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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과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12살 에이브(노아 슈나프)의 정체성은 복잡하다. 반은 팔레스타인계 모슬렘, 반은 이스라엘계 유대인이며, 현재 사는 곳은 뉴욕 브루클린이다. 모슬렘 친가와 유대인 외가 식구들은 만날 때마다 종교전쟁을 치르고, 음식으로 가족의 화합을 시도하려는 에이브는 부모 몰래 브라질 출신 거리의 요리사 치코(세우 조르지)의 공유 주방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편협한 어른들과 달리 에이브는 유연하게 경계를 넘어 맛과 문화를 섞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감독의 긍정적 시선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기묘한 이야기>의 윌로 잘 알려진 노아 슈나프가 두 종교 사이에 끼어 갈팡질팡하는 에이브를 연기하는데, 요리 연기보다는 큰 눈망울로 감정 연기할 때 더 몰입하게 된다.
'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 새로운 세대에 대한 감독의 긍정적 시선이 깔려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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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가문인 먼로가의 맏딸이자 뉴욕 지방 검사인 로렌(릴리 콜린스)은 사망한 아버지(패트릭 워버턴)로부터 열쇠 하나를 상속받는다. 그 열쇠로 가족 사유지의 지하실에 들어간 로렌은 긴 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한 남성 모건(사이먼 페그)을 만나게 되고, 아버지가 왜 그를 가뒀는지 직접 심문에 나선다. 하지만 30년 넘게 감금됐던 모건은 쉽게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인헤리턴스>는 백인 상류층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는 미스터리 가족드라마다. 가문의 도덕적 짐을 짊어진 맏딸을 연기한 릴리 콜린스와 사이먼 페그의 호연이 돋보인다. 하지만 영화 속 갈등과 해결책이 대사로만 제시돼 아쉬움이 남는다. 유력 가문의 별장에 숨겨진 지하실이란 장치 역시 배우들이 대사를 주고받는 무대로만 기능하며, 마지막 반전도 대사로 급히 처리되어 치밀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인헤리턴스' 백인 상류층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는 미스터리 가족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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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낙오된 독일군들이 아군의 전선에 합류하기 위해 후퇴 중이다. 브랜트 중위와 대원들은 러시아 여성 의무병들을 포로로 데리고 있는데, 이들은 호시탐탐 탈출할 기회를 노린다. 전쟁영화 <1945: 포인트 오브 노 리턴>은 퇴로가 막힌 한 무리의 군인들이 처한 막막한 상황과 갈등에 집중한다. 상황적으로는 데이비드 에이어의 <퓨리>나 샘 멘데스의 <1917> 같은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1945: 포인트 오브 노 리턴>은 언급한 영화들과 비교 가능한 블록버스터 전쟁영화가 아니다. 저예산 전쟁영화의 한계를 밀도 있는 드라마와 캐릭터로 돌파하지도 못한다. 영화에는 다양한 유형의 군인들이 등장하지만 좀처럼 마음 줄 인물이 없다. 전장에서의 여성 캐릭터 묘사에도 세심함이 떨어진다.
'1945: 포인트 오브 노 리턴' 퇴로가 막힌 한 무리의 군인들이 처한 막막한 상황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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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토야체(천이슬) 실종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동민(김인권)은 동료 장 형사(김승현)와 함께 토야체의 주변 인물들을 탐색해나간다. 그들은 토야체와 같은 몽골 출신 모델 알리샤(하주희), 실종 전 마지막으로 토야체를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재현(서도현) 등 의심스러운 인물들을 조사한다. 그러던 중 몽골에서 특명을 받고 온 형사 몽허(얀츠카)가 갑작스레 동민 앞에 나타난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데다 다짜고짜 알리샤를 몽골로 데려가고 싶어 하는 몽허는 동민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기어이 알리샤가 한국을 떠난 이후, 동민과 몽허는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사건의 단서들을 얻는다. 그렇게 본격적인 공조가 시작되고, 두 형사는 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혀내고자 한다.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는 많지만, 몽골인 형사와 한국인 형사 콤비가 주인공인 영화는 흔치 않다. 색다름에 방점을 찍는다면 영화의 후반부 주된 배경이 되는 몽골 초원이라는 장소 또한 눈길을 끌 것이다. 김인권은 &l
'열혈형사' 몽골인 형사와 한국인 형사 콤비가 주인공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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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이자 인기 모델인 아이(이토요 마리에)는 괴한들의 위협에 못 이겨 업계 최고 해결사 ‘시티헌터’ 료(가미야 아키라)를 경호원으로 고용한다. 료는 업무 파트너 카오리(이쿠라 가즈에)와 함께 아이의 일상을 따르며 경호를 이어간다. 카오리는 아이의 촬영 현장에 동행했다가 어린 시절 친구인 신지(야마데라 고이치)를 우연히 만나 과거를 추억하며 회포를 풀기도 한다. 하지만 신지는 언제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해 무기 파는 일을 하고 있으며, 최첨단 살인 병기 뫼비우스를 통해 야망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과연 시티헌터 일당은 그의 계획을 막고 위험에 빠진 도시를 지킬 수 있을까.
<시티헌터>가 20년 만에 오리지널 스탭과 재결합해 관객을 찾는다. 호조 쓰카사의 만화 원작 스토리라인을 따르며, 대부분의 주요 캐릭터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료의 권총과 카오리의 100t 해머 역시 그대로다. 전쟁터가 되어버린 신주쿠를 배경으로 한 대규모 총격전과 액션신은 눈
'극장판 시티헌터: 신주쿠 프라이빗 아이즈' <시티헌터>를 사랑해온 관객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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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LA. 아침 생방송 TV쇼의 인기 진행자인 엘리자베스(니나 도브레브)는 배신한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받고 그녀의 반려견 샘 또한 활력을 잃어버린다. 훈남 수의사에게 호감을 가진 카페 직원 테라(바네사 허진스)는 길 잃은 어린 치와와 거트루드를 발견하고 진찰을 핑계로 동물병원을 찾아간다. 무명 인디밴드 프렁크의 리더 댁스(애덤 팰리)는 누나의 출산으로 어쩔 수 없이 누나 부부의 반려견 찰리를 맡는다. 아내와 사별한 뒤 반려견 메이블과 단둘이 살고 있는 은퇴한 교수 월터는 반려견을 산책시키다 잃어버리고, 피자 배달원 타일러(핀 울프하드)의 도움으로 메이블을 찾아 나선다. 딸을 입양한 그레이스(에바 롱고리아)와 커트(롭 코드리) 부부는 아이에게 서툴고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길에서 메이블을 발견하고 개를 데려가서 키우자고 한다.
<해피 디 데이>는 배우 출신 켄 마리오 감독의 연출작으로, 반려동물과 인간의 삶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
'해피 디 데이' 반려동물과 인간의 삶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코미디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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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성격을 가진 20살 귀다(줄리아 스토클러)는 그리스 선원과 뜨거운 사랑에 빠져 있다. 반면, 언니보다 2살 아래인 에우리디스(카롤 두아르트)는 차분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피아니스트가 꿈이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성장한 두 자매는 차마 그들의 생각을 부모에게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지낼 뿐이다. 어느 날, 귀다는 남자친구와 함께 파티에 간 후 사라지고, 에우리디스는 부모의 뜻에 따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 한편, 남자친구와 그리스에 간 귀다는 사랑에 실패하고 임신한 채 브라질로 돌아와 부모를 찾아가지만 쫓겨나고, 에우리디스가 빈의 음악원에 갔다는 소식만 전해 듣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에우리디스는 사람을 고용해 귀다를 찾기 시작한다.
<인비저블 라이프>는 2002년 데뷔작 <마담 사탄>으로 그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된 카링 아이노스 감독이, 기자
'인비저블 라이프' 엄격한 가부장제에 살고 있는 두 자매가 서로 다른 길을 택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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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아래 잠긴 진실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바로 과정을 아는 것이다. 오늘날 마트에 진열된 상품을 소비할 때 그 물건이 누군가의 부당한 처우와 착취의 산물은 아닌지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때로 영화는 우리의 인식 바깥에 존재하는 일들을 눈앞까지 끌어당겨 증명한다. <부력>은 동남아시아 해상에 만연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의 실체를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진실을 수면 위로 떠올리는 힘을 발휘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캄보디아에서 타이로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노예선들이 난립하여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로드 라스젠 감독은 실제 인신매매로 팔려가 타이 해상에서 노예노동을 겪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참혹하기 그지없는 노동현장을 고발한다.
캄보디아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14살 소년 차크라(삼 행)는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어릴
'부력' 동남아시아 해상에 만연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의 실체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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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여러 기대작들이 개봉을 연기한 탓에 지금 극장가에는 재개봉 열풍이 불고 있다. <위대한 쇼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 여러 작품들이 다시 상영되고 있다. 그 속에는 올해 오프라인 상영을 취소하며 아쉬움을 샀던 칸국제영화제의 역대 수상작들도 다수 포진됐다. 서울극장 등 소규모 극장들을 중심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칸의 영화들이 국내 관객들을 다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스크린으로 재회한 칸국제영화제 수상작 10편을 돌아봤다.
켄 로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006년 제59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서울극장 ‘은하계 여행 안내 기획전’
일관된 목소리로 소외계층의 삶을 대변한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 그의 첫 황금종려상 수상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1920년대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을 담았다. 켄 로치 감독은 조국 독립을 위해 비극으로 뛰어드는 형제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국인 영국의 과오를 조명
스크린으로 다시 만난, 칸이 사랑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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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이 화면 가득 차 있고, 소녀가 조심스레 프레임 안으로 걸어들어온다. 소녀는 좁다란 무언가의 위를 걷고 있는지 양팔을 들어 균형을 잡는데, 흡사 여린 날개를 펼쳐드는 작은 새의 몸짓처럼도 보인다. 아이는 이내 무언가를 보았는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다시 프레임 밖으로 유유히 걸어나간다. 그런데 아이는 어느 곳을 걷고 무엇을 본 것일까. 영화 오프닝부터, 맑고 강단 있어 보이는 이 작은 존재가 우리의 시선을 견인해가는 <나는보리>는 선한 품성을 지닌 영화다. 이야기는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보리(김아송)와 그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영화엔 보리네 가족공동체를 뒤흔들 만큼 해악을 끼치는 인물도, 위협이 될 만한 사건도 등장하지 않는다.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구성했다는 김진유 감독은 애초부터 장애를 특별한 서사 장치로 이용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장애를 영화적인 소재로 소비시켜선 안된다는 상식화된 신념을 실천할 수
농인과 청인의 다른 문화를 가로지르는 '나는보리'의 성취와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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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장소에 관한 이야기로 <침입자>와 <프랑스여자>를 나란히 들여다보았다. 두 영화의 결말에 관한 누설이 있음을 밝혀둔다.
궤적이 영화를 지탱할 때
손원평 감독의 장편 데뷔작 <침입자>에 관한 주된 반응은 잘 진행되던 서사가 중·후반부에 이르러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영화가 스릴러에 기반을 둔 장르영화임을 전제한다. 스릴러영화로서의 <침입자>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이 영화가 스릴러영화와는 다른 시작을 보여준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영화는 서진(김무열)의 시선에 과도하게 기대면서도 그를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자신이 유진(송지효)이라 주장하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에 맞춰진 스릴러의 초점을 분산시킨다. 서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이 모든 것이 서진의 과대망상이 아닌가’라는 의문은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무엇보다 서진의 아내 실종 사건과 동생 유진의 귀환이 맞물리기 이전에, 서진의 기억을 통해 둘의 관
콜라주 영화로서의 '침입자'와 '프랑스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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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맨> Dead Man 감독 짐 자무시 / 상영시간 121분 / 제작연도 1995년
한장의 사진이 일주일째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있다. 아스팔트에 엎드린 한 흑인의 목을 백인 경찰이 무릎으로 짓누르고 있는 사진이다. 흑인은 백인의 무릎에 깔린 채 9분 가까이 바둥거리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사진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저 폭력성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한참을 자문했다. 어쩌다 돌연변이처럼 자라난 한 개인의 특별한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제복을 입은 백인이 별 생각 없이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한 사회의 내재된 폭력성 때문인지…. 불현듯 짐 자무시의 <데드 맨>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영화가 이 질문에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스턴에 의한, 웨스턴 신화의 해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영화를 발표할 당시 자무시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거의 유일한 미국의 독립영화 감독이었다. <천국보다 낯선>
[김호영의 네오 클래식] 짐 자무시의 <데드 맨>이 보여주는 ‘미국 개척 신화’에 대한 냉소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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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침입자' 25년 전 실종된 동생이 돌아왔다
[정훈이 만화] '침입자' 25년 전 실종된 동생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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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클라브생. 시인 랭보는 풀을 그렇게 표현했다. 영어로 하프시코드, 프랑스어로 클라브생, 이탈리아어로 쳄발로라고 부르는 피아노가 있기 전의 건반악기 중 하나인데, 현을 쳐서 소리를 내는 피아노와 달리 현을 울려 소리를 내는 이 악기는 실제 연주를 들어보면 볼륨이 작으며 강약 조절이 되지 않는다. 숲을 헤치며 부는 바람 소리와 풀밭인 초원을 스치는 바람 소리의 차이. 알랭 코르뱅의 <풀의 향기>는 예술 작품과 풀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니 랭보를 필두로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나 화가들이 풀을 생각해왔는지, 어떤 의미로 풀이 언급되는지를 책에서는 수시로 언급한다. 꽃이나 나무가 아닌 풀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자연의 상징이기도 하다. <풀의 향기>를 쓴 알랭 코르뱅은 <사생활의 역사>의 공저자이며 <날씨의 맛>을 쓰기도 했는데, 근대사와 미시사를 전문 분야로 한 역사학자답게 수많은 문헌들에 살아 생명력을 빛내는 온갖 풀의 이야기를 찾아 소개한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풀의 향기> <아무튼, 산> 자연과 벗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