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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일련의 규칙을 읊는 제시 아이젠버그의 내레이션으로 <좀비랜드>는 막을 열었다. 허술한 액션으로도 운 좋게 살아남은 제시 아이젠버그와 동료들이 10년 만에 <좀비랜드: 더블 탭>으로 다시 뭉쳤다. 좌절이나 희망 따위는 표정에 드러나지 않는 의연함, 그럼에도 어디선가 풍기는 '짠내'를 지울 수 없는 제시 아이젠버그.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애틋한 인물이 되고야 마는 그의 지난 캐릭터를 돌아보자. 특유의 속사포와 거북목, 태연자약한 표정마저 사랑하게 될 것이니.
오징어와 고래 / 월트 역
<프란시스 하>와 <결혼 이야기>를 만든 감독 노아 바움백의 초기 작품. <오징어와 고래>는 부모가 어린 두 자녀에게 이혼을 통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다룬다. 한때 유명 소설가였던 아버지는 쉽게 남을 평가 내리면서, 지적 소양만이 유일한 자존심으로 남은 허영적 인물이다. 위험하게도 제시 아이젠버그가
미워할 수 없는 너드, 제시 아이젠버그의 캐릭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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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7일 개봉,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신의 한 수> 스핀오프 <신의 한 수: 귀수편>. 여타의 도박 소재 영화들과 달리 ‘액션’에 집중, 확실한 타기팅에 성공한 사례다. 국내 도박 영화 하면 빠질 수 없는 <타짜> 시리즈는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심리전을 내세웠다. 이외에 볼링 도박을 담은 <스플릿>은 자폐증을 앓는 소년을 등장시켜 드라마에 치중했다. 그러나 세 작품의 공통점은 돈은 기본, 목숨을 걸고 도박 대결을 펼친다는 것. 덕분에 쫄깃한 긴장감은 기본으로 내재됐다.
그렇다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제작된 다양한 도박 소재 영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전부터 유명 프랜차이즈까지, 각양각색의 도박 영화 일곱 편을 소개한다. 앞서 언급한 국내 영화들은 제외했다.
<스팅> (1978)
도박은 예나 지금이나 매혹적인 영화적 소재였다. 말론 브란도 주연의 <아가씨와 건달들>(1955), 스티브 맥퀸 주연의
손모가지는 기본! 각양각색의 도박 소재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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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전담하는 경찰공무원을 지하철경찰대, 줄여서 ‘지경대’라고 부른다. 여느 형사들처럼 사복 차림으로 잠복근무를 해도 통신수단은 경찰무전이 아닌 ‘카톡’이다. tvN <유령을 잡아라>의 지경대 수사1반 고지석 반장(김선호)은 멋쩍게 말한다. “순찰차 없어요. 우린 지하철 타요.”
서울 시민 열명 중 여덟명이 하루에 한번은 지하철을 이용한다. 이동수단으로 보자면 아홉개 노선과 환승역을 간략화한 노선도 한장으로 이해는 충분하지만, 제작진은 지하철의 본래 스케일과 그곳을 일터로 삼는 사람들을 되살리려 애쓴다. 지하철 광고판 틈새에 꽂힌 대부업자의 명함, 노인택배 노동자, 유행가 CD를 파는 이동행상, 지하철 분식집이며 땡처리 매장 사람들도 극의 중요한 요소다. 역사 내 동선과 승강기 위치를 비롯해 각종 지형지물을 3D 투시도처럼 떠올리는 신참 형사 유령(문근영)은 지체 없이 돌진하는 인물이다.
극중 지하철 연쇄살인사건을 다룰 때도 주목하는 쪽은 공간
<유령을 잡아라>, 매일의 지하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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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크리스마스> Last Christmas
감독 폴 페이그 / 출연 에밀리아 클라크, 헨리 골딩, 에마 톰슨, 양자경 /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처스 / 개봉 12월 5일
<왕좌의 게임>의 에밀리아 클라크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헨리 골딩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로맨스 무비의 커플로 만났다. 친구도 애인도 없이 엄마 페트라(에마 톰슨)에 얹혀 사는 케이트(에밀리아 클라크)는 크리스마스 장식용품 가게에서 일한다. 케이트의 꿈은 가수가 되는 것. 하지만 오디션만 보면 떨어진다. 꿈도 연애도, 그 무엇도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다고 느껴지던 어느 날, 케이트는 노숙자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톰(헨리 골딩)을 만난다. 휴대폰도 없고, 데이트 신청도 안 하는, 다른 남자들과는 뭔가 다른 톰에게 케이트는 점점 끌린다.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달콤한 크리스마스 영화의 연출은 <스파이> <고스트버스터즈> <부탁 하나만 들
[Coming Soon] <라스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로맨스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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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강원도 해변으로 가면 매번 여기저기 아파트 창문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봄날은 간다>(2001)의 은수(이영애)가 상우(유지태)를 배웅하던, 창가에 아무렇지 않게 늘어진 그 리얼하고도 찬란한 사랑의 순간, 그때의 이영애의 얼굴을 발견할까 싶은 신기루 같은 바람에. 한국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부각과 필요성을 인지하는 지금에 <친절한 금자씨>(2005)의 금자(이영애)를 매번 언급하면서 배우로서 이영애가 가진 또 다른 에너지를 불러오고 가늠해본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14년. 스크린 배우로 공백의 시간을 갖는 동안, 이영애는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로, 또 JTBC <전체관람가> 중 단편 프로젝트 <아랫집>으로, 스페셜 다큐멘터리 <이영애의 만찬>으로 그렇게 간간이 소식을 알려왔다. 하지만 스크린을 꽉 채우던, 배우 이영애가 관객에게 주었던 포만감은 늘 고팠다. <나를 찾아줘>는
<나를 찾아줘> 이영애 - 단단한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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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82년생 김지영> 내 이름이 뭐꼬?!
[정훈이 만화] <82년생 김지영> 내 이름이 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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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치열한 경쟁은 어쩌면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각종 매체와 잡지에서 오스카에 오를 유력 후보에 대한 예측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장편애니메이션 부문이 폭풍의 핵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버라이어티>는 올해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후보로 다섯 작품이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측했다. 그중 세편은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의 대표 작품으로 만약 이 라인업이 성사된다면 세개의 대형 스튜디오가 처음으로 작품상 경쟁에서 맞붙게 된다. 디즈니는 초미의 관심사였던 <라이온 킹> 대신 <겨울왕국2>를 후보로 내세웠다. 또 하나의 수상후보인 픽사의 <토이 스토리4>는 올해 10억7천만달러를 벌어들였으며 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3>는 흥행 성적은 이들에 다소 못 미치지만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으로 훌륭한 마무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크게는 3파전 양상이지만 의외의 복병들도 만만치 않다. 소니픽처스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경쟁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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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겨울, 꽁꽁 언 가슴을 녹여줄 따뜻한 차 한잔 같은 영화다.” <윤희에게>를 제작하고 현장 프로듀서를 겸직한 박두희 영화사 달리기 대표는 영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나라에서 날아온 편지 한통을 받고 첫사랑의 기억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윤희(김희애)와 그의 딸 새봄(김소혜)의 여정을 그린 <윤희에게>는 제작자 말처럼 은은하게 마음을 적시고 일상의 용기와 지속을 긍정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로 각각 장편 데뷔를 마친 임대형 감독, 박두희 대표 두 사람은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동문. 2013년 무렵, 영화사 직원과 데뷔작 시나리오를 준비 중인 감독으로 만나 “영화적 취향은 은근히 잘 맞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는 성격부터 정치 성향에 이르기까지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됐다. 박두희 대표는 제작 현장을 처음 익힌 <써니>에서 목격한 강형철 감독과 이안나 프로듀서의 파트너십을 이상적인 롤모델로 꼽았다.
<윤희에게> 제작한 박두희 영화사 달리기 대표 - 영화적 동지와 신뢰를 지속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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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의 만남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다. 이번호 특집은 바로 마틴 스코시즈의 <아이리시맨>이다. 아마도 그는 현재 가장 왕성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는 중견 감독들에게, 여러 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현역’ 감독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교재 삼아 공부하고 있다. 최근 그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향에서 화제가 됐다. 첫 번째는 최근 개봉한 토드 필립스의 <조커>가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1976)와 <코미디의 왕>(1983) 사이 꼼짝달싹할 수 없는 영향권 아래에 있음을(누군가에 따라서는 그저 ‘카피’로 보일 수도 있을 법한) 고백하면서 새삼 그의 이름이 영화팬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두 번째는 이번호 특집에서도 관련 내용을 다뤘지만, 마틴 스코시즈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 발언하며 논란을 낳았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경우 ‘마블 영화가 실사영화
[주성철 편집장] 마틴 스코시즈의 귀환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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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기 극장가에 여성 영화인들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10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전체 극장 관객수는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했지만, 한국영화 10월 관객수는 전년 동월 대비 9.1% 감소했다. 10월 한국영화 매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0.3% 줄어든 56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개천절에 <베놈>과 <암수살인>이 정면 승부를 펼친 것처럼 올해도 <조커> <퍼펙트맨> <가장 보통의 연애>가 공휴일 특수를 놓고 동시 개봉을 선택했다. 개봉 첫날부터 승기를 잡은 영화는 DC 코믹스 원작 <조커>다. <조커>는 한달간 507만 관객을 모으며 전체 흥행 순위 1위에 올랐고,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역시 배급사별 관객점유율 36.7%로 1위를 차지했다. 반면 같은 날 개봉한 한국 코믹 범죄영화 <퍼펙트맨>은 관객수 114만명에 그치며 흥행에 실패했다. 의외의 선전
가을 흥행의 승자는 여성 감독·여성 주연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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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더불어 호러·스릴러 장르의 적지 않은 영화들이 걸핏하면 '스티븐 킹 원작'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온다는 것도. 스티븐 킹 스스로도 자신의 소설이 영상물로 태어나는 과정에 꽤 관심이 커 보인다. 지금까지 약 60여 편의 장편 소설, 200여 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할 만큼 대표적인 다작 작가인 그는, 쓰는 시간도 부족할 것 같지만 영화에 대한 코멘트를 남기기에도 바쁜 사람이다. '프로 원작자' 스티븐 킹과 영화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모았다.
1.
스티븐 킹은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많은 영화 원작을 보유한 작가다. 무려, 그의 장·단편 소설을 아울러 34편에 이르는 작품이 영화화됐다. 약 65편의 극장 영화와 약 40편의 TV 영화를 합치면, 총 105편에 이르는 영화가 바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가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라는 점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사실이다.
2.
'프로 원작자' 스티븐 킹에 관한 10가지 흥미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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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을 맞이한 10월 30일 수요일, 안산에 위치한 롯데시네마센트럴락에서 ‘경기 인디시네마 데이’가 열렸다. 경기 인디시네마 데이는 문화의 날로 지정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에 열리는 기획전으로 ‘다양한 시선, 색다른 발견’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여 국내 다양성영화를 지원하는 사업인 경기 인디시네마의 일환이다. 10월에는 <니나 내나>(2019), <판소리 복서>(2018), <열두 번째 용의자>(2019) 등 세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감독과 배우를 초청해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영화에 관한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대화가 이어졌던 현장을 전한다.
<니나 내나>, 상처의 치유에 대하여
“<니나 내나>는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연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상처를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지만 좋은 기억을 더해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동은 감독
10월 ‘경기 인디시네마 데이’ 관객과의 대화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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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지미 롤랜드. 스스로를 지미 색스라 부른다. 그만큼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혹시 색소폰 불어본 적 있나. 색소폰, 그중에서도 지미 색스가 연주하는 알토색소폰은 함부로 덤볐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알토색소폰은 소리를 내는 것부터가 어렵다. 강한 폐활량은 기본이요, 들숨과 날숨을 자기 뜻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많은 수의 악기, 예를 들어 피아노는 소리를 내는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한데 알토색소폰은 그렇지 않다. 나도 몇번 불어봤다가 포기했음을 고백한다. 지미 색스의 연주는 이런 측면에서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다. 구미가 당긴다면 유튜브에 들어가서 ‘jimmy sax’라고 쳐보라. 맨 위에 8800만 클릭을 자랑하는 영상 하나가 뜰 것이다. 이 연주 하나만으로 지미 색스는 색소폰계의 스타 반열에 올랐다. 강렬한 에너지를 끊임없이 분출하며 창공
[마감인간의 music] 지미 색스 <No Man, No Cry>, 색소폰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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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신의 한수: 귀수편>은 전편 <신의 한 수>(2014)에서 아주 짧게 등장한 바둑 고수 귀수의 스핀오프다. 귀수는 전편에서 태석(정우성)이 노트를 통해 벽을 두고 바둑을 두던 상대로, 나중에 관철동 주님(안성기)으로부터 그가 바둑 고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바둑밖에 모르는 어린 시절의 귀수(권상우)가 아픔을 겪고 집을 나가 스승(김성균)을 만나고, 그로부터 혹독한 수련을 거친 뒤 냉혹한 내기 바둑판에 뛰어들어 강호의 고수를 차례로 상대하는 무협영화의 서사를 따른다. 이 영화는 10편 남짓한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곽경택 감독의 <태풍>(2005), 장률 감독의 <경계>(2007) 등 여러 영화의 조감독으로 활동한 리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개봉(11월7일)을 하루 앞두고 만난 리건 감독은 “쉼 없이 달려왔다. 후련하면서도 긴장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출을 제안받았을 때 이야기의 어떤 점에서
<신의 한수: 귀수편> 리건 감독 - 묵묵히 삶과 영화와 정면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