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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탄> 제작 대한영화주식회사 / 감독 유현목 / 상영시간 107분 / 제작연도 1961년
<오발탄>은 1960년 4월 혁명 직후 제작에 들어갔다. 김성춘 조명기사와 김학성 촬영기사 그리고 유현목 감독이 의기투합한 공동 제작이었고, 스탭과 배우들 역시 앞뒤 재지 않고 무보수로 참여했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자본이 아닌 영화인이 중심이 되어 그동안 만들지 못했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로 모인 것이었다. 이때 일간지 기사들은 이러한 제작 경향을 동인제 제작이라 부르며 관심을 표했다. 영화의 원작은 1959년 10월 <현대문학>에 발표한 이범선의 동명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은 유현목은 생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절박감”을 품었고, 4·19로 정권이 몰락하자마자 제작에 착수한다. 각색은 당시 능력 있는 조감독으로 인정받던 이종기가 맡았다.
자본 논리가 우선인 상업영화 제작 현장을 떠올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모더니즘적 성찰과 장르적 실천 사이 '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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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 냅을 읽을 때면 늘 신기하다. 나와 이렇게 (안 좋은 의미에서)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신기해하리라는 생각을 하면 아득한 연결감에 즐겁기도 하고 감탄하게도 된다. 동시에 생각한다. 나는 캐럴라인 냅과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알기 때문에’ 연락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그래서 친구가 아닌 사람들보다 머나먼 사이로 지냈을테지. <명랑한 은둔자>는 캐럴라인 냅의 에세이다.
하지만 또한 많은 것들이 다르다. “나는 중상층 가정에서 자랐고, 사립 중등학교를 다녔고, 아이비리그 대학을 다녔다. 예뻤고, 인기가 좋았고, 성적이 올 에이였고, 학업 우수상을 많이 탔다.” 하지만 캐럴라인 냅은 자신에게 생기는 모든 좋은 일들이 모두 외부적 요인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우연이거나 행운이거나. “내 마음속에서 나는 흠이 있는 사람이었다.” 캐럴라인 냅은 평균보다 훨씬 뛰어난 재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명랑한 은둔자>, 벗어나기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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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절제한 비행(卑行)으로 발목이 부러진 혼혈소녀 슈안은 어머니의 아파트에 감금된다. 속절없는 억류에 따분해진 그는 무작위로 번호를 골라 장난 전화를 건다. “당신의 남편에게 문제가 있어요.” 슈안이 꾸민 스토리는 소설가 주울분에게 도달한다. 그러나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슈안이 알려준 주소지에서 울분을 맞이하는 사람은 낯선 청년이다. 이 청년은 울분을 자극하여 식어버린 창작의 열정을 부활시킨다.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전화, 성명불상의 청년은 영화의 초입에 등장했다가 울분의 백일몽으로 처리되었던 상황과 기이하게 연결된다. 그 꿈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경찰차, 도박장에서의 총격전, 사이렌 소리에 이끌린 사진가에 관한 이미지로 구성 되었다. 울분은 매너리즘에 빠진 결혼 생활과 일상에 침투한 파편적인 사건을 조합하여 소설의 스토리를 만든다. 소설의
제목은 ‘결혼실록’. 나른해진 부부 관계를 자극하는 한통의 장난 전화가 파문을 일으켜 비극적 결말로 치달아가는, 일본 추리소설풍의 이야기다. 인과
'공포분자'의 공포분자들과 종결될 수 없는 해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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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선 감희(김민희)는 잠시 골목에 멈춰 서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걸어왔던 건물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다음 장면에서 아무도 없는 극장 내부로 들어서면 그녀가 바로 직전에 보고 들었던 흑백영화의 한 장면과 음악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기묘하게도 이번엔 흑백이 아니라 컬러의 형태로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카메라는 영화를 보는 감희의 눈빛으로부터 천천히 움직여 파도가 이는 바다의 풍경이 가득 채워진 스크린을 들여다본다. 이것이 <도망친 여자>의 마지막 두 장면이다.
홍상수 영화의 결말에서 골목을 향해 걸어가는 인물들의 걸음을 포착하거나, 극장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인물의 눈짓을 담아내는 것은 그다지 낯선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감희는 그런 익숙한 몸짓들 사이를 생경하게 오가며 어느 쪽으로도 결정되지 않는 낯선 행동을 취한다. 감희는 영화를 보러 돌아온 걸까, 아니면 극장 바깥으로부터 도망친 걸까. 그녀가 보고 있는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과 다르다… '도망친 여자'가 멈추는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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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검객' 딸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심검사
[정훈이 만화] '검객' 딸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심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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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대상이 늘 시체다. 근면한 청소부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은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고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도통 말을 하지 않는 태인은 ‘소리도 없이’, 잡담도 없이 일만 하고, 업무 전 반드시 기도를 하는 창복은 신앙심이 남다르다. 피가 묻을세라 헤어캡을 쓰고 노란 우비를 입고 분홍 고무장갑을 낀 채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하던 두 사람은 어느 날 계획에 없던 유괴범 신세가 되기에 이른다. 11살 소녀 초희(문승아)를 잠시 맡아달라고 부탁한 단골 조직원이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채로 발견됐기 때문. 창복의 말처럼 “세상 떠나신 분들만 모시”던 두 사람이 업무를 잠시 바꿨다가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유아인은 대사도 없이 태인을 표현해내기 위해 삭발을 감행하고 체중을 15kg이나 늘렸으며, 유재명은 그런 태인과 대비를 이루며 말을 더 많이 내뱉는다. <소리도 없이>는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Coming soon]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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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무관중으로 열린 제72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HBO> 드라마 <왓치맨>이 11개 부문을 석권하며 최다 수상작에 올랐다
<왓치맨>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인종차별 학살 사건을 모티브로 한 범죄 스릴러물이다. <유포리아>로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젠데이아 콜먼은 1996년생으로 역대 최연소 수상자가 됐다.
론 하워드 감독이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의 전기영화를 연출한다
선양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산업의 정점에 오르기까지를 회고한 랑랑의 책 <천리길의 여행>을 바탕으로, 론 하워드 감독의 이매진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았다. 중국계 미국인 루루왕 감독은 문화혁명 등 중국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는 랑랑의 삶을 제대로 옮기지 못할 것이라고 SNS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제45회 토론토국제영화제가 9월 19일 폐막했다. 관객상은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마드랜드>가 수상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제45회 토론토국제영화제가 9월 19일 폐막했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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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뉴 커런츠 부문과 지석상 심사위원을 공개했다
아시아영화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 심사위원으로는 미라 네어 감독, 티에리 조방 스위스 프리부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설치미술가 양혜규가 위촉되었다. 아시아 영화감독들의 신작 및
화제작을 소개하는 아시아영화의 창섹션 중에서 두편의 수상작을 선정하는 지석상 심사위원으로는 배우 자오타오, 영화평론가 정성일, 몰리 수리야 감독이 위촉되었다.
나홍진 감독이 타이 호러 거장 반종 감독의 차기작 <랑종>(가제) 제작에 참여한다
노던크로스와 GDH 559가 공동 제작하고 쇼박스가 배급하는 <랑종>은 샤머니즘을 소재로 한 영화로, 제목은 타이어로 ‘영매’를 뜻한다. 나홍진 감독은 기획, 제작은 물론 시나리오 원안에도 참여한다.
장철수 감독의 신작 <복무하라>(제작 표범영화사, 배급 제이앤씨미디어그룹)에 배우 연우진, 지안이 주연으로 확정되었다
<복무하라>는 사단장 사택의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뉴 커런츠 부문과 지석상 심사위원을 공개했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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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한 카메라워크 덕분에 ‘거리의 시인’(The poet of sidewalks)으로 불렸던 촬영감독 마이클 채프먼이 현지시각 9월 20일 울혈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살. 마이클 채프먼의 배우자이자 영화감독 에이미 홀든 존스는 페이스북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소식을 알렸다. 1970년대 미국 뉴웨이브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이었던 마이클 채프먼은 카메라워크와 속도 조절을 통한 특유의 리듬을 창조해내며 최고의 촬영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택시 드라이버>(1976), <라스트 왈츠>(1978), <분노의 주먹>(1980)에서 마이클 채프먼과 함께 작업했던 마틴 스코시즈 감독 역시 <인디와이어>와 인터뷰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택시 드라이버> 이후 마이클이 ‘거리의 시인’으로 알려졌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 말이 정확한 것 같다. 마이클의 카메라를 통해 이뤄지는 영화와의 관계는 친밀하고 신비스러웠다. 훌륭한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촬영감독 마이클 채프먼 별세… 향년 84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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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발생한 코로나19로 영화제의 풍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5월, 6월 개최 예정이던 영화제들이 하반기로 연기되면서 전례 없이 많은 영화제가 9월에 동시 진행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5월 개막을 앞뒀던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이로부터 약 4개월 뒤인 9월 18~23일 개최됐으며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대면 행사를 대폭 축소하고 개·폐막식 또한 전부 무관객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마찬가지로 5월 개막 예정이던 퀴어영화제 또한 일정을 두 차례 연기한 후, 지난 9월 18일 온라인으로 행사를 개최했다. 이에 따라 OTT 플랫폼 퍼플레이를 통해 영화를 상영하고 GV 부대행사도 서울퀴어문화축제 공식 유튜브 채널로 중계하게 됐다. 인디애니페스트2020은 예년과 같이 9월에 개최됐으나 일반 관객 없이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꾸었다. 9월 17일 인디에니페스트2020과 나란히 개막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역시 야외상영 및 부대행사를 취소하고 소규모로 행사를 운영했
코로나19가 바꾼 영화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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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 전주국제영화제가 폐막했다. 무려 114일 만의 폐막 선언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세계 영화제 역사상 앞으로도 없을 가장 긴 영화제가 아니었나 싶다”라는 이준동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한국 관객은 봄에 시작해 가을에 끝나는 영화제를 올해 처음으로 경험하게 됐다.
준비한 프로그램을 5개월간 온라인과 서울, 전주의 다양한 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선보인 전주국제영화제의 사례는 오랜 기간에 걸쳐 관객의 일상 속으로 찾아가는 영화 축제였다는 점에서 영화제 운영의 역사에 의미심장한 선례로 남을듯하다. ‘공동체가 기념하는 특별한 날 또는 기간’이라는 페스티벌(festival)의 정의처럼, 그동안 전세계 각국의 영화제(film festival)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한정된 기간 동안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은 ‘한정된 기간’과 ‘특별한 영화적 체험’이라는 영화제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일시적으로 많
[장영엽 편집장] 그럼에도 부산의 가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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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이 <본명선언> 무단 도용 논란에 대한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입장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지난 9월 21일 감독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감독조합은 양영희 감독이 부산영화제에 요구한 <본명선언> 운파상 취소 건에 관해 부산영화제로부터 특별자문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재심 과정에 참여한 단체로서 심의의 시작부터 결과 발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홍형숙 감독의 <본명선언>이 양영희 감독의 <흔들리는 마음>의 창작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단하고, 다큐포럼2020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감독조합이 지지를 선언한 다큐포럼2020은 지난 7월 부산영화제의 입장에 대해 성명서를 낸 바 있다. 당시 다큐멘터리 저작권과 창작 윤리를 함께 고민하는 세미나를 열어 부산영화제에 “<본명선언>의 표절 여부를 밝히고, <
한국영화감독조합, '본명선언' 무단 도용 논란과 관련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입장에 유감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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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즐거운 일기> Caro Diario
감독 난니 모레티 / 상영시간 100분 / 제작연도 1994년
‘나는 자급자족한다.’ 1976년 스물세살의 청년 난니 모레티가 발표한 첫 번째 장편영화의 제목이다. 그로부터 21년 후, 모레티는 정말로 완벽하게 자급자족하는 영화인이 된다. 제작에서부터 각본, 연출, 배급,상영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전 과정을 스스로 해결하는 유일무이한 1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그사이 그는 무명감독에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했고, 자신의 주도하에 영화 제작사와 극장, 배급사를 하나씩 만들어갔다. 강한 의지와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안될 것 같은 이 꿈같은 과업의 장본인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후회하는 소심한 남성이다. 1994년에 발표한 <나의 즐거운 일기>는 독보적인 영화인이자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모레티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그의 영화 여정의 중요한 변화를 알리는 작품 이기도 하
[김호영의 네오클래식] 난니 모레티의 '나의 즐거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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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은 사인할 때 원래의 밝을 랑(朗) 대신 늑대 랑(狼)을 쓴다.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인 엑토플라즘을 볼 수 있고 퇴치할 수 있는 히어로 이름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필명 같은 본명을 가진 소설가 정세랑은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작가의 말’을 이렇게 시작한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주인공 안은영의 이름과 별명(아는 형)은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의 마케팅팀 대학생 인턴에게 빌렸다. 한문 선생 홍인표는 처음 이 이야기를 단편으로 썼을 때 자문해준 친한 선배 홍승표의 동생 이름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생 혜현은 바로 전 책의 표지를 그려준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으로, 정말 얼굴이 투명해 작중 인물의 별명처럼 젤리 피시(해파리) 같은 면이 있다. 등장인물과 이름 주인과의 매칭이 이렇게 몇번 더 이어진다. 정세랑이 살아온 세계가 <보건교사 안은영>이라
정세랑 작가가 말하는 '보건교사 안은영', 원작 소설부터 넷플릭스 시리즈 대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