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와 주노는 방년 15살의 파릇파릇한 아해들이지만, 재희와 준호는 15×2(+α)의 나이를 먹은 늙수그레한 연인 사이였다. 사귀기 시작한지도 어언 몇 해가 흘렀으며 얼마 전 나란히 삼십대의 문턱에 진입한 그 한 쌍. 그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질문이 ‘대체 국수는 언제 먹여 줄 거야?’ 라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혼? 언젠가는 해야겠지. 둘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돈이었다.
준호는 장남이었다. 일찌감치 생활능력을 상실한 부모를 위해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태야했다. 오래 전 주식투자로 진 빚도 아직 남아있었다. 콧구멍만한 직장의 월급은 종종 밀렸다. 그럴 때면 돌려 막은 카드의 결제에 문제가 생길까봐 가슴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곤 했다. 제 2금융권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재희는 계약직이었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인 셈이었다. 결혼하고 계속 지금의 직장에 근무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서른 넘은 기혼여자가 새로운 직
[정이현의 해석남녀] <제니, 주노>의 재희와 준호
-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는 ‘장난하냐?’라는 제목의 코너가 있다. 삼형제가 등장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서로를 트집잡고 시비걸면서 다투다가 얼토당토않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합창으로 마무리 짓고 끝나는 개그다. 도저히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없는 ‘갈굼’ 모드로 점철하면서도 가족이 최고라고 매듭짓는 결론이 도리어 역설적으로 들려서 킬킬거리게 된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충무로에서는 가족 드라마가 꾸준히 강세다. <가족> <우리형> <말아톤> 그리고 최근 개봉한 <주먹이 운다>까지 소재와 설정은 제각각이지만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가족의 복원이라는 공통된 이야기축이 주요 흥행코드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가족의 가치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주제이고, 가족영화는 20대에 치우쳤던 관객층을 넓힌다는 장점도 있지만 최근의 가족 드라마 인기에는 아쉬운 구석이 있다. 대부분의 가족영화들이 강조하는 가족의 가치는 변하고 있는
[팝콘&콜라] 뻔한 가족 드라마 <마파도>에서 대안을 찾다
-
일본만화 <몬스터>가 드디어 영화화의 첫발을 뗐다. 미국 뉴라인 시네마가 이 만화의 판권을 획득해 실사영화로 제작한다고 4월7일 <할리우드 리포터>가 보도했다. <몬스터>를 펴냈던 일본 쇼가쿠칸 출판사가 영화제작에 참여한다. 쇼가쿠칸은 <포켓몬>시리즈도 제작했던 메이저 회사다.
이 만화는 <마스터 키튼><20세기 소년>의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으로, 1995년 1권이 나온 지 7년 만인 2002년 2월 18권으로 완간됐고 TV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제작됐다. 장대한 스케일과 복잡하지만 치밀한 구성, 빠른 전개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강력한 흡입력이 특징이며 99년에 연재중인 작품으로는 최초로 제3회 데즈카 오사무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격찬을 받은 화제작이다. 일본에서만 2500만부가 팔렸고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각광받았으며 한국에서도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일본인 의사 덴마가 우연하게 한 소년을 살려내는데 이
만화 <몬스터> 할리우드에서 본격 영화화
-
“방송사 분들 이제 나와주세요. 다음은 일간지 기자분들 차례입니다. 그 뒤가 전문지니까 준비해주세요.” 3월의 마지막날 파주 아트서비스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친절한 금자씨>의 현장 풍경은 매우 낯설었다. 200명 가까운 취재진이 몰린데다 촬영이 좁은 세트장 안에서 이뤄진 탓에 주최쪽은 분야별로 조를 나눠 촬영을 허용했다. 2시30분쯤 일본과 홍콩 취재진을, 그로부터 1시간쯤 뒤에는 한국 취재진을 세트 안으로 ‘입장’시켰고, 국내 촬영진은 방송, 일간지, 전문지, 인터넷 매체로 세분해 현장 촬영을 허용했다. <대장금>이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홍콩의 15개 매체에서 온 40명의 기자와 일본 기자 70명, 국내 기자 80명이 뒤엉키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였겠지만, 각각에 배정된 시간이 너무 짧다보니 “현장 공개라기보다는 이벤트 같다”는 불평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날 촬영분은 주인공인 금자(이영애)가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감방 동기의 집에
박찬욱 감독, 이영애 주연의 <친절한 금자씨> 촬영현장
-
-
최근 파리의 아랍세계 연구소에서 있었던 회고전은 산업으로서의 세계 영화의 쇠락을 확인하게 해줬다. 영화 초기, 세계 각 지역은 연이어 작품을 만들어내는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었다. 각 지역은 세계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그러나 미국과 인도 두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그라져버렸다.
‘영화산업’이라는 표현은 프랑스나 한국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 두 나라에서, 영화는 스튜디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화 제작사라는 곳에서 가내공업적인 방법으로 운영되었다. 영화 제작사들은 새로워지기 위해 재능있는 신인들을 끌어안으려 노력하지만 그들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194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카이로는 뭄바이나 할리우드 같은 영화공장이었다. 당시의 스타들은 2억에 달하는 아랍권 관객을 매혹시켰다. 영화사가인 조르주 사둘은 “1942년부터 몇몇 아랍국가에서 미국이나 유럽영화들은 일주일 이상 간판을 유지하지도 못한 반면에 이집트영화의 개봉작들은 수개월 동안 상영되기도 했다.
[외신기자클럽] 잊혀진 아랍의 영화들 (+불어원문)
-
지난 주말 일대 접전을 벌였던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이 2주차에도 기싸움을 하고 있다. 식목일 연휴에 서울지역에서 동원한 관객은 <주먹이 운다>가 71개 스크린에 49,942명, <달콤한 인생>이 74개 스크린에 49,918명으로 고작 24명 차이다. 이 정도면 비교의 의미가 없다. 서울지역 누계를 보면 <달콤한 인생>이 약간 앞서 있는데 그마저도 미미한 수준이다.
그런데 전국 총관객수는 여전히 <주먹이 운다>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5일까지의 전국누계는 <주먹이 운다>가 68만여명, <달콤한 인생>이 61만여명으로 약 7만명 정도 차이가 난다. 박빙인 서울지역과 달리 지방에서는 <주먹이 운다>가 좀더 먹힌다는 얘기다. 현재 주요 예매사이트의 예매율에서도 <주먹이 운다>가 <달콤한 인생>에 10% 정도 앞서 있는중. 개봉 신작중에서도 <주먹이 운다&
[주말극장가] <주먹이 운다>가 쐐기를 박을까
-
결혼식장을 박차고 나와 함께 버스에 올랐던 벤자민과 일레인은 그뒤 어떻게 됐을까? 1963년작 <졸업>의 후일담이 존재한다지만, 작가가 죽기 전까지는 그 내용을 알 수 없을 것 같다. <졸업>의 작가 찰스 웹은 최근 <옵저버>와의 인터뷰에서 <졸업>의 속편을 2개월 전에 완성했지만, 그 내용을 생전에 공개하지는 않겠다고 못 박았다.
찰스 웹이 <졸업>의 속편이라고 밝힌 작품의 제목은 <홈 스쿨>이다. 벤자민과 일레인은 제도 교육에 상처받은 자신들의 경험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살아가는데, 이들 삶에 여전히 로빈슨 부인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이야기. 실제 캘리포니아 히피 출신으로 아이들과 캠프에서 생활했던 찰스 웹은 <졸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한 <홈 스쿨>을 기존에 영화화한 적 없는 “현실 도피, 언더그라운드, 반문화적”인 이야기라고 소개한
[What's Up] <졸업> 속편, 출판은 원작자 사후에나 가능할 듯
-
세계적인 감독들의 미국 프리미어와 오프닝 나이트 파티, 스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3주간 계속되는 연이은 행사들. 어느 유명 영화제를 묘사하는 것 같지만, 이 풍경은 지난 97년에 시작된 뒤 해마다 큰 호응과 명성을 얻고 있는 뉴욕어린이국제영화제 2005의 모습이다.
디즈니와 픽사 등 할리우드 패밀리영화를 배제하고, ‘어린이를 위한 독립영화’를 보여 주고 있는 이 영화제는 올해 대니 보일 감독의 첫 가족영화 <밀리언즈>를 오프닝작으로 시작했다. 보일 감독은 두 꼬마 주인공과 함께 이번 행사에 참여했고, 역시 미국 프리미어인 <스팀보이>의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도 관객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밖에도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의 <고양이의 보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제작된 장편애니메이션 <작고 긴 코>(Little Longnose) 등 많은 작품들이 뉴욕은 물론 미국에 첫선을 보이는 기회를 가졌다. <밀리언즈>
[뉴욕] 관객과 영화계의 환호, 9회 맞은 뉴욕어린이국제영화제
-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아카데미(MPAA)가 시상식 티켓을 무단으로 판매한 3개 회사와 암표상 50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MPAA가 LA법원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올해 시상식 티켓 2장이 3만달러의 가격에 암거래됐다고. ‘지상 최대의 쇼’인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테러리스트와 스토커 등 위험으로부터 참석자를 보호하기 위해 삼엄한 보안이 이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불법이 자행된 것이다. 고가의 티켓을 구입한 이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힐러리 스왱크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하는 열성팬들이다. 이번 소송에 관련된 한 변호사는 티켓 가격이 4만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고 밝혔다.
피소된 암표상 중에는 샤론 오스본의 리무진 운전기사도 포함돼 있다. 샤론 오스본은 유명 록커 오지 오스본의 부인이다. 이 운전기사는 오스카 티켓을 500달러에 판 혐의를 받고 있는데, 샤론 오스본은 이런 운전기사를 둔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시상식 티켓은
MPAA, 오스카시상식 티켓 암표상 소송
-
유니버설과 드림웍스가 공동제작한 <미트 페어런츠2>가 전세계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실사코미디영화로 등극했다. 이전까지는 4억8450만달러 수입을 올린 짐 캐리의 <브루스 올마이티>가 1위였다. 전편에 출연했던 벤 스틸러와 로버트 드 니로에다가 더스틴 호프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까지 가세한 속편<미트 페어런츠2>는 전세계적으로 5억400만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4월4일자 외신에서 보도됐다. 미국 박스오피스 수입만 2억7700만달러에 달한다.
<미트 페어런츠2>는 2004년 크리스마스에 북미에서 개봉해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이후 영국, 호주, 독일, 이탈리아 등 해외 각국에서 차례로 개봉해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점과 ‘결혼’과 ‘사돈’이라는 보편적인 소재의 내용이라는 점이 전세계 관객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4월15일 개봉하며 일본에서도 곧 상영될 예정이다.
이번 속편에서
<미트 페어런츠2> 흥행 신기록 수립
-
한국이나 일본이나 4월은 전통적인 극장가 비수기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나들이 인파가 부쩍 늘어나고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극장가 주변에도 학생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지난주에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 등 기대작 두편이 선보여 비수기라는 말을 무색케 했지만, 일본은 전주와 비교해서 탑10에 새로 진입한 작품이 한편도 없다.
정체된 극장가 분위기 탓인지 <내셔널 트레져>는 큰 어려움없이 3주 연속 일본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다. 배급사 목표수익 30억엔은 현재 상황에서 봤을때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순위 변동은 지난주 2위로 데뷔했던 <에비에이터>가 4위까지 미끄러진 것과 전주 3위였던 <샤크>, 6위였던 <원피스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이 각각 2위와 3위로 상승한것 정도다. 상승한 영화들은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밖에 <하울의 움직이는
<내셔널 트레져> 3주 연속 일본 흥행 1위
-
오래된 영화를 기억하는 건 길게 객차를 매달고 한밤중을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오래된 기억들이 모두 그러하듯, 오래된 영화의 기억도 작게 분절되어 있다. 시퀀스들은 사라지고 스틸사진들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흘러간다. 캄캄한 밤을 달리는 긴 객차마다 차창에 한 여배우의 얼굴이 떠 있다. 나스타샤 킨스키. 내가 사랑했던 단 한 명의 여배우라고 조금도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 그녀가 내게 손짓한다. 멀리서 바라보지만 말고 이 기차에 올라타세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기차에 올라탄다.
대학 1학년 시절. 1979년. 동숭동 낙산자락 달동네의 작고 허술한 방. 앉은뱅이 책상, 철제 책꽂이, 아버지가 대학 입학 선물로 사주신 전축. 둘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이었다. 앉은뱅이 책상 위에 언제나 펼쳐진 채로 놓여진 책이 있다. <테스>. 300원짜리 삼중당 문고 한 권을 사면서도 새가슴이 되어야 했던 시절, 그 크라운 판형에 올 컬러 책을 사기 위해 내가 써
[스크린 속 나의 연인] <테스>의 나스타샤 킨스키
-
미국에서 개봉한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한해 인구에 회자되었던 <올드보이>를 다시 불러낸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는 하다. 다만, 외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비평의 논리가 흥미로워서라면 한번만 더 곱씹어보자. 지난 3월25일, LA와 뉴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예상했던 대로 칸영화제에서의 비평 논쟁을 재연하고 있다.
각 언론 매체들은 이른바 예술영화와 컬트영화, 작품성과 대중성, 내용과 스타일의 양분법에 입각한 자신들의 오랜 소신을 바탕으로 <올드보이>의 위치를 규정하느라 바쁘다. 예를 들면, “산낙지를 먹고, 망치로 사람 머리를 부수는 사내와 ‘아트’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라는 <뉴욕타임스>의 비평문 서두는 일찌감치 폭력 묘사, 선정적인 내용, 현란한 스타일로 가득한, 이라는 문구가 이어질 것임을 예상케 한다. 데이비드 린치식의 스타일지향주의적 B급영화가 일부 시네필의 지지를
[현지보고] 미국 개봉한 <올드보이>, 혹평과 호평의 격전 벌어져
-
오달수 없으면 한국영화도 없다. 웬 ‘오버’냐 싶겠지만 사실 최근 화제작에는 오달수(37)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입소문을 타고 관객 200만명을 동원한 <마파도>를 비롯해 1일 나란히 개봉한 <달콤한 인생>과 <주먹이 운다>에 출연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비열한 조폭으로, 어설픈 무기밀매상으로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는 그를 보면 배우에 별관심없는 관객이라도 “저 사람 누구야?”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나고 자란 부산과 대학로에서 10년 넘게 연극을 해온 오달수는 <올드 보이>에서 감금된 오대수(최민식)를 괴롭히는 깡패 역으로 영화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연극하면서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연기자에게 연기 알바만큼 좋은 게 없잖아요. 오디션 보러갔을 때 대학로 대선배들이 이름표 달고 줄서 있는 거 마주치면 서글프기도 하지만….” 이제는 오디션 보는 단계를 넘어 김지운, 류승완, 그리고 출연을 마친 <친절
나, 오달수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