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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려 들지 마. 느껴.” 이만큼 <테넷>을 잘 표현한 대사가 있을까. 생소한 물리 법칙과 복잡한 타임라인을 간파하지 못하더라도 영화를 풍부히 감각할 수 있다. 시청각을 자극하는 스펙터클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20년 전부터 구상해온 역행의 이미지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2014년부터 <테넷>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 <덩케르크> 이후 시나리오를 완성해 2018년 겨울에 팀을 꾸려 프리프로덕션에 돌입했고, 2019년 5월부터 11월까지 촬영에 임했다. 그 과정을 영화평론가이자 기자인 제이스 모트람이 좇았다. 그가 놀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배우들을 인터뷰한 기록인 <테넷: 메이킹 필름북>이 8월 28일 문학수첩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을 토대로 <테넷>의 제작기를 들여다보자.
인버전을 영화적으로 구현하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버전이 가진 시각적 잠재력을 믿었다. “카메라나 영화가 발명되기 전, 인간
[테넷⑤] <테넷: 메이킹 필름 북>을 통해 살펴본 제작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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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배우 로버트 패틴슨, "모든 퍼즐이 완성되자 두려울 정도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대본은 복잡하고 정교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던 때 이야기를 해달라. 놀란이 어떻게 새로운 영화를 설명했나.
=크리스와 처음 만났을 때 일로 만났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사적이고 친밀한 분위기였다. 그의 사무실은 집 안에 있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집이다. 처음 만나서는 대본에 대해 듣지 못했고, 영화를 준비한다는 말도 없었다. 세 시간 반을 앉아서 크리스와 이야기하는 동안 <테넷>에 대해서는 한 단어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아, 이건 미팅이 아니었나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에 크리스가 새 대본을 쓰고 있다면서 며칠 뒤에 다시 만나서 대본을 읽어보겠냐고 말했다. (웃음)
-세 시간 반이라니,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대본을 읽는 데만 네 시간 이상 걸렸다고 했는데, 대본을 이해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나.
[테넷④] '테넷' 배우 로버트 패틴슨·엘리자베스 데비키·케네스 브래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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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 석사가 필요하다.”(<SFX 매거진>의 로버트 패틴슨 인터뷰) 실제로 <테넷>은 엔트로피부터 반물질, 열역학에서 양자역학을 아우르는 물리학 개념들이 쏟아져 나와 관련 지식이 없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테넷>을 본 관객이 가장 궁금할 법한 질문을 모아서, 가능한 한 쉽고 친절한 설명을 시도해보았다.
도대체 엔트로피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엔트로피를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다. 엔트로피란 ‘계(system)의 무질서도’를 뜻한다. 예를들어 꽃병에 꽃을 꽂으면 그 향기가 방 전체에 퍼지고, 물에 잉크를 떨어뜨리면 물 전체로 퍼지고, 소금을 물에 넣으면 짠맛이 고르게 나는 소금물이 된다. 이때 분자들은 무작위 방향으로 움직이며 확산되는데, 이는 분자들이 취할 수 있는 수많은 결과 중 가장 가능성 높은 형태에 해당된다. 때문에 계의 무질서도, 즉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게 된다. ‘열역학 제2법
[테넷③] '테넷'의 물리학 개념을 Q&A로 물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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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은 시간 역전(time inversion)과 열역학 제2법칙을 다룬 영화다. 열역학 제2법칙은 19세기 중반 독일의 루돌프 클라우지우스와 영국의 윌리엄 톰슨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클라우지우스는 열에서 일(물리학에서의 일(work)은 물체에 힘이 작용하여 움직일 때 힘과 변위의 곱으로 주어지는 물리량을 의미한다.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일과 에너지는 서로 전환될 수 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어떤 계의 내부에너지의 증가량은 그 계로 흘러들어간 열과 외부에서 그 계에 해준 일과 같음을 정리한 것으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도 불린다.-편집자)이 나올 때 항상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내려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기에 윌리엄 톰슨은 열이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외부의 일의 도움 없이 흐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열이 낭비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일이 열로 바뀐 뒤에는 그 열이 모두 일로 바뀔 수 없기 때문에 이 과정은 비가역
[테넷②] '테넷'에 나오는 시간 역전·시간 반전의 가능성을 물리학적으로 살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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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넷>의 초반부. 기차가 정방향, 역방향으로 지나는 선로 사이에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가 결박된 채 앉아 있다.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분노한 러시아 요원들은 시간을 뒤로 돌린 후 주도자를 고문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함구한 채 극약을 삼키고 자살 시도를 하는 주도자. 눈감은 그의 얼굴 위로 영화 <테넷>의 로고가 겹친다. 사명감 강한 스파이와 정방향, 역방향으로 돌진하는 두 기차, 뒤로 돌아간 시계침. 영화의 시작을 여는 이 시퀀스는 ‘시간과 스파이’라는 <테넷>의 주요 소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테넷> 속 인물들은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설정이지만, ‘인버전’이란 기술을 통해 인물들이 과거의 한 상태로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진다. 반대로 날갯짓을 하는 새, 뒤로 물러나는 파도와 같이 인버전된 세계에선 모두가 필름을 되감은 듯 거꾸로 작동한
[테넷①] 전세계 최초로 국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테넷'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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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여파로 몇 차례 개봉이 미뤄졌던 <테넷>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된 <테넷>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스파이영화라는 점만으로도 많은 관객의 기대를 높인 작품이다. <테넷>이 개봉된 이후, 호평과 혹평보다 더 많이 접할 수 있었던 반응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테넷>의 인물들은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데, 이들이 ‘인버전’이란 기술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바삐 오간 탓에 사건의 타임라인이 복잡하게 얽혔기 때문이다. 더불어 ‘열역학 제2법칙’과 ‘할아버지의 역설’과 같은 물리학 법칙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번 ‘크리스토퍼 놀란과 <테넷>’ 특집에서는 <테넷>의 A to Z를 모두 소개한다. 한눈에 보는 <테넷>의 타임라인과 물리학자의 리뷰, 물리학 법칙에 대한 Q&A로 <테넷>을 쉽게 설명
[스페셜] 크리스토퍼 놀란과 '테넷'에 대한 모든 것 ①~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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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박제된 책으로 가득 채워진 중고 서점에 오랫동안 머무는 젊은 여성. 대개의 젊은이들이 찾는 유희의 공간 대신 서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라면 80년대에 청년 시절을 보낸 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후쿠오카>의 소담(박소담)은 서점 주인인 제문(윤제문)에게 먼저 후쿠오카 여행을 제안하고, 중년세대로서 자신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앞서 경험했을 제문과 자연스럽게 여행하면서 유려하게 여러 생각을 나눈다. 미련인지 기다림인지 모를 감정을 안은 채 과거 헤어진 연인의 고향인 후쿠오카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해효(권해효)까지 동참하면서 세 사람의 기묘한 여행이 시작된다. 극중 소담은 두 사람 사이를 슬그머니 빠져나와 여행 중 우연한 기회로 만나는 일본·중국 국적의 사람들과도 개방적인 자세로 소통한다. 그리고 대학 선후배 사이지만 28년간 의절한 채 살아온 해효와 제문 사이를 화해의 국면으로 이끈다. 그렇게 <후쿠오카>의 소담은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고 언
'후쿠오카' 박소담 - 처음 만나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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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뇌병변장애인 작가 일라이 클레어의 책 <망명과 자긍심>에 사로잡혔다. 그는 장애를 ‘당대 사회조직이 물리적·인지적 손상이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아, 그들을 사회의 주류로부터 배제함으로써 야기되는 불이익이나 활동의 제약’으로 정의하는 마이클 올리버의 견해를 소개한다. 즉 “망할 놈의 학교 규칙이 내게 시간을 더 주지 않아서 시험에 실패한 것”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한계”인 반면, “애덤스산이 내 발엔 너무 가파르고 미끄러웠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기를 실패한 것”은 “신체적인 한계”와 관련된다는 점을 저자는 안다.
하지만 저자는 덧붙인다. “내 몸 안으로 향하는 분노”와 “비장애중심주의로 향하는 분노”의 분리가 늘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고. 예컨대, 저자는 ‘장애인에게 등산은 무리’라는 차별적·패배주의적 사고와 ‘장애인도 산을 오를 수 있다’는 장애 극복 신화를 모두 경계하며 산을 오르지만, 점점 가팔라지는 애덤스산 중턱에서 등반 중단을 결정하며 펑펑 울었다.
그 산은 나를 놔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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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가는 길>은 어머니와의 여행을 기록한 전작 <무스탕 가는 길>에 이은 정형민 감독의 두 번째 여행기다. 두 사람의 여정은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서 고비 사막으로, 그리고 티베트의 카일라스산으로 이어진다. 오지에서, 그리고 이동하는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감독의 시선은 지극히 따뜻하면서도 평온하다. 매 순간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기도를 잊지 않는 어머니와 그 뒤로 고요하게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들. 84살의 어머니와 아들이 떠난 길고 추운 순례의 여정이 마냥 고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중간중간 삽입된 어머니의 일기는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밝게 유지하는 데 제 몫을 한다. 씩씩하게 걷는 할머니의 엔딩 신만으로도 이들의 걸음이 어디로 이어질지 궁금하게 만든다.
'카일라스 가는 길' 어머니와의 여행을 기록한 전작에 이은 정형민 감독의 두 번째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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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을 꿈꾸던 현수(김희찬)는 영화 동아리방에서 우연히 만난 미주(정이서)에게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제안한다. 남자주인공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탓에, 현수는 직접 미주의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미주는 오랜 시간 시나리오 작업만 붙들고 있는 현수가 답답해지고, “뭐라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미주의 질문에 현수는 역정을 내며 돌아선다. <7월7일>이 묘사한 청춘의 현실은, 어설픈 영화의 만듦새 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현수처럼 꿈을 좇아도, 미주처럼 현실과 타협해도 하루하루가 녹록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여기에 김희찬, 정이서 두 배우의 연기는 극에 현실감을 더한다. 다툼 끝에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찰나, 두 사람에게 닥친 위기는 다소 뜬금없이 등장해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7월7일' 청춘의 현실을 어설프지만 현실적으로 그러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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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경쾌한 하이스트 무비. 해리 제임스 바버(트래비스 피멜)는 여자친구 몰리 머피(레이첼 테일러)에게 8년 전 캘리포니아에 있는 은행을 턴 이후 FBI의 추격을 받고 있다고 고백한다. 영화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블랙머니를 훔치는 계획에 합류한 해리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은행 강탈 작전을 주도하는 해리의 삼촌 엔조 로텔라(윌리엄 피츠너)를 비롯한 이들은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동원되는 온갖 더러운 비자금을 훔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메리칸 잡>은 날카로운 정치 풍자보다는 70년대 컨트리음악과 배우 스티브 매퀸의 <블리트>(1968)를 비롯한 고전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는데 더 집중한다. 60~70년대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볼 수 있다.
'아메리칸 잡'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경쾌한 하이스트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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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미리 소개된 영화 <이십일세기 소녀>는 80년대 후반, 90년대생으로 이뤄진 일본 여성감독 15인의 옴니버스 단편 모음집이다. 이 영화에 열네 번째로 등장하는 단편 <뿔뿔이 흩어진 꽃에게>를 연출한 야마토 유키 감독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8분 내외의 픽션 14편과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애니메이션 한편이 117분을 가득 채우며,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의 하시모토 아이,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이시바시 시즈카, <아사코>의 가라타 에리카 등 최근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여성배우들의 다른 면면을 만날 수 있어 반갑다.
15편 중 <소녀가 소녀에게>(2017)로 장편 데뷔를 한 에다 유카 감독의 <사랑의 증발>, 히가시 가나에 감독의 <아웃 오브 패션> 정도가 인상적이다. <사랑의 증발>은 연애에 대한 환상을
'이십일세기 소녀' 80년대 후반, 90년대생으로 이뤄진 일본 여성감독 15인의 옴니버스 단편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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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주도로 자녀를 포함한 일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를 두고 ‘동반 자살’이라 할 수 있을까. 자녀가 미성년일 경우 특히 부모의 결정에 의해 생명권이 박탈된다고 보고 이를 ‘자녀 살해 후 자살’로 불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나를 구하지 마세요>를 보고 있으면 이처럼 계발된 사회윤리적 의식이 잠시 무색하게 느껴진다. 정연경 감독의 영화는 누가 누구를 죽이고, 누가 누구에 의해 죽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라는 제목 뒤에는 영화가 숨겨놓은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는. 이 영화는 주인공 선유(조서연)가 그 대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12살 선유를 휘청이게 하는 최초의 트라우마로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빚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날의 기억, 소녀는 그곳에 붙잡혀 있다. 들것에 실린 아빠와 울부짖는 엄마를 지켜보던
'나를 구하지 마세요' 충무로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정연경 감독의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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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남(황정민)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딸이 걱정이다. 하지만 곧 딸을 잠시 떠나야 한다. 인남은 딸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정작 걱정이 많은 건 자신이다. 그래서 인남은 아이에게 자신의 마술을 선보이고, 딸 유민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마술사가 마술을 하고 관객이 그것에 반응하는 이 장면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이 영화의 특정 장면을 보고 반응하고야 마는 관객의 모습이 유민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진짜 마술은 바로 영화를 본 관객 중 백이면 백 언급하게 되는 ‘스톱모션’ 기법인데, 그런 의미에서 레이(이정재) 역시 인남과 같은 마술사다.
두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 그리고…
스톱모션을 마술로, 레이를 마술사로 느끼게 되는 것의 원인이, 물론 먼 옛날 <달세계 여행>(1902)을 통해 스톱모션을 선보인 조르주 멜리에스가 마술사였던 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대신 스톱모션과 인남의 마술의 공통점에서 이유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진짜 마지막’을 부르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