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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이상 프랑스영화를 든든히 떠받쳤던 소중한 얼굴 미셸 피콜리가 지난 5월 12일 향년 94살로 별세했다. 피콜리는 장 뤽 고다르, 루이스 브뉘엘, 클로드 샤브롤, 클로드 소테 같은 거장들과 오랜 기간 협력하며 배우로 성장했고, 앨프리드 히치콕, 앙리 조르주 클루조, 자크 리베트, 코스타 가브라스, 루이 말, 난니 모레티, 레오스 카락스 등 무수히 많은 감독들과 작업하며 2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역할의 비중을 따지지 않았고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가리지 않았던 그의 영화 사랑은 노년에 이르러서까지 계속되었다.
미셸 피콜리는 1925년 프랑스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9살에 출연한 크리스티앙 자크의 <벨맨>(1945)이 영화 데뷔작. <애련의 장미>(1956)로 루이스 브뉘엘과 첫 인연을 맺었고 이후 <어느 하녀의 일기>(1964),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 등 브뉘엘의 대표작에 꾸준히 출연하
프랑스영화의 얼굴 미셸 피콜리, 향년 94살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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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을 앞두고 있는 국내영화제들이 코로나19 이후 개최 방안을 두고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 중이다. 우선 5월 28일 개막을 앞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온라인 중심의 무관객 영화제로 진행된다. 개·폐막식 없이 현장에는 각 경쟁부문 심사위원과 초청작 감독 등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하며, 웨이브를 통해 96편의 국내외 작품을 온라인 극장에서 상영한다. 이후 6월 9일부터 9월 20일까지 장기상영회도 가질 예정이다. 전주국제영화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가장 처음 시작하는 영화제다보니 진행 방법에 대한 문의가 많다. 영화제 자체적으로 방역지침을 세우긴 했으나 전주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지자체의 권고와 방역시스템을 따른다”고 밝혔다.
이에 개막을 앞둔 각 영화제측은 각자도생으로 코로나19에 대응 중이다.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진행되는 제20회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코로나19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오프라인 개최를 한다. 상영관 운영지침을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 무주산골영화제 온오프라인 분산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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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영화진흥위원회 / 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감독 최윤태 / 출연 이주영, 이준혁, 염혜란 / 배급 싸이더스 공동배급 찬란 / 개봉 6월 18일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야구소녀>가 개봉한다. 고등학교 3학년 수인(이주영)은 프로 야구단에 입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정식으로 신인 선발 과정에서 기량을 보여줄 기회도 잡지 못한다. 그대로 졸업하면 수인의 야구 인생도 끝나버릴 위기. 엄마(염혜란)는 포기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며 수인에게 야구를 그만두라고 타이르고, 코치 진태(이준혁)는 야구부에 나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세상은 수인에게 야구에 흠뻑 빠졌던 시간을 추억으로 남기라고 말하지만, 수인은 묵묵히 야구공을 던질 뿐이다. <야구소녀>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종류의 스포츠영화가 아니다. 단단한 내면을 가진 여성의 성장영화다. 야구에 집중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수인을 연기하는 배우 이주영의 매력이 돋보인다. 최윤태
[Coming soon] '야구소녀' 단단한 내면을 가진 여성의 성장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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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가 20주년을 맞았다. 2000년 5월 20일,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뒤 21세기 걸작 영화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 작품의 시작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난 5월 20일 각종 SNS 플랫폼에는 수많은 사진과 글이 쏟아졌다. <화양연화>와 처음으로 극장에서 만났던 순간을 추억하며 <씨네21> 홈페이지에서 아카이브 기사를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지아장커 감독이 2001년 <화양연화>에 대해 쓴 리뷰다. 그는 20년 전 영화 <플랫폼> 상영을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폐막작의 감독으로 부산에 온 왕가위와 조우했다고 한다. 지아장커는 부산에서 <화양연화>를 보지 못했으나, 영화제를 찾은 젊은 관객이 십중팔구 손에 든 <화양연화>의 팸플릿을 보고 이 영화가 밀레니엄 시대의 새로운 유행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화양연화>는, 지아장
전주에서 만나요, 천천히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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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지면과 그 덕분에 맺을 수 있었던 수많은 인연. 그중에서 배우 배두나는 단연 <씨네21>이 지지하고 눈여겨본 독보적인 배우였다. 할리우드 배우, 천만 배우, 일본 아카데미상 수상자, 패셔니스타 등 그를 표현하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는 아침부터 김이 모락모락나는 식빵을 여러 덩이 구워와 표지 촬영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권하는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작품 속에서 그는 선입견 없이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는 따뜻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학대당하는 소녀를 살뜰히 보살피는 경찰(<도희야>)이었고, 좀비 역병이란 난관 앞에서도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의녀(드라마 <킹덤>)였으며, 살인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노년의 여성에게 자신의 옥탑방에서 함께 지내자고 제안하는 강력반 형사(드라마 <비밀의 숲>)였다. 그 자신도 “잘하는 게 진심을 보여주고 마
배두나 - 언제나 변화하기에 믿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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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강아솔과 재즈피아니스트 임보라가 다시 만났다. 2015년에 발표했던 《소곡집》 이후 5년 만이다.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음악을 해왔지만 그간 빚어온 생각의 모양만큼은 놀랍도록 닮아 있음을 발견한 두 사람. 원하는 걸 향해 치열하게 노력해보기도, 그 노력이 무색하게 좌절을 맛보기도 한 끝에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자’는 결론을 내리고선, 이를 새 음반 《유영》에 담아냈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려면 일단 힘부터 빼야 하는 법. 이번 앨범은 임보라 트리오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했던 이전 앨범보다 훨씬 단출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드럼과 베이스라는 리듬 파트를 아예 배제하니 한결 더 차분한 음악이 만들어졌다. 오로지 임보라의 피아노와 강아솔의 노래만이 남아, 고요야말로 가장 강력하게 감정을 장악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물론 강아솔은 원래도 여백이 많은 음악을 해왔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기타의 울림이 아닌 솔로 피아노의 단정함과 만났을 때 어떻게
[Music] 흘러가는 대로 - 강아솔 & 임보라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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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 감독은 올해 봄부터 블로그(kimeungsu.blogspot.com)로 자신의 신작 영화를 관객에게 직접 홍보·배급한다. 보고자 하는 영화의 이름과 주문자의 이름을 쓴 메일을 받으면, 이틀 내로 영화의 디지털 파일을 보내는 방식이다.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온라인에서 직접 배급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배급 방식은 에세이영화, 시네마베리테, 경험영화의 영향 아래 있는 것 같지만 어느 장르에도 완벽히 속하지 않는 그의 영화 세계와 더 닮아 보인다. 5월에 공개한 신작 <모호한 욕망의 대상>과 <흔들리는 카메라>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했던 공무원 시험 준비생 전호식과 노 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아들 노건호씨를 담은 영화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반성을 소박하게 얘기하는 대신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라보자”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들이다. 극영화 <변호인>과 다큐멘터리 <노무
'모호한 욕망의 대상'과 '흔들리는 카메라' 김응수 감독, "노무현에서 조국까지, 역사는 반복되며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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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Y가 출근 버스 안에서 졸아 종점까지 가버린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아침 마법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Y를 뺀 세상 전부가. Y가 출근한 직장에서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집으로 돌아가자 그곳엔 다른 이가 아무 일 없듯이 살고 있었다. Y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는 존재하지 않는 번호였다. 문자 그대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와 정보만 증발해버렸다. 세상에 Y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Y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을 움직였던 것일까.
사라지고 싶다. Y는 최근 한숨을 내쉴 때마다 사라지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Y는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어딘가 떠나버리거나 죽고 싶다는 것과는 달랐다. 그런 일들은 흔적이 남는 일이다. 자기 죽음으로 누군가에게 짐이나 혹은 감정적인 부담을 주기는 싫었다. Y는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증발했으면 했다. 나라는 존재 바깥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소거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Y는 다른 사람을 추적해 개인정보를 캐내
완벽하게 사라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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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케 쇼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중반부엔 뜻밖의 장면들이 등장한다. ‘나’(에모토 다스쿠)와 사치코(이시바시 시즈카), 시즈오(소메타니 쇼타)가 청춘의 활기로 스크린을 감전시켜놓는 클럽 신 뒤에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다. 세 인물은 밤이 되면 한데 모여 취하고 웃고 떠들며 가슴 벅찬 시간을 보내지만, 낮이 되면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같은 서점에서 일하는 ‘나’와 사치코는 저마다의 노동을 한다. 실업 상태인 시즈오는 집안일을 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실은 시즈오의 일상은 단편적으로만 비쳐지기에 우리로서는 그의 일상을 모두 직조해볼 수 없다. 서점에서 일하는 ‘나’와 시즈코의 일상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지만, 한낮에 시즈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는 없다.
한낮의 시즈오는 어디에 찍힐지 모를 유동하는 점과 같다. 가령 그는 직선으로 뻗은 길 위에서조차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걸어간다. 특히 클럽 신 이후에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에서 미야케 쇼가 담아낸 것과 그것을 위한 시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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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표현이지만 예상보다 훨씬 솔직담백한 영화였다. 내겐 <사냥의 시간>이 마치 <구니스>(1985) 같은 10대 소년들의 어드벤처물처럼 보였다. 의도했던 것과 보여주는 결과물, 그리고 그것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방식 사이의 격차에 대해 살펴보고자했다. 때로 성공과 실패에 대한 평가보다 그 뒤에 남겨진 것들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윤성현 인 원더랜드
“재밌네.” 이 한마디 대사는 <사냥의 시간>의 빛과 그림자, 과장된 평가의 콘트라스트를 선명하게 가르는 핀 포인트 조명이나 다름없다. <사냥의 시간>의 이야기는 대체로 말이 안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말이 안되는 장면은 한(박해수)이 준석(이제훈)을 놓아주는 순간이다. 조직의 해결사이자 윗선의 비호까지 받는 킬러 한은 지하 주차장에서 준석 일행을 몰아붙이고 제압한다. 두명의 친구, 기훈(최우식)과 장호(안재홍)가 기절해 있는 사이 준석은 한과 일대일로 마주한다. 머
많이 모자라지만 참 맑은 친구, '사냥의 시간'의 소년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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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씨가 증말 츤재라!” 누구도 이 말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신인가수 ‘둘째이모 김다비’까지 인정하더니 신뢰도가 200%로 뛰어버린다. “입 닫고 지갑 한번 열어주라 회식을 올 생각은 말아주라 주라주라주라주라 휴가 좀 주라~ 마라마라 야근하덜 말아라 낄낄빠빠 가슴에 새겨주라 칼퇴 칼퇴 칼퇴 집에 좀 가자~”라는 김신영의 신랄한 가사가 돋보이는 다비 이모의 데뷔곡 <주라주라> 뮤직비디오는 공개 1주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70만건을 넘겼다. 물론 준비된 신인 다비 이모의 흥겨운 퍼포먼스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트로트가 대세인 요즘이라도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빠른 45년생이지만 철마다 직접 캔 약초를 먹고(겨우살이는 경동시장에서 떼오지 않지만 부군과는 겨우 산다고) 새벽엔 수영, 점심엔 에어로빅, 심야 테니스 사이사이 맥주 만(10000)cc 섭취로 다진 체력과 목으로 훌라후프를 돌리는 운동신경까지, 다비 이모는 타고난 댄스가수다. 3대째 오리
MBC '전지적 참견 시점', 얼른 섭외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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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책 중 ‘역사에 남은 감독’ 부분을 펼쳐 숫자를 세어봤다. 21명의 감독 중 여성감독은 1명, 예의상 넣었나 싶을 정도의 숫자다. 굳이 감독을 예로 든 이유는 이 책에서도 “여성감독은 현장에 더 많은 여성의 일자리를 만들고, 여성이 중심이 된 인물과 이야기를 고민한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1930년에 일한 감독 도로시 아즈너는 여성감독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제작자들은 남자들이 더 편한가 봐요. 남자들은 바에도 같이 가고 더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어서 그런가요.” 역사 속에서 사회 변역을 이끌었던 여성들은 그 이름이 지워지거나 기록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어왔다. 할리우드 역시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그녀들의 이야기>는 18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할리우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남성 영화인에 비해 덜 알려진 여성 영화인의 활약을 사진과 함께 기록한 책이다.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자세히
씨네21 추천도서 <할리우드: 그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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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읽고 썼던 리뷰를 다시 찾아봤다. 여름의 감각, 끈적한 공기, 남의 연애를 훔쳐보는 듯… 책을 읽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이 요란하게 남아 있다. <여름, 스피드>가 사랑에 이르는 달뜬 계절을 기록했다면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은 우연히 마주친 과거와 비로소 이별하는 풍경을 그린다. 그러니까 전작이 늦봄부터 초여름의, 괜히 들뜨는데 그게 싫지만은 않은 멜랑콜리의 시간이었다면, <시절과 기분>은 모든 게 서툴렀지만 분명 그때는 좋았을, 그러나 끝나서 다행인 흑역사를 정신 차리고 들여다보는 과정인 셈이다. 지나간 연애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일에는 어쩔 수 없이 다소의 비감이 동반된다. 연애의 뒤끝은 절망적이고 씁쓸하다. “이거 니 책 맞제?”(<시절과 기분>) 7년 만에 받은 문자 속에서, 졸업 후 오랜만에 찾은 대학 교정에서(<데이 포 나이트>), 내가 쓴 소설 속에서(
씨네21 추천도서 <시절과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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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는 어떻게 탄생할까.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한 21세기의 한국에서 궁금할 법한 질문이다. 유현준 교수의 신작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는 동서양의 ‘문화 유전자’ 교배에서 답을 찾는다.
크게 나누자면 서양의 ‘문화 유전자’는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이다. 반면 동양의 ‘문화 유전자’는 공간과의 관계성을 중시한다. 사실 이런 구분은 그리 낯설지 않다. 책에서는 한 문화가 외부의 색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 새로운 변종이 탄생하고, 그 매력적인 변종이 시대를 이끌게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15세기 이후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서양과 동양 두 세계가 섞이고 그렇게 문화적 교배가 시작되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18세기 영국의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 우키요에 목판화에 영향을 받은 고흐의 회화도 그렇고 몬드리안의 회화나 콜더의 모빌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건
씨네21 추천도서 <공간이 만든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