 더 머신’ 설립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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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뉴웨이브의 중심에는 늘 논지 니미부트르가 있다. 1997년 <댕 버럴리와 그 일당들>로 데뷔한 이후 <잔다라>에 이르기까지 단 3편만을 만들었지만, 국내시장뿐 아니라 전세계를 향해 타이영화의 가능성을 열어보인 최초의 감독이었고, 동료나 후배의 데뷔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는 메이저 회사인 ‘필름 방콕’에서 감독 겸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타이의 대표적인 여성제작자인 듀앙카몬 림차로엔과 함께 독립영화사 ‘시네마시아’를 차려 첫 작품 <잔다라>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먼저 한창 믹싱작업중인 <잔다라>에 대해 묻고 싶다. 10명이 넘는 감독이 원작소설이 있는 이 작품의 영화화를 원했지만 결국 당신이 하게 되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낭낙>의 성공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차기작이 무엇인지 물어왔고, 나 또한 심적 부담이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성애소
<낭낙> <잔다라> 감독 논지 니미부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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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영화평론가 돔 숙봉은 타이영화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된 프린트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사를 연구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듬해부터 필름 아카이브 설립 운동을 시작하였다. 초창기에는 정부로부터도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였고, 언론을 통해 겨우 모금운동을 펼치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민의 후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정부를 끌어들일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우연히 1897년 유럽을 방문하였던 출랄롱코른 왕의 모습이 담긴 필름이 스웨덴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침 1983년 스웨덴 필름 아카이브 주최로 열린 세계 필름 아카이브 연맹 총회에 참가하여 스웨덴 필름 아카이브가 보관하고 있던 그 문제의 필름을 찾아내기에 이르른다. 타이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영주로 꼽히는 출랄롱코른 왕(<왕과 나>의 황태자가 바로 어린 시절의 그이다)에 대한 타이 국민들의 존경심은 대단한데, 바로 그
돔 숙봉의 외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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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영화 연일 흥행기록 경신, 150억짜리 영화 만들며 산업화 시동도대체 타이영화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1997년 세명의 신인감독이 동시에 데뷔를 하였다. 당시 타이는 금융위기의 와중에 있었고 영화산업 역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해에 100여편을 만들던 규모에서 20편 미만으로 뚝 떨어진, 그야말로 암담한 현실 속에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들 세명의 감독이 내놓은 데뷔작들은 종래의 타이영화와는 전혀 새로운 작품들이었고, 2001년의 시점에서 보면 그것은 타이영화의 부활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논지 니미부트르의 <댕 버럴리와 그 일당들>과 옥사이드 팡의 <달리는 사나이>, 그리고 펜엑 라타나루앙의 <펀 바 카라오케>(이들 3편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다) 등은 비록 평단의 논란은 있었지만, <댕 버럴리와 그 일당들>이 당시까지의 모든 타이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움으로써 최소한 산업적 가능성은 입증해
타이영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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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적이고 어처구니없는 판타지 <…따뜻한 물>“그럼 무리해서 질문을 해보시오.”이 노인의 머릿속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 어떻게 여자의 몸에서 물기둥이 솟아오르고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외설적이고 황당무계하고 어처구니없는, 그러나 통쾌하기 짝이 없는 판타지가 75살 감독의 것이 될 수 있었을까. 젊은 시절보다 어떻게 더 발칙하고 자유분방할 수 있을까(이 시점에서 이마무라에게 먼저 고백을 했다. 칸영화제에 가지 않았던 질문자는 아직 <…따뜻한 물>을 보지 못했음을. 그러나 그 영화를 소개한 글들만 봐도 궁금함을 참기 힘들어,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질문을 하게 됐음을. 이마무라는 씩 웃으며 대꾸했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그 영화에 대해 물어본다고? 그래, 그럼 어디 무리해서 질문을 해보시오.” 가벼운 잽인데, 맞는 사람은 아찔하다. 식은땀 나는 한방이다).그런 초현실적인 묘사를 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습니까.“처음엔 고민을 했지. 이게 오버는 아닐까 하
어떤 거장의 초상, 75살의 푸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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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애들 손좀 봐야겠습니다.”오즈 야스지로가 <도쿄 이야기>(1953)를 찍을 때, 이마무라 쇼헤이는 조감독이었다. 이마무라가 손봐야겠다고 한 건 초등학생 무리로 출연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오즈 영화의 출연자답게 앞만 보고 너무도 질서정연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마무라의 생각은 이랬다. ‘애들이 뭐 저래. 내가 저 나이 땐 저러지 않았어. 저건 애들이 아니야. 군대지.’ 이마무라는 오즈의 마지못한 허락을 얻어 아이들을 흔들었다. “야, 니들 하고 싶은대로 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난리법석을 피웠다. 대열에서 이탈해 엉뚱한 데 가 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촬영중에 오줌 싸는 아이까지 있었다. 물끄러미 이를 보던 오즈가 말했다. “이마무라군. 안 되겠네. 내 방식대로 해야겠어.”이마무라는 이것이 사부인 오즈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저항”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마무라는 오즈를 떠났다. 오즈의 평생의 영화적 거처인 쇼치쿠를 떠나
어떤 거장의 초상, 75살의 푸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