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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상주에 있는 아시아 최초의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이곳에는 한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크로아티아 국적의 수도사 11명이 살고 있다. “샘이 넘치는 곳으로 가는 길은 건조하고 메마르다”는 카르투시오회 회헌에 따라 수도사들은 독방에 머무르며 고요하게 기도를 이어간다.
함께 모여 식사를 준비할 때마저도 침묵을 깨서는 안되는데,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한국어 공부 시간뿐이다. “매일매일 그 비밀 안의 더 깊은 데로 가고 싶어요.” 외국인 수도사가 한국어로 더듬더듬 문장을 완성시켜 나가는 장면에서는, 정갈하고 아름다운 수행자의 마음이 전해진다. 2019년 12월에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3부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2019년 3월부터 11월까지 8개월간 봉쇄수도원의 풍경을 담았다. 작품의 결 또한 청빈하고 맑은 수도원의 삶과 닮았다.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8개월간 봉쇄수도원의 풍경을 담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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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이우영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네 가족 이야기를 그린다. 초등학교 3학년 국정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재미와 의미를 다 잡은 애니메이션을 이번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추억의 검정고무신>에는 <오덕이의 탄생 사연> <기영이의 운동화> <땡구조상의 전설> <극장구경> <벼룩전쟁> <착한가족> <팔씨름왕> 이상 7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벼룩과 빈대 잡는 이야기, 일등 상금인 황소 한 마리를 목표로 팔씨름 대회에 나가는 기영이 아빠 이야기 등 지금은 사라진 풍경을 웃으며 즐길 수 있다. 추억의 TV만화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옛날 옛적에> 등을 만든 송정율 감독의 작품이다.
'추억의 검정고무신'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옛날 옛적에> 등을 만든 송정율 감독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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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유아인·박신혜 주연의 영화 <#살아있다>로 제작된 바 있는 시나리오가 할리우드 버전으로 탄생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도시 자체가 전대미문의 통제 불능 사태에 빠진다. 애인보다는 자유로운 만남을 추구하며 혼자 아파트에서 사는 에이든(타일러 포시)은 이 팬데믹 사태에서 운 좋게 살아남지만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외로움에 잠식되어간다.
본격적인 좀비영화라기보다 소통이 사라진 현시대 청춘의 초상을 은유한 것에 가까웠던 <#살아있다>처럼, 에이든 역시 자신을 알아줬으면 하는 욕망과 희망을 버린 체념 사이의 양가적 감정에 빠진다. 다만 좀비 단역들의 연기나 한정된 공간에서 오는 서스펜스 등 전반적인 만듦새는 앞서 개봉한 한국판이 훨씬 우위를 보인다.
'얼론' 영화 <#살아있다>로 제작된 바 있는 시나리오가 할리우드 버전으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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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잃고 급작스런 무대공포증을 앓는 노년의 피아니스트 헨리(패트릭 스튜어트)에게 젊음과 지성의 절정기를 누리는 음악평론가 헬렌(케이티 홈스)이 찾아온다. 드물게 정신적 교류에 성공한 예술가와 비평가의 지적, 로맨스적 긴장을 담아내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는, 슈만과 클라라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남성 예술가-여성 뮤즈의 전형적 구도로부터 새로움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뉴욕과 스위스를 오가는 풍광 스케치와 27곡에 이르는 풍성한 클래식 사운드트랙, 패트릭 스튜어트의 완숙한 연기 등이 조화를 이뤄 시청각적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만족감을 안기는 영화다. 존재의 성찰과 예술적 치유를 논하는 거창한 테마와 달리 주제를 향한 예리한 시선의 부재가 아쉽다.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 정신적 교류에 성공한 예술가와 비평가의 지적, 로맨스적 긴장을 담아내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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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간미연)는 자신의 영혼을 탐낸다는 이유로 앞집 노부부를 살해한다. 형사 성민(최철호)은 그를 체포해 수사하다가 그가 요가학원 ‘칼리’의 수강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때 잘나갔던 패션모델 효정(이채영)은 광고 촬영 현장에서 다른 모델로 교체돼 의기소침해진다. 그는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에 정체 불명의 요가학원 칼리를 찾는다. 효정을 포함, 예쁜 얼굴을 위해 다이어트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미연(조정민) 등 수강생들은 그곳에서 이상한 일을 겪는다.
<요가학원: 죽음의 쿤달리니>는 아름다워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집착과 욕망에 대한 섬뜩함을 그린 공포영화다. 인물들이 입체적이지 않고, 서사가 자꾸 옆길로 새는 바람에 서스펜스가 설득력 있게 구축되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하기 쉽지않다.
'요가학원: 죽음의 쿤달리니' 아름다워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집착과 욕망에 대한 섬뜩함을 그린 공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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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데이비드(바비 소토)는 크리퍼(샤이아 러버프)와 함께 LA 갱단을 관리하며 그들로부터 상납금을 수금하는 조직원이다. 능숙하게 갱단을 관리해왔지만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데이비드는 언제나 긴장 상태다. 어느 날, 수금해 온 돈 중 일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 데이비드는 크리퍼와 함께 돈을 숨긴 사내를 찾아가고 뜻밖의 사연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후 방문한 곳에서 조직의 패권을 위협하는 잔인무도한 라이벌 코네호(호세 마틴)와 마주친다. 코네호와의 만남 후 데이비드와 그의 가족, 주변인들이 무자비하게 공격당하기 시작하고, 이에 데이비드는 가족과 동료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사투 속으로 뛰어든다.
<엔드 오브 왓치>(2012), <퓨리>(2014),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 등을 만들어온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신작으로, LA 뒷골목을 주 무대로 갱단의 상납금을 관리하는 조직원이 맞닥뜨린
'택스 콜렉터' <엔드 오브 왓치>, <퓨리>,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을 만들어온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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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프랑스,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 마리(로저먼드 파이크)는 동료 과학자 피에르(샘 라일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뛰어난 과학자인 동시에 집념 강한 연구자인 마리의 자질을 알아본 피에르는 마리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한다. 그리고 오랜 노력 끝에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두 사람은 1903년 우여곡절을 거쳐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노벨상 수상의 영광도 잠시,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남편 피에르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마리는 깊은 절망과 좌절을 느낀다. 슬픔과 고통을 견뎌낸 마리는 방사능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이어가지만 위대한 발견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예기치 못한 일들이 그의 삶에 파문을 일으킨다.
여성 최초 노벨상 수상, 세계 최초 노벨상 2회 수상에 빛나는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마리 퀴리의 삶을 소재로 하는 영화다. <페르세폴리스>(2007)와 <더 보이스>(2015) 등을 만든 감독 마르잔 사트
'마리 퀴리'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마리 퀴리의 삶을 소재로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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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식, 당뇨, 마비 등 온갖 질병을 달고 삶이 시작된 한 아이가 있다. 다이앤(사라 폴슨)이 낳은 딸 클로이(키런 앨런)다. 시간이 흘러 클로이는 대학에 갈 나이가 되었다. 학생인 그녀의 일상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다. 수많은 알약, 채혈과 주사, 엄마와의 식사 그리고 구토. 반복되는 고된 일상이지만 모녀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클로이가 무언가를 발견하기 전까진 말이다.
어느 날, 클로이는 엄마가 식탁에 올려놓은 마트 봉투를 뒤지다 자신의 약통을 발견한다. 하지만 약통 겉면에 적힌 환자의 이름은 엄마였다. 클로이는 자신의 루틴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런>은 엄마에게 의심을 품은 딸 클로이가 자신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영화는 두개의 차이를 충돌시키며 서스펜스를 창출해낸다. 하나는 클로이의 시선에서 일상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시각차라고도 할 수 있다. 관객은 클로이가 휠체어에 앉은 높이에서 그녀와 함께 세상을
'런' <서치>를 연출한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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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주변 환경, 경제적 조건,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처음엔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동시에 내 주변에 드리운 벽이자 족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울타리의 또 다른 이름은 가족이라고도 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이 가난과 폭력의 고리에 갇혀 버텨온 시간을 담아낸다.
‘힐빌리’는 미국 남부의 백인 저소득층, 낮은 교육수준과 보수적 성향을 띤 이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가난한 백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한 변호사 J. D. 밴스의 동명 자서전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3대에 걸쳐 이어지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트럼프 시대 미국의 현실을 내비친다. 예일대 학비를 위해 로펌의 인턴 자리를 구하고 있는 밴스(가브리엘 바소)의 시점에서 수시로 과거의 기억들이 교차되며 밴스 가족의 역사를 훑는 형식
'힐빌리의 노래' 미국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이 가난과 폭력의 고리에 갇혀 버텨온 시간을 담아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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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알제리를 탈출하며 부모를 잃은 안티고네(나에마 리치)는 현재 퀘벡에 정착해서 할머니와 언니, 오빠들과 살고 있다. 이민자 가족이라고 해서 남다를 것은 없다. 간혹 가족들과 투닥대고, 학교에서 새로 사귄 남자 친구 때문에 설레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며 그녀의 운명이 흔들린다. 경찰의 오인 사격으로 큰오빠 에테오클레스(하킴 브라히미)가 사망하고, 같은 장소에 있던 작은오빠 폴리네이케스(라와드 엘 제인)가 투옥된 것이다. 작은오빠가 캐나다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하자, 안티고네는 오빠를 대신해서 스스로 감옥에 갇히겠다고 마음먹는다. 물론 이 시도가 순조로울 리는 없다. 이내 발각돼 재판에 오르면서 세간의 관심은 온통 16살의 작은 소녀에게 집중된다. 게다가 SNS를 통해 번지는 사건의 진상은 그녀가 겪었던 것과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의도하지 않은 의견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간다.
소피 데라스페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안티고네&g
'안티고네' 소피 데라스페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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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구직자들' 오늘은 일을 좀 구해야 할 텐데…
[정훈이 만화] '구직자들' 오늘은 일을 좀 구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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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그저께 밤에 선생님 빈소에 다녀왔다. 선생님을 뵌지가 몇년 되었고, 근래는 전보다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한 상황이었는데 영정 사진 속 송 선생님 특유의 미소를 보고 마음이 더 아렸다. 따님께서 큰 고통 없이 평화롭게 눈을 감으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대중에겐 TV드라마로 더 친숙할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은 영화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했다. <살인의 추억>을 찍을 때, 쉬는 시간이 되면 내 옆에서 직접 쓴 시나리오를 설명해주시며 “봉 감독이 연출해보면 어떨까요” 하고 의견을 물으시곤 했다. 영화 제작에 대한 꿈이 여전히 강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젊은 두 형사 사이에서 술에 취해 오바이트하는 술집 신도 기억난다. 워낙에 긴 롱테이크 장면인데 송재호 선생님을 비롯해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단역배우들까지 총 7명의 배우가 크고 작은 디테일을 맞추느라 테이크만 20번이 넘어갔다. 결국 내가 숏을 나눠서 가면
[故 송재호 배우를 추모하며②] 영화인들이 기억하는 배우 송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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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긴 연극 같은 삶이었다. 막간을 둘 새도 없이 배역을 달리하며 무대 위의 성실함으로 삶을 채웠다. 60여년의 배우 인생을 뒤로하고, 지난 11월 7일 배우 송재호가 영면했다. 향년 83살. 1년 가까이 지병으로 투병했지만 마지막은 평온했다고 전해진다. <영자의 전성시대>에서는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온 당대의 열혈 청년으로,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인자한 아버지로, <살인의 추억>에서는 묵직한 기둥이었던 수사반장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는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간직한 노인으로 출연하며 송재호는 배역을 따라 나이 들었다.
혹여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둔감했던 관객에게조차, 송재호의 푸근한 미소는 영화와 드라마 곳곳에 스며들어 미더운 약속처럼 기억된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보내온 추모의 메시지와 함께, 1960년대부터 한국영화의 파고를 함께하고 추억 속 브라운관 드라마의 단골이었던 그의 궤적을 되짚어본다. 영화
[故 송재호 배우를 추모하며①] 사나이, 아버지, 그리고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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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8 <자전차왕 엄복동> 2017 <질투의 역사> 2016 <길> 2015 <연평해전> 2013 <용의자> 2012 <스파이> 2012 <타워> 2011 <퀵> 2010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0 <해결사> 2009 <해운대> 2009 <그림자 살인> 2008 <바보> 2008 <가루지기> 2007 <화려한 휴가> 2006 <국경의 남쪽> 2005 <그때 그사람들> 2004 <페이스> 2004 <고독이 몸부림칠 때> 2004 <그녀를 믿지 마세요> 2003 <은장도> 2003 <이중간첩> 2003 <살인의 추억> 2003 <싱글즈> 2001 <몽중인> 2000 <무사> 1996 <용병이반&
[故 송재호 배우를 추모하며③] 故 송재호 배우