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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다섯번 울었다.”(김동완) 지난 6월 22일 <소리꾼> 언론배급시사가 끝난 뒤 스튜디오에 들어온 이봉근, 이유리, 김동완 세 사람은 영화에 대한 감흥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은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납치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하는 뮤지컬영화이자 로드무비다.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명창 이봉근의 소리는 구수하고 시원해 권선징악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빡빡한 홍보 일정을 소화하는데도 세 배우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소리꾼' 이봉근·이유리·김동완 - 소리에 눈물을 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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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는 질문. 조금 정신이 흐려지더라도 고통을 줄이는 쪽을 원하세요, 통증이 있더라도 정신을 유지하기를 원하세요. 이 물음에 자신 있게 후자를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의 몸에 아픈 부분이 없거나 큰 아픔을 이겨낸 경험이 있는 강인한 사람이리라.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실제로 그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길은 없다. 요컨대 정신은 몸이며, 몸 이상의 정신을 가질 일은 평생 구도자로 살지 않는 이상은 없다.
책은 책의 몸을 가진다. CD는 CD의 몸을 가진다. 트위터는 트위터의 몸을, 영화는 영화의 몸을 가진다. 각각의 몸은 그 정신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책은 책이라는 몸의 제한 속에서 정신을 구현한다. 사각 종이의 한 모서리가 묶여 있고 그 앞뒤가 표지로 보호된 책은 독자의 몸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따른다. 인간의 몸보다 큰 책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런 책은 읽히기 위
몸을 짓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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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Black Lives Matter(BLM,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시대의 미국에서는 온종일 이어지는 뉴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유튜브 채널 <리유나이티드 어파트 위드 조시 게드>(<RAWJG>)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으로 유명한 배우 조시 게드가 지난 4월 말 시작한 개인 유튜브 채널 <RAWJG>는 6월 말까지 영화 팬들이 사랑하는 작품의 출연진 및 관계자 인터뷰 영상을 공개하는 한편 각종 자선단체에 전달할 기부금을 모았다. 지난 4월 27일 첫 공개된 동영상은 <구니스>(1985) 캐스트 편. 대부분의 출연진과 얼마 전 90살 생일을 맞은 리처드 도너 감독, 프로듀서 스티븐 스필버그, 각본을 쓴 크리스 콜럼버스, 그리고 주제가를 부른 신디 로퍼까지 출연해 큰 호응을 얻었다. 촬영 당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 틈에서 고생했던 도너 감독은 촬영을 끝낸 뒤 하와이의 별장에서
[뉴욕] 추억의 영화인들, 유투브에서 재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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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둣집 앞에서 소년은 피아노를 치고 헨리는 바이올린을 켠다. <아무노래>가 흘러나오자 어린 청중이 나와 춤을 추고, 도로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동차가 지나간다. 멋지게 즉흥연주를 마친 12살 파트너 박지찬에게 헨리가 말한다. “정식적인 공연 말고 이렇게 프리하게 하는 거 재밌지?” 가수이자 방송인 헨리의 유튜브 콘텐츠 시리즈인 <헨리 뭐 했니>(Henry more Henry)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어린이들과 헨리가 만나 공연하는 ‘같이 헨리’다. 막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송시현은 떡볶이집에서 화려한 기타 연주를 마친 뒤 초등학교 담장 옆 길바닥에 헨리와 나란히 앉아 또래 청중들의 신청곡을 받고, 삑삑 소리나는 곰돌이가 붙은 상의를 입고 온 9살 바이올리니스트 설요은은 꼼꼼히 악기를 조율하며 헨리와 ‘절대음감 테스트’ 놀이를 한다.
새 콘텐츠를 고민하는 헨리에게 “초등학생들이 너를 되게 좋아해”라는 아이디어를 주었던 스타일리스트
'헨리 뭐 했니'(Henry more Henry), 초등학생들도 나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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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태(오태경)는 4년 넘게 연애하고 헤어진 다운(신소율)을 잊지 못하고 다운의 집 앞에 찾아가 그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시작한다. 다운은 경태를 무시하고 타일러도 보지만 경태의 행동은 점점 뻔뻔해진다. 경태의 대사를 빌리면 이는 지난 사랑에 대한 “애도”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경태의 행동은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폭력적 집착에 가깝지 않을까. <해적, 디스코왕 되다>를 만든 김동원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시, 나리오' 4년 넘게 연애하고 헤어진 여자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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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네(강지영)는 짝사랑하는 하야토(가네코 다이치)에게 고백하지만, 그는 고도비만인 아야네를 놀리며 거절한다. 실의에 빠진 아야네는 고향을 떠나 이탈리아의 초콜릿 가게에서 일하는데,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오랜 기간 병실에 누워 지내다 급격하게 체중이 감소하고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비만 여성을 희화화하는 영화로, 한국 아이돌 출신 강지영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동의를 얻을지는 의문이다.
'으라차차! 마이 러브' 한 여자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급격하게 체중이 감소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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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4%가 초능력자로 태어나는 가까운 미래, ‘특수인간’(powers)이라 불리는 초능력자들은 도시건설에 공헌하지만 도시가 완성되자 국가는 그들을 배척하고 통제한다. 일자리를 잃고 도시 하층민으로 전락한 초능력자들의 분노는 곧 폭력으로 이어진다. <코드8>는 초능력, 디스토피아라는 익숙한 설정에 하이스트 장르 등 여러 방식으로 변주해 신선함을 더한다. 제법 흥미로운 설정과 세계관을 안전하게 풀어낸, 무난한 SF물이다.
'코드8' 디스토피아라는 익숙한 설정에 하이스트 장르 등 여러 방식으로 변주해 신선함을 더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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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의 사운드트랙>은 온 마음 다해 고민하는 인물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다. 잘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고픈 메이지(스칼렛 마셜), 그럴싸한 진로를 원하는 벤(제임스 칼로웨이)이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다 마음을 나누기까지의 과정이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레이디 버드>가 되지 못한 소녀와 <싱 스트리트>에 가지 못한 소년이 쓴 일기처럼 솔직하고 씁쓸하나 그로부터 귀엽고 풋풋한 면모를 발견케 한다.
'16세의 사운드트랙' 온 마음 다해 고민하는 인물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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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공무원 창식(김종구)은 중국 동포 수옥(강애심)에게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 길순(전국향)을 돌보는 일을 전적으로 맡긴다. 월 200만원을 받는 수옥은 요양보호사와 입주가정부 역할까지 하면서 열심이지만, 길순의 상태는 욕창이 생길 만큼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창식은 막내딸 지수(김도영)에게 전화를 걸어 길순에게 욕창이 생겼다고 알릴 뿐 아들들에게는 직접 알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지수는 엄마에게 마음이 쓰여 추가적인 돌봄노동을 자처한다. 한편 창식은 일상 속에서 생각을 나눌 수 없는 길순을 반려자로 느끼지 못하고, 자신과 가장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는 수옥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욕창>은 돌봄노동을 적확하게 그린 작품이다. 남성 배우자가 슬그머니 주 돌봄자 역할에서 빠져나가고, 딸과 다른 여성에게 전가하는 현상을 그린다. 심혜정 감독의 페르소나이자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이 딸 지수를 연기하면서, 위로는 친
'욕창' 돌봄노동을 적확하게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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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전업주부 헌터(헤일리 베넷)는 임신 후 남편 리치(오스틴 스토웰)와 시부모의 축하를 받는다. 그러나 헌터에 대한 관심은 그때뿐이다. 가족들은 대화 중에 그를 무시하기 일쑤고, 헌터는 얼음을 깨먹으며 고독을 견딘다. 이후 시어머니가 건넨 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라는 문구를 읽고 감화한 헌터는 구슬, 종이, 압정, 나사, 건전지 등 먹어서는 안되는 물건을 삼키는 일에 매혹된다. 이를 알게 된 리치와 시부모는 헌터에게 새로운 식단을 권하고 상담을 받게 하는 등 원래의 모습으로 그를 되돌리기 위해 힘쓰지만, 헌터는 가족의 눈을 피해 계속해서 음식이 아닌 것들을 혀 위에 올린다. <원스 어게인>의 제작과 공동 연출을 맡았던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연출작인 <스왈로우>는 위태로운 충동에 휩싸인 인물이 뿜어내는 긴장으로 극을 채운다. 인물의 뒤틀린 행동이 고급스러운 대저택을 배경으로 어우러져 기묘한 에너지를 선사하는 초반부 연
'스왈로우' 제18회 트라이베카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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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들의 가렴주구는 극에 달하고, 탐관오리의 횡포가 극심하던 조선 영조 10년. 학규(이봉근)는 아내 간난(이유리), 딸 청이(김하연)와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는 소리꾼이다. 그는 단짝인 고수 대봉(박철민)과 함께 잔칫집과 장을 돌며 소리를 한다. 어느 날, 간난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에 납치당한다. 학규는 사라진 아내를 찾기 위해 청이, 대봉과 함께 길을 나선다. 학규는 몰락한 양반(김동완), 스님 등 전국 곳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광대패를 이룬다. 아내를 찾기 위해 스스로 지어낸 <심청가>에 곡조를 붙여 부르고, 민심을 흔들기 시작한다.
<소리꾼>은 학규가 아내를 찾는 긴 여정을 판소리로 풀어내는 뮤지컬영화이자 로드무비다. 임권택 감독의 판소리영화 <춘향뎐>(2000)이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판소리가 사건과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는 화자 역할을 한다. “갈까부다 갈까부다 내님따라 갈까부다” 같은, 이야기 곳곳에서 학규가 부
'소리꾼' 한 남자가 아내를 찾는 긴 여정을 판소리로 풀어내는 뮤지컬영화이자 로드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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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프란츠 로고브슈키)는 독일군의 공습이 시작되자 비점령지대인 프랑스 마르세유로 도피하고, 다리를 다쳐 생사를 헤매는 작가 하인츠와 함께 기차에 오른다. 긴 시간, 지루함을 참지 못한 게오르그는이동하면서 하인츠가 새로 완성한 원고를 읽는다. 마침내 프랑스에 도착한 후 게오르그는 하인츠의 죽음을 확인하고 검문 요원들의 눈을 피해 혼자 도망나온다. 거처할 곳을 찾아 떠도는 그의 등을 누군가가 반갑게 두드리는데, 게오르그가 돌아보자 여인은 자신이 찾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듯 웃음을 거두고 빠르게 사라진다. 이후 레스토랑과 멕시코 대사관 등 게오르그가 옮겨가는 장소마다 같은 여인이 잠시 들렀다 사라진다.
한편 멕시코 대사관에서는 게오르그를 하인츠로 오해하고 하인츠를 위해 준비한 멕시코행 선박표와 여행 자금을 건넨다. 게오르그는 하인츠의 아내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고 그녀와 아들 드리스(릴리언 뱃맨)를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천식이 있는 드리스의 병세가 깊어지면서 게오르그는 독일어를 할
'트랜짓' 2차 세계대전 시기,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난민 문제를 다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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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카 다미안은 지금 유럽에서 주목해야 할 감독 중 한명이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연극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 촬영을 전공한 그는 2008년 장편 극영화 데뷔작 <크로싱 데이트>에 이어 첫 장편애니메이션 <크롤릭: 나의 저승길 이야기>(2011)로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신작 <환상의 마로나>는 2019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 장편부문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고, 안카 다미안은 이 인연으로 올해 BIAF 포스터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공감의 힘으로 다른 존재를 상상하고 상상력의 힘으로 자유분방한 세계를 그려나가는 그에게 애니메이션의 매력, 그리고 개와 행복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영화를 전공했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연출을 하다가 애니메이션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스스로 시각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에서도 미술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영화의 표현 방식으로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는 건 자연
<환상의 마로나> 안카 다미안 감독 인터뷰 - 반려견에게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의 자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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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겐 각자의 천국이 있다. 천국이 진정 행복을 주는 곳이라면 제각기 믿는 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는 게 당연하다. 천국의 모습을 묘사한 여러 상상 중에 특히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다. 그곳에선 먼저 세상을 먼저 떠난 반려동물이, 그중에서도 특히 개가 천국의 문 앞에서 제일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개를 한번이라도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해한다. 이건 조건 없는 애정과 사랑을 준 존재에 대한 뒤늦은 고백이다. 늘 문 앞에서 인간이 돌아오길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 모습 그대로 천국에서도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길이의 시간을 산다는 이유로 우리 곁을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반쪽.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를 볼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피어난다. 개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인간을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걸까. 우리는 감히 이 믿음직한 존재의 과분한 애정을 이렇게 무한정 받아도 좋은 걸까. 안카 다미안 감독의 <환상의 마
견생을 통해 행복의 의미를 되짚는 정교한 우화 '환상의 마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