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나는 TV나 잡지 등에 소개되는 다양한 수집가들을 보면서 언젠가 자본 여력이 된다면 개인이 모은 수집품들을 모아 ‘박물관의 박물관’을 만들고 싶었다. 각자에게는 소중하지만 박물관으로 가기엔 다소 가치가 떨어지는 개인의 하찮은 수집품들을 모은 박물관 말이다. 그런 수집품들은 대부분 개인의 생애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게 보통이라 그게 너무 아쉬웠다. 울산에 사는 김씨가 수십년 동안 모았던 각종 라면 봉지나, 서울 사는 박씨가 모은 오래된 전자제품 등 이런 수집품들이 한데 모여 있는 박물관이라니, 생각만 해도 멋지다.
나 역시 소소한 수집을 하고 있는데, 물건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채집 활동으로, 대략 2006년부터 틈틈이 거리의 간판 사진을 찍고 있다. 대개는 오래된 간판이나 손으로 직접 쓴 글씨, 수작업으로 제작한 간판들이다. 1천여 군데 장소에서 채집한 사진들은 하드디스크에 저장해두었지만 ‘걷다가 만난 글자’란 이름의 인터넷 블로그(2777.tistory.com)에도
[이동은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채집의 즐거움
-
오후 10시33분부터 34분까지 딱 1분간. 2020년 9월에 사는 남자와 한달 전인 8월에 사는 여자의 핸드폰이 연결된다. 유중건설 최연소 이사 김서진(신성록)은 회사 창립기념 파티날 딸 다빈(심혜연)이 실종되고, 아이가 사망했다고 여긴 아내 강현채(남규리)까지 한강에 투신하면서 삶이 무너진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한애리(이세영)는 심장수술을 앞둔 엄마 곽송자(황정민)가 별안간 자취를 감추고 친구 임건욱(강승윤)에게 엄마 수술비 통장을 털린 암담한 상황이다.
‘타임 크로싱’ 스릴러를 표방하는 <카이로스>는 두 주인공의 위기를 핸드폰을 매개로 한 시간차 비대면 공조로 풀어간다. 9월의 서진은 이미 일어난 일을 한달 전의 시간대에 사는 애리의 힘을 빌려 되돌리려 하고, 8월의 애리는 앞으로 닥칠 위기를 한달 후 시점의 서진을 통해 알게 된다.
한정된 지면을 줄거리에 할애하는 게 아까울 정도로 <카이로스>는 뜯어보고 싶은 장면이 넘
드라마 '카이로스', 미래의 위기를 한달 전에 알게 된다면
-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또 호된 매질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10월 30일부터 두 번째 전 국민 자가격리가 실시되면서 6천여개 극장이 다시 한번 셔터를 내렸다. 한번 맞아본 매라 익숙해져 덜 아플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6월 23일 재개관 후 관객이 극장으로 돌아오며 정상 페이스를 찾아가고 있었고, 모든 성인의 대축일 휴가였던 10월 셋쨋주에는 몇몇 대도시에 내려진 야간 통행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주 대비 극장을 찾은 관객이 78%나 증가하면서 영화계 종사자들이 그야말로 안도의 한숨을 돌렸던 터라 쓰라림은 더 클 수밖에 없다.
12월 초 현재, 마크롱 정부는 12월 중순에 일일 확진자 수가 5천명 이하로 내려가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12월 15일 재개관을 허용한 상황이다. 프라임타임(오후 7~9시) 티켓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야간 통행금지 단속 시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도 따로 발표했다. 극장주들은 매 맞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주는 작은 사탕이 그저 고맙기만 할 뿐
[파리] 자가격리 소재로 한 코믹 스릴러 '커넥티드'
-
12월 2일 극장 개봉한 영화 <잔칫날>(감독 김록경)에서 경만(하준)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가혹하기만 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경만은 친척으로부터 빚 독촉 받으랴, 장례 비용을 구하기 위해 지방에 행사 진행하러 가랴 애도할 겨를이 없다. 경만은 매 순간 딜레마를 맞닥뜨리면서도 감정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경만을 연기한 배우 하준은 “경만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책임감이다. 주연배우로서 절대 무너지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커서 감독님, 스탭, 동료 배우들과 끝까지 버텨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읽었나.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라 경만에 대한 모든 해답은 감독님에게 있을 거라고 보았다. 예산이 적어 회차가 많지 않을 거라 여겼고, 그래서 현장은 테이크와의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최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그건 제작자 마인드인데? (웃음)
=오지랖이 넓다. (웃음) 처음
[인터뷰] '잔칫날' 하준 "백화점 알바 하며 윤계상 형 만나기도... 진정성으로 승부하겠다"
-
-
태연, 지코, 마마무, 세븐틴, 인피니트 등 여러 K팝 스타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온 임성관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스웨그>는 아이돌 그룹 멤버와 힙합 뮤지션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으며 춤과 음악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보이그룹 틴탑 출신 니엘이 재능을 활용해 래퍼 지망생을 연기한다. 그러나 영화는 내레이션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손쉽게 인물의 갈등을 설정하는 등 여러모로 안일한 전개를 보여 소재가 가진 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영화 '스웨그' 지코, 마마무 등 K팝 스타들의 뮤직비디오 연출한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
고등학생 성철(이재균)은 일찍 세상에 눈뜬다. 성철은 두살 어린 기준(장유상)과 함께 세트플레이로 범죄를 계획한다. 하지만 어설프게 계획했던 일은 번번이 꼬이고 강한 척해봐도 돌아오는 건 무시뿐이다. 김이설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세트플레이>는 소외된 청춘의 처절한 생존기를 담는다. 파격적인 전개는 물론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묘사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가운데 캐릭터들의 복합적인 고뇌를 전하고자 애쓴다. 의욕에도 불구하고 손쉬운 자극에 기댄 산만한 전개가 다소 아쉽다.
영화 '세트플레이' 미성년자 신분 이용해 범죄를 계획하는 고등학생들의 처절한 생존기
-
한국 페미니스트의 탈코르셋 운동 가운데서도 머리카락에 집중한 다큐멘터리. 타인이 강요하는 대로 긴 머리의 여성이 되길 거부한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다양한 여성이 카메라 앞에 선다. 탈코르셋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는 유튜버 한국여자, 혼삶비결이 출연해 개인적인 경험을 털어놓고, 윤김지영 교수와 이민경 작가는 운동의 이론적 맥락을 짚는다. 여기에 가벼운 그래픽 자료가 더해져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영화 '머리카락' 사회가 요구하는 긴 머리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
실적이 절실한 FBI 요원 켄드라(안나 켄드릭)는 SNS에서 우연히 비폭력주의 혁명가 모세(마샨트 데이비스)의 설교 영상을 접한다. 월세를 못 내 쫓겨날 위기에 처한 모세의 상황을 이용해 켄트라는 그가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한다. <그날이 온다>는 미국 정부기관 요원들의 불합리한 수사 과정을 비판하는 블랙코미디영화다. 영화의 메시지는 좋지만 공상에서 비롯된 모세의 행동과 켄드라의 계획이 너무 허술해 아쉽다.
영화 '그날이 온다' 미국 정부기관 요원들의 불합리한 수사 과정을 비판하는 블랙코미디
-
5년차 기러기 아빠 오 부장(이영범)이 죽음을 예고받는다. 위암 말기 판정과 3개월 시한부 선고에 오 부장은 절규하지만, 그의 곁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다. 사랑하는 아들은 미국 유학 중이고 아들과 같이 타지 생활 중인 아내는 오 부장에게 매정하게만 군다. 듬직한 회사 후배 조 과장(조동혁)조차 그의 아픔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고독과 고통을 감내하며 오 부장은 삶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마지막 휴가>는 한 중년 가장의 세계가 무너진 이후를 다룬다. 영화는 세상 모두가 나와 등졌다고 느껴질 때 맺고 풀어지는 관계를 지켜본다. 영화는 묵묵히 전개되지만 남발하는 상투적 요소가 흡인력을 저해한다. 납작하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인물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여 아쉽다.
영화 '마지막 휴가' 시한부 선고 받은 기러기 아빠가 삶을 마무리하는 법
-
비비안(케이티 더글러스)이 살고 있는 ‘베스탈리스’ 시설은 여성의 덕목으로 청결과 인내를 가르친다. 세면부터 수면까지의 모든 일상을 통제하는 이곳은 우수한 학생에게 좋은 가정으로 입양될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학생들은 의심 없이 복종한다. 결국 모든 가르침과 규칙을 충실히 이행해 입양을 눈앞에 둔 비비안은 소피아(셀리나 마틴)와 마주치게 되고, 상황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스릴러와 SF의 구성을 갖춘 <레벨16>은 공상과학적 상상 속에서 여성이 겪을 수 있는 비상식적인 상황을 그려낸다. 상상임에도 일견 현실과 닮은 듯한 영화의 전개는 후반부에 이르러 다소 힘을 잃는 듯 보이지만, 비비안이 내린 최후의 선택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 '레벨16' 여성의 덕목으로 청결과 인내를 가르치는 시설이 있다?
-
제2차 세계대전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 제524연대는 일본군으로부터 상하이 조계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상하이 조계는 외국인과 부유한 중국인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공격이 금지된 외교 구역이다. 조계 건너편의 창고에 배치된 524연대는 나흘 밤낮으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다. <800>은 이름 없는 중국 혁명군 800명이 이 창고를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아 필사의 사투를 벌였던 실화를 소재로 한 전쟁 블록버스터다.
물량 공세를 퍼부은 대규모 전투 신은 박진감이 넘치고 고증에 충실해 생생하다. 약 20만㎡의 대규모 세트로 상하이를 실감나게 구현했다. 다만 전쟁에서 인권보다 애국심을 더 강조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불편함을 안긴다. 지난 중추절과 국경절이 겹친 황금연휴에 개봉해 31억3천위안을 벌어들이며 코로나19로 침체된 중국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영화 '800' 일본군에 맞서 나흘 밤낮으로 싸운 중국 혁명군 800명의 사투
-
혹평과 실업으로 신음하는 한물간 브로드웨이 스타들이 졸업 무도회를 박탈당한 10대 레즈비언을 도우며 재기를 꿈꾸는 이야기인 <더 프롬>은 달콤한 노래와 춤, 귀여운 위트로 무장해 마음의 빗장을 부드럽게 열어젖힌다. 초반부의 매력도를 높이는 건 쇼 비즈니스로부터 수혈받은 거창한 나르시시즘을 자랑하는 네명의 브로드웨이 멤버들- 디디(메릴 스트립), 배리(제임스 코든), 앤지(니콜 키드먼), 트렌트(앤드루 라넬스)- 이다.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스타’ 이미지를 꿈꾸며 미국 러스트 벨트의 인디애나주로 향한 그들은 적대적인 학생-학부모들에게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전하려 애쓰지만, 일말의 불순한 의도 탓인지 도움은커녕 골칫덩이로 전락해버린다. 한편 동급생 연인과 그저 남들처럼 프롬파티에 가고 싶은 소녀 엠마(조 엘런 펠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움을 지속해나가면서, 화려하지만 엉성한 네명의 동료들과 차츰 우정도 쌓는다.
트럼프 시대와 작별을 고하며 할리우드가 보내는 상쾌한
영화 '더 프롬' 메릴 스트립과 니콜 키드먼, 졸업 파티에 가고 싶은 레즈비언 여학생을 돕다
-
은주(서영화)와 홍주(양흥주) 부부는 30년 만에 춘천을 찾는다. 유람선을 타고 청평사에 갔다 왔다가 어디선가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은주는 들렀던 매표소와 식당으로 돌아가지만 어디서도 휴대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배가 끊겨 청평사 근처에서 숙박을 할 수밖에 없게 된 부부는 늦은 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 30년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 인테리어도 바뀌지 않은 이 식당엔 젊은 남자(우지현)와 여자(이상희)도 있다.
절대 연인 사이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청평사의 정취를 즐기다가 돌아갈 배를 놓친다. 잠을 설치던 홍주는 우연히 옛사랑 해란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게 되고, 젊은 여자는 남자에게 애인과 헤어졌다고 고백한다. 은주의 잃어버린 휴대폰을 시작으로, <겨울밤에>의 인물들은 무언가 놓쳐버린 것들을 찾아 헤맨다. 이들이 청평사에서 경험하는 겨울밤은 마치 무의식을 부유하듯 모호한 시공간으로 묘사돼 과거와
영화 '겨울밤에' 30년 만에 춘천 찾은 중년 부부... 잃어버린 건 휴대폰 뿐만이 아니었다
-
어느 날, 대학생 영석(남주혁)은 길에 쓰러진 한 여자를 돕는다. 고장난 휠체어와 여자를 리어카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준 영석에게 여자는 밥을 먹고 가라 권하고, 영석은 얼떨결에 밥을 얻어먹게 된다. 여자의 이름은 조제(한지민). 폐지 줍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조제는 헌책에 파묻힌 채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 조제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 영석은 종종 조제를 찾아와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조제 또한 영석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설레는 시간도 잠시, 낯선 감정에 마음이 저릿해진 조제가 뒷걸음질을 치고, 조제의 닫힌 문 앞에서 영석 또한 발걸음을 돌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고 영석은 다시 조제의 집에 찾아간다. 조제와 영석의 재회는 서로를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고, 두 사람은 전보다 더 깊은 애정을 나누게 되지만, 보통의 연인이 그러하듯 이들 또한 점차 사랑의 끝을 감지해간다.
<조제>는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소설 <
영화 '조제' 변모하는 사랑의 형태를 그려낸 영화... 원작과의 차이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