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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포비아> (Videophobia)
미야자키 다이스케┃일본┃88분┃2019년┃월드시네마-극영화┃온라인
배우를 꿈꾸며 연기 학원에 다니는 젊은 여성 아이는 학원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 가고,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자신의 성관계 영상이 포르노 사이트에 올라온 것을 본 아이는 큰 충격을 받고 경찰서로 향한다. 도움을 청해보지만 촬영자를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익명의 다수가 비디오를 시청했을 거란 걱정이 아이를 엄습한다. <비디오포비아>는 디지털성범죄에 얽힌 문제들을 직시한다. 아이는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하진 않으나, 담담한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만으로도 그의 공포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전혀 다른 삶을 살지라도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통해 디지털성범죄의 심각성을 고발한다. <밤이 끝나는 위치>(2011), <야마토>(2016) 등을 연출한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의 신작이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②]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의 '비디오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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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랍게> (Comfort)
박문칠┃한국┃73분┃2020년┃코리안시네마┃온라인
‘옥’(玉)자는 양반이 쓰는 이름이라 순옥은 안된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맏딸의 귀한 이름을 순옥 대신 순악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일본 군인들은 순악 대신 사다코, 데루코, 요시코, 마쓰다케라고 불렀다. <보드랍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고 김순악 할머니의 삶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1928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던 김순악이 일본군에 끌려간 뒤 해방이 되자마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군산, 여수를 떠돌고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라고 대한민국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주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했다. 여성 활동가들의 목소리로 따라가는 김순악 할머니의 삶은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험난하고 억울했고, 그래서 보는 내내 울컥하게 된다. 카랑카랑 울리는 생전 할머니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그가 직접 그린 꽃그림은 여백이 많아 보드랍다.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①] 박문칠 감독의 '보드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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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영화적 공간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퀘이 형제의 말을 전하며 문성경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특별전의 도슨트를 시작했다. 지난 5월 15일 오후 2시 전주 팔복예술공장에서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전시를 미리 공개하는 프레스 투어가 열렸다. 섬세하게 제작된 퍼펫과 오브젝트들, 드로잉 속 숨겨진 상징과 요소들을 하나하나 관람하다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퀘이 형제는 칸국제영화제로부터 초청받은 <악어의 거리>(1986)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줄리 테이머 감독의 영화 <프리다>(2002)에 삽입된 <죽음의 날>이며 이들의 열성팬임을 자부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다큐멘터리 <퀘이>(2015)를 연출했다.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전은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온 퀘이 형제의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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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레이크>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텐션을 밀어붙이는 호러영화다. 그만큼 배우들의 노련하고 집중력 있는 연기가 필요한 현장이었다. 연기 경력 도합 56년차에 이르는 이세영과 박지영은 작품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행동하는 베테랑들이다. 배우들은 평소 모습을 떠나 장르 연기에 필요한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입을 모아 전한다. “많은 분들이 알고있는 것처럼 원래 (이)세영이가 밝은 기운 그 자체이지만, 작품을 위해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촬영이 진행될 수 있도록 서로 도왔다.”(박지영) “표현은 굉장히 쿨한데 늘 배려와 정이 가득한 선배님이시다. 이번 작품은 어느 정도 마음의 거리를 뒀지만, 같은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한 에너지를 받았다.”(이세영) 그 결과 “모든 배우가 자발적으로 고독함을 선택했던” (박지영) <호텔 레이크>는 배우들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민한 신경이 전해지는 공포물이 됐다. 작품을 준비하고 몸으로 직접 통과
'호텔 레이크' 이세영·박지영 -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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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터커의 진가를 알게 된 건 <HBO> 드라마 <뉴 포프> 덕분이었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TV시리즈 <영 포프>의 후속작인 <뉴 포프>의 타이틀 시퀀스에 소피 터커의 <Good Time Girl>이 쓰였는데 수녀들의 도발적인 춤에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노래를 듣는 순간, 그 불경스러운 멋이 날리는 강한 펀치에 머리가 띵해질 지경이었다. 소피 터커는 소피 홀리 웰드와 터커 핼펀으로 이루어진 혼성 일렉트로 팝 듀오다. 팝이라고 하기에는 90년대 하우스에 받은 영향이 크고, 노래가 들어간 트랙이 많지만 무대 위 그들에겐 DJ 부스가 필수다. 2016년에 발표한 데뷔 싱글 《Drinkee》와 2018년의 첫 정규앨범 《Treehouse》가 줄줄이 그래미어 워즈 후보에 올랐고 요즘 잘나가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지금쯤 온갖 페스티벌에 나와 춤추는 관객의 심장박동수를 올리고 있어야 할 소피 터커에게도 2020년이 찾아왔고, 그리하여
[Music] 이동제한 시대의 하우스 파티 BGM - 소피 터커 Sofi Tuk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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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0주년 영화제 ‘시네광주 1980’ 개막작인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5·18 당시 광주의 상황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비밀리에 제작된 ‘광주 비디오’를 한데 모은 작품이다. <서산개척단>(2018)을 통해 박정희 정권 시절 납치돼 무임금으로 개척 사업에 동원된 피해자들을 조명했던 이조훈 감독이 직접 비디오 제작과 배포에 관여한 주역들을 만났다. 5월 19일 전세계 최초로 광주항쟁의 상황을 알린 <NHK> 기자, 독일 공영방송 의 도쿄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각종 뉴스 기록들을 재편집해 비디오로 제작한 뉴욕 한인들 등 기억해야 할 면면이 하나둘 교차되며 진실의 형상이 드러난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께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발포가 이뤄진 역사를 질문한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 상영 후 6월 11일 정식 극장 개봉할 예정이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이조훈 감독 - 밝혀야 할 진실은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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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봄날의 전주가 아니다. 무려 4개월 동안의 대장정이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가 5월 28일부터 9월 20일까지 심사상영과 온라인 상영(웨이브) 그리고 장기상영회(극장)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열린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관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정부 지침을 따르면서 관객과 창작자(감독, 제작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씨네21>은 올해 전주영화제 상영작을 미리 보았고, 그중에서 추천작 15편을 엄선했다. 온라인과 장기상영회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그리고 영화제 기간 동안 전주와 서울에서 차례로 진행될 전시회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를 미리 보기 위해 전주 팔복예술공장을 다녀왔다. <씨네21>은 이번 특집을 시작으로 영화제가 진행되는 4개월 동안 다양한 전주영화제 기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영화제와 함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그해 우리가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15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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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개막을 열흘 앞두고 전진수·문석·문성경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세명은 무척 분주해 보였다. 라인업을 확보하고, 극장 상영만 신경 썼던 예년과달리 올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장기상영 모두 준비해야 하는 까닭에 평소보다 업무가 복잡하고 더욱 꼼꼼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당장 무관객 영화제로 치러야 하는 상황을 감독, 프로듀서 등 창작자들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국내외 많은 영화제들이 어떻게 운영할지 혼란을 겪는 가운데, 세 프로그래머는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안들 중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장기상영이라는 안을 선택했고, 그런 결정대로 영화제를 운영하는 수밖에 없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영화제 개막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전진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영화제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진행되는 건 전주영화제가 처음이다. 프로그래머만큼이나 스탭들도 새로 치르는 방식을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다.
문석 그러다보니 업무가 반복되고 있다.
전진수·문석·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안전이 우선, 온라인과 오프라인 병행하며 길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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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영화제는 안방에서 개최된다. 전주영화제측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확산을 우려해 5월 28일부터 초청작을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온라인 상영이 끝나면 장기상영회를 열어 관객이 전주 극장가에서 안전하게 초청작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선보일 예정이다. 4월 30일 개최예정이었던 전주영화제는 개최 시기를 한달 뒤로 미루고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관객이 안전하게 영화제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온라인 상영과 장기상영회를 고안했다. 칸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해외영화제들이 개최를 포기하는 가운데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전주영화제는 어떤 모습일까.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더라면 이미 봄날의 전주를 찾았을 관객과 영화계 관계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Q 전주영화제 초청작을 온라인으로 언제, 어떻게 볼 수 있나.
A 영화제 개막일인 5월 28일부터 6월 6일까지 OTT 플랫폼 웨이브를 이용해 볼 수 있다. PC, 스마트폰, 스마트TV, OTT 셋톱박스 등 각자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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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자는 주장이 계속 있다. 법률문장을 쉽게 고쳐 쓰자는 말도 있다. 판결문을 높임말로 쓰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나는 이런 흐름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애당초 법률용어나 법률문장은 한글이라는 기호를 사용하고 한국어 문법을 일부 차용한 일종의 외국어나 코드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법률문장에는 국가의 사법권을 행사하고 법적 개념을 정립한다는 목적이 있다. 개념어가 최대한 하나의 뜻을 가져야 하고, 읽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는 내가 ‘작가도 변호사도 글 쓰는 직업이니 비슷한 일이겠지’라는 착각으로 법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지점이기도 하다. 이게 분명 한글을 사용한 글이긴 한데, 내가 알던 그 글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오랫동안 번역가로 일해온 경력이 법률문장론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자면 법률문장론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는 것 중에 ‘
언어의 효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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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인 것과 자연스러운 것은 다르다. 사실적인 것이 자연스럽게 되려면 편집이 필요하다. 박석영의 영화들은 사실적이지만 자연스럽지 않다. 예를 들어 <재꽃>(2016)에서 사기를 당한 명호(박명훈)는 분노에 가득 차서 철기(김태희)를 잡겠다고 쇠지레(빠루)를 들고 다닌다. 그런데 명호는 계단에서 쇠지레의 무게와 길이 때문에 쇠지레를 놓치고 쇠지레는 계단을 굴러가고, 명호는 떨어진 쇠지레를 줍는다. 쇠지레를 놓치고 허둥거리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보이며, 관객이 명호가 지금 느끼는 분노의 감정에 몰입할 수 없게 한다. 연출되지 않은 배우의사실적인 연기를 통해 관객이 영화와 거리두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관객은 명호의 사실적인 행동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우며 인위적인가를 느끼게 된다.
<재꽃>에는 자연과 인위의 대립이 있으며, 이는 수직과 수평이미지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초원이나 강물과 같은 수평의이미지들 뒤로 풍경을 압도하는 송전탑이나 아파트와 같은 수직의 이미지가
'바람의 언덕', 박석영 감독의 전작 '스틸 플라워' '재꽃'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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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분절된 신체와 놀이
<톰보이>를 보면서 루시아 푸엔소의 <XXY>(2007)를 떠올렸다. 주인공 알렉스는 거리에서 음악을 들으면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음악을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과 그 순간과 그때의 음악이 좋아서 한동안 그 장면에서 나오던 음악을 듣고 다녔다. <톰보이>와 셀린 시아마의 다른 영화에도 종종 인물과 내가 같은 음악을 듣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이후 셀린 시아마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 이전과 다르다. 감독의 전작 <톰보이>(2011)는 9년 전이라면 10살 소녀가 자신 안에서 소년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으로 정리했을 법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일단 ‘정체성’ 이라는 단어부터 걸린다. 소년성과 소녀성은 또래 집단 내에서는 분명히 구분되지만, 로레(조 허란)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로레에게 소년성은 내재한 어떤 것을 부정할 필요없이 존재한다. 이미
'톰보이'와 셀린 시아마의 아이들이 허락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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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영화관도 잠시 쉼표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 없는 인도를 상상한 적 없지만 그 낯선 현실과 마주한 요즘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극중 풍경이 현실이 되어가자(많은 인구가 밀집한 곳일수록 빈민가로 의료시설은 부족한데 인구이동은 잦아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다), 긴장된 분위기에 인도 정부도 강력한 대책을 내놨다. 지난 3월 중순부터 국경 봉쇄 등 록다운(봉쇄령)을 실시했다. 필수 분야에 한해 조금씩 사회 활동의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굵직한 기대작으로 한껏 고조되어가던 극장가도 문을 닫았다. <바기3>는 흥행(10억루피 클럽)의 문턱에서 걸음을 멈췄고, 로히트 셰티 감독, 악샤이 쿠마르 주연의 경찰 액션극 <수르 야반시>, 1983년 크리켓 월드컵 실화를 바탕으로 란비르 싱, 디피카 파두콘 커플 주연의 <83>도 개봉이 연기되었다.
다만 희귀암 판정을 받고 의연하게 병마와 싸우던 명배우 이르판 칸이 별세했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
[델리] 인도 극장가도 코로나19 영향… 배우 이르판 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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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학생운동을 하다가 대기업에 입사해 재벌가 사위가 되고, 장인 대신 4년간 감옥에 갔던 한재현(유지태). 그는 대학 시절 첫사랑이었던 윤지수(이보영)를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 상대방측 부모로 만나게 된다. 기차역엔 눈이 펑펑 내리고 재현은 20년도 더 지나 나란히 선 지수를 향해 입을 뗀다. “설국이네요. 여긴….” 대한제국 황제가 정7품 애마에게 “왜 그래 맥시무스”라고 말하는 장면보다 천배쯤 버겁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번 입이 트인 재현은 학부모 입장으로 존대를 하다가 이내 20년 전 허물 없던 사이의 말투를 오가며 혼자 한참을 떠든다. 그가 말하는 동안 지수의 얼굴은 울음을 참느라 서서히 일그러진다. 할 말이 너무 많이 쌓이면 헛돌게 마련이고,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잃기도 한다. 당신들은 무슨 세월을 살았길래.
tvN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은 연희대 93학번 신입생 지수(전소니)와 91학번 운동권 재현(진영)이 사랑하던 93년부터 95년까지의 시간과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 그들이 살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