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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연기(演技)한다. 단짝친구를 위해 거짓기억을 연기하고, 오디션 장의 심사위원들 앞에서 쭈뼛거리며 연기한다.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려보라는 심사위원의 요구에 소녀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소녀는 잊은 것일까? 바로 전 장면에서 그 아이는, 함께 살지 않는 아빠와 잠깐 만났다가 헤어졌다. 이별을 연기(延期)하려는 듯 “사랑해”라고 외치는 소녀에게 아빠는 “그럴 땐 ‘안녕’이라고 해야지”라고 교정해주었다. 전철에서 내린 아빠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바삐 플랫폼을 떠나지만, 떠나는 열차 안에 남은 소녀는 차창 밖을 그저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심사위원은 다시 주문한다. “재채기를 해보세요. 재채기를 한다고 상상하면 눈가가 젖어오지 않나요?” 소녀는 이마를 한껏 찡그리며 애써보지만 재채기는 쉽게 튀어나오지 않는다.
소녀의 연기(演技)는 아직 내면과 자의식을 품고 있지 않다. 아이는 모른다. 제가 지금 왜 이 오디션 장에 나와 앉아있는
[정이현의 해석남녀] <하나와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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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뮤지션으로 데뷔했다. 자선행사용 깜짝 데뷔가 아니라 정식 앨범을 발매하며 시작한 본격적인 데뷔다. 지난 11월23일에 판매 개시한 <퓨처리스트>는 직접 작곡한 여섯곡의 팝 발라드와 다양한 리메이크 곡들이 담겨 있다. “감독이 형편없고 시나리오가 후져서 그랬다며 변명할 수 있는 연기에 비해 음악은 더욱 자립적인 능력을 요하는 것이어서 훨씬 힘들었다”라는 것이 그의 소감이다. 이제는 빌보드 차트에서 다우니 주니어의 이름을 볼 수 있을 듯.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뮤지션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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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대 일본에서는 이름만 써도 편지가 배달되는 사람이 딱 둘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됐다. 천황과 역도산. 일제시대인 1924년 한국에서 김신락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십대 후반 일본에 건너간 역도산은 스모 1인자를 꿈꾸다 프로레슬러로 전향해 성공했다. 가라데촙으로 거구의 미국레슬러를 통쾌하게 쓰러뜨리는 역도산은 패전국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었고, 1963년 야쿠자의 칼을 맞고 사망한 이후에는 거의 신화가 됐다. 지금까지 나온 그에 관한 책들만도 2백여 가지일 정도. 그러나 프로레슬링의 세계가 그렇듯 그는 환상의 ‘수퍼맨’ 일뿐만 아니라 흥행을 위한 쇼맨십과 모사에 능한 장사꾼이기도 했다.
그동안 일본과 한국의 여러 제작사에서 시도해왔지만 결국 송해성(감독)-설경구(배우)-차승재(제작) 팀으로 ‘완성본’을 내놓게 된 <역도산>은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라 자멸을 눈 앞에 두고도 앞을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비극적 운명을 그의 덩치만큼이나 육중한 화면에 담는다.
<역도산>은 어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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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배우가 준비하는 큰 영화에는 언제나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지만, 올 한해 <역도산>의 설경구(36)만큼 많은 시선을 받은 배우는 없다. 살이 얼마나 쪘네, 일본어 대사 실력이 어떻네 등 촬영현장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화제를 낳은 설경구의 <역도산>, 또는 <역도산>의 설경구는 적어도 하반기 충무로 최대의 궁금증이었다.
늘어난 덩치만큼 넓어진 연기, 거친 반골기질, 역도산과 닮아
싱겁지만 결론은 ‘역시’다. <박하사탕> 때 이미 연기의 한 정점을 보여준 설경구는 이번 <역도산>에서는 늘어난 체적만큼이나 넓어진 연기폭을 과시한다. 링에 고꾸라지는 그의 앙다문 입술 대신 바닥에 뭉개지는 어깨가 비명을 지를 때, 함께 연기한 일본 배우 후지 다쓰야의 말대로 그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 처럼 보인다.
변한 건 덩치가 아니라 얼굴
<역도산> 촬영 내내 가장 화제가 됐던 건 30kg 가까이 찐 살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
완벽한 ‘역도산’의 현현,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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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는 알겠다. 영화에 반한 그 청년이 왜 그토록 비의 리듬에 몰두했는지를.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지난 11월18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제17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는 비 속에서 개막돼, 오가는 빗줄기에 젖어 있었다. 빗줄기는 그때의 빗줄기가 아니겠지만, 그때의 거리는 곳곳에 남아 있었다. 요리스 이벤스들이 영화에 관한 토론으로 밤을 지샜다던 살롱들이 영화제가 열리는 광장 주변에서 여전히 손님을 맞고, 푸도프킨의 <어머니> 상영을 당국이 금지하자, 이벤스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는 아메리칸 호텔에는 다큐멘터리 마켓, 독스 포 세일이 차려졌다. 여전한 것은 또 있다. 현실을, 현실의 변화를 포착하려던 다큐의 정신이다. ‘변화’는 올 IDFA에서 중요한 표제어였다.
‘벽에 붙은 파리처럼’ 현실로
60년대 미국 다큐멘터리사에서 솟아오른 ‘시네마베리테’(혹은 다이렉트시네마) 감독들이 암스테르담에 나타났다. 존 F. 케네디가 말 그대로 새로운
제17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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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2년 연속 1위에 올라
줄리아 로버츠가 2년 연속 할리우드에서 가장 몸값 비싼 배우가 됐다. 매년 여배우 수입 톱 10을 조사하는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줄리아 로버츠는 올해 <클로저>에 출연하면서 2000만달러를 받아 카메론 디아즈와 니콜 키드먼 등을 누르고 출연료 1위에 올랐다. 오스카 트로피에다가 얼마전 태어난 쌍둥이 남매와 최고의 수입까지, 줄리아 로버츠는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클로저>는 현재 미국에서 개봉중이고 국내에서는 내년 초 개봉예정이다.
카메론 디아즈는 역시 2000만달러 배우지만 올해 <슈렉2>외의 출연작이 없어서 2위로 랭크됐다. 니콜 키드먼, 리즈 위더스푼, 드루 배리모어는 1500만달러로 3,4,5위에 올랐다. 최근 내한했던 르네 젤위거는 1200만달러를 벌어 9위이고, 큰 흥행작이 없었던 제니퍼 로페즈는 9위에서 10위로 하락했다. 이외에 조디 포스터, 멕 라이언, 기네
줄리아 로버츠, 할리우드 최고 몸값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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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품 전체 36편에 전체 상영은 60회. 국제영화제치고는 조촐하기 그지없는 규모다. 하지만 지난 11월20일부터 28일까지 펼쳐진 제5회 도쿄필름엑스영화제(TOKYO FILMeX 2004)엔 활력과 도전적 기운이 넘쳐났다. 지난해보다 관객도 5% 정도 늘어 1만8천여명이 행사장 세곳을 메웠다. 작지만 차별적이고 탄탄한 국제영화제. 대부분의 영화제들이 갈수록 규모와 비즈니스에 방점을 찍으며, 도대체 무슨 작품들이 상영되는지 파악하기도 힘든 요즘 한국의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영화들을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하며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자리잡은 이 행사는, 올해도 주목받을 만한 작품과 이벤트로 눈길을 끌었다. 개막작인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환생>)의 신작 <카니리아>는 95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옴진리교의 독가스 사린사건을 배경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올해 또 하나의
[도쿄] 작지만 색깔있는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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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의 윤석호 PD가 <키네마순보> 역사상 처음으로 특별상을 수상하는 외국인이 되었다. 지난 11월30일 <키네마순보> 주최, 주한 일본대사관 홍보문화원 후원으로 윤석호 감독에게 한·일 우호 공로상이 수여되었다. 시상식에는 <키네마순보>의 대표 고바야시 히카루가 윤 PD에게 트로피를 전했다. 트로피는 <가게무샤> <영웅> <연인>의 의상디자인을 담당했던 와다 에미가 디자인한 것이다.
이날 윤 PD는 “2002년 1월 방영을 시작으로 3년 동안 <겨울연가>와 함께했다”고 이제까지의 일을 회상하며 “한국과 일본이 정치·경제적으로는 이해관계 탓에 불편한데 문화적으로 그걸 많이 순화할 수 있다는 점을 양국을 오가며 수차례 체감했다”고 수상소감을 덧붙였다. 그는 트로피를 받아들자마자 전부 금이냐고 농담을 해서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고바야시 대표는 자신의 아내와 여동생도 <겨울연가>
<겨울연가> 윤석호 PD, 한·일 우호 공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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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쾌척이 난파 일보직전의 대학 영화학부를 구해냈다. 내년 5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를 개봉하게 될 조지 루카스 감독, 최근 그가 데이비드 토히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재주꾼들을 배출한 대학원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영화 및 전자예술 학부에 장학금과 장비구입비용으로 십만달러를 기부했다. 학교 관계자는 루카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난 10월의 폭풍으로 인해 손상된 영화 장비들의 수리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조지 루카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10만달러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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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겸 탤런트 정준호(34·사진 맨 왼쪽), 김정은(28·오른쪽)씨가 내년 10월 말 문을 여는 새 용산국립중앙박물관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8일 오후 새 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홍보대사 위촉식을 열어 두 사람에게 위촉장을 주었다. 박물관쪽은 “두 배우가 사회봉사 단체 등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등 특유의 친근한 이미지를 지녀 국민에게 다가가는 새 박물관 방향과 어울린다”고 말했다. 정씨와 김씨는 위촉장을 받은 뒤 “시내 한복판에 9만평에 달하는 대형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국민적 자부심을 느낀다. 박물관이 편안한 이미지로 국민에게 다가가도록 몸으로 뛰겠다”고 다짐했다.
배우 정준호·김정은 중앙박물관 홍보대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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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쟁 신설 등 변화의 물결, 진화하는 선댄스
2005년 선댄스영화제(1월20∼30일)가 상영작 목록을 발표했다. 2613편에 달하는 출품작 가운데에서 마침내 상영작을 결정한 제프리 길모어 선댄스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역사상 가장 흥분되는 경쟁부문 상영작 목록”이라고 총평, 2005년 프로그램의 새로운 변화를 공언했다. 1월20일부터 열흘간 상영될 120여편의 영화들 중에서 파크시티의 커튼을 열어젖힐 작품은 중산층 미국 가족의 자화상을 코믹하게 비틀어낸 돈 루스 감독의 <해피 엔딩>.
이번 선댄스영화제는 극영화 국제경쟁부문을 신설함으로써, 미국 독립영화의 산실이라는 세평을 넘어서 국제적인 영화제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부문에는 2004년 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에콰도르의 신성 세바스천 코데로의 <크로니카스>, 피터 뮬란이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너려는 노동계급 남자로 분한 영국영화 <맑은 날에>, 쇼핑에 중독된 아내를 말리려는 샐러리
2005년 선댄스영화제 라인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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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이하 <하울>)이 3주째 일본 박스오피스를 몰아치고 있다. 지난달 11월 20일 448개관에서 개봉한 <하울>은 개봉 9일만에 350만명을 돌파하고 지난주에는 500만명을 훌쩍 넘겼다. 12월 5일(일)까지의 정확한 집계수는 521만 9,176명. 배급사 도호는 16일만에 500만명이 넘은 국내작품은 하야오의 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유일하며, 외화로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뿐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영화전문 사이트 에이가닷컴(www.eiga.com)은 지금까지 <하울>의 공식적인 흥행수익은 알려진바 없으나 관람요금이 1400엔 전후이므로 총수입은 70억엔(70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보다 일주일 먼저 개봉한 픽사의 신작 <인크레더블>은 <하울>을 물리치지 못하고 2위로 데뷔했다. <인크레더블>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인크레더블>도 제치고 일본 흥행 3주째 1위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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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나라 안에서는 방송사를 먹여살리는 콘텐츠로 시청자와 광고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나라 밖에서도 한류 열풍의 진원지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잘 키운 드라마 하나가 열 제조업 부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 드라마의 넓고 깊은 공백을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가고 있다. ‘상품’으로서 단기적인 성취는 이뤘는지 몰라도, 시청자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문화로서의 성취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다. 당대 리얼리티의 반영이라는 문화의 핵심적 기능이 한국 드라마에선 거세된 영역으로 남아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장르 전화와 거세된 사회성
한국 드라마의 공백은 현실의 배제와 판타지의 적극적 추구라는 주제와 소재의 제한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달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선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티브이 드라마와 리얼리즘의 문제-현단계 티브이 드라마 진단과 제언’을 주제로 언론개혁
한국드라마 리얼리즘 어디 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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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게 기른 코밑 수염에 폭탄이라도 맞은 듯 부푼 ‘파마 머리’와 건장한 체격. 우선 우스꽝스런 외모가 눈길을 끈다. 그런데 한 박자 느린 몸짓과 천천히 더듬거리는 둔한 목소리가 한 순간 긴장을 깬다. “뭐야 뭐야 뭐야~.”
또 다른 콧수염도 있다. 그러나 진한 쌍꺼풀에 길게 길러 묶은 머리 하며, 반짝 거리는 현란한 무늬의 블라우스는 뭔가 모르게 중성적인 냄새를 풍긴다. ‘마가린 버터 3세’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갑자기 라틴풍 음악이 튀어나오면 엉거주춤 손을 들고 무대 위를 오가며 어설픈 춤을 춘다. 일명 ‘더듬이 춤’이란다.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에스비에스 개그 프로 <웃찾사>의 두 주역이다. 앞의 파마머리는 ‘택아’와 ‘뭐야’라는 두 꼭지의 주인공 윤택(27)이고, 뒤의 긴 머리는 ‘비둘기 합창단’에 나오는 리마리오(33·본명 이상훈)다. 윤택이나 리마리오까진 몰라도 ‘뭐야’나 ‘더듬이 춤’ 정도는 알아야 요즘 어디 가서 말이 통한단다. 모른다면? “뒤떨어졌
윤택 · 리마리오의 콧수염 기존 남성성을 깨고 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