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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자녀 살해 후 자살'(부모가 아이와 함께 자살하는 사건으로 흔히 말하는 '자녀동반자살'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편집자)이라는 안타깝고 불행한 소재를 그린 이야기다. 아빠가 사업을 하다가 큰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면서 선유와 그의 엄마는 혼자 남는다. 둘은 새로운 곳으로 이사한다. 선유는 전학을 가서 학교에 잘 적응하려고 하고, 심리가 불안정한 엄마도 직접 챙긴다. 선유 엄마는 고깃집, 공장을 돌며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과거가 둘의 발목을 붙잡으면서 새출발은 그들의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일본영화학교 출신으로 단편 <바다를 건너온 엄마>(2011)를 만든 정연경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첫 장편 연출작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소감을 말했다.
-이 영화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과거에도 부모가 아이와 함
'나를 구하지 마세요' 정연경 감독, “이 영화를 보고 살아갈 용기와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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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인해 은수는 다리를 다치고 조카 수민은 엄마를 잃는다. 힘든 시간을 겪은 은수와 그의 연인 예원, 수민은 서로를 보듬어주는 단단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세 사람은 가족의 형태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담쟁이>는 은수, 예원을 통해 관객이 동성 커플에 대한 제도와 인식의 한계를 목도하고, 변화의 필요성에 관해 자연스레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뿔뿔이 흩어진 채로 다시 함께할 미래를 기원하는 세 사람을 보노라면 이들이 가족이란 울타리 내에서 다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담쟁이>를 연출한 한제이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어떻게 영화 <담쟁이>를 기획하게 되었나.
=시나리오를 쓸 때 영상을 먼저 떠올리고 거기서 시작을 하는 편인데, 처음 떠오른 것이 한 아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
'담쟁이' 한제이 감독 - 모두 함께 벽을 넘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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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유령, 자유인>은 스피노자와 퀴어를 연결시킨 영화다. 잘 알다시피 스피노자는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의 철학을 주장하고 추구한 철학자다. 그런 사상을 실천한 까닭에 유대인 공동체에선 이단자로, 기독교도 사이에서는 무신론자 유대인으로 낙인찍혀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괴물’ ‘유령’ ‘자유인’ 세 챕터로 구성된 이 영화는 성심과 은수, 두 동성커플과 스피노자를 연기하는 배우 성철의 사연을 연결시킨다. 일반적인 서사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 까닭에 각각의 챕터는 인과 관계에 따라 이어지지 않고,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미지와 관념적인 내용의 자막들이 이야기 곳곳에서 끼어든다. 이 영화는 <아모르, 아모르 빠띠> <스피노자의 편지> 등 단편 작업을 통해 오랫동안 퀴어를 다뤄온 홍지영 감독이 자신의 생각과 세계관을 더욱 확장해 내놓은 첫 장편 연출작이다. 어릴 때부터 시네필이던 홍 감독은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
'괴물, 유령, 자유인' 홍지영 감독 - 스피노자로 읽는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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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Homeless)
임승현┃한국┃83분┃2020년┃한국경쟁┃온라인
갓난아이 우림을 키우는 한결과 고운은 찜질방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얼마 되지않는 전 재산은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당했고, 고운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림은 찜질방에서 다리를 다친다. 한결은 배달 대행 서비스를, 고운은 전단지를 붙이며 성실하게 일하지만 우림의 병원비 내기도 막막한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결국 세 사람은 한결이 자주 배달을 가던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한결은 할머니가 미국으로 여행 가면서 잠시 집을 봐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하지만, 고운은 한결의 말이 어딘가 미심쩍다. <홈리스>는 현세대의 가장 큰 화두인 주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떤 형식으로든 기성세대에 기대지 않고선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의 절망적인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어렵게 이룬 세 가족의 평화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래성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안정된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⑥] 임승현 감독의 '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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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33> (Daldongne 33 Up)
조은┃한국┃124분┃2020년┃한국경쟁┃온라인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달동네 중 하나였던 사당동에 살던 정금선 할머니 가족을 4대에 걸쳐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7살이던 막내 손자 덕주가 가족을 꾸리고 마흔이 될 때까지 꼬박 33년의 시간을 좇았다. 가난이 뼛속까지 스며들고 핏줄까지 스며들어 증손자 손녀에게까지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모습을 담았다. 둘째 손녀 영주가 초등학교 2학년까지 학교를 다녔던 것처럼, 그의 딸 지현과 지선도 중학교 졸업장을 따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노래방 도우미로 취업한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약자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하고 보고하는 작품이다. 사회학자 조은의 다큐멘터리로, 정금선 할머니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그의 다큐 <사당동 더하기22>와 책 <사당동 더하기25>로 나온 바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⑤] 조은 감독의 '사당동 더하기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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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고운의 대사는 영화 <홈리스>를 날카롭게 관통하는 메시지다. 사기를 당한 한결과 고운 부부는 갓난아기인 우림을 데리고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두 사람은 배달 대행 서비스를 하고 전단지를 붙이며 성실하게 살지만, 우림의 병원비를 내기도 막막하다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이들의 삶은 조금씩 일그러져간다. <홈리스>를 연출한 임승현 감독은 한결과 고운이 처한 상황을 두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지적한다.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누구도 관심주지 않은 문제들, 사각지대로 몰린 채 주저앉은 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임승현 감독의 시선에 관해 물었다.
-어떻게 영화 <홈리스>를 기획하게 되었나?
=<홈리스>는 단국대 영화콘텐츠 대학원을 졸업하며 제작한 작품이다. 그동안 나는 공포 영화 위주의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작품을 준비할 때에는 우리의
'홈리스' 임승현 감독 - 시선 밖의 인물들에게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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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네 아들은 등록금만 내면 개나 소나 다 나오는 데 나온 주제에.” 상견례 장소에 먼저 도착한 엄마 오복(정애화)은 가족들 앞에서 예비 사위를 깎아내린다. 하지만 막상 예비 사돈까지 모두 모이자 그는 “듬직하니 참 좋네요”라며 상찬만 늘어놓는다. 가족들 앞에서는 한없이 괄괄하지만, 타인 앞에서는 그저 좋은 의견만 표현할 수 있는 여성. <갈매기>는 어머니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취해야 하는 진실한 이중성에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복은 상견례를 마치고 기분 좋게 시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가 성폭력 사건에 휘말려 피해자가 된다. 오복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하고 가족들도 동요한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지겨운 현실을 벗어나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만 계속 육지 주변에 살아야 하는 존재”처럼 보였다는 김미조 감독은 그래서 영화의 제목을 <갈매기>라고 지었다. 첫 번째 장편 작품으로 전주영화제 한국경쟁에 초청된 김미조 감독을 만나 우주에서 가장 복
'갈매기' 김미조 감독 - 외로운 갈매기 같은 성폭력 생존자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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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반으로 압축된 7개월간의 투쟁. 다큐멘터리 <보라보라>의 밀도 높은 영상 속에는 지난해 전국의 고속도로를 뜨겁게 달군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의 투쟁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치열하게 맞서다가도 조합원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왜 같은 노동자가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나뉘어야 하냐며 눈물 흘리고, 그런 서로를 다독이고 연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많은 이들이 외면했던, 혹은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의 이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이면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담아낼 수 있었던 데에는 김도준 감독뿐만 아니라 김미영, 김승화라는 두 명의 '노동자 감독'이 함께 카메라를 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당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이 영화가 희망으로 자리했으면 한다는 김도준 감독의 목소리에서 경험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연대와 투쟁에 대한 신뢰가 짙게 묻어나왔다.
-올해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관객들을
'보라보라' 김도준 감독 - 연대와 투쟁이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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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김무열)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살아가는 건축가다. 어느 날 25년 전 실종된 여동생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자신이 여동생이라 주장하는 유진(송지효)을 만난다. 유진이 돌아온 뒤로 집에서 이상한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서진은 유진이 살아온 과정을 뒤쫓는다. <침입자>는 외부인(유진)이 가족의 구성원이 되면서 일상에 변화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구성원(서진)이 변화를 의심하면서 서스펜스가 구축되는 스릴러다. 유진은 정말 서진의 실종된 동생일까, 그동안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등등 여러 물음표를 맥거핀 삼아 중반부까지 서사를 끈기 있게 끌고 간다. 이야기 곳곳에서 서부극, 홈인베이전, 스릴러 등 여러 장르를 노련하게 녹여내고,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고 유지되는 가족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낸다. 손원평 감독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다.
'침입자' 어느 날 25년 전 실종된 여동생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후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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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육상부 시절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도원(장동윤)과 진수(서벽준)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재회한다. 둘은 곧 예전처럼 친해지지만 삶의 행로가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다. 도원은 착실히 몸을 만들어 달리기를 재개하고, 진수는 용역 깡패 일까지 하면서 무리에서 높은 서열에 오른다. <런 보이 런>은 청소년들의 시기와 성장을 다룬 전형적인 사춘기 영화다. 이야기를 책임지는 배우 장동윤과 서벽준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그리는 어린 남성들의 세계가 지나치게 폐쇄적인 탓에 관객이 감정이입하기가 쉽지 않다. 어른다운 어른 캐릭터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단점도 모른 척하기 어렵다. <낯선 자들의 땅>을 연출한 오원재 감독의 신작이다.
'런 보이 런' 청소년들의 시기와 성장을 다룬 전형적인 사춘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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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루는 알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놀림당하는 암탉이다. 이사벨 할머니는 노래를 잘 부르는 뚜루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격려하지만 어느 날 할머니는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어버리고 만다. 한편 뚜루는 가창력을 인정받아 서커스단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할머니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서커스단에 들어가 슈퍼스타가 되기로 결심한다. <슈퍼스타 뚜루>는 시골촌닭이 내면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서커스계의 스타가 되는 과정을 담은 스페인 애니메이션이다. 캐릭터가 다채롭진 않지만 뚜루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뮤지컬 음악들은 그닥 나쁘지 않다. 다만 이야기 구성부터 캐릭터까지 기존 애니메이션들의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 반복한다는 게 아쉽다. 초라해 보여도 자신을 믿고 매진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익숙한 메시지를 익숙한 방식으로 전한다.
'슈퍼스타 뚜루' 시골촌닭이 서커스계의 스타가 되는 과정을 담은 스페인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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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연애를 이어가던 카메론(클로이 머레츠)과 콜리(퀸 셰퍼드)는 졸업 파티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한다. 결국 이들의 비밀이 공개되고, 카메론은 가족들에 의해 교회에서 운영하는 동성애 치료 센터에 입소하게 된다. 센터를 운영하는 마쉬 박사(제니퍼 엘)와 릭 목사(존 갤러거 주니어)에 의하면 애초에 동성애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동성에게 끌리는 ‘죄’만이 존재하며, 센터에 모인 이들처럼 ‘유약한 10대’ 시절에는 ‘악’에 쉽게 지배당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쉬 박사에게 자신을 애칭인 ‘캠’으로 불러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렇지 않아도 여성스럽지 않은 이름이 더욱 남성적으로 느껴지지 않겠냐”는 반문을 듣는 것과 같은 상황에 맞닥뜨릴 뿐이다. 다행히 제인(사샤 레인)과 아담(포레스트 굿럭)이라는 새 친구를 사귀며 카메론의 센터 생활에 작은 활력이 생긴다. 영화는 세 사람을 중심으로 사회와 종교가 규정한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10대의 이야기를 차곡차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사회와 종교가 규정한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10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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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11km 부근에서 지진이 발생한다. 시추시설 ‘케플러’에 머물던 노라(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조금 늦게 사태를 인지한다. 300여명의 대원 중 탈출한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사망한다. 노라와 선장 루시앙(뱅상 카셀)을 비롯해 남은 자는 고작 6명뿐이다. 이들은 1.6km 떨어진 ‘로우벅’ 기지로 이동하기로 결정하고, 무거운 슈트를 입고 물속을 걷는다. 그러다 모든 사건이 ‘심해 괴생물체’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더워터>는 한마디로 ‘직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다. 시작되자마자 즉각적으로 주요 사건이 발생하고, 인물들은 사전정보 없이 목적지로 나아가게 된다. 이웃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이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적이다. 피하다가 긴장해서 도망치고, 간혹 낙오되기도 한다. 설정이 간결한 대신 서브플롯은 시각적 장치로 채워져 있다. 95분의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이 ‘불안’과 ‘공포’의 비주얼로 뒤범벅된다. 자칫 B급 괴수영화로 보일 우려가 있지
'언더워터' 모든 사건은 심해 괴생물체로 인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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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 장수생 기태(이동휘)는 원치 않게 고향에 내려오게 된다. 그가 소개받은 일터는 오씨(이한위)가 직접 그린 포스터가 걸리고 방송국에서 희귀 문화재 체험하듯 가끔 취재도 오는 ‘국도극장’. 기태는 고향에서 잘 기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동창 영은(이상희)을 만나면서 뜻밖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전지희 감독이 마흔살에 시나리오를 쓴 그의 첫 장편영화 <국도극장>은 감독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감독은 “영화과를 졸업하긴 했는데 영화계에서 일하지는 않았고, 광고회사에 다니는 일도 평탄치 않았다. 더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의 타이틀이자 주 배경인 ‘국도극장’은 주인공 기태의 질풍노도와 함께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오래된 극장이라 터줏대감 오씨가 직접 그린 포스터가 걸리고 방송국에서 취재를 오기도 하는 그곳은 쓸쓸한 정서를 대변하지만 자칫 감상적으로 빠질
'국도극장' 전지희 감독이 마흔살에 시나리오를 쓴 그의 첫 장편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