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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수사팀을 이끌게 된 카트리네는 경찰을 떠난 해리 홀레에게 조언을 구했다. “살인범을 잡아.”답은 짧았다. 팀의 신뢰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사건을 해결한다고 저절로 풀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같은 질문을 하자 이번에도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다 풀려.” 카트리네는 질문을 바꾼다. “다요? 그럼 선배한테는 정확히 어떤 게 풀렸는데요? 순전히 사적인 면에서는요?” 해리의 답은, “아무것도. 하지만 방금 자네가 리더십에 관해 물었잖아”. 이 짧은 문답은 <목마름>의 주인공 해리 홀레를 잘 보여준다. 경찰(이었던) 해리 홀레. 연쇄 살인범을 잡는 데는 끝내주고 오로지 그 능력으로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지만 사적인 부분에서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남자. 그랬던 해리 홀레가 달라졌다. 그는 이제 오랜 연인 라켈과 결혼해 안정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경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순조롭다. 그런데 오슬로에서 목에 이상한 상처를 입고 죽은 사람들이
씨네21 추천도서 <목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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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하는 명절은 한국 사회가 맞이한 초유의 경험이다.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인 이들에게 독서를 권한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나 자신을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멋진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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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떤 순간이 선명하게 남으리라 예감한 적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강렬한 예감도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자신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예감의 바닥에 가라앉은 감정을 해명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새삼스러운 권태나 찰나의 충실감으로 인한 각성이 예감의 실체구나 싶을 때도 있고, 누군가의 뒷모습을 눈에 새겨넣는 그때, 상대를 훼손하고 관계를 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곱씹기도 한다.
‘스물아홉 경계에 선 클래식 음악학도들’의 이야기.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면서 예감으로 동요하고 감정 안쪽을 살피는 인물들에 공명한다. 이들에게 음악은 말을 대신하는 언어가 되고 또 짝사랑의 대상이기도 하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4수 끝에 바이올린 전공으로 다시 입학해 졸업을 앞둔 채송아(박은빈)는 연주가로 살기엔 모자란 자신의 재능에 초라함을 느낀다. 송아가 무대 뒤편에서 지켜보던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에겐 ‘한국인 최초 쇼팽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위로가 필요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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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의 영화 <경주>(2014)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최현(박해일)의 ‘자살’을 목격했다. 그런데 영화를 본 주변에 물으니 아무도 그런 장면을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수풀에 가려진 물결의 소리 너머로, 마른 강물로 뛰어드는 최현의 뒷모습을 분명 느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번에 <후쿠오카>(2019)를 보고 나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같이 본 친구에게 “소담 역할은 육체가 있는 귀신이야”라고 말했는데,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장률의 최근작을 말하기 위해서 ‘모호함’ 자체를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있어 <후쿠오카>는 추상적인 내용을,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영화였다.
두 남자와 이상한 여자
기묘한 에피소드가 영화에 차례로 등장한다. 첫째, 해효(권해효)가 농아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난 소담은 그를 보자마자“말할 것
장률 신작 '후쿠오카'가 추상적인 내용을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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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영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회자되고, 다른 영화는 그렇지 않을까. <하워즈 엔드>를 보면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중간의 기원
코로나19로 개봉작이 줄면서 재개봉작과 뒤늦은 개봉작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몇몇 작품의 개봉은 관객의 지지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톰보이>(2011)와 <워터 릴리스>(2007)의 뒤늦은 개봉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이후 감독을 향한 관심을 반영한다. 때로는 감독이나 배우가, 때로는 계절이나 영화를 둘러싼 상황이 특정 작품을 소환하는 원인이 되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하워즈 엔드>(1992)의 재개봉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각색자인 제임스 아이보리의 전작으로 주목이 이어진 결과다. 앞서 개봉한 <모리스>(1987)가 동성의 사랑을 다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분명한 연결점
'하워즈 엔드', 시대를 뛰어넘는 영화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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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 저작권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저작물’의 정의다. 창작자가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에 몰두하는 동안 법과 계약의 문제는 전문가가 처리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플랫폼의 다양화, 2차 창작물의 대두 등을 통해 저작권 분쟁이 더욱 첨예한 시대가 되었고, 특히 시나리오작가들이 처한 고질적인 문제인 크레딧 표기와 관련해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창작자가 스스로 더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알수록 자신은 물론 동료 창작자들의 권익 증진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이제 적극적인 배움의 의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 내 공정법률라운지가 업계로 막 첫걸음을 뗀 시나리오작가들의 집합소, S#1에서 저작권 강의를 열었다.
지난 7월18일 오후, 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시나리오작가 양성소 S#1(이하 씬원) 강의실은 저작권 개념을 공부하기 위한 신진
영화진흥위원회 공정법률라운지 특강 ‘영화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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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에도 영화의 섬, 베니스에서의 영화 축제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이하 베니스영화제)는 9월 2일 예년과 동일하게 10일 간 영화 축제의 장을 열고 오프라인으로 행사를 치렀다. 코로나19로 인해 초청작 수는 지난해에 비해 소폭 감소했고, 레드카펫 위 영화인들은 마스크를 낀 채였지만 현대영화들의 최전선을 분명하게 살펴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올해 베니스영화제는 여성 영화인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여성감독들의 경쟁작 진출이 크게 늘었으며,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중국계 여성감독 클로이 자오의 <유목민의 땅>에 돌아갔다. 홍콩 여성 영화인 허안화 감독과 배우 틸다 스윈턴이 공로상인 명예황금사자상을 받았으며, 심사위원장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맡았다. 베니스영화제는 철저한 방역 속에서 지난 9월 12일 안전하게 막을 내렸다. 영화제에 대한 소식과 함께 비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베니스의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 비경쟁부문 초청작 '낙원의 밤'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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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재 검사 지금 살아 있어요?” 배우 이준혁을 만나자마자 묻고 싶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 양측 전부 날을 세운 상황에서, 사건의 키를 쥔 서동재 검사의 행방이 몇회째 묘연하기 때문이다. 그가 미움받던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1을 상기해보면 ‘우리 동재’라며 모두가 서동재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이 순간이 무척이나 생경하게 다가온다. 시즌2에 들어서며 배우 이준혁은 더 능글맞고 민첩해진 서동재의 ‘뻔뻔함’에 집중했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후, 이곳저곳을 살피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서동재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정부지검 서동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배우 이준혁이 가장 공을 들인 시즌2 첫 등장 신의 첫 대사 이후, 그의 간절함과 뻔뻔함은 결국 뒤돌아서 있던 시청자까지 돌려세웠다. ‘우리 동재’에게 모두의 이목이 쏠린 지금, 배우 이준혁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 <비밀의 숲2> 본방 사수는 하고 있나? 모
[액터] <비밀의 숲2> 이준혁을 만나다, '더 능글맞게, 더 뻔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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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찾아온 텐텐마을의 보물을 찾기 위해 엉덩이 모양의 얼굴을 한 엉덩이 탐정(김은아)과 그의 조수 브라운(소연)이 무당벌레 유적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푼다. 개성 있는 그림체와 성격을 가진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웃음을 주는 것은 물론 퀴즈, 미로, 숨은그림찾기 등의 재밋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제작사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인기 시리즈 <엉덩이 탐정>의 두 번째 극장판.
'극장판 엉덩이 탐정: 텐텐마을의 수수께끼' 일본 제작사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인기 시리즈 <엉덩이 탐정>의 두 번째 극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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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전설이 대결을 벌인다. 포켓몬 극장판 최초의 3D애니메이션으로, 1998년에 개봉한 <극장판 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을 리메이크했다. 인류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뮤츠와 전설의 포켓몬 뮤가 대결을 벌이는 스토리는 원작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대신 비주얼에 특히 신경을 썼다. 포켓몬 시리즈 첫 3D인지라 연출이 다소 어색하고 낯선 감이 있지만 ‘원점이자 최고봉’ 뮤츠의 등장이 가져다주는 위엄만큼은 살아 있다.
'극장판 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 EVOLUTION' 포켓몬 극장판 최초의 3D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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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과 풍만한 양감의 작품들은 많은 관객에게 익숙할 것이다. <보테로>는 보테로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동료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관객이 그의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풍부한 색채와 유쾌함이란 작업적 특징뿐만 아니라 과장된 인체 비례를 통해 기존의 규칙들을 풍자하고, 사회의 불평등과 탄압에 예술로서 대응해온 행보 역시 확인할 수 있다.
'보테로' 관객이 보테로의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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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울적한 날엔>은 한유원 감독의 <나는 사람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 강동완 감독의 <이무기여도 괜찮아>, 김남석 감독의 <마음 울적한 날엔> 등 3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영화다. 세편 모두 현실의 벽에 부딪혀 목표가 좌절됐거나 꿈꾸던 것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20대를 보여준다. 특정 메시지나 위로를 전하려 애쓰기보다 그저 오늘과 내일을 묵묵히 살아내는 주인공들의 삶의 태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점이 인상 깊다.
'마음 울적한 날엔' 3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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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목소리만 등장하는 주인공이 이토록 강렬한 적이 있었나. 1988년 컬렉션을 시작해 2008년에 20주년 기념쇼를 마지막으로 깜짝 은퇴를 선언한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 평생 대중에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그가 차분하고 단정한 언어로 자신의 궤적을 회고한다. 보이스 내레이션과 함께 고요한 작업실의 면면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예술가의 혁신과 고독, 1970~80년대 패션쇼의 전성기를 탐미적으로 담아냈다.
'마르지엘라'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의 궤적을 회고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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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말리>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케빈 맥도널드 감독이 2003년에 만든 영화 <터칭 더 보이드>는 20대 초반의 두 친구 조 심슨(브렌던 매키)과 사이먼 예이츠(니콜라스 에런)의 시울라 그란데 서벽 등반 과정을 좇는다. 영화는 조 심슨의 수기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를 토대로 절체절명의 상황을 재연한 영상과 실제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자연의 위력과 이를 극복해나가는 인간 의지의 숭고함이 전해진다.
'터칭 더 보이드' 시울라 그란데 서벽 등반 과정을 좇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