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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우는 노래하는 시인이다. 등단 전 가수로 데뷔해 ‘시인의 악기상점’이라는 이름으로 EP 앨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냈다. 창비 시선의 2021년 첫 시집이기도 한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는 2015년 등단한 정현우 시인의 첫 시집이다. 6년 동안 차곡차곡 모은 68편의 시를 4부로 분류해 빼곡히 실었다. 시집 전반에 슬픔이라는 단어가 많고, 혹은 슬픔이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은 시라도 여러 시어가 돌고 돌아 슬픔을 소개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해설에 김언 시인 역시 첫 문장에 “정현우의 시에는 유독 ‘슬픔’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고 쓴다.
감정을 나타내는 슬픔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사실 슬픔이라 명시되는 감정 안에는 무수한 고민과 걱정, 단순히 ‘슬프다’로 설명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기분과 마음이 뒤엉켜 있다. 많은 시인들이 바로 그 슬픔을 해석하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또 다른 슬픔을 개발하는 작업들을 해왔다면 나는 독자 역시 슬픔을
씨네21 추천도서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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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1권이 한국에 처음 번역 소개된 것이 2016년 12월이었으니 이 시리즈가 한국 독자들과 만난 지도 어느 5년이 되었다. 그사이 고양이와 시바견은 여러 작가들에 의해 재창작되고, 이모티콘으로도 출시되어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기 캐릭터가 되었다. 특히 고양이의 팬덤은 5년 사이에 더 확장되어 가히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가정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유튜브에는 ‘랜선집사’를 자청하는 구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고양이 채널이 여럿이다.
8권 이후 2년 만에 출간된 <콩고양이> 9권을 읽으면서 동물이 주인공인 시트콤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콩고양이> 속 동물들 역시 수년간 독자들과 함께 변화무쌍하게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권수를 더할 때마다 이 집에는 시바견 두식, 비둘기 부부와 닭 마당이, 거북이까지 사이좋게 한 가족이 되었다. 이미 동물농장에 가까운 집이건만 9권에는 더 희한한 동물 친구가
씨네21 추천도서 <콩고양이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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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최초의 기억’에 배꼽이라고 답한 사람이 있다.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이모부가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와보라고 하더라고요. ‘왜 이불 속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들어갔죠. 그러더니 ‘배꼽 좀 보여줘’라고 하는 거예요. 사실 이모부가 보고 싶었던 건 제 성기였을 거예요. 그걸 말하지 못하니까” 일단 배꼽을 보자며 웃옷과 바지를 벗으라고 한 것이었다. 이모부는 둘이 있을 때는 집요하게 배꼽을 보여달라고 했고, 본인도 배꼽을 보여주겠다고 하며 이불 안에서 옷을 벗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났다. 성인이 되고서야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의 이름은 ‘오드리’로 되어 있고, ‘화장품 카운슬러’로 일한다고 한다. 여성이 몸에 대한 말을 들려주는 팟캐스트 <말하는 몸>에 출연한 사람 중 88명의 말을 글로 다시 정리해 펴낸 <말하는 몸> 1, 2권을 처음 볼 때 눈길을 끄는 대목들은 누구나 이름을
씨네21 추천도서 <말하는 몸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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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픈 푸근한 공간으로 고향을 기억하는 사람과 결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공간으로 기억하는 사람 사이에는 깊은 틈이 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으면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동성애자로 살아가려는 젊은 게이에게 대도시나 수도로 탈주하는 일은 아주 흔한 고전적인 여정이다.” 미셸 푸코 전기 및 레비스트로스 회고록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은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고향 및 가족과 적극적으로 단절했다고 생각해왔지만 난폭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오랜만에 어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에게 질문한다. 스스로 노동자 가정 출신임을 부정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계급과 멀어지려고 애쓴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부모의 삶과 사상을 결정지은 사회·역사적 변화를 짚어나간다. 먹고살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어려서부터 노동
씨네21 추천도서 <랭스로 되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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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미술 관객은 작품의 형태며 색상, 전시 공간에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과거 교회나 사원, 유적지 등의 미술 작품은 감상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고, 종교적인 차원에서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조각상으로 가득한 인도 사원을 보려고 현지인도 거북해하는 불편한 길을 달리거나,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그를 좇는 근사한 경쟁자 라파엘로의 작품들을 보러 시스티나성당으로 가는 일은 완전히 다른 목적을 품고 일종의 타임머신을 타는 행위다. 공간 이동인 동시에 수백, 수천년을 가로지르는 시간 이동. 그런데 이 여행을 통해 관객 스스로 작품에 집중하면서 변화하기 때문에 더 의미 있다고 저자 마틴 게이퍼드는 단언한다. <예술과 풍경>은 호크니와의 대담집으로 이름을 알린 미술비평가인 저자가 세계를 오가며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와 대담을 나눈 경험을 담은 책이다.
화가 고(故) 질리언 에어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빌어먹은 그림은 벽에 걸 때마다 달라
씨네21 추천도서 <예술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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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을 때마다 달력의 공휴일을 먼저 확인하는 이들에게 2021년은 가혹한 해다. 거의 모든 공휴일이 주말이라서, 설 연휴가 끝나고는 도리 없이 까만 숫자로 표기된 공부와 노동의 시간을 맞이해야 할 판. 이럴 때일수록 놀기 위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가까이 두고 평정심을 찾으면 어떨까. 어느 쪽이든 유쾌한 2월의 책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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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미드’나 ‘영드’와 달리 ‘프드’라는 단어는 아직 어색하다. 거센소리에 같은 모음이 중복되어 발음하기 매끄럽지 않다는 일차적인 이유가 아니라 프랑스 드라마가 국외 팬들에게 그만큼 영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일 테다. 실제로 프랑스인들도 자국 드라마나 시리즈물에 그다지 높은 기대를 하지 않고, 감독과 제작사, 배우들도 드라마/텔레비전에 대해서는 장편/극장보다 ‘쉬운 차선책’, 좀더 막말로 하자면 ‘변절’과 연관지어왔다. 단적인 예로 2015년 넷플릭스가 제작한 첫 프랑스 드라마 <마르세유>(출연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찬반이 엇갈린 애매한 시청자들의 반응과 달리 “산업 재난”(<르몽드>), “경이롭기까지 한 놀라운 실패작”(<텔레라마>) 등 평단의 일관적인 비판을 받고 결국 시즌3 방영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2017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당시 이 영화를 극장
[파리] 프랑스 영화인들 대거 참여한 넷플릭스 시리즈 '뤼팽' 시즌2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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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국에서 출간된 독일 동화를 원작으로 한 <리틀드래곤 코코넛2: 정글대탐험>은 드래곤들의 방학캠프를 통해 포용과 화합의 여정을 따라간다. 주인공은 날개를 달고 불을 뿜을 수 있는 드래곤 코코넛과 그의 친구들. 코코넛은 드래곤들의 캠프에 참여할 수 없는 고슴도치 친구 마틸다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마틸다를 상자에 몰래 숨겨서 동행할 정도로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
그런 코코넛이 탄 배가 침몰하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이때 영화는 주인공들과 생김새가 다른 종족인 자이언트 드래곤, 워터 드래곤 등을 차별받고 오해받는 캐릭터로 묘사함으로써 뜻밖의 만남과 갈등을 그려낸다.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나와 다른 존재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화 '리틀드래곤 코코넛2: 정글대탐험'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드래곤과 친구들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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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뒤늦은 명성을 얻은 화가인 헬렌 쉐르벡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전쟁과 가난이 담긴 역사적 풍경에서 자화상으로 차츰 관심을 옮겨온 화가 헬렌 쉐르벡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고요하고 내면적인 삶을 살았다.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에 숨은 격정과 동요를 살핀다. 1862년에 태어난 화가의 일생 중 1915~23년 무렵을 중심으로 다루며, 이 시기에 만난 아마추어 화가 아이나르 로이터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고독과 소외, 전통의 억압 속에서 헬렌은 사랑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회복한다.
전기영화로서 시선의 치밀함은 부족하지만 멜로드라마적 정서를 강조해 몰입도와 매력을 높였다. 1900년대 초반 핀란드의 화실 풍경에 자연광을 강조해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부각했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잘 알려진 안티 요키넨의 신작이다.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화가 헬렌 쉐르벡의 삶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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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뒷바라지한 애인에게 뒤통수를 맞고, 철부지 연하 남자 친구가 속을 썩이고, 공감 능력 제로인 남친 때문에 매 순간이 답답하고…. 고등학교 동창인 서연(이새별), 희주(조한나), 가희(이다해)와 보영(강나리)은 삐걱대는 연애 탓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아홉수는 정말 존재할까.” 서른을 앞둔 네 사람은 차라리 얼른 해를 넘겨 이 고달픈 순간이 지나가길 바란다.
<아홉수 로맨스>는 각기 다른 네 커플이 빚는 갈등, 사랑의 시작과 끝까지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데 집중한다. 그 지지부진함에 새로울 건 없다. 다만 끝이 보이는 듯한 그 기시감이, 인물들 편에서 화내고 응원하는 원동력이 된다. 지나치리만치 솔직한 네 인물의 입담에도 공감하며 귀 기울이게 된다. 매끄럽진 않아도 무난하게 흘러가는 로맨스영화다.
영화 '아홉수 로맨스' 각기 다른 네 커플이 빚는 갈등, 사랑의 시작과 끝까지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데 집중한 로맨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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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더블린. 돔(루이스 탈페)은 국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한다. 그는 페이스메이커로서 20년간 팀을 승리로 이끌어왔다. 하지만 경기 전 돔은 출전 기회를 박탈당한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마저 죽자 돔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돔은 운 좋게 다시 출전 기회를 얻는다.
<더 레이서>는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한 사이클 선수 돔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대규모 사이클 대회를 재현하고 리드미컬한 편집을 통해 경주를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속도감에만 매몰된 연출을 선보이진 않는다. 속도를 낼 수 없는 돔의 상황과 고민을 담는다. 이를 통해 영화는 레이싱을 삶에 대한 은유로 읽어내려 하지만 성급한 결말이 이를 막아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 '더 레이서'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한 사이클 선수 돔의 고군분투를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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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네트>는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하는 9살 소년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다. 뉴욕의 심리치료사 메리언(테클라 뢰턴)은 끔찍한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스코틀랜드에 새 터전을 마련한다. 그곳에서 만난 소년 매니(엘리야 울프)는 메리언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이 현실이 된다고 털어놓는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매니가 그린 그림이 하나둘 실현되는 걸 목격한 메리언은 혼란에 휩싸인다.
엘버트 반 스트리엔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동명의 25분짜리 단편을 장편으로 리메이크했다. 참신한 소재와 상상력으로 관객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하지만 헐거운 구성으로 서스펜스를 오래 붙잡아두진 못한다. 장르적 재미 외에도 ‘마리오네트’라는 제목처럼 운명과 존재에 대한 질문까지 이어지는 점은 흥미롭지만 반전의 강박을 벗지 못한 결말이 다소 아쉽다.
영화 '마리오네트'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하는 9살 소년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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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클럽 ‘그레이하운드’는 함께할 뮤지션을 찾기 위한 오디션을 진행 중이다. 많은 뮤지션이 무대를 오르내린다. 밴드 ‘머저리 클럽’의 드러머 섭(갈치)과 베이시스트 철(이재호)도 오디션 참가를 원한다. 그러나 밴드 리더 임재가 종적을 감춘다. 섭과 철은 은정(공민정)과 함께 하염없이 임재를 기다린다. 한편 블루스를 하고 싶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던 흑인 뮤지션 덕규(크리스 라이언) 또한 오디션 현장을 찾는다.
황욱 감독은 자신의 단편 <라이브 클럽 그레이하운드>(2016)를 확장시켜 장편영화 <라이브 하드>를 만들었다. 흑백 화면 속 젊은 뮤지션들의 곤궁한 일상 풍경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무대의 앞과 뒤를 유연하게 오가는 담백한 연출이 여운을 남긴다.
영화 '라이브 하드' 황욱 감독의 단편 <라이브 클럽 그레이하운드>를 확장시켜 만든 장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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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로저먼드 파이크)는 은퇴한 노인들의 법정후견인이 되어 그들의 건강과 재산을 관리해주는 케어 업체를 운영 중이다. 심신이 온전치 못한 고객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은 노인들을 요양원에 가둬 자유를 빼앗은 뒤, 그들의 재산을 처분해 이익을 챙기는 것이 주목적이다. 말라의 검은 속내를 눈치챈 이들이 법정에서 그와 다퉈보지만, 철저한 계획과 해박한 법률 지식으로 무장한 말라를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손발이 척척 맞는 완벽한 파트너 프랜(에이사 곤살레스)과 함께 다음 타깃을 물색하던 말라는 제니퍼(다이앤 위스트)를 상대로 작전을 펼친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중 제니퍼가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말라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직면한다.
J 블레이크슨 감독의 블랙코미디 스릴러 <퍼펙트 케어>는 크게 두 가지 힘으로 달려가는 영화다. 하나는 극을 이끄는 주연배우 로저먼드 파이크가 지닌 아우라와 매력이다. 악역 말라가 보여주는 간교하고 담대한
영화 '퍼펙트 케어' J 블레이크슨 감독의 블랙코미디 스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