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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휘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코믹한 캐릭터와 달리 너무 진지한 모습에 놀랐다고들 한다. 정확히는, 그런 반응이 수년간 이어진 까닭에 이제는 ‘예상한 것과 이미지가 많이 다른 배우’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가 <국도극장>으로 관객을 만났을 때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법고시 장수생 기태가 원치 않게 고향에 내려오면서 얻은 직장, ‘국도극장’을 배경으로 소소한 일상을 느리게 밟아가는 이 작품은 이동휘의 심드렁한 무표정이 곧 영화의 룩을 완성한다. 이동휘는 6개월 넘게 일을 쉬고 있던 시절, 먼저 시나리오를 받은 동료 배우가 이 작품을 못하게 되자 자신이 직접 감독을 만나보고 싶다고 청하며 적극적으로 쟁취했다고 고백했다.
-<국도극장>에 욕심을 많이 냈다고 들었다. 왜 그렇게 시나리오에 끌렸나.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고 화려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들도 많지만, 그냥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도 늘 궁금하고 내가 좋
[액터] '국도극장' 이동휘 - 새로운 얼굴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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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받던 날, 위 수면내시경 검사를 하기 위해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손등에 진정제 주삿바늘을 꽂으며 설명을 했다. 바로 앞에 내시경 호스가 보였다. 저게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는구나. 검은 색깔부터가 두렵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데 이왕이면 초록색이나 딸기셰이크 같은 분홍색으로 만들 순 없을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어나세요” 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빡 잠이 든 것 같은데 벌써 끝나다니. 아니 내가 진짜 검사를 받긴 했었나? 기억이 없으니, 마치 시간을 건너뛴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수면내시경은 사실 잠든 상태가 아니라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따라서 검사 중에 말을 걸면 대답도 한다. 의식이 깨어 있음에도 약물에 의해 진정된 상태기 때문에 이물질이 들어와도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다만 약물의 특성상 망각이라는 부작용 덕분에 당사자는 ‘쭉 잤다’고 느낄 뿐, 검사 당시를 기억 못한다. 그래서 통상 수면내시경으로 부른다
기억하지 않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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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한동안 영화가 없어 난감했는데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도처에 영화가 있다. 영화의 물리적 조건은 점차 고립되고 단절되어 끝내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양한 실천이 이어지고 있다.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나의 실천에 대해 고백해보았다.
잇고, 흐르고, 새로 쓰이다
다시, 코로나19 시대의 이야기다. 질릴 법도 하지만 이건 이야기책의 문을 여는 ‘옛날 옛적…’이란 문구처럼 당분간 주변을 배회할 것 같다. 변화는 우리의 인지 바깥에서 사고처럼 닥쳐왔고, 사람들은 이제야 당도한 미래에 간신히 적응 중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시대의 스크린 문화, 미학으로서의 영화는 시대의 분기점에서 생존을 위한 여러 가능성을 두드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당면한 근본적인 변화는 바로 공간의 제약이다. 촬영, 상영 등 물질적 조건 이외에도 넓게는 상상력의 창조, 미세하게는 카메라의 위치까지 영화는 공간을 점유하며 운동한다. 하지만 이 운동 과정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당
단절의 시대를 잇는 이야기들, <반쪽의 이야기>가 알려준 ‘내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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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아파트가 돈을 더 잘 번다.” 열심히 일해서 아무리 연봉을 올려도 부동산 인상폭을 따라갈 수 없는 현실을 자조하는 이 말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노동자가 일해서 얻는 소득이 자본가가 부동산, 금융상품 등의 자본으로 앉아서 버는 수익보다 낮은 것이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이 격차가 쌓이고 쌓여 자본주의의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것이 <21세기 자본>의 설명이다. 토마 피케티가 대단한 것은 명제를 통계자료와 그래프를 통해 명료하게 설득하고, 경제학자로서는 다소 급진적일 수 있는 주장과 대안까지 제시한다는 점이다. 그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불평등의 깊숙한 근원으로 파고든다. 삼원사회와 노예제도가 역사 속에서 포스트식민사회를 거쳐 하이퍼자본주의사회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마치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처럼 보였던 지금의 체제가 실은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작동되었음을 데이터와 그래프로 증명해낸
씨네21 추천도서 <자본과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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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작가가 창가 앞에 앉아 보드라운 고양이의 털을 어루만진다. 고양이에게서는 ‘고롱고롱’ 기분 좋은 목울림 소리가 난다. 도리스 레싱이 쓴 고양이에 관한 산문집을 손에 들었을 때 나는 막연히 이런 평화로운 풍경을 상상했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하여>는 ‘작가’와 ‘고양이’라는 총합이 가져오는 이미지를 산산조각내는 살풍경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아프리카 농가에서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던 작가에게 고양이는 집 안팎에 늘 있는 존재였다. 야생에서 불임수술을 받지 않은 고양이들은 순식간에 불어나기 때문에 개체수 관리가 필요했고 집에서 그 역할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새끼 고양이를 물에 빠뜨려 개체수를 조정하고, 외딴 농가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야생 뱀을 총으로 쏘는 등 자연이 부과하는 의무를 감당하던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고양이를 없애야 하는 미션이 아버지에게 떨어진다. 결국 고양이를 한방에 몰아넣고 무자비하게 엽총을 발사한 사건을 작가는 ‘고양이 홀로코스트 사건’
씨네21 추천도서 <고양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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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절판되었다가 다시 나오게 된 문학과지성사의 고전 시리즈 스펙트럼이 2차분을 선보였다. 포켓북처럼 작고 가벼우나 밀도가 높은 시리즈다. 우선 더운 날씨에 어울릴 E. T. A. 호프만의 오싹한 단편집 <모래 사나이>가 있다. 단편 <모래 사나이>에는 잠을 안 자는 아이들의 눈에 모래를 뿌려 눈알을 빼앗아가는 모래 사나이라는 괴물이 등장한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모래 사나이의 정체에 집착하고, 눈을 절대 깜빡이지 않는 아름답고 기묘한 여성과 조우하여 점점 광기 속으로 빠져든다. 비슷하게, <적막한 집>은 어느 사람 없는 집 창문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을 목격하고 작은 거울을 사서 그 여인을 몰래 관찰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연금술, 자동인형, 정신착란, 몽유병 등 과거 서구의 정신의학적 탐구와 관련된 소재들이 예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
씨네21 추천도서 <문학과지성사 스펙트럼 시리즈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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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학교에는 ‘순결캔디’를 나눠주는 사람이 종종 나타났었다. 대체 학생이 왜 사탕을 먹으며 순결을 맹세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보니 어느 종교의 성교육 행사였다는데, 아무튼 그런 시절이 있었다. 2020년이 된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을 읽어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학교 성교육을 맡아온 보건교사이고, 그래서 현장의 상황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어른들이 학생들의 성 자체를 여전히 쉬쉬하는 가운데,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낀다. 한편 남자는 좀 폭력적이어도 된다는 관대한 분위기가 여전하니 남학생들의 괴롭힘은 진화하여 여성 교사의 치마 속을 거울로 보거나 사진을 찍고 단톡방에 여학생들 사진을 올리며 성희롱을 한다. 자신이 폭력을 저지른다는 사실 자체에 무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에 대한 호기심을 막을 수도 없는 상황. 이성 교제 수업에서 관계를 진전할 때 서로
씨네21 추천도서 <성 인권으로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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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의 시작은 현재 시점,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 이진오의 상황에서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할아버지 이백만의 이야기로 시간이 쏜살같이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 삼대라면 같은 성을 공유하기 거의 불가능한 한국에서,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이백만의 증손 이진오까지, 이씨 집안 남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려낸 이 소설이 왜 철도원 삼대를 내세웠을까. 그 연원에는 식민지 시대에 철도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주는 문장들이 있다. “철도가 놓이면서 강제로 땅을 빼앗기고, 부역에 끌려나와 고생하고, 가족이나 친척이 살해당한 조선 백성들은 전국 곳곳에서 열차 운행과 철도 공사를 끈질기게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맘때 국권을 빼앗기고 나라가 망하여 일어나게 된 의병들도 철도를 주요 공격의 목표로 삼곤 했다.” 하지만 철도원은 의병이 아니다. 철도원은 오히려 현실에 순응해 그 안에서 길을 찾고자 했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열심과
씨네21 추천도서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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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파악하고 언어화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일 것이다. 단정짓고 구분하는 언어가 아니라 서로 맞잡은 손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혹은 그 손을 언제 놓아버렸는지를 직시하는 언어. <씨네21>이 이달에 소개하는 책은 그러한 사유를 제공하는 책들이다. <철도원 삼대> <자본과 이데올로기> <고양이에 대하여> <성 인권으로 한 걸음>, ‘스펙트럼 시리즈’(<모자> <첫사랑> <꿈의 노벨레> <모래 사나이> <실비/오렐리아>)와 함께 한발 더 앞서가고 한번 더 숙고하는 힘을 얻으시라.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6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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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들에게 이런 암흑의 시대가 또 있을까? 이탈리아 관객이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찾은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또 한번의 계절이 바뀔 무렵 어둠의 세월에 한줄기 광명 같은 소식이 희망처럼 다가왔다.
이탈리아 정부는 6월 15일부터 영화관을 순차적으로 연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이에 영화관들은 관객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발표한 새 안전법에 따르면 극장은 착한 거리두기는 물론 상영 전후 소독 실시 등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새 안전법을 따르기에 작은 상영관들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작은 상영관들은 계속해서 휴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6월 15일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대부분 할리우드영화들이다. 개봉이 예정된 영화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소리보다 빠른 초고속 고슴도치 히어로 소닉의 이야기 <수퍼 소닉>, 토이 어드벤처 애니메이션 <플레이모빌: 더 무비>,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디즈니 영화 <말레피센트2&g
[로마] 6월 15일부터 영화관 영업 재개… 할리우드영화와 이탈리아영화도 줄줄이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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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이 ‘악마의 편집’을 위해 슬릭을 섭외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서바이벌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 때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를 연출하며 얻은 부정적 이미지를 만회하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여성 시청자들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GOOD GIRL: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이하 <굿 걸>)의 초반 서사는 여성혐오가 심한 한국 힙합 신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분명히 밝혀온 슬릭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물론 ‘방송국 놈들’은 매운 양념을 친다. 화려하게 스타일링한 여성 뮤지션들 사이에서 수수한 차림, 화장기 없는 얼굴의 슬릭은 스탭으로 오해받을 만큼 이질적인 존재고 소수자 인권과 비거니즘에 관한 신념을 진지하게 토로하는 그는 ‘예능’에 맞지 않는 인물처럼 보인다. 슬릭이 “어려울 수도 있고 제가 하는 말이 진지할 수도 있고 무거울 수도 있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며 <Here I Go>를 부르고 나자
Mnet 'GOOD GIRL: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 슬릭의 용기가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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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을 이루며 사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신기하다.” 배우 전미도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스포트라이트의 순간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그가 연기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채송화 신경외과 교수는 맡은 수술과 업무를 완벽히 해내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침착하면서도 따뜻한 면모를 지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익준 교수(조정석)와 레지던트 안치홍 선생(김준한)과의 삼각관계 역시 연일 화제에 올랐다. 배우 전미도는 “송화가 너무 완벽해서 걱정이 많았다” 며 후일담을 전했지만, 채송화를 넘어 배우 전미도에게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애정과 관심은 그가 송화를 제대로 표현해냈음을 증명한다. 일찍부터 공연계에서 이름을 알리며 더 뮤지컬 어워즈, 한국 뮤지컬 어워즈에서 세번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겠다는 그에게선 겸손이란 단어로 뭉뚱그릴 수 없는 깊은 힘이 느껴졌다.
-뮤지컬계에서 이미 입지를 탄탄히 다진 배우인데, 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전미도 - 어쩌면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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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꿈꾸는 집>(2013), <영원한 거주자>(2015) 등 분단과 경계를 주제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김량 감독이 이번엔 실향민 1세대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남도 단천군 여해진의 바닷가 마을. 아버지는 한국전쟁 이후 가족을 고향에 두고 홀로 남으로 내려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전쟁의 상처와 이산의 아픔을 가슴속에 꽁꽁 묻어두고 혼자서 슬픔을 감내하며 살아온 아버지는 점점 웃음을 잃어갔고, 그런 아버지가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감독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질문을 던져본다. 그리고 아버지와 비슷한 처지의 실향민들, 분단으로 ‘가족권’을 박탈당한 실향민들을 만난다. “상상조차 금지되었던 공간”을 고향으로 둔 이들은 모두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귀소본능”과도 같은 것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실향민 2세대와 3세대의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아버지의 세대를 이해하는 것이 벅찬 자식 제대는 김량 감독이 그
'바다로 가자' 실향민 1세대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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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런던이 2012 올림픽 개최지 후보에 오르자 부동산 업자들의 촉각이 곤두선다. 지역 범죄조직 보스 클리포드(티모시 스폴) 또한 동부 런던 땅을 불법 매입해 배를 불리고, 그 과정에서 리암(샘 클라플린)의 아버지를 무참히 살해한다. 이를 모른 채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믿는 리암은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다 무장강도죄로 9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다. 시간이 흘러 클리포드는 사회공헌에 이바지하는 사업가로 변신해 리암을 만나고, 전직 복서인 그의 재능을 살려 자선 시합에 참가할 수 있게 해준다. 이에 리암은 새 삶을 살아보려 하나 동생 숀(조 클라플린)이 범죄에 휘말리자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데, 사건에 클리포드 일당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쌍방의 추적이 시작된다. 한편 경찰 간부들이 클리포드를 눈감아주며 이익을 챙기고 있음을 알게 된 형사 닐(노엘 클라크)도 이들의 뒤를 쫓는다.
<와일드 시티>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팽배했던 부동산 비리와 정경유착 정황
'와일드 시티'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팽배했던 부동산 비리와 정경유착 정황으로부터 구상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