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열 워런트는 영국 왕실 납품 업체에 주어지는 품질 인증서다. 고층아파트에서 가장 살기좋은 층수도 로열층이라 부른다. ‘로열 또라이’도 있다. 교도소에 죄수 신분으로 잠입한 국가정보원 산업보안팀 소속 백찬미(최강희)가 그렇게 불린다. 내키는 대로 활개를 치고 다니다가 교도소 내 왕따 폭력 현장을 단신으로 제압한 찬미를 두고 죄수들은 ‘로또(로열 또라이)’라 부른다. 미치광이처럼 보여도 뭔가 다르다고 해서 ‘로열’이 붙었다.
SBS 드라마 <굿캐스팅>은 국정원 요원들의 목숨을 앗아간 산업스파이를 잡으려 대기업에 위장취업한 세명의 여성 요원 이야기다. “실력도 최고, 똘끼도 최고”로 평가받는 찬미는 현장 경험이 전무한 IT 분야 특채 사원 임예은(유인영)과 국내 안보파트 24년차 베테랑이자 슬슬 ‘관절에 바람에 들기 시작’한 황미순(김지영)과 팀을 이루자니 걱정이 많다. 그런 찬미가 새벽 6시 특훈을 지시하자, 예은이 아이가 있어서 새벽은 곤란하다고 답하는 대목이 있었다.
'굿캐스팅', 편견을 버리면 보이는 것들
-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팡위커(송위룡)는 두꺼운 안경과 교정기를 벗어던지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파티장에 등장한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 팡위커는 린린(송운화)에게 키스를 하며 두 사람간 로맨스의 시작을 알린다. <나의 청춘은 너의 것>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린린과 팡위커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팡위커는 따뜻한 린린의 품성에 반해 어릴 때부터 그를 좋아했으며 세심하게 린린을 챙기는 인물이다. 훈훈한 외모로 스타덤에 오른 송위룡은 덥수룩한 머리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채 팡위커를 연기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그는 팡위커에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해 매 촬영에 진지하게 임했다. 대몽영 감독은 “그는 오케이 사인이 난 후에도 항상 한번 더 찍자고 말했다”며 송위룡의 열정을 칭찬했다. <나의 청춘은 너의 것>으로 지난해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송위룡은 “더 많은 영화로 관객을 만날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중국
'나의 청춘은 너의 것' 송위룡 - 얼굴 천재의 완벽한 변신
-
억울하게 수감된 만희(이시후)는 조폭 출신 범털(이설구)이 권력을 잡고 있는 방에서 각기 다른 죄목과 개성의 재소자들과 생활하게 된다. 만희와 같은 날 입소한 반대파 두목 태수(유상재)가 범털 방 사람들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교도소 내부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중심 사건은 늘어지고 메시지는 어색하다. 불쾌하다 못해 난잡한 성적 묘사, 범죄를 가벼이 여기는 태도, 이 둘을 함께하며 우정을 쌓는 전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범털' 억울하게 수감된 한 남자가 개성의 재소자들과 생활하게 된다
-
해양생물학자인 시본(헤르미온느 코필드)과 일행은 아일랜드 어선을 타고 접근 금지 수역에 진입했다가 괴생명체가 내뿜는 독성 때문에 감염병으로 고통받는다. 해양 재난영화의 스펙터클보다는 심리 스릴러적 요소에 집중하고 있는 <씨 피버>는 바이러스 공포를 시의적절하게 건드린다. 장르의 공식을 지나치게 충실히 이식한 플롯과 연출, 사건의 전개를 대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씨 피버' 바이러스 공포를 시의적절하게 건드린다
-
-
축구팀 에이스 테오(말룸 파킨)는 아빠 로랑(프랑수아 다미앙)을 위해 아스널 유소년팀에 스카우트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술에 절어 살던 로랑은 아들을 위해 영국에서 새 출발을 하겠다며 재기를 다짐하고, 테오는 뿌듯한 한편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아빠의 성장을 응원하는 아들과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아빠의 마음이 교차하며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모든 인물들이 서로를 도와가며 한뼘씩 자라나는 과정이 따스하다.
'어쩌다 아스널' 모든 인물들이 서로를 도와가며 한뼘씩 자라나는 과정이 따스하다
-
바다가 보이는 목장에서 수제 치즈를 만드는 와타루(오이즈미 요)는 마을의 동료들과 함께 신선한 농작물을 재료로 한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한다. 믿고 따르던 스승 오타니(고히나타 후미요)가 세상을 떠난 후 크게 낙심하지만 가족, 동료들의 위로를 통해 상황을 극복해간다. 익숙하고 전형적인 서사지만 그렇기에 무리 없이 위로를 전한다. 평화로운 전경, 신선한 재료, 각자의 이야기로 완성된 음식이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해피 해피 레스토랑' 익숙하고 전형적인 서사지만 그렇기에 무리 없이 위로를 전한다
-
몸과 마음의 집을 잃은 소년 스텟(개릿 워레잉)은 그의 노래 실력을 알아본 교장 선생님 덕에 국립소년합창단 오디션 기회를 얻는다. 가까스로 합창단원이 된 스텟은 단장이자 지휘자인 카르벨레(더스틴 호프먼)를 만나 자기 안의 목소리를 발견해나간다. 반항아가 좋은 스승을 만나 역경을 딛고 자란다는 빤한 스토리에 갈등이 손쉽게 사그라들지만, 어린 재능을 지켜주려 애쓰는 어른들 품에서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소년을 지켜보는 감동이 있다. 예정된 성취로 이야기를 맺는 대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인물을 조명하는 결말도 따뜻하다. 소년합창단의 노래를 내내 감상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스텟 역의 개릿 워레잉이 솔로 파트를 소화했고, 팝페라 스타 조시 그로반이 O.S.T에 참여했다.
'보이콰이어' 어린 재능을 지켜주려 애쓰는 어른들 품에서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소년을 지켜보는 감동
-
<톰보이>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수상한 셀린 시아마 감독이 2011년에 만든 두 번째 장편영화다. 여름방학 중에 새 동네로 이사온 10살의 ‘톰보이’ 미카엘(조 허란)은 이웃집 소녀 리사(진 디슨)와 통성명을 하고 친구가 된다. 리사덕에 동네의 또래 남자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되지만, 사실 미카엘은 로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다. 여동생 잔(말론 레바나)도 언니와 오빠를 동시에 가진 듯한 기분이 나쁘지 않아 기꺼이 로레/미카엘의 거짓말에 동참한다. 고정된 성역할을 거부하고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로레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아름다운 클로즈업 촬영으로 묘사하고 감각하게 하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연출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톰보이' 셀린 시아마 감독이 2011년에 만든 두 번째 장편영화
-
구덩이라 불리는 곳은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수직 감옥이다. 콘크리트가 아래로 이동하면서 수감자들에게 그 위에 놓인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데, 아래층 수감자는 위층에서 먹다 남긴 걸 먹어야 하는 형국이다. 48층에서 눈을 뜬 주인공 고렝(이반 마사구에)은 심술궂은 노인 트리마가시(조리온 에귈레오)가 음식을 먹고 난 뒤 아래층 수감자들을 골려주기 위해 침을 뱉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만 이내 구덩이의 체계에 적응한다. <더 플랫폼>은 기이한 규율이 작동하는 지옥도다. 잘 차려진 음식이 찌꺼기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인간의 미식과 탐식 문화에 회의감마저 든다. 감옥은 계급을 은유하려는 듯 보이지만 파괴적인 내러티브는 본래 목적과 달리 위악적이고 인간혐오적이다.
'더 플랫폼' 기이한 규율이 작동하는 지옥도 속에서 일어나는 일
-
남편에게서 도망친 타지마 유리코(이토 란)는 센다이의 한 술집으로 흘러든다. 10살 아들을 두고 떠난 그녀는 이후 18년 동안 소란스런 사건 하나 없이 술집에서 일하며 검소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술집 손님이자 그녀의 연인도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유품은 아들에게 인도되고, 아들은 어머니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어머니의 연인을 만나고자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유리코의 아들은 ‘카가 형사’(아베 히로시)로 성장한다. 목을 졸라 죽이는 살인사건이 두 차례 발생하자 카가는 어머니의 유품을 번뜩 떠올리는데, 두 교살사건과 관련이 깊어 보이는 어머니의 유품을 단서로 삼아 살인자를 찾아나선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일본 유명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카가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추리극에 걸맞은 빠른 진행과 군더더기 없는 프레이밍은 원작 소설의 팬은 물론 영화를 통해 카가 형사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관객 모두를
'기도의 막이 내릴 때' 일본 유명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 원작
-
<고양이 집사>는 길 위의 고양이들과 그 고양이들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고양이와의 공존을 꿈꾸는 ‘집사’들을 만나고자 고양이 마을 조성을 추진 중인 춘천 효자동을 시작으로 성남, 노량진, 부산 청사포, 파주 헤이리를 오간다. 그 출발점이자 중반부까지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춘천 효자동은 특히 다채로운 고양이와 집사들로 가득하다. 툴툴대면서도 기어이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 밥때마다 고양이 도시락을 챙기는 중국집 사장 부부, 벽화 골목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의견을 구하며 고양이 마을을 가꾸려는 동사무소 직원들,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고양이에게 무심한 듯 사려 깊게 공간을 내어주는 바이올린 가게 사장이 있는 한편, 각자의 특징에 맞게 레드, 조폭이, 예쁜이라 이름 붙여진 고양이들이 동네를 지킨다.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다양한 성격과 소통 방식을 지닌 고양이들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 고양이와 사람이 교감하는 순간들은 물론 고양이들끼리 맺
'고양이 집사' 길 위의 고양이들과 그 고양이들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
바닷가를 찾은 한 소년이 서핑을 즐기는 이들을 홀린 듯이 쳐다본다. 이 소년은 외국인 불법 취업 브로커 일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2세 김수(곽민규)다. 그는 폭행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또 한번 범죄가 발각되면 교도소에 갈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게 사회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쓰레기를 주우러 바닷가에 왔다가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된 것이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받은 서핑 강습 전단지를 받고 더 호기심이 발동한 수는 쓰레기장에 버려진 서핑보드를 갖고 와 막무가내로 바다에 나가보지만, 강습도 받지 않고 도전하면 위험하다는 핀잔을 서퍼 해나(김해나)에게 듣는다. 대신 이 일로 서프숍과 인연을 맺게 된 수는 그들과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핑의 매력에 점차 빠지고, 원래 하던 갑보인력사무소 일을 그만두려 한다.
이주노동자 2세, 폭력전과, 집행유예…. 수를 둘러싼 모든 조건이 사회에서 소외된 그의 캐릭터를 설명한다. 무료한 삶에 더해진 변수가 미친 파장을 그리는 청춘물은
'파도를 걷는 소년'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단지 피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들이 처한 어두운 현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
-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가 할리우드에서 재탄생한다. 아리 애스터 감독을 포함한 <미드소마> 제작진이 CJ 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지구를 지켜라!> 영어 버전 리메이크를 결정했다. 원작자인 장준환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으며, CJ 엔터테인먼트가 투자와 기획을 맡고 <미드소마>의 아리 애스터 감독, 라스 크누드센 프로듀서 등이 제작자로 참여한다. 각색은 <HBO>의 TV 시리즈 <석세션>의 작가진이었던 윌 트레이시가 맡았다.
지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기생충> 작품상 수상 당시, 봉준호 감독과 무대에 올라 수상소감을 말했던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에 대한 감회를 전했다. 그는 “우리가 <기생충>의 성공으로 배운 점은 전 세계 관객들은 커다란 주제를 가진,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장준환 감독은 뚜렷한 주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미드소마>의 아리 애스터 감독과 함께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
-
<반도의 봄> 제작 명보영화사 / 감독 이병일 / 상영시간 84분 / 제작연도 1941년
조선영화는 식민지 조선 사람들이 만들어낸 근대의 가장 대표적인 장면일 뿐만 아니라 식민지/제국 체제의 기록 그 자체이기도 하다. 조선영화인들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일제와 협상하고 때로는 경합했으며, 영화문법에 있어서는 서구영화와 일본영화 사이에서 조선 나름의 방식으로 토착화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영화는 영화 매체의 특성상 허구의 세계일 수 있지만 식민지의 현실을 투영해낸결과이며, 나아가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반영해낸 산물이기도 하다. 2005년 중국전영자료관에서 발굴한 <반도의 봄>은 조선영화인들이 개척해간 근대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영화이며, 1940년 시점 조선영화계를 비롯해 식민지의 문화예술이 어떤 논리로 구성되었는지, 그 구성원들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식민지 영화인들이 개척한 근대의 기록 '반도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