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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본적인 모멸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임신한 엄마의 배를 누군가 허락 없이 만지던 때부터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엄마의 결혼식에서 엄마의 아버지가 아빠에게 엄마를 ‘넘겨줄’ 때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할머니 집에 찾아가면 엄마와 큰엄마들이 허리가 부러지게 일하고는 작은 상에서 따로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또래들 사이에 어떤 여자애가 ‘걸레’라는 소문이 돌고, 옆 학교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 카메라가 발견되고, 내 친구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길에서 할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성추행을 당했을 때도 나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언니도, 나도, 나의 친구도, 나의 친구의 친구도, 삶의 어떤 순간에는 분명 인간조차도 되지 못했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말처럼 사회 속에서의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인간이 타고난 본질적 특성이 아니라 서로의 수행과 연기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면, 대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지금 여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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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장기화에 따라 초반부터 우려됐던 미국 영화산업 내의 경제적 손실이 연쇄반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11월로 개봉이 연기됐을 때만 해도 상반기는 힘들겠지만 하반기가 되면 블록버스터들이 개봉해 극장을 비롯한 영화산업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007 노 타임 투 다이>는 2021년 4월로, <블랙 위도우>는 2021년 10월로 각각 개봉을 연기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개봉 연기가 발표된 지난 10월 5일, 미국, 영국, 유럽에 리갈 시네마 극장 787개(미국 내 536개)를 보유한 시네월드 체인은 미국과 영국 내 리갈시네마 전 지점의 임시 폐업을 발표했다. 시네월드의 무키 그레이딩거 CEO는 팬데믹이 완화되어도 정상화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몰라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영화관이 영업을 다시 시작할 때의 손실이 폐업할 때보다 클 것
[LA] 10월 23일부터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들의 극장 개봉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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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와 허기가 묘하게 섞인 얼굴. 인세를 초월한 삶을 살고, 초월하지 못한 욕망을 말할 것 같은 표정의 배우 이동욱이 저승사자에 이어, 이번엔 천년 묵은 구미호가 되었다. 사랑했던 인간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막아섰던 구미호 이연(이동욱)은 금기를 범한 대가로 백두대간을 관장하던 산신의 지위를 잃고 저승 공무원으로 600년째 근무 중이다. 연인의 환생을 기다리면서. 설화 속 기묘한 동물과 오랫동안 이어져온 미신을 현대의 도시 괴담과 접목한 판타지 드라마. tvN <구미호뎐>의 세계에선 우렁각시가 도심에 한식당을 열고, 삼도천도 현대화되어 ‘내세 출입국 관리사무소’로 운영된다. 이연 역시 문명을 한껏 누리는 신식 구미호로 살아가지만, 은혜나 원한을 반드시 대갚음한다는 전설 속 여우의 속성은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고지순한 구미호의 사랑도 일부일처제인 여우의 습성을 따른다.
이미 결정된 운명. 환생한 연인 역할도 수동적인 대상에 머무르기 쉬운데 로맨스 안팎으로 굳건하게 개성을
'구미호뎐', 저승 공무원으로 600년째 근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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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조랑말이 스크린에 다시 나타났다. <마이 리틀 포니: 레인보우 로드 트립>은 1980년대 인기 TV 애니메이션 <마이 리틀 포니>의 탄생 37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레인보우 대시와 포니 친구들은 레인보우 축제에 초대받는다. 그런데 레인보우 축제가 열리는 무지개 끝 마을은 무지갯빛이 온데간데없고, 흑백만 남았다. 써니 시장은 마을이 신비한 마법에 걸려 빛을 잃었다고 말하고, 대시와 포니 친구들은 마을의 색깔과 무지개를 되돌려놓기 위해 마법을 푸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무리 어려운 과제라도 용감하게 도전하고,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부모 관객에게도 익숙한 만화 캐릭터라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서 즐길 만하다.
'마이 리틀 포니: 레인보우 로드 트립' 1980년대 인기 TV 애니메이션 <마이 리틀 포니>의 탄생 37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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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네 남녀가 있다. 한때 카네기홀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까지 했던 천재 소녀 아야(마쓰오카 마유)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잠적했다 7년 만에 돌아온다. 악기사에서 일하는 아카시(마쓰자카 도리)가 연령 제한을 겨우 통과하고 콩쿠르에 참여하자 방송국은 ‘생활인의 음악’을 보여주기 위해 현장을 취재한다. 실력도 외모도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마사루(모리사키 윈)는 10년 만에 만난 아야가 반갑고, 파격적인 연주법으로 심사위원들의 찬반 의견이 갈리는 자유로운 소년 진(스즈카 오지)이 합류한다.
서로의 음악관에 영향을 받으며 한뼘씩 성장하는 청춘들의 풍경이 피아노 소리를 공감각으로 채집한 영상에 잘 이식돼 있다. 온다 리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의 이시카와 게이 감독의 신작.
'꿀벌과 천둥'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의 이시카와 게이 감독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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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금지 조치로 인해 제작 30여년 만에 개봉한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한국영상자료원의 공식 상영을 요청받으면서 다시 빛을 본 두 작품,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1987)와 장편 <황무지>(1988)가 연작 형태로 엮여 새롭게 태어났다. <칸트씨의 발표회>는 사진작가인 주인공이 칸트라는 이름의 행방불명자를 추적하면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었던 남자의 슬픔을 헤아리는 과정을 담는다.
<황무지 5월의 고해>는 광주 진압 중 어린 소녀를 살해한 공수부대원의 양심선언을 따라간다. <세계영화기행>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등 방송다큐멘터리와 자전적 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딜쿠샤>(2016)로 주목받은 김태영 감독의 영화로, 그의 표현대로 “전자는 피해자의 시점을, 후자는 가해자의 시점을 담고 있기에” 짝을 이뤄서 볼 때 그 의미가 남다르다.
'황무지 5월의 고해' 자전적 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딜쿠샤>로 주목받은 김태영 감독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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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수감 생활을 한 다니엘(제라드 메이란)은 출소 직전 한통의 편지를 받는다. 전 부인 실비(아리안 아스카리드)가 보낸 것으로 딸 마틸다가 손녀를 낳았다는 소식이다. 출소 이후, 다니엘은 가족들과 재회하고 손녀인 글로리아를 마주하는데 그사이 가족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실비는 리차드와 재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좀처럼 달라지지 않은 것은 이들의 고단한 삶이었다. 글로리아의 아빠인 니콜라스가 손을 다쳐 일자리를 잃으면서 가족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다니엘은 이들을 돕기 위해 글로리아를 돌보기 시작한다.
<글로리아를 위하여>는 긴 수감 생활을 마친 다니엘이 가족과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도입부에서 글로리아의 탄생과 다니엘의 출소를 교차시키면서 이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암시한다. 영화는 가족들의 일상, 특히 일터에서의 모습을 그리며 직접적이지 않지만 프랑스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사회 경제적 문제를 여실히 담아낸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글로리아를 위하여' 긴 수감 생활을 마친 다니엘이 가족과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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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은 남편과 사별한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시아버지(한흥만)를 모시고 산다. 그의 딸 태의를 포함해 남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는 며느리로서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 정확한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먼 친척의 결혼식을 일일이 챙기는 것도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열심히 경조사를 챙기면 태의가 결혼할 때 준 만큼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하지만 태의는 어릴 때부터 시아버지를 부양하느라 자신을 희생한 미경을 보면서 결혼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미경과 태의에게 따로 살겠다고 선언한다.
변화는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웰컴 투 X-월드>는 오랫동안 시집살이를 했던 미경이 딸과 함께 독립하는 과정을 그려낸 다큐멘터리다. 독립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마트에서 일을 하며 모아둔 돈으로 딸과 함께 집을 구하지만 수중에 있는 1억원으로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혼자 남게 될 시아버지도 걱정이다. 자신보다 먼저 집을 나간 시어머니를 새
'웰컴 투 X-월드' 오랫동안 시집살이를 했던 미경이 딸과 함께 독립하는 과정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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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는, 새로운 클래식의 등장이다. <마틴 에덴>은 로베르토 로셀리니, 베르나르도 베루톨루치 등 이탈리아 영화의 정수를 환기하는 동시에 확장을 꿈꾼다. 정규교육이라곤 받은 적 없은 선박 노동자 마틴(루카 마리넬리)은 어느 날 항구에서 상류층 자제를 구해주면서 그의 여동생 엘레나(제시카 크레시)와 사랑에 빠진다. 엘레나와 교류하며 자신의 무지에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한 마틴은 어느덧 학구열을 불태우며 자기 안의 작가적 소명을 따라간다.
극심한 가난과 함께 등단에 도전하는 주인공의 긴 세월이 20세기 초반의 격동과 비스듬히 동행하는 사이,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부딪히고 파시즘의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운다. 미국 작가 잭 런던이 1909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감독 피에트로 마르첼로가 미국 오클랜드의 이야기를 이탈리아 나폴리로 옮겼다.
20세기 초를 그리되 1970~80년대까지 흡수한 시대 초월적인 미
'마틴 에덴' 역사적인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는, 새로운 클래식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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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우미화)와 예원(이연)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동성 커플이다.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하는 예원과 달리 은수는 타인 앞에선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은수는 어느 날 교통사고로 인해 걸을 수 없게 되고, 동승했던 언니 은혜가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남은 조카 수민(김보민)과 생활하게 된다. 크고 작은 마찰을 빚은 끝에 은수와 예원, 수민은 서로의 빈자리를 단단히 채워주는 관계로 거듭난다.
세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고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등 소소한 기쁨을 누리며 현재와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재의 법 체계에서는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예원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셋이 함께 상황을 헤쳐나가길 바라고, 은수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담쟁이>는 한제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초청작이다. 영화는 은수와 예원, 수민을 통해 관객이 동성 커플에 대한 현 사회의 제도적 한계를 목
'담쟁이' 한제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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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카드회사의 하청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 중인 고등학생 준(윤찬영)은 채권 추심 업무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콜’을 받아 회유와 협박을 반복해야 하는 이곳은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통제받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고시원과 콜센터를 오가는 준의 유일한 낙은 사진을 찍는것이다. 언젠가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희망을 가슴 한구석에 품은 채 준은 애써 웃는 얼굴로 출근한다. 옥상에서 준과 우연히 마주친 콜센터의 센터장 세연(김호정)은 그런 준에게 몇 마디 조언을 건넨다. 그러나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은 세연도 마찬가지다. 본사의 실적 압박과 갖은 횡포로 세연은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심정으로 살고 있다. 인턴을 병행하며 취업 준비 중인 딸 미래(정하담)도 세연의 걱정거리다. 어느 저녁, 딸 미래와 다투던 세연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직접 연체금을 받으러 간 곳에서 울먹이며 전화한 준에게 세연은 모진 말을 쏟아낸다.
'젊은이의 양지' 비극적으로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우리 사회의 참혹한 단면 속에서 그려왔던 신수원 감독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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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만 구원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실제로도 일과 사랑의 균형을 중요시해 예원에게 몰입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는 이연 배우. 은수(우미화)와 그의 조카 수민(김보민)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고, 다리를 다친 은수를 온 힘을 다해 배려하는 예원의 행동이 자연스러운 데에는 전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한제이 감독이 잠시 캐스팅을 고민했을 정도로 유독 앳된 얼굴을 지닌 배우이지만, 특유의 예리한 눈매와 솔직하고 단단한 답변들이 도리어 믿음을 준다. <담쟁이>의 예원이, 그런 예원을 닮은 이연 배우가 지금, 여기에 있었다.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 <담쟁이> 출연 제안을 받았다던데.
=맞다. 그렇게 감독님과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고 시나리오를 받았다. (웃음) 답이 있는 영화는 언제나 재미가 없는데 <담쟁이>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 좋았다. “문제점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 물음에 관객이 저마다의 답을
'담쟁이' 이연 - 연기가 치유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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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담보' 영업시간도 끝났으니 담보한테 가볼까?
[정훈이 만화] '담보' 영업시간도 끝났으니 담보한테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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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K로 찍고 8K로 보는 초고화질의 연인이 <언택트>에서 이별하고 또 재회한다. 삼성전자 8K 영화로 기획된 <언택트>는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고은, 김주헌이 주연한 팬데믹 시대의 사랑 이야기다. 유학 후 귀국한 성현(김주헌)이 자가격리 중에 헤어진 여자친구 수진(김고은)의 브이로그를 보게 되면서 두 사람의 추억이 소환된다. “유례없는 비대면 시대를 처음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일하고 사랑하고 소통하고 있는지 다뤘다. 특히 IT기반 디바이스들에 대해 낙관하면서, 만나지 않아도 마음을 나눌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관점을 제안해보고 싶었다.”(김지운 감독)
이처럼 새로운 소통법을 향한 긍정적 소망이 그대로 녹아든 <언택트>에서 배우 김고은은 삼겹살 먹방, 요가 체험, 캠핑 중계에 열심인 밀레니얼 세대의 브이로거로 분해 특유의 말갛고 털털한 매력을 뽐낸다. 안타깝게 헤어졌던 상대를 조용히 지켜보는 배우 김주헌의
8K로 찍고 8K로 보는 삼성 단편영화 '언택트'의 김지운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